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
무슨 생각을 하기 전에 투란의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투란에게는 갑자기 맹렬한 늑대의 포효가 마음을 울린다 싶은 순간이었다.
왼팔이 저절로 뻗어 나가면서 작은 심장이 고동쳤고, 충격파가 장벽처럼 번졌다.
거기에 똑바로 쏘아진 번개 같은 섬광이 격돌했다.
늑대의 팔이 은빛 불길을 휘감으며 거세게 달아오르는 느낌과 함께, 투란은 팔이 잠시 가늘어졌다가 다시 굵어지는 것을 알아야 했다.
이것이 어찌 된 상황인가, 투란은 한 줄기 섬광에 의해 잠시 눈이 부셨던 동안을 넘긴 다음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거, 섬광의 눈깔꽃!’
아주 보기 힘들다는 희귀종이었다.
투란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도대체 왜 여기 저게 있는가, 일생에 한 번 보는 것도 힘들다는 눈깔꽃의 희귀종인데 어째서 오러 몽거 위에 앉아 저것이 생명을 내버리며 쏴 대는 섬광을 자신이 처막고 있어야 하는가, 이렇게 감정에 충실한 생각이 투란의 뇌리를 들쑤시고 있었다.
그러나 투란의 가슴에서 격하게 맥동하는 악마의 심장은 이 상황에 대해 아주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생각을 낳았다.
눈깔꽃이란 몬스터 식물의 대부분은 보라색 독 안개를 뿜어낸다. 그 눈깔이 터지면서 딱 한 번 할 수 있는 짓이다. 그리고 이 한 번이라는 점은 눈깔꽃이라는 종(種)으로 분류되는 몬스터 식물 모두에게 해당되는 상황이다.
다만 눈깔꽃이 딱 한 번, 터지기는 하지만 독 안개가 아닌 다른 것을 뿜어내는 경우가 있다. 역시 독이 잔뜩 내포된 가시를, 미세한 눈썹 굵기의 잔가시를 한 번에 수백, 수천 가닥을 뿜어내는 것이다. 눈깔꽃 수천 송이 중에서 겨우 서넛 정도가 그렇게 잔가시를 쏴 대는 종류라 했으니, 나름대로 희귀하기는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희귀한, 수십만 송이 중에 하나 끼어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섬광을 뿜어내는 눈깔꽃이다. 그 섬광이 단숨에 산을 관통한다는, 도저히 빛이라고 할 수 없는 괴이한 힘을 지녔다고 했다.
과연 그 힘은 대단해서, 지금 달빛 아래 웨어울프가 드러낸 특이한 충격파조차도 소멸시키며 투란을 갈아 버리려 한다!
작은 심장이 연이어 으스러지면서 충격파가 겹으로 뿜어져 나갔고, 투란의 손은 거칠게 휘둘러지며 팔 전체에 충격파를 휘감아 지속되는 섬광을 후려치듯이 움직였다. 격돌하는 힘의 틈새에 팔이 끼인 꼴이 되었고, 그 결과 팔은 순식간에 뼈에 가죽을 씌운 것처럼 마르는 듯했다.
하지만 오래 그렇게 마른 형상인 채로 유지되지는 않았다.
밤하늘에 가득 번진 은빛 불길이 곧장 뼛속을 태우듯이 흘러들면서 늑대의 팔을 복구시켰다!
‘살았다, 젠장!’
엉겁결에, 거의 본능적인 반사 행동으로 막아 낸 기쁨보다 먼저 투란은 줄줄이 헤엄쳐 오는 꽃봉오리를 깨닫고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한두 송이가 아닌, 한 무리가 그동안 악마의 심장 넝쿨이 채우고 있던 빈 곳을 차지하겠다는 듯이 밀려오는 광경이었다.
여기서 투란은 자신의 상식에 의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잠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저것이 그저 눈깔꽃이라면 굳이 호들갑 떨며 피할 일은 아니었다. 보라색 독 안개라든가, 설혹 수천의 독가시를 뿜어내는 놈이라 해도 투란이 겁낼 대상은 아니므로.
그런데 과연 이곳이 그런 상식이 통하는 곳일까?
