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90)
쩌억!
두툼하고 넓은 장검의 칼집이 벡커드의 따귀를 후려쳤다.
콰당, 뒤로 세게 넘어져 뒹굴면서도 벡커드가 외친다.
“꾸엑! 아프다! 아프지만 결코 찬성할 수가 없어!”
“닥쳐! 이 멍텅구리 얼간아! 갑자기 왜 정신줄을 놓냐고! 아까까지는 멀쩡했잖아! 날 놀리냐? 아, 놀리는 거군! 재밌냐? 날 놀리니까 기분 좋아? 아주 째지게 기분 좋아? 그렇군! 그냥 배를 확 째주마! 정신 번쩍 들게 확 째줄게, 이리 와!”
스르릉, 격노한 이자닌의 손에 들린 장검이 칼날까지 드러냈다.
말과 함께 가차 없이 걷어차여 저편으로 데굴거리며 굴러갔던 벡커드도 흠칫하며 손을 휘젓는 모습으로 변명하는데…….
“아냐, 정신 차렸어! 이자닌, 내가 널 보면 정신 잃을 수밖에 없잖아! 이렇게 잘 자란 미녀가 되었는데, 맨정신이면 그게 나쁜 놈이지! 그렇잖아, 파쿠란!”
“음, 내가 나쁜 놈이군.”
가만히 턱을 쓰다듬는 채로 파쿠란이 이자닌을 보며 이리 대답하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이자닌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이마를 손가락으로 콱콱 눌러 핏대를 가라앉히는 시늉을 하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마, 파쿠란!”
키득거리는 표정인 채로 파쿠란이 담담하게 이자닌에게 자기 손을 들어 올린 채로 말을 잇는다.
“그 반지는 내가 낀 이 반지의 아이야. 보통 마스터와 슬레이브라고 하지만 이 반지의 경우에는 페어런츠와 차일드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이걸 통해서 나는 이자닌 네 주변을 보고 느낄 수 있고,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엄청난 거잖아? 아니, 이런 아티팩트를 대체 어디서……?”
듣고 있던 이자닌이 돌연 놀란 소리를 지르다가 말을 흐렸다.
잠깐 사이에 이자닌의 눈동자만 움직여 투란을 흘깃거렸다.
한편에서 투란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면서 거울을 보고 ‘음, 이 정도면 잘생겼다고는 못하려나. 으음.’ 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벡커드가 저지르는 소란은 이제 싹 무시하고 살겠다는 태도!
하지만 이자닌은 그런 투란의 태도 때문에 등 뒤로 밀어낸 벡커드 몰래 파쿠란에게 눈짓해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새끼 치는 엄청난 아티팩트를 손에 넣은 까닭, 파쿠란에게 그런 역량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이 상황이 너무 묘하니까 그 원인으로 투란을 짚으면서 확인해 보는 눈짓이었다.
애초에 파쿠란이 투란을 뭔가 엄청난 녀석이라고 했으니까!
파쿠란 또한 이자닌의 의도를 안다는 듯, 빙긋 웃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입으로 다른 말을 한다.
“도적에게 출처를 묻는 거 아냐, 이자닌. 어쨌든 나도 일단 길드 소속이잖아? 작은 손재주로 크게 한몫 챙겼다고 생각해. 중요한 것은 이걸로 이제 이자닌이 움직이기 한결 편해졌다는 거지. 어딜 가든,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지원해 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렇지…… 음, 좋은 거네.”
이자닌은 여전히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투란에게서 눈을 떼고 깊이 숨을 들이쉬면서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안 돼애애!”
벡커드가 애처롭게 바닥에 엎어진 채로 한 손을 내밀며 외쳤다.
콱, 그 등짝을 냅다 밟으면서 이자닌이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른 격한 말투로 소리친다.
“뭔지 들어놓고 그딴 소리가 나와! 파쿠란이 나 좀 지켜준다는데 그걸 훼방 놓고 싶어? 그냥 뒈질래? 아니, 죽어라! 당장!”
콱콱, 험한 밟기가 잠시 더 이어졌다.
파쿠란이 그 광경을 보고 스물 정도 세다가 불쑥 묻는다.
“저 보따리는?”
이자닌이 벡커드와 함께 가져온 보따리는 두 개의 가죽 자루였다.
벡커드가 가져온 하나는 적당한 무기가 담겨 있었고, 이자닌이 가져온 것은 얌전히 의자 위에 올려진 채였다.
이자닌이 한마디로 답한다.
“옷.”
“옷?”
파쿠란이 갸웃했다.
지금 차림새가 몬스터 헌터라고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건 주로 투란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투란의 경우에는 위아래 전부 최소한 가죽 갑옷의 모양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파쿠란의 두꺼운 로브나 이자닌의 보기 시원한 느낌의 차림새는 가벼운 여행자로 봐 줄 수도 있었다. 둘은 나름대로 도적의 버릇을 발휘해서 은밀하게 무기를 소지했고, 아닌 척하며 갑옷의 기능을 발휘하는 의상(衣裳)을 갖췄으니까.
