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9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89)
―그 이상이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진지하게, 갑작스럽게 투란에게 속삭였다.
‘그 이상……?’
두 마법사가 바람 반지, ‘카티야의 바람 반지’를 이리저리 시험하는 중이었다.
투란은 그 반지가 그저 목소리를 꽤 멀리 전해주는가 생각했는데, 드라고니아가 저리 말문을 열고 있었다.
―전언(傳言)은 기본적인 것일 뿐이야. 반지의 마법이 기동(起動)한다는 확인절차였을 뿐이다. 바람을 매개로 해서 공명(共鳴)하고, 오감(五感)의 공유, 전이까지 가능한 대단한 마법이다. 과연 대마법사의 이름이 걸릴 만해.
‘넌 그걸 다 알아봐?’
투란이 어이없어 물었다.
―만드는 것보다 쉽지, 바로 앞에서 지켜보면서 파악하는 거니까.
드라고니아의 대답이었다.
투란도 퍼뜩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홀시딘이 노골적으로 마법의 구성을 보여줬잖은가!
‘파쿠란에게 알려준 거야?’
―뭔가 시험한 느낌이다만.
‘뭘?’
―바라크의 후계자를 자처했잖아. 그러니 바라크와 연관된 뭔가를 기대하며 보여준 것일 수 있지.
‘흠? 뭐가 있나?’
투란은 갸웃하면서 가만히 반지를 놓고 아직 이야기 중인 두 마법사를 바라봤다.
실물로 앞에 있는 파쿠란, 금빛 형상인 홀시딘…….
흑마법사와 상아탑의 마법사…….
도대체 무슨 이야기에 저리 몰입해 있는가?
곁에서 두어 마디씩 귀에 담아봐도, 투란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중요한 거 있으면 잘 들어둬!’
그래서 드라고니아에게 떠넘긴 채로 투란은 다시 남은 고기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고기가 다 사라질 무렵, 두 마법사의 이야기가 끝났다.
투란의 볼이 한가득 밀어넣은 고기로 꽉 채워져서 우물거리는 중이었다.
홀시딘이 그 꼴을 보고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그새 싹 다 먹었냐.”
투란은 입안의 고기를 세게 꿀꺽 삼키고서 대꾸한다.
“이걸 다 먹을 때까지 둘만 얘기하고 있었잖아요! 뭔 소리인지도 모르겠드만!”
파쿠란이 새는 웃음과 함께 말한다.
“보통 마법물품이랑 달라서 그래야 했다. 그저 목소리만 전하는 반지가 아니니까. 제대로 반지를 사용할 수 있어야 제대로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어서 말이야. 그러면…… 마스터 홀시딘, 이제 돌아가십니까?”
“음? 그렇지. 이제 자네 연락을 기다리며 버텨야지. 하아…….”
홀시딘이 뭔가 지치고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투란에게는 그리 고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한 푼도 빼먹지 말고, 다 받아내세요.”
“알아, 안다고! 그럼, 간다!”
움찔하며 홀시딘이 으르렁거렸고, 순식간에 금빛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금색의 안개로 이뤄진 풍경이 일렁거리면서 서서히 지워졌다.
어느 틈엔가 투란과 파쿠란은 다시 벡커드의 퍼브 4층 방에서 뼈만 남은 탁자를 놓고 마주 보며 앉은 채였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창문 너머로 바람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투란이 파쿠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면!”
간단한 한마디가 더해진, 파쿠란이 픽 웃으면서 탁자 올려놓았던 가면을 스윽 밀어줬다.
가면을 쥐면서 투란이 진지하게 묻는다.
“어떻게 쓰는 거예요? 그냥 머리에 뒤집어쓰듯 얼굴에 붙여요?”
“갖다 대봐. 그러면 저절로 붙어. 음, 그다음에 한 오 분 정도 주물러볼 수 있어. 그렇게 해서 틀을 잡는 거니까. 거울이 필요하겠군.”
