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95)
“델리크, 이거 만든 녀석은 분명히 델리크야. 분명히 길드 소속이지. 도적 길드와 헌터 길드 양쪽을 오가면서 로그메이지로서 활동하고 있다. 흑마법 쪽은 아니야. 그저 이것저것 만드는 재주가 제법 있기에 내가 자잘한 재주를 키워줬을 뿐이지. 아무튼 이 에모틱은 녀석의 손재주, 녀석의 방식이 담긴 거야. 델리크가 그 방법을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줬다 해도, 이건 델리크가 직접 만든 거다. 후우.”
한숨으로 말을 맺는 파쿠란이었다.
이자닌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로렐리를 바라봤다.
지하실에서 옮겨온 장소, 벡커드의 주점 겸 여관 꼭대기 층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로 거리의 풍경을 그림처럼 곁에 두고 앉은 다음이었다.
투란은 한쪽의 침대에 덜렁 앉아서 구경하는 쪽이었지만, 파쿠란과 이자닌은 로렐리와 세모꼴을 이룬 채로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나온 것이 로렐리를 습격했던 암살자들의 얼굴에서 뜯어낸 가면 에모틱을 만든 이에 대한 얘기였다.
로렐리는 그 설명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슬쩍 투란을 흘깃거렸다. 설명을 조금 더 원하는 눈길이었지만, 파쿠란도 이자닌도 말없이 로렐리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투란은 그저 침대에 앉아 팔짱까지 끼며 구경하는 자세를 더욱 분명히 드러낼 뿐이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듯, 로렐리가 말문을 연다.
“델리크는 의뢰를 받는 로그메이지로 활동하고 있어요. 양쪽 길드에 납품을 하는 형식으로 말이에요. 아, 물론 보내는 물품은 달라요. 헌터 길드 쪽으로 보내는 물품은 지핑이란 마법으로 축소시킨 것들이 대부분이고, 도적 길드 쪽으로는……도적의 필수품이라 불리는 것들이 많죠. 당연하다면 당연한데…… 최근 들어서 델리크에게 요구되는 의뢰물품이 꽤 늘어났다는 얘기가 있어요. 도적 길드 쪽에서 말이에요. 날 죽이러 온 녀석들에게 흘러든 가면도 아마 도적 길드에서 구한 거라고 추측돼요. 파쿠란의 제작법을 배운 델리크니까, 어지간한 마법 탐지에는 걸리지 않는 가면을 만들었다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저 사람, 어떻게 한 거죠?”
주욱 이어지던 이야기는 결국 묻는 말로 맺어졌다.
아무래도 로렐리는 투란이 어떻게 에모틱의 마법을 깨뜨리고 얼굴에서 벗겨냈는가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듯했다.
이자닌이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건 네 알 바가 아니야. 투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마. 그냥 나를 지켜주기 위해 파쿠란이 고용한 호위, 그 정도만 알고 있어.”
“쳇, 나는 다 알려주는데…….”
로렐리가 심통 난 표정을 지었다.
이자닌이 눈꼬리를 치켜올리면서 노려봤다.
어리광부리는 척해도 알려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내듯!
이런 둘을 향해 파쿠란이 입을 연다.
“델리크에게 제작기술을 알려줄 때 약속받은 일이 있다.”
“약속?”
“무슨 약속인데요?”
이자닌과 로렐리가 동시에 파쿠란에게 묻는 말을 꺼냈다.
조용하다 싶을 정도로 가라앉은 말투로 파쿠란이 대답한다.
“에모틱을 받는 자가 누군가 제대로 확인하고 넘겨주라고 말이야. 누가 에모틱을 쓰는가에 따라서…… 큰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말이지.”
이자닌은 혀를 찼고, 로렐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바보 같은 소리를…… 로그메이지가 그런 거 따져가면서 마법물품을 팔 처지일 리가 없잖아요. 사가는 놈이 책임지는 거라고 시원하게 무시했겠구만!”
“그건 아닐걸. 파쿠란?”
이자닌이 바로 로렐리의 말을 부정하며 파쿠란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래, 로렐리의 말대로 돈만 받으면 뭐든 달라는 대로 주는 녀석이 아니기에 제작기술을 전해줬지. 게다가 델리크가 만들 수 있는 물품은 가면뿐이 아니니까. 가면만은 주의해서 조심스럽게 다루라고 했지만, 다른 것에는 딱히 제약을 두거나 하지 않았어.”
“제약? 아저씨, 델리크랑 약속을 한 게 아니라 마법으로 제약을 건 거예요?”
로렐리가 흠칫해서 묻고 있었다.
이자닌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입은 다물었다.
파쿠란은 피식 웃었다.
