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99)
“역시 그렇게 되나…….”
파쿠란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바로 이자닌이 버럭 외쳤다.
“뭐가 역시야! 뭘 알고 있었는데! 나한테 미리 말하지 않은 게 대체 뭐야! 빨랑 불어! 당장 불어! 눈살 찌푸리지 말고 얼른 토해내라고옷!”
델릭도 이 외침에 슬쩍 보태려는 듯이 살짝 높인 목소리로 말한다.
“대체 누구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겁니까? 진짜 왕족이 도적 길드의 일에…… 배후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왜요? 왕족이 왜!”
파쿠란은 이자닌에게 진정하라 손짓하는 채로 델린을 향해 대답한다.
“아귀가 맞는다면서 갑자기 뭔 부정인가?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그래?”
“젠장할!”
델릭이 다시 욕설을 입에 담았다.
투란이 보니 아무래도 델릭은 자신의 추측이 너무 짜증 나서 외면하고 싶은 김에 슬그머니 이자닌의 말에 얹혀서 부정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파쿠란은 그걸 바로 칼질하듯 잘라버렸고.
물론 이자닌은 둘이 그런 꼴을 보고 다시 버럭 외친다.
“뭐가 아귀가 맞아! 뭘 외면하는데! 얼른 불란 말이야! 난 전혀, 저어언혀어어— 모르겠거든!”
투란은 씩씩거리면서 볼까지 붉히는 이자닌을 보며, 그 녹색 눈동자는 오히려 차분하고 날카롭게 번뜩이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이자닌이 보이는 것만큼 성난 것도 아니고 정말로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문제는…….
‘뭐지? 난 진짜로 정말로 전혀 모르겠는데?’
투란 스스로는 이 오가는 이야기에 짐작이고 추측이고 전혀 없이 멍하니 열심히 구경만 하는 중이란 것!
―자신이 얼마나 멍청하고 바보스러운가를 깨달았으니, 미래가 완전히 어둡다고는 못 하겠군. 그 원인을 굳이 짚어주자면, 투란…… 너, 인간사회의 상식이 나만큼 모자라거나 나보다 더 없어!
드라고니아가 그냥 포기했다는 말투로 구박하는데, 이 순간의 투란은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알드바인에서는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대체 어째서일까?
투란이 그 의문에 답을 얻기 전에 파쿠란이 이자닌을 향해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면서 말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분석하자면 왕궁과 연관된 귀하고 높은 신분의 누군가가 도적 길드를…… 춤추는 산맥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페브라 왕국이거나 아니면 칠왕국 영토 내의 도적 길드를 손에 넣으려 한다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거부하는 녀석들을 도적단으로 몰아서 토벌까지 하는 중이고 말이지. 로렐리를 적당히 암살하려고 한 것은 오히려 자잘한 손질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로 넘길 상황이란 거야. 그러니까 이자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닥쳐.”
이자닌이 갑자기 손을 들면서 방문을 노려봤다.
파쿠란은 그 말이 아니라 이자닌의 행동을 주목하며 바로 자리를 옮겨 한쪽 벽에 손을 대고 있었다. 델릭 또한 둘의 행동을 보며 즉각 어지럽게 놓인 탁자에서 뭔가를 집어 챙기면서 긴장한 태도였다.
그 사이에 투란은 눈만 깜박거리면서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누가 나한테 설명이나 좀 해주라고!’
투란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칭얼거림이었다.
오로지 드라고니아만이 들을 수밖에 없는 칭얼거림이었기에 드라고니아가 한숨을 푸욱 내쉬는 말투로 대답한다.
―밖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이자닌이 어떻게 파쿠란의 마법방벽을 넘어서 그걸 느꼈는가 모르겠지만, 확실히 파악해서 긴장한 거야. 파쿠란도 그걸 아니까 대비하는 거고…… 연금술사인 델릭은 너랑 다르게 눈치 보고 대처하는 중이다.
‘그래서 너는 밖에 다가오는 누군가가 누군지 알아, 몰라?’
투란은 여전히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한 채로 소리 없이 물었다.
―벡커드와 로렐리…… 쫓는 녀석들도 있는데, 그건 누군지 모르겠군.
‘그런 거는 빨리 좀 얘기하라고!’
투란의 손이 가만히 허리에 차고 있는 단검 자루에 옮겨갔다.
투란으로서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벡커드가 안전을 보장한다 했던 로렐리를 데리고 왜 여기 왔는가, 사흘에 걸친 결혼식을 어떻게든 끝내겠다는 로렐리가 왜 벡커드와 함께 위험에 처해 있는가…….
영문은 모르겠고, 그저 둘이 위험한 처지로 이자닌과 파쿠란과 합류하려 한다는 사실만 명확할 뿐이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몬스터에게 쫓기는 것도 아니고, 뭔 일이야.’
투란의 마음속에는 그저 도시의 알 수 없는 사연에 대한 투덜거림이 솟아날 뿐이었다.
