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96)
Chapter 140. 페브라 왕도에서 Ⅴ
“음, 좋은데요?”
투란은 편안함을 그대로 말했다.
헌터 길드에서 운영한다는 퍼브, 그 분위기는 알드바인에서 흔히 느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새삼 다시 느낀 분위기가 주는 익숙함은 투란에게 편안하다 여겨지는 셈이었다.
이자닌과 파쿠란은 그런 투란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몬스터 헌터가 모인 주점의 분위기는 이 주변을 짓누르듯이 살벌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중간한 녀석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페브라 왕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력을 갖춘 몬스터 헌터가 가득 모여 있으니까. 게다가 왕도 내에서 다른 곳보다도 더 많은 몬스터 헌터가 모여 활발하게 거래를 하고 교류를 하는 탓에 그런 분위기가 한층 더 짙게 흘러넘친다고 할 수 있었다.
한데 이런 곳의 문턱에 발을 딛자마자 투란은 친근하고 편안하다 여기니…….
“좋긴 좋네.”
불쑥 이자닌이 중얼거렸다.
파쿠란은 이제 투란에 이자닌을 더해서 어이없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이 퍼브는 라비엔보다 안정적이기는 해도 라비엔이나 엘데인을 거쳐서 흘러온 듯한 분위기가 짙었다. 마치 사냥꾼이 몸에 사냥감의 냄새를 묻힌 것처럼, 몬스터와 싸우는 이들의 투지가 은은하게 맴도는 듯했다.
덕분에 투란과 마찬가지로 이자닌에게도 이쪽이 오히려 요새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라 할 수 있는 듯했다. 어쨌든 십여 년을 떠나 있던 왕도에서 십여 년간 지내며 익숙해져 당연히 여기는 도시의 풍경을 본 셈이니까.
“어디 있어?”
이자닌이 불쑥 물었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던 파쿠란이 한쪽을 손짓하며 대답한다.
“구석으로 가야겠군.”
투란이 앞장서는 둘의 뒤를 따르며 묻는다.
“구경 좀 하면 안 돼요?”
이자닌이 멈칫하며 투란을 바라봤다.
눈을 깜박거리거나 표정은 그대로이지만, 에모틱 가면을 쓰고 있어서 애송이 티는 전혀 나지 않는 투란이었다. 다만 화를 내는 건지 쳐 웃고 있는 건지, 얼굴 어디에 눈길을 주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괴상한 몰골일 뿐이다!
“그 얼굴로 쳐다보면 다들 싸우자는 줄 알겠다. 나중에 하고 그냥 따라와.”
“음…… 쳇.”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은 얼굴을 긁적였다.
가려운 듯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얌전히 앞서는 파쿠란의 뒤를 따르는 투란이었다. 이자닌이 조금 더 빠르게 파쿠란 쪽으로 붙으며 투란 앞을 채우듯이 나아갔다.
―왜? 따로 움직이고 싶어진 거냐?
드라고니아가 불쑥 물었다.
‘아니, 저쪽에서 뭔 냄새를 풍기고 있잖아. 저거, 그냥 풀잎처럼 보여도 몬스터 쪼가리 같은데 말이야. 왜 그 냄새를 저리 풍기고 있는가 이상해서…….’
투란은 이 퍼브의 한쪽에서 연기를 피우는 향로(香爐)를 곁눈질하며 대답했다.
―연초(煙草)를 섞었군. 몬스터의 잔재랑 섞어서 약으로 쓰는 모양이다. 진통제 쪽이 아닌가 싶군.
‘응? 몬스터 풀로 진통제?’
―뭘 새삼 놀라는 시늉이야? 몬스터 잔재로 도구를 만든다는 거는 당연히 여기면서. 약을 만들면 안 될 까닭이라도 있냐?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런 도시에서, 왕이 산다는 도시에서도 그런 걸 쓰나? 이런 곳에서는 그렇게 안 할 줄 알았지. 도시에서는 몬스터의 잔해 따위 그냥 없애버리는 줄 알았는데.’
―그래? 그렇다면 여기가 좀 색다르고 특별한 모양이지. 몬스터 헌터가 잔뜩 있잖아. 도시라도 자신들의 방식을 그대로 지키는 것일 수도 있잖아?
‘어? 그런가? 흠…… 에? 저거 마법사인가?’
투란은 파쿠란의 어깨 너머를 보며 갸웃했다.
이자닌과 파쿠란이 찾아간 귀퉁이에는 벽의 모서리를 채우려는 듯이 굽은 소파가 있었고, 탁자에는 뭔가 잔뜩 올려놨지만 퍼브의 요리라고는 할 수 없는 괴상한 도구였다.
“여기가 자네 공방인가?”
파쿠란이 묻는 말에도 탁자 위의 도구를 보며 뭔가 웅얼거리고 잔뜩 긴장한 표정인 작자는 고개를 돌리거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혀를 차면서 파쿠란은 소파 한쪽에 앉으면서 손짓했다.