“날 뭘로 보는 거냐, 로렐리? 마법사란 말이다, 내가. 단지 입으로 꺼낸 말만으로 약속을 매듭짓는 마법사가 어딨나. 마법사가 그런 약속을 한다면 당연히 지키지 않고 깨뜨릴 생각으로 하는 거야. 아니면 지킬 수 없다고 여기는 채로 약속을 하는 거고.”
이 당당한 대답에 침대에서 투란이 ‘헐?’ 하는 소리를 냈다.
저딴 약속은 뭔가 상식적으로 못된 짓 아닌가!
로렐리도 조금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더 파고들 생각이 없다는 듯, 곧 한숨을 쉬면서 다른 것을 묻는다.
“그러면 델리크는 아저씨에게 무슨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아저씨 말을 확 무시한 거예요? 그래서 찾아내서 어떻게 해보려고요?”
“찾아내기는 해야겠지. 하지만 그 전에…… 여기 이름부터 확인해라. 이 이름들, 널 죽이려던 세 녀석의 이름 맞나?”
파쿠란이 가만히 탁자 위에 물을 흘리면서 물었다.
물은 곧 무늬가 되었고, 글자가 되어서 로렐리가 읽을 수 있었다.
세 명의 이름을 읽은 로렐리가 바로 고개를 젓는다.
“아닌데요. 전혀 상관없는 이름인걸요. 왜요?”
파쿠란이 굳어진 표정으로 심각하게 말한다.
“원래 가면을 사용해야 할 녀석들의 이름이다.”
“예? 그게 무슨…… 가면에다가 사간 사람의 이름이라도 새겨놔요?”
어리둥절하다가 로렐리는 파쿠란의 한 손에 똘똘 뭉쳐 쥐어진 가면을 보고 멈칫하며 묻고 있었다.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파쿠란은 낯을 구기면서 가면을 탁자 위에 펼쳐놓았고, 생각에 잠겨들면서 톡톡 탁자를 손끝으로 두드릴 뿐이었다. 로렐리가 그 모습에 짜증과 불만이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대답을 보채지는 않았다.
이자닌이 슬쩍 입을 다무는 로렐리를 향해 묻는다.
“로렐리, 널 죽이려는 일가친척이 잔뜩 있는 에반과 왜 결혼을 하려는 거야?”
“에반은 날 사랑한다 했으니까요. 일가친척이 에반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로렐리. 제대로 대답해.”
“제대로 대답했잖아요! 난 에반이 마음에 들었고, 에반은 날 사랑하고! 그럼 된 거지, 또 뭐가 필요해요!”
불끈해서 로렐리는 눈을 부릅뜨고 이자닌을 노려봤다.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벡커드가 들어섰다.
“후우, 땀 나는군. 오랜만에 삽질했더니…… 왜 그래?”
자신의 노고를 들이대다가 두 여자가 냉랭하게 서리라도 뿌리는 듯한 분위기를 띤 것을 보고 벡커드는 주춤하면서 물었다.
로렐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눈싸움이 유치하다는 듯이 뒤로 몸을 젖히면서 대답한다.
“언니가 갑자기 순진한 소리를 하니까요! 내가 뭘 잘못한 거라도 있어요? 없잖아요! 이 흉악한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는데 왜 언니가 불만이냐고요!”
“얘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너, 결혼 연회 첫날 죽을 뻔했어! 벡커드가 수작 부려서 우릴 거기로 데려가지 않았으면 그 요리 틈새에서 피투성이가 돼 죽었다고! 아직 몰라? 에반이란 녀석이 정말 거기 전혀 관계가 없는가 의심부터 해야 하는 거라고, 이 멍청아!”
탕탕, 탁자를 두드리면서 이자닌이 사납게 외쳤다.
벡커드는 방문을 닫으면서도 등을 문짝에 기대며 맹렬한 말다툼이 더 짙어질 듯한 탁자 곁으로 가까이 오지 않았다. 대신 창문을 보며 ‘저거 열려 있으면 밖에서 듣는 거 아냐?’ 하는 웅얼거림만 토해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듯, 로렐리의 높아진 목소리가 뾰족하게 터져나온다.
“누가 멍청이에요! 그 자리에서 언니가 끼어들지 않았어도 내가 소리치면서 피했으면…….”
“너 죽을 때까지 아무도 상관하지 않아, 이 바보야!”
“이잇! 근거도 없이 그런 헛소리를…….”
“벡커드가 널 빼돌릴 정도면 그 연회에는 너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작자들만 가득하다고 해도 되거든!”
이자닌의 날카로운 말은 멀리서 구경하려던 벡커드를 당황시켰고, 목소리를 높여 말하게 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자닌, 내가 이래 봬도……!”
티잉.
작지만 선명한 종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떠들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종소리에 먹힌 것처럼 사라졌다.
파쿠란이 손을 올린 순간이었고, 그다음에 파쿠란의 목소리가 낮고 무겁게 울려퍼진다.
