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
‘어? 왜 캄캄하지?’
투란이 어둠과 함께 오싹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손발에 엉겨 붙은 이빨거머리를 모조리 뜯어다가 씹어 버린 후였다. 다음으로 나무에 엉기고, 몸으로 기어 오는 몇 마리 악마의 심장을 쥐려는 때이기도 했다. 갑자기 드리운 그림자가 투란의 주의를 끌었는데, 느닷없이 밤이 찾아온 듯한 풍경을 만들어 낸 짙은 그림자였다.
일그러진 시야 탓인지, 아니면 드리운 어둠 탓인지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 뭔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거대하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아직 밝은 풍경이 저쪽에 있으니 밤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왜 이리 커?’
한 박자 늦었으나, 가슴속에서 두근거리는 악마의 심장이 냉정하게 주변을 정리해 가는 와중에 투란은 서늘해진 기분으로 두리번거렸다.
오른쪽, 왼쪽, 위, 아래…….
그러는 사이, 갑작스럽게 그림자를 만드는 광원(光源)이 다른 쪽에서 생겨났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굵고 넓은 빛줄기는 투란이 아는 한 번개나 벼락이어야 했다. 하지만 번개라든가 벼락이 머리 위를 거의 다 덮으면서 지나가는 파도 같은 것은 아니잖은가?
그리고 이렇게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
‘물고기?’
일 수 있던가?
샤오콴 마을에서 십육 년을 자라 온 소년 투란의 마음을 공황(恐惶)이 순식간에 채우고 말았다.
상황은 아주 간단했다.
어둠을 선물하던 그림자가 사라졌고, 이제 투란은 자신이 올라탄 굵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추락하고 있는 물고기의 눈동자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태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빛이 더 이상 저 거대한 물고기 뒤편에 자리 잡고 그를 향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그리하여 일그러진 시야에도 선명하게 보인 것은 투란의 마음을 때려잡아 누르는 듯한, 공황을 불러오는 광경이었다.
잔뜩 겁을 먹고 멍해져 있는 소년 투란을 향해 악마의 심장에 깃든 투란이 속삭였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순간, 투란은 정신을 차리고 두 손으로 나무껍질을 꽉 움켜쥐었다.
차갑고 시원하게 돌아온 생각이 보채는 느낌이었다.
저 거대한 것과 이런 상황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었다.
때문에 투란은 자신에게 되물었다.
‘그럼 뭘 할 수 있는데?’
나무를 꽉 움켜쥐고, 그 와중에도 본능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악마의 심장 넝쿨들을 느끼면서 당연히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어째서 이 순간에 이리도 냉정하게 거듭 생각할 수 있는지 신기한 일이지만 그의 가슴속에서 뛰고 있는 악마의 심장, 그 안에서 생각하는 투란은 그런 거 모른다는 듯이 침착할 뿐이었다.
―날개가 없으니 날 수 없다.
‘그렇다고 팔을 쭉쭉 뻗을 수도 없잖아?’
―뻗어도 잡을 게 없다.
‘제대로 보이는 것도 아닌데…….’
여러 갈래의 단순한 생각이 머리와 가슴을 마구 스쳐 갔다.
그러면서 투란은 보다 제대로 보고 들어야 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이 어두운 풍광 속에 파묻힌 채로 당황한 이유 중 하나가 감각이 닿는 영역이 너무 작기 때문이었다. 악마의 심장이 부여하는 촉각이 시각처럼 주변을 인지하도록 해 줬지만, 그 범위가 너무 좁다는 점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리가 안 들리는 것도 귀가 망가져서지.’
투란은 자신의 머리가 상당히 망가진 것을 되새겼다.
여리게 번져 가던, 텅 빈 문장의 파문을 통해 알았던 것이 기억났다.
문장이 악마의 심장을 삼키고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는 파문 대신 열심히 두근거리는 악마의 심장이 그의 몸을 샅샅이 훑으면서 실핏줄보다 가는 넝쿨의 실 가닥을 뻗어 그 촉각으로 다시 확인해 알려 주고 있었다.
뭔가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넓게 주변을 파악해야 했다.
망가진 감각으로는 할 수 있는 일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터니.
생각이 정해지자 간단한 선택지가 툭 튀어나온다.
‘귀? 눈?’
투란은 먼저 눈을 꽉 감고 귀를 선택했다.
등 뒤에서 뭔가 스멀거리며 다가오는 것이라면 눈으로 볼 수 없으니 귀를 먼저 뚫는 게 좋지 않겠는가?
가벼운 감상과 별개로 투란의 가슴속에서 맥동하는 악마의 심장이 내보낸 넝쿨이 단단히 응어리진 꼴로 망가진 귓속을 헤집었다. 건드릴 때마다 귓속이 긁혀 나가며 사각거리는 느낌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에 소리가 다시 살아났다.
‘아, 이제 들을…… 으갹!’