파쿠란이 이리저리 알려주다가 벽에 걸린 거울을 가리켰다.
투란은 그 말대로 일단 얼굴에 펼쳐진 수건을 갖다 대며 거울 앞으로 가서 섰다.
헝겊 수건처럼 얼굴에 닿은 에모틱, 요술가면은 즉각 변화를 시작했다.
거울 속에서 비치는 그 변화를 보며 투란이 웃었다.
“아하핫, 이거 아주 웃기네요! 뭐야, 저게…… 삐뚤삐뚤하잖아! 하하핫.”
어린아이가 진흙으로 장난하는 것처럼,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이리저리 꿈틀거렸고 손이 닿을 때마다 파르르 떨며 모양을 바꿔나갔다. 그 광경이 몹시 재미있는 장난처럼 여겨지는 것은 당연해 보이는데…….
―야, 그거…….
“그게 고정되면 네 얼굴이야, 투란.”
거의 동시에 드라고니아와 파쿠란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투란은 잠시 ‘어?’ 하는 소리를 내고 어리둥절했다.
울퉁불퉁하게 꾸물거리며 도저히 사람의 얼굴이 아닌, 어딘가에서 사람 흉내를 내려다가 실패한 몬스터라고 여기기 딱 좋은 얼굴이 거울 속에…… 투란 목 위에 자리 잡고 있잖은가!
그런데 그게 사람들 앞에 들이댈 얼굴이 된다니…….
“우엑! 이건 아냐! 몬스터라고 두들겨 맞을 거야!”
뒤늦게 깨달은 외침이 투란의 입에서 터져나았다.
작게 낄낄거리는 웃음을 흘리는 채로 파쿠란이 말한다.
“볼을 손바닥으로 눌러 잡고 귀에 닿을 것처럼 당겨. 그다음에 감정에 집중해. 웃거나 울거나, 화났을 때나 슬펐을 때…… 어떤 감정이든 가장 도드라지게 떠오르는 감정을 충실하게 느껴봐. 손바닥으로 얼굴을 꽉 누르고, 천천히 가볍게 두들겨. 그러면 가면이 고정될 거야. 적당히 감정을 담은 얼굴로.”
투란은 파쿠란의 말에 따랐다.
하지만 조금 헷갈려 들은 모양이었다.
거울 속의 얼굴이 서서히 헝겊의 색채를 잃고 사람의 살갗으로 변해가는데, 눈꼬리는 방실방실 웃는 것처럼 휘어졌는데 입매는 잔뜩 골이 난 것처럼 쳐진 것이 매우 괴상한 몰골로 고정된 것이다.
“으엣, 이게 뭐야! 다, 다시 하면…….”
“새 얼굴은 하루 지나야 한다고 했잖아. 일단 익숙해지도록 쓰고 있어 봐.”
투란이 귀밑으로 들러붙은 요술가면 에모틱을 떼어내려 하자 파쿠란이 말리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손을 볼에서 떼며 추욱 늘어진 꼴로 투란은 거울을 봐야 했다.
“망했어…… 이런 낯짝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옹알거리는 소리로 투란이 힘없이 투덜거렸다.
파쿠란은 웃음소리를 자제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풋, 푸흐흣. 투란…… 그 얼굴이면…… 크흐흣, 보면 다들 잊지 못하겠는걸. 그러니 가면 벗은 다음에는…… 하핫, 절대로 못 알아볼 거다. 꽤 잘 나왔다고…… 푸하핫!”
“아, 진짜! 위로를 하려면 웃지 말고 하라고요!”
투란이 목소리를 높여 투덜거렸다.
파쿠란이 ‘어흠, 어흠!’ 하는 헛기침으로 웃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조금 진지하게 말한다.
