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98)
“음, 창고가 털려서 온 거 맞아. 그거 아니었으면 여기서 뭔 일이 나든가 말든가 몰라라 하고 있었을 테니까. 맞잖아, 파쿠란!”
이자닌이 중얼중얼하다가 파쿠란의 치켜뜨는 눈길에 버럭버럭했다.
파쿠란이 혀를 차다가 델릭을 보며 몇 마디 보탠다.
“일단 일의 계기는 그랬다고 해두자고.”
델릭은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잠깐 지었지만, 둘이 하는 일에 깊이 파고들 생각은 없는 듯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굳이 둘의 일에 관심을 두고 끼어들 만큼 자신의 상황이 쉽지 않은 탓이었다.
이 상황을 보며 투란은 볼을 실룩거렸다.
‘아니, 뭔 핑계를 댈 게 없다고 자꾸 날 끼워 넣어!’
―그만큼 좋은 핑곗거리가 된 모양이구나, 투란.
드라고니아의 속삭임은 대놓고 놀리는 낌새가 가득했다.
델릭이 잠깐 사이에 생각을 정리한 듯, 곧이어 묻는 말을 꺼낸다.
“일단이라…… 그럼, 이제 어쩔 겁니까? 와서 상황파악은 전부 끝내기는 한 겁니까? 아니면 우선 나를 만나 뭘 알아보려 한 겁니까?”
이자닌이 생각에 잠기는 시늉을 하니, 파쿠란이 대신 대답을 한다.
“알아볼 것이 잔뜩이라 찾아온 거지. 여기 온 지 겨우 이틀도 못 넘긴 상태거든. 오자마자 정보 탐색한다고 결혼식장에 갔다가 가면 쓴 암살자 녀석들을 만나는 바람에…….”
“암살자?”
델릭이 구겨진 낯으로 다시 확인하려는 듯이 물었다.
파쿠란은 너저분한 침대 한편에 앉으며 대답한다.
“그래, 느닷없이 만난 암살자가 내가 누군가에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가면을 쓰고 있잖아. 분명히 그런 용도로 만들어 주란 말은 안 했는데 말이지. 게다가 그런 목적을 지닌 녀석들에게 건네줄 녀석은 기억나질 않아서 말이야. 무슨 일인가 알아보러 올 수밖에 없잖아.”
평온하고 담담한 말투였지만 델릭은 쓴웃음을 지으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대꾸를 한다.
“내가 변했으면 죽일 작정이었군요, 파쿠란? 과연 도적 길드의 악랄한 마법사다운 판단이고 재빠르기도 합니다. 감탄했어요. 정말 당장 본받고 싶을 지경이군요.”
“이미 본받고 있는 것 같은데? 델릭, 그 대세란 녀석들에 대해서 더 얘기해봐요. 아무래도 벡커드가 주절거린 것보다 당신이 더 많이 아는 것 같으니.”
이자닌이 목뒤를 쓰다듬으면서, 보다 정중하고 신중하게 묻고 있었다.
더 듣기 전에는 뭔가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태도였다.
한데 델릭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다.
“벡커드? 회생(回生)의 백커드? 헌터로 나섰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도적 길드에 연이 있던가?”
“음? 헌터?”
이자닌이 눈을 끔벅거렸다.
파쿠란도 어이없어하며 묻는다.
“벡커드란 이름이 다른 사람인가? 미녀에 미쳐서 미녀만이 옳다는 벡커드 말고 또 있나?”
델릭이 둘을 둘러보며 그 표정을 다시 확인하고 말한다.
“그 벡커드 맞아요. 미녀를 위해서 미녀를 괴롭히는 몬스터를 잡는다고 나섰다가 몬스터에게 물려 한참 씹히고도 살아남았다고 회생의 벡커드라고 부르죠. 어렴풋이 도적 길드에서 발 뺀 작자란 소문이 돌기도 했고요. 하지만…… 뭐, 나도 소문만 들었을 뿐이고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니 뭐라 말하기 애매하군요.”
이야기가 나오는 사이에 이자닌과 파쿠란이 살짝 넋 나간 표정을 지었고, 투란은 키득거렸다.
도대체 몬스터 잡으러 가서 왜 씹히는 꼴이 되었는가?
그걸로 따로 별명까지 붙어서 유명해진 것은 또 뭔가!
그 와중에도 또 제 성질을 감춘 것도 없이 고스란히 드러낸 모양이고!
“와, 그 아저씨 대단하네요. 두들겨 패도 끄떡없는 정도가 아니라 몬스터한테 씹혀도 괜찮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투란이 델릭이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이자닌과 파쿠란의 표정이 왜 저 모양인가 의아해하는 사이에 말했다. 이를 통해 델릭도 뭔가 짐작한 듯, 조금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잘 아는 사이? 그렇다면…… 돌아와서 그를 정보원으로 삼았던 건가? 음…… 길드 멤버들 사이에서 그리 자주 거론되는 일이 없군, 요즘에는 말이야. 회생의 벡커드가 길드 안의 일에 대해 아는 것도 한계가 분명할 거라고 짐작되는군. 한데, 내 가면을 사용한 암살자들은 어디서 잡은 거지? 누가 목표였나?”
