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9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94)
칼부림이라도 날듯한 살벌한 표정이 이자닌의 얼굴에 또렷했다.
눈빛이 칼날이었다면 벡커드는 순식간에 난자당한 누더기 몰골이 되었을 듯싶은 상황이었다.
그 순간에 벡커드는 볼에 흐르는 땀이 턱 아래에 맺히는 채로 외친다.
“로렐리가 전업(轉業)했다고! 정보 매매가 로렐리의 새 직업이야!”
“아저씨! 이 아저씨가 진짜!”
뒤이어 로렐리의 버럭 하는 외침이 터졌다.
이자닌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고, 파쿠란은 ‘허?’ 하는 소리를 냈다.
둘의 눈초리는 벡커드를 아주 깊이 의심하는 의도를 여과 없이 드러냈고, 투란은 ‘무슨 말이에요?’라며 이 상황을 두리번거렸다.
벡커드는 한층 더 빠르게, 로렐리가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을 무시한 채로 자신이 꺼낸 말을 번개처럼 이어간다.
“가십의 여왕이라고, 로렐리가! 왕도 페브라에서 로렐리의 귀를 거치지 않는 소문은 없다고 할 정도라니까! 길드의 사나운 놈들도 자기 정부(情婦)의 침대 위에서는 아끼는 말이 없잖아! 로렐리는 그 소문을 전부 귀담아듣는다고! 진짜야, 그러니까 내가 이자닌을 로렐리의 결혼식에 데려간 거지! 설마 옛날 이자닌이 떠날 때 마지막까지 내게 당부한 꼬맹이가 로렐리라서 거기 데려갔겠어? 절대로 추억을 들춰서 이자닌을 자극해볼 생각 따위가 아니라니까! 그럼, 내가 감히 그럴 리가 없잖아!”
귀를 기울이던 투란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아항, 그러니까 한 번에 이것저것 다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군요! 으흠!”
벡커드의 표정이 파리해진 채로 투란을 흘겨보는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굳이 지금 그런 거 파헤쳐서 되새기지 말라는 듯!
혀를 차는 소리부터 내고 이자닌이 로렐리에게 묻는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
로렐리가 바로 발끈했다.
“자살(自殺)은 내 취향 아니거든! 언니, 아무리 오랜만이라도 내가 그렇게 덜떨어진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소문을 모으고 정보를 다룬다면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것이 제일 먼저라는 거, 그 정도도 모르면서 남의 얘기 떠드는 작자는 민폐 끼치지 말고 얼른 뒈져야지!”
말끝이 은근히 벡커드를 겨냥한 것처럼, 로렐리의 눈빛은 사납게 벡커드를 찔러대고 있었다. 이자닌이 입꼬리에 살짝 웃음을 매달며 말한다.
“그 아저씨 죽이는 일은 나중에 차분히 하고…… 너, 정말로 정보를 다룬다는 말이지? 온갖 소문 속에 숨어 있는 사실을 말이야, 그런 정보를 정말로 다루는 거지?”
“그래.”
로렐리는 진지하고 신중한 이자닌의 물음에 멈칫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인정하고 말았다. 물론 그래야 하는 꼴이 된 것은 억울했는지 벡커드를 보며 ‘그냥 안 둘 거야, 각오해 아저씨!’라는 웅얼거림을 살짝 보태기도 했다.
파쿠란이 혀를 차는 소리를 낸 것은 이자닌이 흘깃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으면 저 세 녀석, 눈과 귀를 막아뒀어야 했는데 일이 꼬이는군.”
로렐리가 바로 이 소리에 눈을 부릅뜨며 묻는다.
“아저씨! 아저씨 환각 마법은 눈과 귀를 기본적으로 막지 않아요?”
파쿠란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교차검증으로 쥐어짜 내야 할 때는 서로 하는 말을 들어야 하잖아. 너에 대해서 우린 전혀 몰랐으니까, 이 녀석들을 두들겨서 쥐어짜 내 알아낼 참이었거든.”
이 말에 바로 로렐리의 발끝이 벡커드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빠각.
“어쩔 거야! 이 정신 나간 아저씨야!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이번에는 거의 뼈가 부러지거나 최소한 금이 갈 정도로 세게 찬 모양이었다.
벡커드가 팔딱거리며 외발 뛰기를 하며 정강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급히 외쳐 대답한다.
“아니, 누가 이럴 줄…… 죽여, 그냥 죽이면 되잖아! 어차피 사람 죽이려던 암살자 짓거리 하는 놈들이잖아! 죽여서…… 파묻어 버리고 모르는 척하자고!”
지켜보던 투란은 조금 더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열심히 개구리와 벌레, 정신을 잃은 암살자를 둘러봤다. 하나는 확실히 의식이 없지만, 둘은 개구리와 벌레로 보이는 환각 속에서 지금까지 얘기를 보고 들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로렐리가 감춰온 비밀이 탄로 났고, 그에 대한 대처로 벡커드가 제시한 방법은…….