투란은 왼손을 치켜들었고, 은빛 불꽃의 열기에 의지를 담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일단 때려 보면 알겠지.’
촤아악!
물살을 가르며 흘러간 충격파는 꽃봉오리 무리를 그대로 갈랐고, 몇 송이는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으스러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으스러지는 과정에서 기묘한 섬광의 형상을 잠깐 드러내기도 했다!
‘망할!’
투란은 여기가 샤오콴 마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임을 실감했다.
저 몰려오는 꽃봉오리, 눈깔꽃은 대부분이 섬광의 눈깔꽃이 분명하니!
촤르르르르.
누가 자기 동족을 때렸는가 궁금하다는 듯이 뿌리를 살랑거리며 꽃봉오리를 머리 삼아 헤엄쳐 오던 눈깔꽃이 일제히 물의 표면 위로 솟구쳤다. 이는 물속에 뿌리는 둔 꽃이 줄기를 물 밖으로 내밀며 그 봉오리를 흔드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사이에 투란은 주변을 둘러봤고, 유일하게 숨을 수 있는 구멍을 깨달았다.
희귀종이 무더기로 몰려온 상황에서, 희귀종의 가슴에 뻥 뚫린 큰 구멍이 앞에 있는 상황이라니! 일단 저 꽃봉오리의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고, 이는 결코 나쁜 선택일 리가 없다!
바로 투란의 몸이 오그라들었고, 그 구멍을 차지했던 악마의 심장처럼 오그라들었다. 그랑츄의 체격이 다시 사람의 것으로 되돌아왔고, 바로 구멍 속에 던져졌다. 소년의 작은 몸이 숨기에 오러 몽거의 가슴에 뚫린 구멍은 꽤 쾌적하고 넓다 할 정도였다.
번쩍!
빛이 번뜩이는 순간, 투란은 왼팔을 높이 치켜들며 아까처럼 반사적으로 충격파를 일으켜 구멍 위로 뚜껑처럼 발산했다.
번쩍, 번쩍!
콰득, 와드득.
섬광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로 손목이 뒤틀렸고, 뼈마디가 멋대로 부서지며 쳐든 손이 이리 삐죽 저리 삐죽한 꼴이 되었다. 은빛 불꽃에 일렁이던 붉은 털이 한순간에 검게 그을리며 가죽이 심하게 타는 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늑대의 팔을 치켜 올린 투란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섬광이 지나간 하늘, 구멍에 등을 기대고 한껏 몸을 웅크린 채로 쳐다보는 하늘에는 아직 은빛 불길이 일렁이는 중이었고 구멍 안에 숨긴 몸은 저 섬광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으니!
‘오러 몽거가 이렇게 대단한가?’
분명히 저 섬광은 숨는 투란을 향해 마구 뿜어져 온 것이다.
하지만 이 오러 몽거의 살점을 파헤치거나 가죽을 가르며 투란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이 오러 몽거가 죽은 채로 생기를 뿜어내는 것이야 여태 악마의 심장이 필사적으로 돌본 탓이라 해도, 저 섬광의 폭풍우에 끄덕도 않는 것은 오롯하게 그 몸이 지닌 힘일 터!
투란은 발목이 구멍 아래에 잠기면서, 바닥을 이루고 있는 굵은 덩굴줄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가슴에서 쿵쿵거리는 악마의 심장이 당연하게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래,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애초에 저 꽃송이 무리는 이곳에 올 수 없었다.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것은 악마의 심장, 오러 몽거를 삼키기 위해 발버둥 치며 이 굵은 넝쿨을 뿜어내던 녀석이잖은가!