“델리크를 만나봐야겠다. 에모틱을 얼마나 만들어냈는가, 누구에게 줬는가 알아내야겠어. 그게 어쩌다가 로렐리를 죽이려는 녀석들 손에 들어갔는지도 추적해야 해. 로렐리, 델리크의 소재는 알고 있나?”
마법으로 남의 목소리를 몽땅 잠재운 다음에 꺼낸 말이었다.
이자닌과 로렐리, 벡커드까지 입을 벙긋거리면서 아무 소리도 못 내며 파쿠란을 노려보며 손짓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목소리 나오게 하라고!
한편에서 투란은 크게 웃었지만, 그 소리 또한 울리지 않고 있었다.
파쿠란은 자기 할 말을 한 다음에 느긋하게 그 벙어리만 가득한 풍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손을 내렸다.
“짓이야!”
“에요!”
“미녀를 사랑해!”
이자닌과 로렐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 다음으로 벡커드의 목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투란의 웃음소리도 크게 울린다.
“푸하핫, 벡커드! 뭐예요, 그게!”
벡커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가 먹힌 사이에 그냥 하고 싶어도 못했던 말을 쏟아냈는데, 그 사이에 파쿠란이 먹히던 목소리를 풀어놓은 것이다. 덕분에 벡커드를 향해 바로 이자닌이 물잔을 내던지기까지 했다.
“그 틈에 그러고 싶냐, 이 변태야!”
“억울해! 난 그냥…….”
허공에서 잔을 낚아채면서 벡커드가 하소연하는 표정을 지었다.
로렐리가 그 꼴을 보다가 손끝으로 얼굴에 돋은 핏대를 누르면서 파쿠란을 향해 되묻는다.
“의뢰를 받는 로그메이지라고요. 어느 쪽 길드에 묻든 금방 알아낼 수 있잖아요. 도대체 언니랑 왜 돌아온 거예요? 연회까지 빠져나와 묻는 말이라고요! 제대로 좀 대답을 하란 말이에요!”
“알면 다칠 수 있다만…… 그래도 알고 싶다면, 방해하지 말고 기다려라. 일이 끝난 다음에 이자닌에게 들을 수 있을 거야.”
파쿠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다는 완고함이 서린 말이었다.
로렐리는 잠시 노려봤지만, 곧 탁자에 흘린 물 위로 손끝을 얹고 쓱쓱 뭔가를 그리듯이 쓰면서 말한다.
“여기로 가요. 헌터 길드에서 관리하는 퍼브에요. 거기 공방에 있을 거예요. 언니, 아저씨. 정말로 나중에 얘기해주는 거죠? 그냥 가면 현상금 걸어버릴 거에요!”
“알았어. 무사히 끝나면 알려줄게. 그러면…… 벡커드, 로렐리의 호위를 맡길게.”
이자닌이 후욱 하고 숨을 고른 다음에 대답했다.
다가와 탁자에 물잔을 내려놓으면서 벡커드가 당황한 소리를 낸다.
“엥? 아니, 갑자기 무슨…….”
“얘 죽으면 얘기해줄 수가 없잖아!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경호(警護)하라고!”
이자닌이 벌떡 일어서면서 으르렁거렸다.
파쿠란도 일어섰다.
이자닌은 곧바로 투란을 향해 손짓하며 말한다.
“가자고, 가서 뭐가 나오는지 캐봐야겠어.”
“음, 또 연회?”
침대에서 일어나며 투란이 물었다.
이자닌과 파쿠란이 멈칫했다.
투란은 둘의 차림새를 가리키며 다시 말한다.
“연회에 가는 차림새 그대로인데? 그거 거리에서 쏘다닐 때는 입지 않는다며요? 그러니까…….”
“갈아입고 가자. 벡커드, 로렐리를 데려다주고 함께 있어. 어차피 결혼식에 오래 빠져나와 있을 수도 없잖아? 가서 또 누가 로렐리의 시체를 필요로 하는지 알아보라고.”
이자닌이 시원하게 말했다.
로렐리가 바로 낯을 구겼고, 벡커드는 이자닌과 함께하지 못한다고 징징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둘이 돌아갔고 셋은 거리에 나설 차림새를 갖췄다.
투란은 다시 셋이 된 상황을 확인하듯이 중얼거린다.
“이번에는 또 누가 칼 들고 누구한테 덤빌지…….”
파쿠란은 쓴웃음을 짓고, 이자닌이 한숨과 함께 대꾸한다.
“그러게…… 여기 와서 계속 칼부림이네.”
“그래도 갈 거죠?”
투란이 웃음을 억누르면서 물었다.
이자닌은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두드리며 대답한다.
“가야지. 어쨌든 한 걸음씩 닿고 있잖아. 뭐가 나올지 이제 기대가 되네!”
투란은 또 무슨 구경을 하게 될지 재밌어하며 살짝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었다.
이 왕도에는 처음 만나는 재미있는 것들이 잔뜩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