투란은 그 손짓 사이로 여린 마력이 파동을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주변의 다른 이들은 딱히 느낀 듯하지 않았지만 탁자에 도구를 늘어놓고 뭔가 하던 이는 확실히 반응했다.
“응? 무슨……!”
홱 고개를 드는 순간, 그는 파쿠란을 봤다.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묻는 말이 바로 나온다.
“어쩐 일이오?”
그동안의 인사라든가 안부를 묻는 말은 전혀 없었다.
마치 파쿠란이 무슨 일이 없으면 두 번 다시 자기 앞에 나타날 리가 없는데 왔으니 뭔가 용건이 반드시 있다고 확인하는 말투였고, 눈빛과 태도에서도 명확하게 이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 낌새가 물씬 풍겨나왔다.
“오랜만이야, 뭐라고 불러야 하지?”
파쿠란은 그와 달리 자신이 정상적인 사람이란 듯이 묻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좁혔지만, 새삼 주변을 둘러보는 채로 대답을 한다.
“델릭.”
짧고 간결한 자기소개인 셈이었다.
이자닌은 파쿠란 곁에 앉으면서 탁자 위를 눈짓하며 묻는다.
“대체 이런 퍼브에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정말 여기 공방이라도 차린 거예요?”
“당신은?”
델릭의 물음에 이자닌이 짧게 대답한다.
“이자닌.”
“당신이? 허…….”
델릭의 반응은 조금 기묘했다.
파쿠란이 바로 묻는다.
“생각나는 거, 다 말해봐.”
델릭은 흘깃 투란을 봤다.
둘은 앉았는데 투란은 멀뚱거리면서 탁자를 내려다보는 채로 서 있는 것이 무슨 까닭이냐는 듯, 혹은 그렇게 서서 시야를 가리지 말라는 듯.
투란은 갸웃하다가 이자닌이 옆을 비우며 손으로 치는 자리에 가 앉았다.
델릭이 잠깐 투란이 비켜선 자리 너머를 주욱 훑어보다가 말문을 연다.
“소문이 있었지. 뛰어난 재능, 자질을 지닌 아이들을 모아다가 길드의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뛰어난 몇 명이 있는데, 굳이 길드가 아니더라도 커서 미녀가 되는 것만으로도 투자한 만큼 뽑아낼 수 있는 경우라고…… 아예 일찌감치 팔아치워도 괜찮을 거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더해서 말이야. 때문에 길드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아예 마법사나 오러 윌더를 호위로 붙여주고 개인 교사 노릇까지 맡겼다는 이야기도 있었어. 그중에서도 길드 마스터가 될지도 모른다고 여겨진 소녀가 있다고 했어. 영리하고 교활하면서도…… 길드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오래된 길드의 원로들까지 기꺼이 처단할 수 있는 냉정하고 강인한 자질을 지녔다더군. 거기 겁먹은 원로 몇몇이 그 소녀를 재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조혼(早婚)시키려 했는데…… 소녀가 전부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신랑 측을 두들겨 패서 걸레짝을 만들어 놓고 왕도에서 탈주했다고 하더라고. 물론 이런 이야기는 원로들이 바로 부정했지. 지나치게 왜곡된 소문이라고 말이야. 덕분에 소문이 더 뒤틀려서 맴돌았어. 원로들은 그 소녀가 어른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아주 두려워한다고. 그 두려움이 얼마나 짙은지, 아예 길드에서 벗어날 궁리까지 한다더군. 그냥도 아니고 그동안 쌓여온 길드의 재물을 이용해서 새로운 신분까지 만들어서 말이야. 그러니 그 소녀가 가만 놔두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돌아와서 길드의 원로들을, 그동안 원로들을 중심으로 해먹던 녀석들을 깡그리 정리할 거라고 말이야. 이 정도 이야기야.”
“무슨 영웅담이냐?”
이자닌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표정을 구기다가 델릭이 말을 맺기가 무섭게 짜증 가득한 소리를 뱉어냈다.
델릭은 이자닌을 잠깐 물끄러미 보다가 파쿠란에게 묻는다.
“숙청(肅淸)하려 돌아온 거 아닌가?”
“그렇게 묻는 근거는 소문뿐인가?”
파쿠란이 되물었다.
델릭의 눈가가 조금 찌푸려졌다.
묻는 말에 대답은 없고 실컷 들은 다음에도 계속 묻기만 하려는 파쿠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잠깐 숨을 고르고 나서 델릭이 다시 대답을 한다.
“그런 소문이 돌게 하는 상황이니까. 정말로 누가 와서 뒤집어엎으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란 거지.”
“그 상황 중에 네가 만든 가면에 엮인 부분도 있나?”
파쿠란이 가만히 델릭 곁에 구겨서 뭉친 가면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델릭은 잠시 그걸 노려보다가 가만히 집어서 펼쳤고, 몇 장인가를 센 다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피 보기 싫어하는 녀석들이었어. 남의 피도, 자기 피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절대로 피를 보는 일이 없게 하겠노라고 맹세까지 했지. 그래서 몇 장 만들어줬어.”
“시체를 확인했나?”