한데 이자닌이 가져온 보따리 옷은 얼핏 봐도 한두 벌의 분량이 아니었다.
파쿠란은 추측하다가 묻는다.
“설마 연회……?”
“어, 가서 조금 둘러볼 필요가 있어. 서너 곳 들러야 하고…… 결국 저걸로는 부족하지. 새로 좀 맞추기도 해야겠어. 왜? 연회 가서 춤추라고 할까 봐? 파쿠란은 그런 거 안 해도 되니까 안심해.”
이자닌이 파쿠란의 말을 가로막듯이 줄줄 이야기했다.
그래도 파쿠란의 표정이 미심쩍게 꿈틀거리니, 이자닌은 한숨을 쉬며 벡커드를 턱짓하는 채로 말한다.
“저기 있잖아, 연회 좋아하는 놈! 지금이야 정신 놔버렸지만…… 계속 저 모양이라 저걸로 안 되면 투란에게 맡길 거야!”
벡커드가 벌떡 일어섰다.
“난 멀쩡해, 정신 맑아! 내 정신줄을 꽉 잡고 있어!”
그 모습에 이자닌은 ‘내가 실수했나?’ 하며 부르르 입가를 떨었고, 파쿠란은 ‘음, 다행이군.’이라며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이 광경을 돌아보며 투란이 묻는다.
“왜? 뭔데요? 왜 불렀어요? 안 불렀나? 으흠?”
파쿠란이 가만히 뒤죽박죽인 채로 고정된 투란의 가면을 살펴보며 대답한다.
“불렀어, 거리에서 입고 다닐 옷을 고르라고. 눈에 띄지 않게, 적당히 걸치고 다닐 옷차림을 만들어보자고.”
“적당히……?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었어요?”
투란이 자신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자닌이 눈가를 실룩이면서 투란에게 묻는데…….
“투란, 거울 보면서 우리 얘기…… 하나도 안 들었냐! 너 정말 그럴 거야! 딴짓하기로 벡커드 닮는 거냐! 그러지 마!”
묻던 말이 홀랑 사라지고 결국 벡커드에 대한 타박으로 끝맺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자는 듯, 파쿠란이 손뼉을 쳤다.
순간적으로 이자닌은 귀로 푸욱 꽂혀오는 맑은 바람결을 느꼈고, 머리가 훤해지는 느낌에 움찔했다.
“시원하지, 이자닌? 이런 효과도 있어. 정신이 몽롱할 때 말하라고. 자, 그러면…… 벡커드 적당히 하고 앉아봐. 투란도…… 거울 그만 보고 앉아. 이자닌, 다녀온 이야기를 할 때야.”
파쿠란이 탁자 위로 손짓해서 일으킨 거세고 작은 바람으로 뼈다귀와 찌꺼기를 몰아내며 말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서 밀려나간 것들은 금방 방문 앞의 한구석으로 몰려가 뭉쳤다.
벡커드가 툴툴거리며 의자에 앉는다.
“마법 좋구나, 좋아. 근데 대체 뭔 마법사가 청소를 마법으로 하냐고. 그거 낭비잖아, 낭비!”
“좋은 마법은 사람의 귀찮음을 덜어주는 마법이지. 좋으면 좋다고 하고 끝내, 뭘 잔소리야. 아, 설마 그 잔소리는 이자닌이랑 함께 가서도 아무런 성과를 못 낸 자신의 무능력함을 감추기 위한 시도인가?”
파쿠란은 길게, 벡커드의 말을 짚어가며 비아냥거렸다.
투란은 갑작스럽게 심술궂은 파쿠란의 태도에 갸웃했다.
조금 전까지는 저 높은 절벽 위에서 절벽 아래의 벌레라도 보는 듯하다가 갑자기 무슨 못된 태도인가?
이자닌이 옷이 담긴 가죽 자루를 탁자 위로 올리고 빈 의자에 앉으며 벡커드의 입을 막는 손짓과 함께 말한다.
“영향력이 많이 줄기는 했어. 그래도 무능력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야. 그저 약해져 있을 뿐이지.”
“이자닌!”
벡커드가 애교라도 부리는 것처럼 애처롭게 외쳤다.
투란은 흠칫했고, 파쿠란은 낯을 확 구겼다.
이자닌은 냉정하게 벡커드를 노려보며 말을 잇는다.
“도대체 라누엘에게 얼마나 얹어서 보낸 거야? 거기 가진 걸 전부 탕진했다는 말이 왜 나오냐고!”
파쿠란이 ‘역시 그런 거냐.’라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투란은 ‘아, 라누엘도 미녀라고 했었나?’ 하며 갸웃했다.
파쿠란은 이자닌의 말을 이해했지만 투란은 이전에 들은 것 이상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때문이었다.
벡커드는 금세 주눅 든 표정으로 눈치 보며 대답한다.