“그만해, 벡커드. 파쿠란, 일단 얘기부터 해보게 해줘.”
이자닌의 말은 엄격했다.
깡충거리던 벡커드가 움찔하며 아픈 다리를 딛고 똑바로 섰고, 로렐리는 다시 걷어차려고 들어 올리려던 발을 그냥 내렸다. 파쿠란은 가만히 소매를 휘저었고, 암살자 셋은 다시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 사람의 모습 그대로 드러났다.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은 개구리와 벌레의 환영에 가려진 채로 두 암살자가 오가는 얘기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그 표정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느닷없어서 당황해하는 모습이 죽음을 각오했던 조금 전의 모습과 또 다른 것이 꽤 흥미롭게 투란의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녀석들이 어떻게 사람 죽이겠다고 나설 수 있었을까?
‘희한하고 이상한 녀석들이네.’
―마법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아닌가?
‘음? 그런가?’
―어쨌든 저 환각 마법, 본인에게도 기묘한 체험을 강요하니 말이야.
‘에? 그게 뭔 소리야?’
―자기가 개구리나 벌레가 되었다는 체험은 남는다는 거지.
‘헐? 그런 거였어?’
투란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환각이라기에 그냥 가렵거나 따가운 것처럼 잠깐 착각하다 끝날 줄 알았는데, 아예 변신의 경험까지 겪게 해준다니! 이 머나먼 왕국까지 오면서…… 비록 오는 길이 그리 험난하거나 멀다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먼 곳까지 와서 그야말로 색다른 마법을 구경하게 된 셈이었다.
“입이 무거운 녀석들이 아니야. 그냥 파묻는 게 간단해.”
벡커드는 다시 강조하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두 암살자가 의식 없는 동료 한 명을 흘깃거리다가 이 말에 화들짝 놀라서 다급하게 입을 연다.
“자, 잠깐! 우리……!”
“입 무거워! 의뢰인에 대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잖아!”
그 꼴을 보던 로렐리가 서늘하게 말한다.
“날 죽이려고 했을 뿐이네, 참 사소한 일이네. 언니, 내가 어떻게 해볼까?”
두 암살자가 움찔하며 로렐리의 눈길을 피하는 표정을 지을 때, 이자닌이 묻는다.
“뭘 어쩌고 싶은데?”
“아저씨 취향은 죽이는 거지만, 언니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죽이지 않고 어떻게 해서…… 두 번 다시 누굴 죽이는 일에 나서지 못하게 해주려고.”
로렐리의 대답은 자신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야말로 맡겨만 주면 두 번 다시 이들이 암살자 따위는 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확신에 가득한 말…… 이자닌이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뭘 어찌 할 거냐고!”
로렐리의 눈길이 보다 서늘하게 암살자 셋을 쓸고 지나가며 대답이 나온다.
“혀를 자르고 눈알을 파내고 귓구멍을 뚫어주겠어. 아, 팔다리 힘줄은 그 전에 썰어놓고 말이야. 등이랑 손목에서 뼈도 한마디씩 빼내서 웬만한 치유술로는 손도 못 대게 해놓겠어.”
이에 대한 반응이 바로 두 암살자에게서 튀어나온다.
“이 미친년!”
“그냥 죽여!”
로렐리가 차갑게 웃으며 암살자들을 쳐다봤다.
이자닌도 삐딱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파쿠란이 허헛거리는 억지웃음을 토해내고 말한다.
“거참, 사람 죽이려던 녀석들이 가리는 것도 많구만.”
벡커드가 한마디 보탠다.
“그러니까 간단히 파묻어버리자니까요.”
깨어서 이 소리를 듣는 두 암살자가 이를 갈면서도 침묵했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하나와 이를 가는 둘, 그런 암살자들을 다시 둘러보면서 이자닌이 로렐리에게 묻는다.
“이 녀석들, 아는 얼굴이 아니었어?”
조금 전의 협박은 그냥 한 것이 분명히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 말투 속에서 이자닌은 로렐리가 이들과 낯선 사이란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미 알던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할 때 느꼈을 감정이 전혀 없는 채였으니까.
로렐리도 조금 갸웃하며 대답한다.
“아까부터 생각을 해보고 있기는 한데…… 정말 처음 보는 얼굴들이에요. 어떻게 연회에서 일꾼 흉내를 내고 있었는지, 어떻게 저택 안으로 침투했는가도 짐작이 가질 않아요.”
“너, 정말로 정보 매매하기는 하니?”
이자닌이 한숨을 쉬며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로렐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고, 벡커드는 헛기침을 하며 대신 변명한다.