은빛 불꽃에 달아오르며 복구되는 왼팔을 구멍 밖으로 내민 채, 투란은 두 발에 힘을 줬다. 다리에서 가늘게 껍질이 벗겨지며 흐르는 듯한 넝쿨 가닥이 생겨났고, 두 발의 아래편에 굵은 줄기에 어울리는 큰 알뿌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투란의 왼팔 속에서 작은 심장 무리가 격하게 맥동했고, 팔죽지의 조금 큰 심장이 이 맥동을 중계하며 가슴속에 자리한 악마의 심장으로 전했다. 격류가 곧장 악마의 심장으로부터 뿜어져 나갔고, 발바닥 아래에 새로 나온 뿌리가 호응하며 거대한 맥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굵은 줄기들이 이전보다 격렬한 역동성을 드러내며 물속 깊은 곳에서부터 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러 몽거를 싣고 있는 작은 섬은 곧 닻을 잃은 배처럼 느릿하니 움직였고, 주변을 굵은 줄기 가닥이 가득 채우며 물결을 뒤틀었다.
헤엄쳐 오던 꽃봉오리 무리가 이를 느꼈을 때에는 이미 굵은 줄기로부터 좀 더 가늘고 보다 역동적으로 튀는 듯한 가는 줄기가 뻗어 나올 무렵이었다. 가늘어도 아직은 사람 손가락 굵기는 되는 줄기들이 헤엄치는 꽃봉오리를 휘감고 움켜쥐며 물속에서 그대로 으스러뜨리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 피어나려는 꽃봉오리의 방향을 틀어서 눈알이 다른 곳을 향하게 했다.
섬광이 물결 위에 잔영을 남기며 여기저기로 뻗어 갔다.
곧 물가의 숲이 섬광에 갈라지고, 땅이 파이는 광경이 나타났다.
하지만 물속에서 터진 섬광은 그렇게 곧게 똑바로 멀리 가지 못했다. 물거품이 피어오르며, 고작 2, 3미터 정도 빛이 번지다가 거품과 함께 사라질 뿐이었다.
투란은 정신을 집중했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몰입했다.
‘이런 놈이구나, 눈깔꽃!’
섬광의 눈깔꽃, 그 벼락처럼 빛나지만 곧게 뻗어 가는 광채는 물속에서는 제대로 그 힘을 뿜어내지 못했다. 그러니 물속에서 악마의 심장 넝쿨에 잡히면, 그대로 끝장날 뿐이었다. 눈깔을 딴 데로 향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물속에서 그냥 터지도록 조이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몇 송이는 기어코 자신을 덮친 굵은 줄기를 향해 섬광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투란은 그 순간에 움찔하다가 그다음에 벌어진 꼴을 보며 놀랬다.
눈깔꽃이 활짝 피어나며, 터지는 눈깔에서 쏟아져 나온 섬광, 그 광채를 굵은 줄기가 우뚝 서고 펼쳐지면서 들이대진 것은 생각하기 이전의 본능이었다. 한데 그 광채에 굵은 줄기는 자신의 색을 바꾸더니, 끝내 거울처럼 변해서 빛줄기를 산란시키고 되받아치질 않는가!
때문에 터진 눈알, 빈 봉오리가 섬광을 되받으며 으스러지는 꼴이 돼 버리니.
‘그렇군, 색채가 변하고 투명해질 수도 있으니까 거울처럼 될 수도 있겠지.’
나름대로 납득은 할 수 있었다.
색채가 바뀌지 않은 굵은 줄기는 여지없이 섬광에 찢기고 흩어지는 꼴이 되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저 빛에 대응해서 색채를 바꾸고 거울처럼 반짝이는 줄기가 되는 것이 제대로 된 대응책이란 것도 분명했다.
그리고 이 점은 투란에게 명확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눈깔꽃은 어떤 종이든 간에 악마의 심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
잠시 뒤 눈깔꽃 무리를 정리한 뒤, 바닥에 닿은 부분을 싹 걷어 올린 굵은 줄기는 오러 몽거를 실은 배처럼 가만히 뭉치며 얌전해졌다. 투란은 발바닥의 크게 만들어진 알뿌리를 바로 회수했다.
악마의 심장은 그 정도 큰 놈이라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다고, 조금 더 주변을 휘젓고 싶은 듯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느릿하니 구멍 안에 등을 기대고 살짝 주저앉은 투란은 은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며 조금 쉬는 기분이 될 수 있었다.
‘이제 어쩌지?’
갑작스러운 상황이 정리되자, 당연하게 하던 고민이 되돌아오는 중이었다.