들리지 않던 귀가 다시 들리게 된 기쁨은 어딘가로 도망치고 되찾은 청각이 바로 비명을 지르게 했다. 하지만 그 비명은 들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들렸던 귀가 억센 압력과 함께 다시 닫아건 문처럼 고요해져 버린 것이다.
투란은 등골이 오싹했지만, 식은땀을 흘리는 따위로 몸의 자원을 낭비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이럴 때는 그런 것을 느낀다, 하는 ‘앎’만이 명백하게 자리 잡을 뿐이었다.
이런 결과를 낳은 것, 귓속을 덮친 주변의 압력은 제멋대로였다.
강해졌다가 순식간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약해졌다가…….
때문에 귓속에 담긴 투란의 청각은 시달리다가 결국 파괴당하는 꼴이었다.
투란은 냉정하게 몸을 한 번 더 점검했고, 분명하게 알아야 했다.
살갗을 스쳐 가는 바람도 제대로 된 사람의 살가죽은 찢을 놓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며, 시야가 출렁이듯 일그러진 것도 눈알이 완전히 찌그러진 꼴로 간신히 눈구멍에 박힌 채이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 이랬지?’
투란이 늪에서 둥실거릴 때는 주변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
―떨어질 때부터.
분명한 대답은 가슴속에서 악마의 심장 투란이 중얼거려 줬다.
주변 상황이 살가죽조차 그대로 헤집을 지경이 되었을 때, 투란이 삼킨 악마의 심장은 본능적으로 넝쿨의 껍질을 일으켜 투란의 살갗을 덮어 버렸다. 덕분에 온몸이 삭삭 베어져 나갈 바람의 포악한 압력에서 버텨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귓속으로 들어오는 압력은 고막을 그대로 구겨 버릴 정도였다.
‘눈을 어쩌면 좋지?’
어느새 눈알은 눈꺼풀 안에서 탱탱하고 둥글게 복구되어 있었다.
꾸물거리는 심장의 넝쿨 가닥이 선명하게 눈알 속에서 느껴졌다.
이대로 눈을 떠도 괜찮을 것인가?
―버틴다.
간단한 답이 가슴에서 울려 나왔다.
소년 투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악마의 심장에 깃든 투란은 냉철하게 결정한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달라붙은 놈들부터 처리하고.
의문보다 먼저 투란은 몸에 더 바짝 감기고 엉겨 붙는 넝쿨을 느낄 수 있었다.
늪에서 달려들다가 공중의 나무에 매달린 그에게 매달린, 몬스터 엠블럼에 삼켜지지 않은 악마의 심장 몇 마리가 살갗을 헤집으려 하며 그 살갗 속에 자라난 심장의 넝쿨에 제 넝쿨들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닿으면 그의 피를, 그의 살점을 빨아내기 위해 훅훅거리는 듯한 낌새가 선명했다.
‘처리라니…… 어떻게?’
이빨거머리처럼 입으로 가져와 씹어야 하나?
소년의 의문은 심장이 강렬하게 맥동하며 온몸으로 세차게 뻗어 가는 혈류의 압력에서 답을 얻었다. 피가 미세한 혈관을 치달으면서 악마의 심장 넝쿨들이 거기에 더 깊이 엉겨 붙었고, 번진 피가 억센 고동을 따라 다시 그의 가슴으로 뭉쳐 드는 순간에 말라비틀어진 넝쿨이 되었다.
투란의 몸에 매달려 느리게 뛰던 악마의 심장, 구근 덩어리들이 쪼그라들면서 점차 가는 덩굴줄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덩굴줄기는 그의 살갗으로 쏙쏙 삼켜졌다.
이 과정은 투란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아, 항아리 결투!’
항아리 속에서 엉겨 붙은 악마의 심장들이 먼저 하는 짓이 서로의 넝쿨을 교차시키며 당기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해서 센 놈이 약한 놈의 넝쿨을 쭉쭉 들이마시는 것처럼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심장이 엉겨 붙으며,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제 안으로 끌어당겨 잡아먹는 것이었다.
투란의 가슴에 자리 잡은 악마의 심장, 몬스터 엠블럼에 의해 형성된 그것이 억센 맥동으로 다가온 악마의 심장을 모두 들이마신 셈이다.
―이제 눈이다.
차갑게, 시원하게 투란의 가슴속에서 악마의 심장에 담긴 투란이 속삭였다.
‘그래.’
투란은 한층 시원해진 머리로 응답했다.
귓속은 여전히 엉망이었지만, 넝쿨의 실그물에 덮인 머리는 오히려 가슴속처럼 평온해져 있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감각이 실그물에 걸러지면서 상쾌함만이 머릿속에 남은 듯했다.
그 과정이 ‘기억’되면서 투란은 안도할 수 있었다.
