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97)
―허? 네 탓이라는 말이네?
‘시꺼! 그냥 하는 말이겠지!’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는 듯한 낌새로 중얼거렸고, 투란은 이자닌을 흘깃거리는 채로 바로 부정했다.
설마 그것 때문에 라비엔에서 이 먼 페브라 왕도까지 그 길고 긴 여행을 했을까! 설마 이자닌과 파쿠란이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파쿠란이 투란에 대해 눈치채고도 금전 백 닢을 들이대며 의뢰한 것이 아니겠는가!
투란이 이리 열심히 이자닌이 꺼낸 말을 부정하고 있을 때, 델릭이 느릿하면서도 차분하게 이자닌의 말을 저울에 올려놓고 재는 듯한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다.
“유산이라…… 왕의 유산을 인정하지 않은 까닭은 짐작할 수 있겠군. 그런 걸 인정한다면 길드의 규율, 전통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부정하는 거다. 아마 그래서 그쪽으로 그런 대답을 했겠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면 전통을 내세워서 나설 녀석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지금 대세가 되고 있는 녀석들은 오랜 전통, 그에 따른 규율은 전부 무시해야 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니 그딴 대답을 했을 거야.”
두 번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듯한 말이었다.
이자닌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들쑤시듯이 긁적이면서 델릭을 바라보다가 퍼브 안을 둘러보며 말한다.
“좀 조용한 곳으로 가서 더 깊이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소리 질러도 되는 곳, 아주 조용한 곳, 아는 데 없어?”
“있다. 내가 머무는 곳. 지하실이기도 하고, 마법사가 있다면 수작 부리기도 좋은 곳이지.”
델릭이 손끝으로 바닥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파쿠란이 그 모습을 보며 낯을 꿈틀하며 묻는다.
“헌터의 퍼브가 아닌 곳은?”
“없어.”
델릭의 대답은 간결했고, 확고했다.
이자닌이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를 눈짓하며 말한다.
“가자고. 이거, 챙겨야잖아?”
“그래야지.”
뭔가 엄청 귀찮은 것들을 내려다보듯이 델릭이 갑자기 한숨을 쉬고 있었다.
파쿠란은 조금 전에 구겼던 얼굴에 피식 새는 웃음을 덧씌우며 델릭에게 말한다.
“도와주지, 이 상태로 바로 굳혀서 가져가자고.”
“고맙군요.”
델릭이 냉큼 대답하며 조금 전의 답답해진 한숨을 다시 들이켜는 듯했다.
투란이 갸웃하고 보니, 이자닌이 혀를 찬다.
“퍼브 구석에서 뭔 짓이야. 급하면 바로 들고 튈 정도면 벌려놔도 되잖아.”
“튈 일이 없는 곳이니까 안심하고 작업하는 거였다.”
툴툴거리듯이 델릭이 변명했다.
말을 하면서도 델릭은 빠르게 탁자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파쿠란도 빠른 손놀림으로 이를 거들었다.
‘그냥 막 담아가면 안 되나?’
투란이 갸웃하면서도 입은 다문 채로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소리 내서 물으면 왠지 파쿠란과 델릭이 얼간이 쳐다보듯 볼까 하는 예감 때문에!
물론 드라고니아가 그 대신이란 듯이 얼간이 취급하는 말투로 대답한다.
―시약과 재료를 마구 섞어서 어쩌려고! 저게 무슨 막 섞어 파묻을 쓰레기인 줄 알아! 그릇까지 망가질 거다!
‘칫, 난 연금술 잘 모르잖아!’
―아, 그래? 그럼 이제 연금술에 대해서 매일 매일 들려줄까?
‘그러지 마.’
―무식하지 않으려면 노력을 해야지! 왜 듣기 싫다고 떼를 쓰고 무식한 소리를 해! 가만히 있으면 차라리 낫지! 가만히 있지도 않고 계속 무식한 채로 그딴 소리를……!
‘대도감 얻은 다음에 하자고, 대도감 얻은 다음에 열심히 듣는다고!’
투란은 항복선언과 동시에 뒤로 미루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투란의 호기심은 곧바로 또 다른 물음을 끌어냈다.
‘파쿠란…… 마력으로 뭘 하는 거지?’
드라고니아가 바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투란의 뇌리를 울려 대답한다.
―제조하던 것이! 다른 시약! 재료랑! 섞이지 않게 고정시키는 거라고! 연금술에 대해서 알면, 마법에 대해서 아는 만큼만 알면 그딴 소리 안 하게 될 거란 말이다!
‘그, 그래! 대도감, 대도감 챙긴 다음에 들을 테니까! 주변 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머리를 울리지 말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면이 구겨진 진짜 얼굴에 드러난 구겨진 표정을 반영하지 않게 주의하면서 투란은 이자닌의 손짓이 신호하는 대로 움직였다. 정리가 끝나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는 델릭을 따라서, 그 곁에 나란히 발을 옮기는 파쿠란의 뒤를 밟듯이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가는 와중에 잠깐 퍼브의 바를 스쳐가는데, 바에 기대고 있던 초로(初老)의 헌터가 델릭을 향해 말을 걸었다.