일단 멍하니 앉은 채로 밤이 새기를 기다리면서, 투란은 오러 몽거의 가슴 구멍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깨끗하네.”
햇살 아래에서 투란은 중얼거렸다.
해가 뜨기를 기다리가다 잠깐 졸았나 싶었을 때, 해는 이미 쑤욱 돋아난 광경을 봤다. 그리고 아주 얌전하게 붉은 털을 살랑이는 왼팔, 더 이상 미친 듯이 맥동하는 작은 심장의 무리는 느낄 수가 없었다. 어깨 아래, 겨드랑이 쪽 팔죽지 속에 작은 심장의 우두머리도 아주 느릿하게 꿈틀거리며 마치 심장이 아니란 듯이 얌전할 뿐이었다.
그 꼴에 황당해하면서도 투란은 가슴속에서 두 개의 심장이 평온한 것을 느끼며 나름대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멍 안에서 나와 보니, 맑은 하늘 아래에서 크고 넓은 물 위에 둥실거리며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간밤에 얼핏 봤던 오러 몽거는 투란의 발아래 밟힌 채로 윤기 나는 검은 가죽, 섬세하게 덮인 하얀 털 부위를 보이면서 엎어져 있었다. 아무리 밤이었다고 해도, 아무리 은빛 불꽃이 된 달빛 아래 어설프게 봤다 해도 이렇게 가죽과 털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엎어진 오러 몽거의 한쪽 배 아래에는 여전히 물이끼 같은 것이 끼어 있었고, 오래되어 초록빛 물풀이 돋은 듯한 꼴이 보였다. 즉, 투란이 간밤에 본 것처럼 오러 몽거는 오랫동안 물속에서 넝쿨에 휘감긴 채라 이곳저곳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깨끗했다.
가만히 그 깨끗함이 가장 밝고 큰 곳의 위치를 간밤의 난투 속을 기억하며 더듬으니, 모두 섬광에 직격당하거나 그 여파에 휩쓸린 자리였다.
눈깔꽃의 습격이 오러 몽거를 깨끗하게 해 준 셈이라니!
흘깃, 잠시 오러 몽거를 바치고 있는 굵은 줄기를 더듬어보니 찢기고 갈라진 곳에서 새로 돋은 넝쿨 가닥이 보였다. 찢기고 갈라진 자리를 메우기 위해 돋은 것들은 원래의 굵은 줄기보다 가늘었지만, 뭔가 훨씬 활기차 보였다.
투란으로서는 저 찢긴 흔적을 메운 줄기를 보는 것이 조금 난감했다.
간밤에 느낌으로는 별 탈 없이, 정말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하게 눈깔꽃 무리, 그 떠내려온 꽃봉오리 떼를 제압했다 생각했는데, 밝은 햇빛 아래에서 보니 이건 그야말로 서로 마구 찢어 대며 싸운 난투극의 현장이다.
‘제대로 된 섬광은 몇 번 안 터졌는데 이 모양인가.’
거울처럼 변해 튕겨 낸 곳은 말끔해 보였지만, 그 전에 섬광을 겹쳐 맞은 자리는 그냥 찢긴 채로 새 줄기를 뽑아 메운 꼴이었다.
오러 몽거가 깨끗해진 것과는 많이 다른 몰골이다.
투란은 껑충, 오러 몽거의 곁으로 내려섰다.
발바닥에 닿은 굵은 줄기가 바로 반응하며 투란의 발이 무슨 진흙에 묻힌 것처럼 반쯤 스며들었다. 악마의 심장이 조금 세게 뛰면서 굵은 줄기를 좀 더 단단히 조이게 했다.
천천히 오러 몽거를 중심으로 돌면서, 사방의 탁 트인 풍경을 관찰하면서 투란은 고민했다.
‘최고급 부적이 있다 해도 이놈은 제대로 다루기 힘들 텐데…….’
부적 같은 거 없는 몬스터 로드가 과연 오러 몽거를 삼켜도 되는가?
심장이 없는 이놈이 과연 제대로 된 힘을 쓸 수 있을까?
길고 큰 강을 떠내려가면서 투란은 조금 더 고민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