“아니, 그거야…… 라누엘이 나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했다고, 충분히 그럴 만하잖아? 따라오지 말라고 해서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라누엘이 날 기억해준다고 했다고! 재물(財物)은 다시 모으면 되지만, 미녀의 진심 속에 기억으로 남는 거는 한 번뿐인 기회였다고!”
결국은 열변(熱變)으로 탈바꿈하는 말이었다.
탕, 이자닌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며 쏘아보는 눈길로 벡커드의 입을 다물게 하면서 냉정하게 말한다.
“그래서! 그런 까닭에! 여기저기 연회를 돌면서 정보를 모아야 해. 더불어 벡커드에게 알려진 적이 없다는 도적 길드의 새로운 멤버, 의석 멤버가 몇 명이나 되고 어떤 연놈인가도 알아낼 수 있는 만큼 알아내야 해!”
“응? 잠깐, 이자닌. 몇 명인가도 몰라?”
파쿠란이 의아함에 벡커드를 보는 채로 물었다.
아무리 영향력이 줄어들고, 뒤로 밀려났다고 해도 도적 길드의 회합을 주도하는 의석 멤버의 숫자 변동 정도까지 모를 수는 없으니까.
이자닌이 깊이 숨을 들이쉬고 길게 내쉬었다.
투란에게는 마치 무슨 드래곤 브레쓰라도 내뿜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니 입을 꼭 다물고 계속 없는 사람인 척하며 투란은 구경만 하는데…….
“이게, 이 벡커드 씨가 그동안 도적도 아닌 척하며, 온갖 얌전을 다 떠시면서, 모르는 척하고 살아주셨다는 거지! 이 퍼브만이 자신이 전부인 것처럼, 말이야!”
뚝뚝 아무렇게나 잘라 내뱉은 이자닌의 말에 파쿠란은 벡커드를 측은하게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결국 라누엘이 떠난 시점(時點)부터 벡커드는 여전히 도적 길드의 한편에 머물기는 했지만 도적으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지우듯이 살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지금 멀리 와서 현지인으로서 도움을 청한 이자닌의 판단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결론이기도 했다.
즉, 이자닌은 벡커드와 함께 잠깐 나갔다 돌아오는 사이에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했는가를 깊이 느끼고 돌아온 셈!
“저기, 이자닌. 그래도 나는 이자닌의 적이 아니잖아.”
조심스럽게 벡커드가 말했다.
이자닌의 눈가에 핏대가 서려는 순간, 파쿠란이 얼른 말한다.
“그래, 그건 아주 좋은 선택이었어! 정보에 밝은 놈이 적이라면 그보다 더 귀찮은 일은 없으니까! 그럼, 괜찮은 선택이라고 이자닌!”
“차라리 그런 놈을 때려잡고 얘기 듣는 게 더 나을 뻔했다고! 아흑!”
이자닌이 울화를 못 참겠다는 듯이 결국 분함을 토해냈다.
벡커드는 주눅 든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떨구면서 이자닌의 분노가 얼른 지나가기를 얌전히 기다리는 자세를 취했다.
파쿠란은 그런 벡커드의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동조하며, 그래서 싫은 낌새를 한숨으로 토해내면서 이자닌에게 묻는다.
“그러면, 어떤 연회부터 참석하기로 했지? 미리 나도 그 주변을 둘러보고 조사라도 해둬야 할 테니 말이야.”
“음? 아, 그건…… 로렐리의 결혼 연회.”
이자닌이 자신의 두 뺨을 두드리며 울화를 가라앉히면서 대답했다.
파쿠란이 눈을 깜박이며 이자닌을 향해 다시 묻는다.
“로렐리라면…… 그 로렐리?”
“그 로렐리지 뭐. 어느새 그 꼬맹이가 결혼을 한다니, 이 기회에 한번 들러도 봐야잖아.”
“너보다 세 살 어리잖아. 그런데 벌써 결혼인가?”
파쿠란이 세월이 참 빠르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감상에 빠진 듯, 둘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 사이에 벡커드가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고, 나직하게 말한다.
“로렐리가 그 로렐리라고 단정 짓지 마. 음, 그 꼬마가 자란 거야 맞지만…….”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이야?”
이자닌과 파쿠란이 심각하게 벡커드에게 동시에 묻고 있었다.
씁쓸하게 벡커드가 둘을 둘러보며 말한다.
“로렐리가 결혼을 하는데 연회를 연다는 거,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너네가 이상한 거잖아. 도적 길드의 정보를 찾으려는 이자닌이 가볼 만한 연회에 로렐리의 결혼이 끼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해? 너희가 기억하는 그 로렐리가 그런 결혼이 가능하겠냐고.”
이자닌과 파쿠란이 입을 다물었다.
투란은 ‘흐흠?’ 하며 갸웃거리는 채로 뭔가에 공감하며 심각해지는 셋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위험하고 음울한 분위까지 배어나는 듯했다.
―흐흠, 인간의 결혼과 연회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거냐. 투란, 너도 본 적 없지? 이거, 꽤 재밌겠군.
색다른 구경거리라고 드라고니아는 좋아했다.
물론 투란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기대는 잔뜩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