“로렐리.”
고개를 흔들며 벡커드를 뇌리에서 꺼내 저 멀리 날려 보내는 시늉과 함께 이자닌이 대답했다.
델릭이 낯을 찌푸렸다.
“마담 로렐? 애칭이 로렐리란 말은 듣기는 했어. 하지만…… 그 여자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일 텐데? 왜 그 여자를……?”
“중립?”
이자닌이 의아한 듯 되뇌었다.
바로 파쿠란의 물음이 이어진다.
“치우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럴 여유를 둘 수 있는 상황이야?”
델릭이 신중하게 생각을 정리하며 대답한다.
“마담 로렐은 철저하게 길드 외부인이야. 일단은 말이지. 그게 가능한 까닭은 제대로 된 재단사(裁斷師) 노릇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재단 일 때문에 여러 귀족가와 안면을 트고 지낸다는 점이 커. 도적 길드에서 귀족가문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파악하기에 좋은 눈과 귀 노릇을 해주니까. 그런 점이 길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과 엮이게 되면, 마담 로렐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지. 그러니 본인이 원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립을 요구받는 입장이야. 한데 왜 그 죽이려 하지? 그건 이상한데?”
“그 말대로라면, 그렇게 소문이 떠도는 것을 꺼리는 누군가겠지.”
이자닌이 뭔가 생각에 빠진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파쿠란이 조금 냉정하게 말한다.
“죽이려 한 녀석들은 델릭의 가면을 사용한 길드의 대세란 놈들이었다. 로렐리가 마담 로렐로서 길드 내부가 아닌 외부의 소문을 들여놓는 입장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놈들이 그런 거야. 그 말은…….”
“무슨 소문이 퍼지는 걸 꺼리는 귀족가 쪽에서 암살자를 굴렸단 말인데? 델릭, 요새 도적 길드에서 암살 의뢰도 받아?”
파쿠란의 말을 자르며 이자닌이 데릭에게 짚어 묻고 있었다.
델릭의 고개가 바로 저어졌다.
“도둑질하는 거랑 의뢰받고 암살하는 거랑 양립(兩立)할 리가 없잖아. 그런 거는 어느 쪽 편이든 길드 내에서 허용될 일이 아니야! 도적이 암살에 나선다고 하면 바로 도시가 발칵 뒤집히는 거는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그만큼 정신 나간 놈들이라면 대세라고 목에 힘주는 순간에 목에 칼이 박힐 거다.”
“그 말은…… 길드 상황이 어떻더라고 암살 의뢰받는 일은 없다는 거니까…… 그렇다면…….”
말을 하면서 이자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파쿠란이 흐려지는 이자닌의 목소리를 대신하듯 말한다.
“개인적으로 따로 받는 의뢰야 길드에서 알 바 아니지. 그런 의뢰 받는 녀석들끼리 뭉쳐 다닌다고 해서 뭐라 할 것도 물론 아니겠고. 왜 그런 짓을 하는가를 따질 필요도 없이 그럴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그리고 그런 짓을 한 녀석들은 어느 귀족가의 후원을 받고 있을 테고 말이지. 조금 명확해잖아?”
델릭과 이자닌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타나는 복잡한 표정은 생각이 복잡해졌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이 보였다. 거기에 투란이 가만히 고개를 들이밀면서 묻는다.
“저기, 그 의뢰라는 거…… 헌터 길드에서 받기도 하는 거 아니에요?”
파쿠란이 투란을 보며 눈을 껌벅거렸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이자닌도 ‘뭐?’ 하는 소리와 함께 투란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델릭은 ‘지금 무슨 농담이야?’라고 갸웃하고 있었다.
투란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조금 장황하게 물음을 되풀이한다.
“그러니까, 사람 잡아와 달라는 의뢰 같은 거…… 헌터 길드에서 받잖아요. 가끔 죽었든 살았든 상관없다면서 일단 잡아만 오라는 의뢰 말이에요. 몬스터 사냥에 대한 의뢰만 받는 게 아니잖아요. 헌터 길드가…… 그러니까 누구 죽여달라는 의뢰도…… 에, 직접은 못 해도 어떻게 슬쩍 말을 돌려서 할 수는 있는 거잖아요? 그런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도적 길드에서 누굴 죽여달라는 말을 듣든 말든, 상관없는 일 아닌가 해서…….”
“음, 무슨 얘긴지 알겠다. 투란, 그런 의뢰를 헌터 길드에서 받을 때의 기본적인 조건이 있어. 바로 몬스터 헌터에 대한 범죄야. 그리고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말도 꼭 죽여 오라고 하는 일은 없지. 특히나 이런 도시에서는 헌터 길드가 사람에 대한 의뢰를 받지를 않아. 사람과 관련된 것은 물건을 전해달라든가, 말을 전해달라든가 하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연회에서 사람 죽여달라는 의뢰는 넣을 수도 없고, 받지도 않는다.”
