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9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93)
녹아내린 듯한 쇠빛 실그물에 얽힌 암살자 셋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목을 감아 조이던 부분을 풀어줬으니 말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입을 꾹 다문 채로 대답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셋을 보며 이자닌이 한쪽 눈가를 삐딱하게 세우면서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입이 무겁다는 시늉을 하겠다고? 여기까지 그렇게 끌려왔으면 그게 얼마나 쓸모없는 짓인가는 깨달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파쿠란, 해!”
암살자 셋의 눈길이 살그머니 파쿠란을 훑었다.
자신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마법사, 거리를 지나오면서도 사람들에게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게 했고…… 분명히 멀쩡한 인간들이 인형흉내를 내며 걷고 있었는데도 아무도 관심 없다는 듯이 지나치게 하면서 끌고 온 마법사가 자신들을 어떤 식으로 심문할 것인가에 대해 불안해하면서도 대답은 거부하는 낌새였다.
파쿠란이 그런 셋을 스윽 둘러보다가 말한다.
“뭘 해?”
“파쿠란!”
이자닌이 발끈했다.
잔뜩 겁을 주려 하는데 장난처럼 뭘 어쩌냐고 되묻는 한마디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분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이자닌을 향해 파쿠란이 다시 묻는데…….
“어딜 잘라놓아? 아니면 산 채로 끓여? 마법으로 개구리를 만들어? 개구리가 아니면…… 벌레?”
구체적으로 뭐 하나 고르라는 말이었다.
투란이 듣자 하니 그야말로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사악한 마법사가 누굴 괴롭히려고 하는 짓을 다 모아놓은 듯하잖나! 이렇게 노골적이면 그냥 겁주려고 이런저런 말을 마구 토해낸다고 여길 지경이었다.
과연 매달린 암살자 셋의 입가에도 미묘한 웃음이 배어나오는 듯했고, 눈가와 표정이 조금 전보다 편안해진 분위기가 맴돌았다. 실제로 뭘 할 생각이 없으니 겁을 주려는 것일 테고 그런 정도로는 전혀 입을 열 까닭이 없다고 다짐하며 팔다리 잘려나갈 각오까지 새로 품은 것처럼!
이자닌이 그 꼴을 흘깃하고 냉랭하게 한 가지를 골라 말한다.
“한 놈 개구리 만들고 시작해야겠네. 제일 입이 무거워 보이는…… 저 녀석!”
한쪽 귀퉁이를 가리켜 하는 말이었고, 듣자마자 파쿠란이 느릿하니 소매 안에서 작은 완드를 꺼내는데, 주먹만 한 회색 해골이 시퍼런 불길을 눈구멍으로 이글이글 뿜어내는 괴이한 장식이 한쪽에 달린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 광경에 투란부터 놀라서 ‘어?’ 하는 소리를 냈고, 이자닌은 슬쩍 한쪽으로 비켜서며 매달린 셋이 파쿠란의 괴기스러운 마법봉을 똑바로 보게 했다.
이글거리는 파란 불길이 곧바로 회색 해골의 눈구멍에서 너울거리며 번져나왔고 일렁거리면서 이자닌이 고른 암살자를 향해 뻗어나갔다. 길게 매달린 깃발이 바람결에 휘날리듯 파란 불길이 자신들의 눈앞을 지나치며…… 한 명은 곧바로 자신에게 닥쳐오는 광경을 보면서 암살자들이 이를 악물고 나직한 신음처럼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런데 헛바람을 들이켜는 듯한 그 놀란 소리 끝에 돌연 개구리 울음소리가 한마디 끼어들잖는가.
깨골, 깨골…… 툭.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눈길을 돌린 두 암살자는 자신들 한편에서 동료가 개구리가 되어 옷자락 사이로 툭 떨어지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옷자락은 실그물에 꿰여 여전히 허공에 사람이 입은 몰골로 남겨져 있는데 그 안을 채워야 할 몸은 개구리가 되어 아래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리고 파쿠란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린다.
“다음은?”
이자닌이 바로 대답한다.
“잠깐, 이 둘이 뭐라 하는지 일단 들어보자고. 할 말 없냐?”
두 암살자는 서로 눈치를 봤다.
바로 곁에서 진짜 개구리가 돼버리는 동료를 봤으니, 망설임이 생긴 모양이었다.
팔다리 잘려나가는 것은 버틸 수 있지만 인간의 몰골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두렵다고 여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입술을 깨물며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각오를 다지는 태도로 계속 침묵했다.
이자닌은 차가운 웃음과 함께 파쿠란에게 말한다.
“이 얼간이들이 이게 돌이킬 수 있는 마법이라 착각이라도 하나 보네? 굳이 너네 입으로 들을 필요가 있어서 묻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나? 멍청하긴! 어차피 너네가 실패한 일, 어떤 놈이든 너네를 보낸 녀석이 다시 해결하려 할 거 아냐. 그거 적당히 쫓아 보내고 따라가 보면 알 일이야. 그게 귀찮아서 말 좀 들어보자는 거였는데…… 뭐, 싫다면 할 수 없지. 파쿠란, 개구리 말고 벌레로…… 기왕이면 벌레 경주에 내보낼 수 있는 걸로 둘 다 바꿔.”