구겨지고 일그러져 안쪽에서 실핏줄이 터진 자신의 머리통, 거기서 응어리진 핏조각(?)들은 모두 가는 넝쿨에 의해 헤집어지고 삼켜져 심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구겨진 상처가 넝쿨에 의해 다시 펴지고 받쳐지면서 제 기능을 되찾아 갔다.
이 과정은 눈에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눈이 복구되었다.
눈알이 동글동글 탱탱해진 것을 파악하고 투란은 눈을 떴다.
뿌옇게, 눈앞에 안개의 엷은 막이 펼쳐진 듯한 광경이 보였다.
‘에구?’
눈동자에 직접 닿는, 귓속까지 파고들어 고막을 구기는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섬세한 넝쿨의 실그물이 눈동자를 덮은 탓이었다. 귓속도 이제는 조금 새는 소리와 함께 외부의 압력에 대항하는 실그물이 짜였고, 덕분에 거세고 황량한 바람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청각은 그 거친 상황에서 그럭저럭 쓸 만하다고 쳐도, 시각이 뿌옇게 가로막히면 망가진 것이잖나?
새삼 악마의 심장, 그 표피가 엷은 적갈색인 것을 느끼며 투란은 자신에게 물었다.
‘이거 좀 어떻게 안 되나?’
냉정한 대답이 금세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온다.
―투명한 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아주 당연한 이야기였고, 투란은 새삼 자신의 눈동자에도 그런 투명한 부분이 있는 것을 의식했다.
하지만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악마의 심장, 이 줄기는 투명한 것이랑은 거리가 멀다. 어떻게 원하는 부분의 소재를 가지고 악마의 심장에서 나오는 덩굴줄기처럼 만들어 눈에 덧댈 수 있는가?
투란은 다시 자신에게 물었다.
‘몬스터 로드로서는?’
―시도해 볼 만하군.
생각이 바로 실행되었다.
확신은 뒤늦게 생각을 따라왔다.
애초에 악마의 심장을 형성하기 전에 투란의 몸에는 넝쿨의 조각들이 제멋대로 생겨나면서 뒤틀린 몸을 버티려고 본능적으로 꿈틀거렸다. 몬스터 엠블럼은 그렇게 작용해 줬다.
이제 투란은 눈동자 속 투명한 수정 같은 부분에 작고 미세한 덩굴줄기를 형성했다. 투명한 뭔가가 적갈색의 바탕을 배경으로 꿈틀거리는 것을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알 수 있었고, 그것들이 적갈색의 바탕에 닿으며 심장으로 이어진 가는 핏줄과 엮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알을 감은 투명한 실그물의 조직은 자연스럽게 가슴속으로 이어지는 핏줄의 넝쿨과 닿으며 유지되었다.
외부에서 닿아 당겨지고 빨아들여진 악마의 심장, 그 넝쿨과는 다른 결말이었다.
이 과정과 결말은 투란에게 보다 분명하게 느끼고 깨닫게 해 줬다.
‘나는 몬스터 로드야!’
보이드 엠블럼을 새기고 그 끔찍함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별 볼일 없는 악마의 심장이라도 삼킨 채인 지금의 투란은 분명히 몬스터 로드였다. 자기 몸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변화시켜 괴물의 능력을 발휘하는 자, 몬스터 로드!
투란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시야가 명쾌해지며 세상이 새롭게 활짝 열린 듯한 순간, 거대한 괴물 물고기랑 딱 눈이 마주친 것을 바로 깨달아야 했다.
설마 하는 기분이 먼저였다.
투란은 살살 눈알을 굴려, 거대한 물고기의 자태를 확인했다.
눈알이 투란의 앞쪽에서 꾸물대는 거대한 물고기는 길었다.
긴 몸에서 돋은 지느러미는, 보통 물고기 지느러미를 셀 수 없을 만큼 모아다가 새의 날개처럼 이어 붙인 모양이었다. 물고기지만 저렇게 생겨 먹은 지느러미라면 날아다니는 것이 당연해 보일 듯하다.
‘아, 이런!’
투란은 물고기가 굴러가는 자신의 눈동자를 제대로 보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 거대한 놈이 뭘 고민하는지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죽은 놈이면 못 먹는데…….’
그 고민은 다시 눈이 마주치고 나자, 금방 해결된 것으로 보였다.
거대한 날개처럼 생긴 가슴지느러미가 슬쩍 움직이고 물고기의 눈동자가 무슨 성문이 밀려 움직이듯이 자리를 옮기더니, 투란을 향해 물고기가 입을 연 채로 듬성듬성한 기둥 같은 이빨을 보이면서 다가왔다. 그 목구멍은 마치 살코기로 된 큰 동굴 입구 같았다.
‘어떻게 하지?’
당황한 소년의 머리가 마비될 지경인데, 가슴속에서 나온 대답은 냉혹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잖아.
성문처럼 열린, 물고기의 입이 투란을 삼키기 위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