“암살을 노리는데 뻔히 아는 것들을 보내서 그렇게 당당하게 연회 한복판에서 시도하는 것도 웃기잖아? 일단 낯짝 알 수 없는 녀석들을 보내서 저지르고 빼돌리는 편이 당연한 것 같은데…….”
요약하면 로렐리가 모르는 녀석들을 암살자로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자닌은 그런 변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갸웃거렸다.
이렇게 얼굴 얘기가 나오는 사이, 투란이 눈을 반짝이면서 매달린 채로 파쿠란의 마법에 의식을 잃은 암살자 곁으로 슬쩍 들러붙으면서 발끝을 세우고 손을 내밀었다. 파쿠란이 그 꼴을 보다 ‘뭘 하려고?’ 하며 의아해했다.
그런데 투란의 손이 슥슥 암살자의 얼굴을 문지르는 순간, 그 얼굴이 쭈글쭈글해지면서 껍질을 벗고 있잖은가!
“아하핫, 이 아저씨 가면 썼어! 그 가면이에요, 그 가면!”
투란이 발랄하게 웃으며 쪼글쪼글한 얼굴가죽을 벗겨냈다.
로렐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벡커드도 ‘에? 허엇!’ 하는 숨 막히는 소리를 토해냈다.
이자닌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파쿠란을 노려보는데, 파쿠란이 몸을 꼿꼿하게 세우더니 투란에게 말한다.
“투란, 다른 두 놈의 낯짝도 벗길 수 있나?”
“음? 어디 보자…….”
투란은 냉큼 나머지 둘의 얼굴에도 손을 댔다.
“아, 안 돼!”
“이, 이러지 마!”
둘이 놀라 버둥거렸지만 투란의 손에 얼굴이 쪼글쪼글해지며 마법의 가면이 벗겨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맨얼굴을 드러낸 둘을 보며 투란이 상쾌하게 웃었다.
“아하핫, 이거 에모틱이란 거죠? 우와, 왕도에서는 이런 거 아주 흔한…….”
재미있어서 떠들던 투란은 파쿠란의 표정이 굉장히 사납다는 것을 보며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이자닌을 보니, 역시 금발 아래의 녹색 눈동자가 살벌하게 번뜩거리는 것이 이 상황을 전혀 재미있다 여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벡커드가 신음하며 말하는 소리까지 겹쳐지니…….
“에모틱을 만들 수 있는 게…… 누가 또 있지?”
귀를 쫑긋하며 눈치를 살피던 투란은 문득 알아차렸다.
파쿠란이 투란에게 건네줬던 마법의 가면, 에모틱.
지금 이 암살자들이 쓰고 있는 가면이 마법사라면 누구나 만들어대는 그런 물건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로렐리가 낮게 흘리는 목소리…….
“너희들, 날 죽이고 싶었어?”
가면 속의 감춰졌던 얼굴은 아무래도 로렐리에게 낯익은 듯,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듯했다.
얼굴이 드러난 녀석들, 둘은 의식 없는 나머지 하나를 외면하면서 입을 꽉 다물며 로렐리를 외면하고 있었다. 로렐리가 배신감을 느낀 것처럼 맨얼굴을 드러내려 하지 않은 까닭이 또렷한 모양이었다.
그 광경을 다시 보면서 이자닌이 묻는다.
“파쿠란, 누가 만든 건지 알겠어?”
“그래, 내가 가르친 놈이다.”
파쿠란은 담담하게…… 억누른 목소리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기묘한 긴장감이 지하실을 맴돌았다.
잠시 침묵이 스쳐갔고 불빛이 어쩐지 더 어둑해진 것처럼 느껴질 때, 이자닌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명쾌하게 말한다.
“로렐리, 넌 우리랑 따로 얘기 좀 하자. 벡커드, 이 녀석들 알아서 파묻어. 다시 볼일 없게 하고, 살아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게 말이야. 투란, 파쿠란. 방으로 가자고. 여기서 더 할 얘기는 없어.”
로렐리는 분한 듯이 세 암살자의 낯을 하나씩 머리에 새기려는 것처럼 노려봤지만, 이자닌이 아예 손목을 잡고 당기는 것에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그 뒤를 투란은 가면 세 장을 든 채로 어정쩡하니 쫓아갔고, 파쿠란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며 벡커드에게 말한다.
“반항하지 못할 거야, 얼른 정리하고 오라고.”
벡커드는 암살자 둘이 마저 정신을 잃는 꼴을 보며 대답한다.
“아, 고마워. 빨리 처리하고 올라가지.”
파쿠란이 계단에 오르며 뒤돌아보는 투란을 재촉한다.
“얼른 올라가. 저쪽은 관심 두지 말고.”
“어, 가요.”
투란은 문턱을 넘어가는 이자닌과 로렐리의 뒤를 얼른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