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0)
“내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덕분에 여기다 이렇게 공방을 차릴 수도 있었던 거라…….”
쏟아지는 눈길에 델릭의 입에서 나오는 변명이었다.
그사이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잔소리가 뇌리를 울리는 것을 느끼며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출혈은 무슨! 너 사람 상대로 여러 번 손 써봤잖아! 핑계를 대려면 말이 되는 핑계를 대란 말이야!
‘으걱…… 대체 뭔…… 아, 혹시 라비엔에서 쳐죽였을 때? 그렇게 때려죽이는 거랑 다르잖아! 얌전히 제압하는 거였잖아, 이렇게 살포시 자빠뜨린 적은 정말 없구만 뭘!’
―베즐 팀이랑 여행하면서 이리저리 충돌했었잖아?
‘몰라. 기억 안 나! 아으! 그만 좀 떠들어! 아무려면 어때! 잘 쓰면 좋은 거지! 너무 예민하잖아, 너!’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잔뜩 치솟는 짜증을 마음 깊은 곳으로 몰아넣으면서 지금 당장 눈앞에서 눈길을 모으는 델릭을 보며 자신도 눈에 힘을 주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왜 다들 델릭을 저리 보는 중인가? 크로스보우 들고 왔다 간 바텐더 때문인가? 그게 어쨌다고?
의문을 잔뜩 머금고도 슬쩍 분위기 따르는 투란의 귓가에 파쿠란의 한숨 섞인 말이 흘러들었다.
“다행이로군. 적당히 소란피우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니, 그걸로 됐어. 이자닌, 그렇잖아.”
이자닌이 눈을 잠깐 지그시 감았다가 한숨과 함께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적당히 넘어가면 좋은 거지. 그래, 좋아. 자기네 퍼브에서 누가 난자당하고 누가 칼부림을 하더라도 청소만 깨끗이 하면 된다고 주인이 그러는데 남이 뭐라 해서 어쩌겠어, 그렇다 치고! 이놈들 얼굴은 자기 얼굴인가? 투란, 얘네 얼굴 가죽 벗겨지나 좀 만져줄래?”
투란이 세 자객의 얼굴을 더듬어 갈 때, 벡커드의 투덜거림이 울린다.
“이자닌, 나 중상인데…….”
“죽은 다음에 말해!”
이자닌의 대꾸는 벡커드를 울상짓게 했다.
그리고 투란의 손에 문질러진 셋의 얼굴이 쪼글쪼글해져서 가죽이 훌렁훌렁 벗겨지는 광경은 로렐리를 놀라게 했다.
“저걸 저렇게……? 오러 윌더? 그래서 그런 괴상한 몰골로 얼굴을 감춘 거예요?”
마법의 가면을 벗겨내는 능력이 오러를 이용한 것이라 착각한 물음이었다.
“응? 괴상……? 이거, 나름 자연스럽지 않아요?”
착각한 부분은 그대로 넘기면서, 투란이 벗겨낸 가면을 파쿠란에게 건네는 채로 되물었다.
세 자객처럼 투란도 파쿠란에게 건네받은 에모틱, 마법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투란은 파쿠란이 만든 것을, 세 자객은 델릭이 만든 것을 썼다는 점일 뿐이다.
이를 짚은 로렐리는 투란의 대꾸에 잠깐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누가 봐도 ‘장난치냐?’라고 성난 듯한 표정이었다.
투란은 조금 움찔하면서 변명해야 했다.
“음, 그러니까 이 정도면 다들 내 진짜 얼굴을 짐작도 못 할 테고…… 그냥 이런 얼굴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거 아니에요?”
살짝 날카롭게 로렐리가 바로 반박한다.
“그렇게 넘어가길 바랐으면 평범한 얼굴을 꾸몄어야죠. 그렇게 눈꼬리 치켜올리고 입꼬리 쳐내리면 다들 한 번씩 더 보고 기억하게 되는 거잖아요!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파쿠란?”