“여어, 연금술사. 일은 끝났나? 그러면 해독제 거래할 수 있겠나?”
델릭이 그 헌터를 보며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분으로 만들어 둔 것이 없다 하잖았소. 빨라도 모레는 돼야 한다니까.”
“허허, 당장 시작하면 내일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고도 들었지. 그렇게 힘든가? 웃돈을 얹어 준다니까.”
조금 미안해하면서도 헌터는 왁자지껄한 퍼브의 분위기를 피하듯이 몸을 숙이면서 델릭에게 보채고 있었다. 차분하고 신중하기는 하지만 그 사정이 그렇게 오래 기다리기가 어렵다는 의미는 분명하게 드러내는 셈이었다.
델릭이 다시 뭐라 하려는데, 파쿠란이 불쑥 묻는다.
“무슨 해독제?”
이에 대해 초로의 헌터가 델릭의 눈초리가 찌푸려지는 것을 보면서도 재빨리 대답한다.
“독가시거북의 해독제라고, 그놈이 뿜어내는 독을 풀고 막기도 하는 걸 찾고 있소이다. 헌터 길드에 가봤더니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몇 없고, 그나마 여기 연금술사가 그나마 가장 여유가 있다고 해서 말이오. 음, 혹시 연금술의 동료시오?”
파쿠란이 델릭을 보며 대답한다.
“예전에 만든 여분이 두 병 정도 있지. 내 거 팔아도 상관없겠어?”
델릭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헌터를 향해 말한다.
“품질은 내가 보증할 수 있소. 가격은…… 내가 만든 것보다 비쌀 거요. 그만큼 효능은 확실하니까, 웃돈까지 얹는다 생각하고 사려면 사시오.”
“으흠…… 헌터 길드에서는 여기 연금술사의 제조품은 보증한다고 했소만…… 아무래도 모르는 분이니 살짝 걱정이 되니…… 하하, 이쪽은 목숨이 걸렸으니 이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소. 이해해주시오. 음, 그래서 말인데 가격에서 검증비라도 빼줄 수 있소?”
“응, 안 돼. 내 물품을 의심했으니 길드 검증에 드는 비용은 더 물도록 해. 모처럼 왕도에 왔는데 그렇게 얕보이면서 물건 팔 생각은 없어. 살 건가, 말 건가? 아, 가격은…… 반 리터짜리 병 둘, 병 하나에 은전 두 닢.”
파쿠란이 빙긋빙긋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다가 이해한다는 듯이 웃고, 장난처럼 물품 검증은 가서 따로 받으라고…… 사고 나서 하라고 윽박지르는 말투였다. 그러면서도 파쿠란의 손은 이미 작은 병 둘을 내밀며 흔들고 있기도 했다.
초로의 헌터는 표정을 구겼지만 한숨을 쉬면서 허리에 걸린 주머니에서 은전 네 닢을 꺼내 내밀었다.
은전과 병이 교환되었고 델릭과 파쿠란이 곧바로 다시 움직였다.
투란이 이자닌의 걸음에 맞춰 나가며 슬쩍 돌아보니, 초로의 헌터는 살짝 희끗한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면서 배낭 안에 병을 넣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것이 헌터 길드에 검증을 받으러 가는 것인지, 그냥 독가시거북을 상대하러 하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저런 식으로도 거래하는구나.’
투란은 이자닌이 계단을 따러 내려가는 것을 뒤따르며 기억했다.
―특별한 거냐?
드라고니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
‘엘데인에서 봤잖아. 좌판에서 파는 물품은 아무도 보증 안 해. 이런 식으로 중간에 누가 끼어서 길드 보증 없이…… 도적 길드 말고, 헌터 길드 보증 없는 물품을 살 때는 조심해야 하고 주의할 일이 많거든. 그래서 보통 안 해. 하지만 따로 돈 들여서 검증하거나 어떻게든 검증할 수 있으면 저렇게도 한다고 들었어. 웬만큼 능력 되고 아는 게 많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짓이라던데…… 저 헌터, 심상찮아 보이는 게 베테랑인가 봐.’
어느새 처진 꼴이 되어 이자닌을 졸졸 따라가면서 투란은 설명했다.
―그러냐…… 그런데 이 흑마법사는 대체 그 와중에 끼어들어서 팔아치우다니, 인간 마법사는 원래 저런가? 집중해야 할 일이 있는데 틈나는 대로 옆으로 새기도 하는 거야?
‘그, 글쎄. 그냥 델릭의 일을 덜어주려 한 거 아닐까? 계속 들러붙을 낌새였으니까 말이야.’
―아, 그런가?
‘그렇잖겠어?’
지하 한 층을 내려가서 길게 늘어진 복도를 걷다 꺾인 다음에 나오는 방문을 열고 사라지는 델릭을 보며, 그 뒤를 따르는 파쿠란, 이자닌을 쫓듯이 방으로 들어서면서 투란이 자신 없이, 소리 없이 웅얼거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방 안의 풍경에 투란은 입을 벌리며 중얼거렸다.