“그랬어요?”
투란이 귀를 쫑긋하며 듣다가 조금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듣고 보니 확실히 누군가 죽여달라고 헌터 길드에 의뢰했다는 말은 투란도 듣지 못한 듯했다. 어디 있는가 찾아달라든가, 잡아달라는 말은 가끔 있는 듯하지만.
―뭔가 심하게 착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그야 뭐…… 몬스터 헌터라면 누구든 뭐든 죽이는 데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 거를 더 확실하게 여기니까. 그냥 그런 줄 알았지. 흐흠, 사람끼리 죽이는 일은 헌터 길드도 도적 길드도 받지 않는구나. 과연 그래서 옛날이야기가 그렇게 복잡해질 수 있었던 거네.’
―대체 뭘 착각하고 있던 거냐!
‘아니, 왜 간단히 길드에 의뢰해서 처리하지 않는가 애매한 이야기가 많아서…… 그냥 궁금했었어. 생각해보니, 대부분 현상 붙는 까닭이 죄를 범한 거였네. 음, 그랬구나.’
투란은 파쿠란과 이자닌, 델릭을 향해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알았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 사이에 드라고니아가 또 몇 마디 으르렁거렸지만 그건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넘겼고!
한데 델릭이 찬찬히 투란을 보면서 다시 말문을 연다.
“만약…… 그런 걸 원하고 있다면…… 그러면 이렇게 되는 건가?”
이자닌이 눈매를 좁히면서 바로 묻는다.
“무슨 말이지요? 델릭, 무슨 생각을 떠올린 거예요?”
파쿠란도 묻는다.
“누가 뭘 원하는 경우를 말하는 거냐?”
델릭이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쉬면서, 그 사이에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대답을 한다.
“암살 의뢰를 받을 수 있는 길드, 내부의 일이 외부로 전혀 알려지지 않는 길드. 그런 것을 맨바닥에서 쌓아 올리는 대신에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해 꾸미려 한다면…… 도적 길드는 그럴듯한 바탕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 다른 곳과의 연계를 끊는 것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이제까지 춤추는 산맥 전체를 아우르던 길드의 다른 조직과는 독립해야 하잖습니까? 만약 그런 목적이라면…… 그래서 방해되는 이들을 모두 치우기 위해서라면 토벌도 부추기고 있었겠군!”
“토벌?”
이자닌이 의아해하며 델릭을 바라봤다.
설명하는 듯 나오던 말이 중간에 혼잣말처럼, 델릭이 더욱 생각에 잠겨들면서 웅얼거림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데 그중 한 마디가 이자닌의 귓가에 굉장히 거슬리게 울려온 것이다.
그리고 투란도 그 한 마디에 ‘어?’ 하며 파쿠란을 보며 중얼거린다.
“도적단 토벌?”
파쿠란의 입술이 뒤틀리며 대꾸가 나온다.
“과연…… 그렇게 되면 일리가 있군. 아귀가 맞아.”
이자닌의 귀가 바로 쫑긋하며 파쿠란을 향해 묻는 말이 튀어나온다.
“파쿠란! 무슨 아귀? 뭐가 일리가 있는데!”
델릭도 멈칫하면서 파쿠란을 바라보며 묻는다.
“뭘 알고 있는 겁니까, 파쿠란?”
파쿠란이 고개를 까닥하며…… 이자닌에게는 투란을 가리키는 눈짓, 델릭에게는 저 먼 곳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한 몸짓을 보이면서 대답한다.
“한 다리 건너 상아탑의 마법사를 알아. 이자닌이 바쁜 사이에 그쪽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그게…… 요새 도적단을 토벌한다고 왕궁이 바쁘다는 이야기야. 손님 접대도 어려울 정도로 토벌에 열을 올린다더군.”
“왕궁?”
“왕궁이라니! 그런!”
이자닌에게는 ‘그게 뭐야?’ 하는 모호한 대답이었는데, 델릭에게는 깊은 충격을 주는 내막을 까발린 듯한 말이 모양이었다.
투란이 그 격한 반응을 보며 움찔하고 슬쩍 반걸음 뒤로 빠졌고, 파쿠란은 델릭을 향해 묻는다.
“아귀가 맞나?”
“젠장할!”
델릭의 대꾸는 욕설이었다.
덕분에 이자닌도 느낄 수 있었다.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델릭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은…….
“배후에 숨어 있다는 높으신 분이란 게, 설마?”
왕궁에 사는 귀족, 왕족일 수 있다는 짐작이 저절로 이자닌의 뇌리를 스쳐갔다. 이자닌의 표정을 델릭의 이어지는 욕설보다 더 지저분하게 구겨지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