“한 번에 한 놈씩 변환시켜야 해. 그럼, 우선 또 한 놈.”
고개를 저으면서도 파쿠란은 다시 해골 완드를 내밀었다.
시퍼런 불길이 다시 쭈욱 뻗어나갔고 또 한 명의 모습이 사라지며 빈 옷자락이 허공에 남겨졌다. 벌레는 잠시 뒤에 옷감 위를 기어나오다가 허우적거리면서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투란이 이를 보며 중얼거린다.
“와, 저거 사슴벌레네? 사슴벌레 경주를 이런 도시에서도 해요? 헤에…….”
파쿠란이 피식 웃으며 투란에게 말한다.
“이런 도시에서 오히려 더 열중하는 도박이지. 아주 큰 돈이 걸리는 경우도 많아. 뭐, 사람에서 변해버린 경우니까 말을 좀 더 잘 듣고 열심히 경주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벌레가 되어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근성 있는 녀석의 경우라고 해야 할까? 자, 이제 한 놈 더…….”
느릿하니 파쿠란이 다시 해골 완드를 드는 순간, 마지막 남은 한 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잠깐! 우린 너희를 노린 게 아냐! 신부를 노린 것뿐이라고! 너희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어! 그 신부를 죽이자고 한 거는 그 신랑의 친척이었어! 날 저렇게 바꾸지 마! 죽어도 사람으로 사람답게 죽고 싶다고! 아, 안 돼애애!”
시퍼런 불길은 그가 뭐라고 떠드는가 관심 없다는 듯이 휘감아 갔고, 뒤늦게 떠들던 마지막 암살자는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이자닌이 그 모습을 보다가 낯을 찌푸렸다.
파쿠란은 가만히 소매 안으로 다시 완드를 감춰 넣었다.
투란이 물끄러미 파쿠란을 보다가 묻는다.
“이거 환각?”
“맞아, 느꼈나?”
묻는 말만큼이나 간단하게 반문하는 파쿠란이었다.
투란은 한숨과 함께 긴장이 겨우 풀렸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대답한다.
“마법이 쓰인 거는 느꼈어요, 그런데…… 아직 사람 숨소리가 들리기에…….”
“흠? 아, 그렇군. 실제로 형체변환 따위가 일어난 것은 아니니까. 마법으로 적당히 기척을 바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들을 수 있었겠군. 오러 윌더라든가 몬스터 로드의 예민한 감각을 전부 속이지는 못하는 마법이니…….”
파쿠란이 투란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투란이 머리를 긁적대며 말한다.
“깜짝 놀랐다고요. 옛날얘기에서나 듣던 마법을 진짜로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진짜로 하려면 대량의 마력이 필요해. 준비도 꽤 있어야 하고.”
파쿠란은 담담하고 진지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화들짝 놀라서 되물어야 했다.
“할 수 있는 거였어요!”
“어? 그야…… 원래 흑마법이라고, 그런 저주 같은 변환 마법은 말이야. 이모저모로 진짜 저지르기에는 많이 까탈스러우니까 겁줄 때는 이런 환각 마법으로 대신하는 거고 말이지. 으흠! 이자닌, 생각은 정리되었어?”
설명하던 파쿠란은 더 깊게 마법에 대해 떠들고 싶은 것을 자제하듯이 이자닌을 향해 말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아니! 말 시키지 말고 기다려!”
이자닌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투란이 이에 방긋 웃는 얼굴로 파쿠란에게 묻는다.
“뭘 들고 준비해야 진짜로 개구리나 벌레를 만드는데요? 미리 알고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세상에 그런 흑마법 쓰는 사람이 혼자인 거는 아니죠? 아는 사이잖아요! 좀 갈켜줘요오!”
“보채지 마라, 진짜 애송이도 아니면서.”
한숨을 쉬며 파쿠란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투란은 입을 다무는 시늉을 하며 기다렸다.
파쿠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투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차분히 정리하는 듯한 표정과 함께 입을 여는데…….
“이자닌, 손님이 찾아왔어. 벡커드도 돌아왔군. 함께 온 모양이야.”
돌연 지하실의 입구, 계단 쪽을 보며 하는 말이 나왔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하실 입구가 열리고 계단을 밟으며 긴 망토와 치마를 입은 사람이 두건을 푹 눌러쓴 채로 성큼성큼 내려왔다. 그 뒤로 벡커드가 들어서면서 지하실 문을 닫고 있었다.
이자닌이 그 두건 쓴 이를 향해 툴툴거린다.
“신부가 결혼식 연회를 지키지 않고 어딜 튀어나오냐? 사흘 동안, 결혼식 끝날 때까지 신랑이랑 자리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도 몰라?”