“우와, 이게 대체 무슨 방이기에…… 이렇게 생긴 여관방도 있는 거예요?”
한쪽 벽에 바싹 붙은 침대가 왠지 작아 보이는 넓은 방이었다.
하지만 그 방의 절반 이상을 선반과 탁자가 자리 잡은 채로 뭔가를 잔뜩 품은 광경이었다. 탁자 위에 놓인 것들은 델릭이 퍼브 한구석에서 늘어놓았던 것의 몇 배나 되고, 더욱 복잡해 보였다. 선반에는 온갖 크기의 포대, 광물(鑛物)이 쌓여 있었고 간간이 마른 풀과 나뭇조각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투란이 아무리 봐도 이야기로도 들은 적이 없는, 이제까지 겪은 바가 적다 해도 도저히 여관에서 손님맞이를 위해 준비한 방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비록 퍼브의 곁다리로 놓인 여관이라 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 분위기가 팍팍 풍겨나는 셈이었다.
델릭이 뭐라 하기 전에 파쿠란도 이를 인정한다는 듯이 짧게 묻는다.
“공방? 피난처?”
한편에서 담요를 꺼내 넓게 펼쳐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앉으면서 델릭이 대답한다.
“둘 다, 어디 처박혀서 눈길도 피하고 처박힌 김에 뭐라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여기 퍼브 마스터가 내준 방이지요. 적당히 때를 봐서 떠나려면 여비도 필요하니까.”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이자닌이 바로 이를 짚는다.
“적당한 때? 여비? 왜 떠나려는데?”
델릭이 파쿠란을 바라봤다.
파쿠란은 그 고요한 눈길에 바로 손을 흔들었다.
투란이 흠칫하는 사이, 등 뒤에서 방문이 소리 없이 닫혔고 억센 마력이 곧바로 빗장처럼 방문을 덮어 눌렀다. 그 느낌 속에서 투란은 사방 벽으로 파쿠란의 마력 파동이 채워지면서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릿한 소리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도, 저쪽에서 이쪽으로도 소리가 완전히 봉쇄된 듯했다.
파쿠란이 담요 위에 앉았고, 이자닌도 그 한쪽에 앉았다.
조금 미적거리며 주춤하는 태도로 투란도 적당히 한편에 달라붙듯이 엉덩이를 걸쳤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제 나올 이야기보다 이 방이 더 신기하게 보인다는 기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델릭이 그런 투란을 보는 채로 말한다.
“퍼브 마스터는…… 믿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인 거고 이자닌을 데려온 파쿠란이나…… 낯짝과 다르게 애송이처럼 보이는 저 친구까지 가려줄지 어떨지는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주의하는 게 좋습니다, 파쿠란.”
“그래, 그래서 방벽도 세우고 방음처리도 했어. 그러니 이제 마음 놓고 이야기해도 좋아, 델리크.”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요, 델릭이란 이름 쓴 지도 꽤 오래돼서 말이죠.”
델릭이 이리 말하자마자 이자닌과 투란이 동시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파쿠란이 키득거리고 웃었다. 하지만 그래도 델릭은 델리크를 줄인 꼴이 분명한 델릭이란 이름이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바라크가 라바크라더니…… 도적 길드랑 관련된 연금술사란 녀석들은 다 이 모양인 거 아닌가?
드라고니아조차도 너무 무성의한 가명이 아니냐고 짚고 있었다.
주변에서 뭐라 하든 상관없다는 듯, 델릭의 말이 이어진다.
“여길 떠나면 다른 이름을 쓸 생각입니다. 맞아요, 그냥 떠날 생각은 없어요. 아마 몇 놈 죽일 것 같군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이름도…… 얼굴까지도 바꿀 상황이 될 겁니다. 굳이 도적 길드의 상황과 엮일 생각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으니까 말이죠. 내가 가면을 준 아이들을 죽이고 빼앗은 놈들, 그놈들에게 협력해서 배신한 녀석들…… 도적 길드에서 지금 대세라고 거들먹거리고 있어요. 마치 배후가 튼튼하다는 것처럼 말이죠. 은근히 그것들이 감추는 척하면서 뿌리는 소문에 따르면 지금 도적 길드의 세력을 장악하고 흔들어대는 배후가 고위 귀족이랍니다. 얼마나 높은 분인지 모르겠지만, 도적 길드를 완전히 장악한 다음에 정보를 다루고 상품을 다루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큰소리칠 정도는 되나 봐요. 예, 가능하면 그 높으신 배후까지 다 박살을 내놓고 싶죠. 물론 그러다 죽을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처박혀서 열심히 독을 제조하고 기회를 노리는 겁니다. 이게 지금 내 상황이죠. 파쿠란, 이자닌과 왜 돌아온 겁니까?”
자기 상황 다음에 묻는 말은 무슨 일인가를 밝히라는 은근한 압박이었다.
이에 파쿠란은 이자닌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