“못생기고 독특해서 보면 금방 눈에 띄는 얼굴이 되었잖아. 그건 나쁜 게 아냐. 가면이니까 말이지. 투란, 넌 그걸 진짜 얼굴로 삼으려는 게 아니잖아. 본래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 쓰겠다는 거지. 그러니 가짜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중요한 이점이다. 그 얼굴을 보고 너의 진짜 얼굴을 연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그런 면에서…… 에모틱이 아주 제대로…….”
덜컹, 갑자기 문이 불쑥 열렸다.
이자닌이 등에 큰 보따리를 짊어지고 문턱을 넘으려다가 흠칫하며 멈췄다.
보따리가 툭 이자닌의 등 뒤로 떨어졌고, 이자닌의 손은 반쯤 뽑힌 가늘고 얇은 칼날의 단검 자루에 올려진 채였다. 그렇게 긴장한 이자닌의 눈길은 가면을 쓴 투란의 위아래를 재빨리 훑었고…….
“투란……? 뭐야, 그 얼굴은…… 에모틱? 파쿠란, 투란에게 가면 줬어?”
찰캉, 단검을 다시 허리춤의 칼집에 밀어넣으면서 묻는 말이었다.
투란은 ‘어라? 어떻게 알아봤지?’라며 거울을 보다가 옷차림에 눈길을 주고 ‘아, 그렇구나.’라고 중얼거렸다. 파쿠란은 이자닌의 어깨 너머로 벡커드가 한 짐 더 지고 있는 광경을 보며 대답한다.
“그래, 아무래도 얼굴이 알려지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한 번의 의뢰 때문에 원한을 맺고 나중에 피곤한 일을 겪지 않게 배려 좀 해줬지. 그런데, 그 보따리는?”
이자닌이 떨궜던 보따리를 다시 집어서 빈 의자 위에 올려놓으며 답한다.
“나도 비슷한 준비를 좀 했어. 아무래도 우리 복장이 사냥 나가기 직전의 몬스터 헌터잖아. 그대로 거리를 돌아다니기에는 많이 눈에 띄니까. 괜히 얼굴 팔리지 않으려면 대비를 해야지. 그렇다고 무장해제한 상태로 돌아다니기도 그렇고. 벡커드, 그것도 여기 옆에 놔둬.”
벡커드가 방긋거리면서 들어와 한 보따리 짐을 내려놓았다.
한데 이자닌이 내려놓은 짐과 달리 벡커드가 내려놓는 짐에서는 은근히 쇳소리가 울려나왔다.
파쿠란이 갸웃하며 이자닌을 바라봤다.
“무기도?”
한마디 물음에 이자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래도 티 나는 것보다는 티 안 나는 걸로 써야 하니까. 투란, 이리 와서 좀 봐.”
투란이 거울을 보고 얼굴을 쓰다듬다가 ‘에? 왜요?’라며 다가섰다.
하지만 투란은 이자닌 곁에 설 수는 없었다.
슬그머니 벡커드가 투란과 이자닌 사이에 끼듯이 선 때문이었다.
―이상하지만 성실하고 일관성 있구만.
드라고니아가 이젠 질렸다는 듯이 아예 칭찬을 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런 벡커드를 흘깃하고 그냥 묻는다.
“이자닌, 왜요?”
이자닌이 벡커드의 가슴팍을 팔꿈치로 쳐서 밀어내며 보따리를 풀었다.
조여진 끈이 풀리면서 넓게 펼쳐진 가죽 자루가 속을 드러내는데, 안에는 단검과 장검은 물론이고 쇠징이 박힌 장갑, 강철 토시, 쇠로 덧댄 가죽 장화 따위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 중에서 적당히 손에 맞는 걸로 골라.”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
투란이 투덜거렸다.
이자닌은 다시 끼어들려는 벡커드의 발을 뒤꿈치로 찍고 손등으로 이마를 쳐 밀어내며 투란에게 말한다.