휙, 두건이 젖혀지면서 로렐리의 얼굴이 드러났다.
로렐리는 암살자 셋이 매달린 풍경을 돌아보고, 파쿠란을 향해 묻는다.
“또 그 마법이에요?”
파쿠란은 어깨를 으쓱했다.
투란은 로렐리가 파쿠란의 환각 마법을 안다는 것에 재밌다는 표정을 짓는데, 이자닌이 다시 말한다.
“로렐리, 돌아가. 신부라면 신부답게…….”
“신랑 가족을 다 두들겨 패놓고 내뺀 언니가 그런 소리 해봐야 아무도 관심 없거든요! 대체 왜 돌아온 거예요?”
이자닌의 말을 끊는 로렐리의 말투는 날카로웠다.
이자닌은 어이없다는 듯이 계단을 내려오는 벡커드를 바라봤고, 벡커드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한다.
“나름대로 몰래 나왔어. 빨리 돌아가면 로렐리의 외출은 비밀로 남을 거야.”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로렐리, 너 신랑을 사랑하긴 하냐?”
이자닌이 못마땅해하는 눈길을 듬뿍 쏟아내며 묻고 있었다.
로렐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이자닌을 마주 쏘아보며 대답한다.
“사랑? 대체 그게 결혼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언니가 그런 소리 해봐야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요! 도대체 왜 내 결혼식에 온 거냐니까요! 도적 길드 회합 같은 헛소리는 벡커드한테 실컷 들었으니까, 진짜 뭣 때문인가 얘기해봐요!”
“그것 때문인데?”
이자닌이 조금 맹한 소리로 웅얼거렸다.
바로 로렐리가 발끈해서 반박한다.
“내 결혼식에 길드 회합이 뭔 상관인데! 이 언니가 진짜!”
“어? 상관이 아니고 정보가…… 벡커드으읏!”
멀뚱거리며 대꾸하던 이자닌의 눈길이 확 돌아가며 벡커드에게 사납게 꽂혔다.
순간 로렐리도 ‘엥?’ 하는 소리를 내며 벡커드를 바라봤다.
투란이 보니 어쩐지 가지 않아도 될 곳으로 벡커드가 이자닌을 유인해 간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상황이었다. 파쿠란도 비슷한 것을 느낀 듯 한숨을 쉬고 있는 중인데, 정작 벡커드는 두 여자의 날카로운 눈길에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 벡커드가 설마 이자닌과 로렐리의 추억을 되새기게 해주려고 이런 암살자가 튀어나오는 결혼식을 정보탐문의 기회로 삼아 갔을까! 관계가 있으니까, 진짜 정보를 토해낼 녀석들이 있으니까 간 거라고!”
이 당당한 말에 로렐리가 바로 딴지를 건다.
“벡커드, 장난쳐요? 에반 일가(一家)는 도적 길드랑 관계가 없다고요! 내가 왜 에반을 골랐는데! 지긋지긋한 도적 패거리랑 더 엮이고 싶지 않아서 골랐다고! 그런 곳에 와서 무슨……!”
“로렐리, 에반은 도적이 아니고 도적과도 관계가 거의 없지. 하지만 그 아버지 콜반은 도적이 아닐지라도 도적과 관계가 있잖아. 알면서 왜 그래?”
벡커드가 엄격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로렐리는 움찔했지만 곧바로 사나운 표정으로 반박한다.
“이 왕도에서 요즘 장물(贓物)과 무관한 상인이 있을 것 같아요? 겨우 그 정도로 도적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는…….”
“로렐리! 콜반의 가계는 몇 대에 걸쳐 페브라 왕도의 장물아비 노릇을 거듭해 왔어. 에반은 아직 모르는 것뿐이야. 오늘 암살자는 에반의 신부인 네가 도적 길드에서 자란 고아(孤兒)란 것을 아는 인척(姻戚)들이 시도한 거야! 콜반은 그걸 묵인했고, 에반에게는 나중에 통보할 예정이었어! 이자닌이 거기 없었다면, 넌 죽었어!”
벡커드의 말은 무겁게 로렐리의 귓가에 꽂혔다.
로렐리가 입을 꽉 다물고 당혹스럽고 분한 표정을 짓는 사이, 이자닌과 파쿠란은 어이없다는 듯이 벡커드를 바라봤다.
그 광경을 향해 투란이 살짝 감탄했다는 듯이 몇 마디를 흘려넣는다.
“우와, 벡커드 대단해요! 다 알고 있었구나! 거기서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아, 대단해! 그런데 왜 가기 전에는 한마디도 안 해줬어요? 미리 말 좀 해주지.”
순간적으로 벡커드의 표정이 굳어졌고, 볼을 타고 짙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자닌의 목소리가 무겁고 섬뜩하게 울리는 것도 거의 동시였다.
“이 새끼가…… 바빠 죽겠는데, 날 어디로 데려갔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