불쑥 파쿠란이 묻는 말에 델릭의 표정이 조금 더 험악하게 구겨지고 굳어졌다.
“그래, 여섯을 확인했고 죽기 직전인 하나는 겨우 다른 곳으로 보냈지.”
이자닌이 그 표정을 살피면서 묻는다.
“주인 잃은 가면은 모두 일곱? 그게 전부?”
델릭이 고민하듯이 입을 다물었다.
투란은 이 오가는 이야기가 뭔 뜻인가 열심히 귀를 기울이지만 자신이 거의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자닌이 영웅담이냐고 비꼬던 델릭의 이야기는 그럭저럭 그 주인공이 이자닌이겠거니 느낄 수 있었지만, 그다음부터 주고받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앞뒤 자르고 중간도 한 토막씩 빼놓고 이야기를 하니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야, 넌 뭔 이야기인가 알겠어?’
―알 리가 있냐!
드라고니아도 알 수 없어서 조금 불만스럽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덕분에 투란의 표정이 불끈불끈하는 채로 이자닌과 파쿠란만 열심히 흘겨보는 꼴이 되었는데…….
“원래 아홉 장을 만들었지. 여섯의 주인이 죽고, 하나는 떠났지만…… 둘의 주인은 그대로이고…… 아주 잘 쓰이고 있는 모양이야. 내가 처음 들었던 의도랑은 많이 다른 쪽으로 사용되고 말이지.”
델릭이 나직하고 무겁게 대답하고 있었다.
파쿠란이 그런 델릭을 잠시 묘한 표정으로 보다가 묻는다.
“그래서 독을 제조하는 건가?”
투란이 흠칫해서 탁자 위를 쳐다봤다.
뭔지 모를 도구이기는 하지만 가만 보면 확실히 연금술 쪽과 뭔 관계가 있어 보이기는 한다! 즉, 이게 막 섞고 찧고 빻고 다시 섞으면 정말 독이 만들어질 수도 있어 보이는 풍경!
“에, 어…… 우리 안전해요?”
조금 급하게 투란이 이자닌에게 묻는 말이었다.
이자닌이 황당하다는 듯이 투란을 잠깐 노려봤지만 곧 포기했다는 듯이 대답한다.
“안전해. 누가 덤벼서 칼부림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래요?”
웅얼거리면서 투란은 탁자에서 멀어지려는 듯이 등을 뒤로 한껏 젖히고 있었다. 그 꼴을 보면서 델릭이 파쿠란을 향해 말한다.
“약속했으니까. 처음 말한 의도랑 다르게 가면이 쓰인다면 무슨 저주를 받을지도 모르니 주의하라고. 내게 가면제작법을 가르친 마법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전했지만…… 아직 아무런 저주도 없는 것 같더군. 그러니 내가 그 저주를 대신 선물할 수밖에 없는가 싶어서.”
“그 마법사가 돌아왔다, 델릭. 그러니 이건 이제 치워. 못다 한 이야기를 할 만한…… 쉴 만한 곳은 알고 있나?”
파쿠란이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델릭은 파쿠란을 똑바로 바라봤다.
잠시 무엇인가를 캐듯이 바라보다가 결국 모르겠다는 듯이 델릭이 묻는다.
“왜…… 왜 돌아왔지?”
“내가 맡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파쿠란은 이자닌을 보며 대답하고 있었다.
델릭은 파쿠란의 일이 뭔지 안다는 듯, 이자닌에게 묻는다.
“숙청이 아니라면 대체 왜 돌아왔지?”
잠깐 이자닌의 눈가가 삐딱하게 치켜 올라갔다.
더 물으면 한 대 치겠다는 분위기였지만, 델릭의 눈길은 고정되었고 대답을 반드시 들어야겠다는 듯이 굳세게 번뜩일 뿐이었다. 파쿠란이 넌지시 스쳐가는 말투로 한마디 보태듯이 말한다.
“독이 필요할지도 몰라.”
이자닌이 살짝 성난 표정으로 파쿠란을 노려봤지만, 그냥 상황이 그렇다는 듯이 슬쩍 눈길을 돌려 외면할 뿐이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서 제조되는 독일지 모르는 것이 싫다는 듯이 슬금슬금 몸을 더 뒤로 빼고 싶어 하는 투란의 모습.
이자닌은 둘이 하는 짓을 둘러보다가 델릭을 똑바로 보며,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다.
“라비엔의 창고가 털렸거든. 귀한 분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전부 털렸지. 그래서 그걸 보고하려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웃기지도 않는 거였어. 거기 그런 유산이 있었냐고 되묻더라고. 분명히 라비엔의 창고는 이 왕도에 있는 것이랑 같은 걸 텐데, 마치 이쪽에는 그런 거 없다는 듯이 되묻잖아. 그래서 그 창고 턴 작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고, 왔지.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하려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게 내 대답이야.”
투란은 눈을 깜박거렸고, 파쿠란은 잠시 퍼브의 천장에 뭐가 있는가 구경하듯이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델릭은 이자닌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