투란이 웅얼거리면서 파쿠란을 쳐다봤다.
헛기침과 함께 파쿠란이 슬쩍 발 빼는 듯한 말투로 대꾸한다.
“절대로 자네 얼굴을 짐작하지 못한다니까.”
바로 로렐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파쿠란을 보며 비아냥거린다.
“사람 신분 파악하는 데 꼭 낯짝만 이용하는 거는 아니죠. 특히나 오러 윌더라면 어떤 기술, 어느 수준의 역량을 보였는가만으로도 충분히 전적(前績)을 파헤칠 수 있다고요. 세상에 오러 윌더가 그리 흔해 빠진 존재가 아니라고요, 마, 법, 사님!”
투란이 조금 황당해하면서 ‘이럴 수가!’라고 자기 얼굴을 더듬는 사이, 파쿠란은 머리를 긁적였고 이자닌이 짧게 외친다.
“그건 됐고! 나중에 얘기해. 로렐리, 이 녀석들 얼굴을 봐. 아는 녀석들이야?”
흠칫하면서, 로렐리는 이자닌의 말대로 바닥에 처박힌 세 자객을 내려다봤다. 뒤통수만 보였고 로렐리가 보는 방향에서는 제대로 볼 수가 없는 채였다. 그 점을 알아챈 듯, 혹은 자신이 먼저 확인하려는 것처럼 델릭이 자객의 몸을 뒤집어 얼굴을 위로 향하게 했다.
로렐리보다 델릭의 말이 먼저 나온다.
“둘은 내가 아는 녀석들이군. 내게 가면을 가져간 둘이지요. 하나는…… 모르겠군. 파쿠란, 셋이 전부 내가 만든 가면인가요?”
“아니, 하나는 내가 만든 거로군. 십여 년 전에…… 장난꾸러기 녀석에게 떠나는 기념 삼아 장난감으로 만들어줬었지.”
대답하는 파쿠란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고, 어두운 감정이 어려 있었다.
이미 상황을 짐작한 듯, 델릭이 일어서면서 로렐리에게 자리를 비워줬다.
로렐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셋의 얼굴을 이모저모로 살피고 말한다.
“결혼식에서 일한다고 뽑았던 일꾼들인 것 같은데요? 낯설어요.”
이자닌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면까지 따로 준비해놓고 맨얼굴은 일꾼 노릇이라고? 파쿠란, 저 가면 사용기한이 정해진 거예요?”
“한 달에 한번은 벗어서 세탁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지. 얼굴이니까 심한 경우에는 진짜 얼굴에 흉이 질 수도 있어.”
파쿠란의 대답은 투란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우어엇! 그 얘기를 왜 미리 안 해줬는데요!”
파쿠란이 ‘어? 뭐?’ 하며 투란을 향해 눈을 깜박였다.
설마 저 화내고 웃는 기묘한 낯짝으로 몇 달을 지내려 했던가!
투란이 찔끔하면서 중얼중얼 말을 잇는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거는 미리 주의할 일로 말을 좀 해줘야 하잖냐고요.”
“그렇군…… 다른 주의할 부분은 없으니까, 알았으니 넘어가고! 이자닌, 이 녀석들에 대해 뭘 추측하는 거야?”
파쿠란은 투란에게서 이자닌에게 눈길을 옮기며 물었다.
투란은 살짝 뒤로 빠지면서 귀만 쫑긋하는 채로 조금 전의 일을 파묻으려 했다.
―그런 낯짝으로 뭔 짓을 하려 한 거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뇌리를 울리는 소리를 질렀다.
파쿠란처럼 그냥 넘기면서 투란이 파묻게 둘 수 없다는 듯!
‘아, 시꺼! 그냥 다른 얼굴로 지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던 것뿐이야! 닥쳐, 시꺼!’