“가진 거 내놓고 이걸 쓰라는 게 아냐. 남들한테 보이도록 이걸 적당히 차고 있으라고. 상황에 따라서는 쓸 수도 있게 말이야. 네가 가진 장비는……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도록 하고. 어쨌든 너무 특이해 보이는 거는 피하란 말이야.”
“음…… 그러면 벨트의 마법을 써야 하나.”
투란이 갸웃하며 중얼거렸고, 이는 이자닌보다 벡커드를 먼저 놀라게 했다.
“마법 걸린 벨트가 있다고? 너한테?”
“음? 왜요? 상아탑에 가서 돈 주고 사면 되는데?”
투란은 벡커드가 놀란 것이 오히려 놀랍다는 듯이 되물었다.
벡커드가 잠깐 움찔했다.
“그야, 그렇지…… 그럼,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는 거지…… 아하, 그렇네. 아핫.”
뭔가 얼버무리려는 말이 이보다 더 확실할 수가 있을까!
투란은 이자닌을, 파쿠란을 둘러보면서 수상한 벡커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눈길을 보냈다. 이에 응하듯 파쿠란이 피식거리는 웃음과 함께,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벡커드에게 말한다.
“왜, 너의 마법 감지 능력으로 파악 못 한 마법 물품이 있다니까 놀라워? 상아탑에서 그런 마법물품을 팔았을까 의심스러워? 벡커드, 너무 자만하지 마라. 십여 년 만에 만난 처지에 내가 널 완전히 믿을 수는 없잖아?”
벡커드는 이 말에 잠깐 눈을 잔뜩 찌푸리다가 한숨을 쉬며 표정을 풀고 대꾸한다.
“방해한 거야, 파쿠란? 쳇. 그런 거면 그렇다고 말을 해주면…… 의심하니까 안 해줬어? 너무하는구만! 내가 이자닌의 적이 될 리가…….”
“내 적은 아무 때나 될 수 있잖아.”
싹둑, 벡커드의 말을 자르며 파쿠란이 조금 더 차갑게 말했다.
벡커드는 입을 다물었다.
투란이 보다가 어이없어 웃었다.
벡커드는 이자닌의 적은 결코 될 수 없다 외치지만, 지금 파쿠란의 말은 부정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심하구만.
‘어, 심하네.’
드라고니아의 평가에 투란도 동의했다.
한데 이런 상황이 거슬린다는 듯, 이자닌이 불쑥 한마디 한다.
“벡커드, 파쿠란의 적은 내 적이야. 파쿠란을 적대한다면, 바로 나랑도 적이 된다는 거 잊지 말고 잘 새겨…….”
“어째서!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왜!”
벡커드가 심하게 반발했다.
이자닌이 입가를 뒤틀었다.
도저히 말로 해서 안 될 놈에게 더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을 지은 듯, 이자닌이 스윽 보따리 안에서 장검 한 자루를 꺼내는데…….
“그만해, 벡커드가 심술부리면 내가 알아서 하지. 그보다 이자닌에게 줄 것이 생겼어. 자, 이거 받아. 왼손에 끼우는 게 좋아. 새끼손가락 쪽이 좋겠지.”
파쿠란이 이자닌의 손목을 잡으면서 손바닥 위에 은반지 하나를 올려놓고 내밀고 있었다.
이자닌은 어리둥절해서 은반지를 쳐다봤다.
투란도 ‘어?’ 하는 소리를 내며 그 은반지를 바라봤다.
어째서 파쿠란이 홀시딘에게 연락용으로 받은 ‘카티야의 바람 반지’를 이자닌에게 넘겨주려는가?
―다른 반지다, 바보야.
드라고니아가 딱 잘라서 말했다.
‘에? 달라? 똑같은 느낌인데?’
투란이 의혹을 더 깊이 내밀었고, 벡커드는 격분을 토해냈다.
“나, 이 약혼 반대야!”
곧바로 장검이 칼집째로 보따리에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