투웅.
방문이 둔탁한 소리를 울리며 열렸다.
로렐리가 거칠게 밀려 들어오면서 넘어졌다.
그 너머로 벡커드가 보이는데, 멀쩡한 몰골이 아니었다.
이마 위로 작은 손도끼가 찍혀 있었고, 어깨에는 단검이 두어 자루 박힌 채였다.
그 정도면 보통 죽었거나 의식 없이 쓰러져 있어야 마땅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로렐리가 문턱을 넘어서면서 넘어진 채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벡커드보다 더 곤란해 보일 지경으로, 벡커드는 저 괴기스러운 몰골로 열린 문에 몸을 기대며 방 안으로 들어서면서 한쪽 팔로 칼부림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이자닌은 그렇게 벡커드가 난자당하는 끔찍한 몰골이란 점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로렐리를 당겨서 침대 쪽으로 밀어 앉히며 다독이고 있었다.
“진정해, 이제 안전해.”
“어, 언니……!”
겨우 로렐리가 이자닌의 얼굴을 알아본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벡커드의 목소리가 얹히듯이 울린다.
“나, 나도! 이자닌, 나도!”
“거긴 닥쳐!”
이자닌이 매몰차게 거절했다.
투란은 벡커드를 보면서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는 채로 그냥 지켜봤다.
‘와, 몬스터냐…… 저 아저씨 정말…….’
상처가 회복된다고 해도 고통이 어디 갈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몰골로 이자닌에게 장난치는 저 말은…… 아무리 미녀에 미친 성격파탄자라 해도 정말 끈기 있고 근성 넘치는 짓 아닌가! 대체 어떻게 저 몰골로 로렐리처럼 위로…… 보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단 말인가!
―호오? 재미있는 녀석들인데?
돌연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은 그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바로 되새겼다.
벡커드가 열린 문에 기대면서 기울어질 때, 피투성이에 갈라진 살이 뼈를 드러내는 상처가 그대로 드러난 팔로 칼부림을 막는 그때…… 시답잖은 말을 건넸다가 이자닌에게 바로 구박받는 그 순간에 파쿠란이 손짓했다.
은밀하며 깊은 그늘처럼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이 바로 방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그 파동이 겨냥한 것은 한창 벡커드에게 칼부림하는 자, 그 주변에 들러붙는 일당이었다.
하지만 파쿠란은 자신의 마력이 그들에게 닿자마자 외쳤다.
“투란! 저놈들, 죽이지 말고 때려잡아 줘! 마법 방어를 갖췄다! 전부 셋이야!”
동시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도 듣고 있었다.
―약물을 이용한 정신방벽이다, 꽤 조잡하다만…… 파쿠란이 쉽게 생각한 탓인지 마비 주문을 가볍게 회피했어. 죽일 정도로 패지 않으면 쓰러지지 않을 거야.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편이 그나마 빠르게 제압이 가능할 듯싶군.
‘죽이지 말고 완전 병신을 만들라고? 어흐…… 둘 다 왜 이래!’
소리 없이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칼부림을 몸으로 버티는 벡커드의 뒷덜미를 잡아당겨 방 안으로 던져 굴려놓고, 그다음에 바로 칼부림하는 손목을 잡았다. 두 손이 연이어 움직이며 문 앞을 장악하는 아주 깔끔한 동작이었다.
그러면서 투란은 표정 없는 상대방의 눈을 마주 보고 드라고니아가 한 말을 되새기며 납득했다. 핏발이 눈동자 주변으로 얼룩처럼 번지는 꼴이 정상이 아니었다. 붙잡힌 한쪽 손목이 거의 으스러질 듯한데도 다른 한 손으로 든 단검으로 투란을 찌르려 하며 내쉬는 숨결 또한 어딘가 탁하고 역한 냄새가 가득한 것이 ‘약물’이라는 한 마디를 강조하려는 듯하니까.
‘뭘 처먹은 거야.’
못마땅한 표정과 함께 투란은 자신의 자세를 살폈다.
오른손으로 벡커드를 당겨 넣었고, 왼손으로 상대방의 손목을 잡은 다음이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상대방의 왼손 칼질…… 재빠르게 투란의 오른쪽 팔꿈치가 몸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가며 그 손목을 쳐내고 쭉 뻗은 손이 바로 그 목 줄기를 움켜쥐었다. 잡는 순간에 투란은 뒤로 물러서면서 오른손에 오러의 파문(波紋)을 일으켰다.
쿨럭, 짙은 기침과 함께 축 늘어지는 몸을 투란은 옆으로 던졌다.
약물에 의해 왜곡된 정신상태가 마력의 파동이 형성해낸 마법은 막아냈지만 오러가 일으킨 충격파는 그대로 몸에 영향을 끼쳐 쓰러뜨린 것이다.
―엇? 그건……!
드라고니아가 굉장히 못마땅해하는 낌새가 투란의 마음에 울려퍼졌다.
키린이 전해준 왕가(王家)의 무투술, 오러의 기교를 알아차린 때문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반응보다 문을 넘어 쓰러진 동료를 짓밟으며 달려드는 두 명의 자객 쪽에 주의해야 했다.
쓰러뜨린 한 명이 두 손에 단검을 든 것과 달리 이 둘은 좁은 공간을 무시하는 것처럼 장검을 든 채였다. 휘두를 수는 없어도 거침없이 내지르는 것이 좁은 영역 안에서 찌르기에 아주 능숙한 자세였다.
‘허? 진짜 칼날비틀기를 하네?’
투란은 둘이 내지르는 장검의 찌르기, 그 안에 키린이 말한 기교가 섞인 것을 보고 감탄했다. 그냥 평평하게 내지르는 검의 찌르기는 손목의 회전에 맞춰 어느 정도 칼날의 방향이 바뀐다. 하지만 이를 보다 더 강화시켜 아예 송곳을 돌리는 동작을 더하면, 어지간해서는 칼날을 피해 칼등을 쳐내는 방어를 할 수가 없게 한다 했다. 그 기교를 칼날비틀기라 한다 했는데, 이 둘이 나란히 문턱에 선 모습으로 그런 찌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재주를 부리거나 말거나, 투란은 오러를 흘려내는 팔뚝으로…… 심지어 몬스터나 짐승의 이빨에도 버텨내는 방어구까지 채워진 팔뚝으로 칼날을 쳐내며 두 손으로 허공을 두드려 패는 시늉을 했다.
―그런 거 안 해도 되잖아!
바로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투란이 일으킨 오러의 파동이 바로 둘의 이마빡에 닿았고, 강한 충격으로 둘을 바로 엎어지게 했다.
이 또한 키린에게 전해 받은 오러의 기교, 에어그립이었다.
공중에 일으킨 오러의 파동을 이용해서 목표를 밀거나 당기는 것이 기본이고, 지금처럼 오러의 충격파를 전해서 타격을 입히는 것이 가능한 기교였다.
툭툭, 손을 털면서 투란은 살짝 흥분했다.
‘어지간해서는 짐승이나 몬스터 상대로 못 쓸 거라 생각했는데, 약에 찌든 이상한 놈들한테는 딱이네!’
―그냥 패도 됐잖아!
다시 드라고니아가 울컥해서 으르렁거렸다.
‘음? 야, 그러다가 뼈가 부러지고 살이 통으로 벗겨지면 어쩌라고! 출혈로 죽는단 말이야!’
투란의 대답은 솔직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몬스터를 후려칠 때는 가능한 최대의 타격을 가할 궁리만 하면 된다.
아예 때리면 안 되는 경우에는 다른 궁리를 열심히 할 뿐이었다.
적당히 패서 멀쩡하게 자빠뜨린다는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때문에 투란에게는 사람을 ‘적당히’ 팬다는 기준이 없다!
알드바인에서도 사람 상대로 뭘 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파쿠란을 보고 ‘어느 정도가 적당해요?’라고 묻고 확인하면서 툭툭 쳐댈 수도 없으니, 믿을 것은 키린이 알려준 무투술의 제압법이었다.
그 기교는 완벽하게 통해서 확실하게 약물 냄새를 휘날리는 셋을 제압했고…….
“한 명 더 있나?”
복도에서 차분하고 고요하게 울리는 걸음 소리가 울려왔기에 투란이 갸웃하며 문턱을 넘어 고개를 내밀었다.
복도에는 크로스보우를 겨냥했다가 투란의 얼굴에 천장으로 겨냥을 뒤트는 퍼브의 바텐더가 있었다. 그는 투란을 보며 낯을 찌푸리더니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델릭, 거기 괜찮은 건가?”
투란은 냉큼 뒤로 물러서면서 델릭에게 고갯짓하며 말한다.
“아저씨 찾는데요? 퍼브 주인인가 본데…….”
델릭이 바로 쓰러진 셋을 거침없이 밟으면서 문을 지나 복도에 한 걸음 걸친 채로 대답을 한다.
“괜찮네, 여기는 내가 알아서 깨끗하게 정리하도록 하지. 미안하네.”
“흉한 자국은 남기지 마. 청소하기 힘들다고.”
혀를 차는 대꾸와 함께 크로스보우가 달칵하고 장전을 풀었다.
델릭은 발로 문턱에 걸친 다리를 방 안으로 밀어 넣는 시늉을 하며 보다 확실하게 말한다.
“알았네, 청소도 해두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복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치울 세제(洗劑)나 적당히 만들어줘. 남을 정도로 만들어주면 값은 치를 테니까. 그럼, 조심하라고.”
“고맙네.”
멀어져가는 바텐더에게 델릭이 인사했다.
그 사이에 투란은 문턱에 걸쳐 쓰러진 녀석들을 완전히 방 안으로 당겨 넣었다.
끼익, 델릭이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