이렇게 소리 없이 투덕거리는 사이, 이자닌이 파쿠란의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잠깐 일꾼 노릇을 할 거라면 가면을 쓰고 일꾼이 됐을 거잖아. 그런데 일꾼일 때는 진짜 얼굴이고 이렇게 암살…… 도 아닌 자객 노릇을 할 때는 가면을 썼다고. 그 결혼식을 누가 직접 관리하는지, 이 녀석들에 대해서 뭘 알고 일꾼으로 고용했는지…… 따져볼 만하잖아. 어때, 로렐리?”
로렐리는 잠시 침묵했다.
이자닌이 눈살을 찌푸렸다.
파쿠란과 델릭은 로렐리의 표정이 묘하게 찌푸려져서 울 듯 말 듯 한 것을 보며 가만히 기다렸다.
그 사이에 벡커드가 이마빡에 꽂힌 손도끼를 빼내고 몸에 난 상처를 둘러보면서 말한다.
“그 녀석들은 결혼 연회로 돌아가서 로렐리가 신랑을 찾으러 갔을 때, 그 방에서 튀어나왔어. 에반이라고 했었지? 그 신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급하게 뒤로 빠져나오느라고 제대로 상황을 살펴보지도 못했기는 해. 하도 과격하게 나오는 바람에 엉겁결에 도망치다 보니 뒷길로 빠져서 어쩔 수 없이 이리로 달려온 거야. 우리 집이 거처로 밝혀지는 것은 피할 생각으로 그랬지. 여기도 이렇게 은밀한 곳인 줄 알았으면 다른 데로 갈 걸 그랬나 싶은데…….”
이자닌은 찌푸린 낯으로 로렐리에게 다시 묻는다.
“일꾼 고용, 그거 네 신랑과 관계있나?”
“에반이 거리에서 아는 이들에게 일감을 준다고 모았어요.”
로렐리가 무겁게 대답했다.
다들 그 무거움에 동감한다는 듯,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투란은 갸웃했다.
그게 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냥 아는 사람 모아서 일감을 줬는데, 그중에 저런 괴상한 짓을 하는 놈이 섞여 있다는 말일 뿐인데?
이자닌이 말한다.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전혀 모르잖아? 아직 단정 짓지 마. 이 녀석들이 무슨 까닭으로 이런…….”
“이자닌, 약물에 취한 놈들이다. 그것부터 조사를 해야 해. 자기 의도로 복용한 약물인지, 아니면 세뇌를 당한 것인지 말이야.”
파쿠란이 불쑥 이자닌의 말을 끊고 말했다.
이자닌은 ‘어?’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경우도 고려해야겠네. 흠…….”
그리고 로렐리가 무거움을 저쪽으로 날려 보낸 듯이 급히 말한다.
“잠깐만요, 그러면…… 그러면 이 녀석들이 이런 짓을 한 게 자기들도 모르는 채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럴 가능성도 고려해야지. 약물을 조사하면 대강 파악할 수 있을 거야.”
파쿠란이 말하면서 델릭을 바라봤다.
델릭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자신의 탁자 쪽으로 가서 뭔가를 고르고 챙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파쿠란도 가만히 자기 소매를 뒤척이다가 한 뭉치의 밧줄을 꺼내 들었다. 그다음에 바로 밧줄을 위로 던져 올리고 손으로 아래를 가리키면서 중얼거린다.
“로프 바인더.”
밧줄이 바로 세 자객의 몸을 휘감으며 천장에 닿았다.
두 손을 위로 뻗은 채로, 어깨와 허리까지 둘둘 말며 밧줄은 셋의 다리를 발목까지 칭칭 감아 대롱거리며 천장에 매달린 꼴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래로 추욱 처지면서 바닥으로도 파고들며 천장과 바닥 사이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것처럼 고정되었다. 등을 맞댄 채로 세모꼴을 이룬 세 자객은 흡사 방 안에 세워진 기둥에 괴상한 장식조각 같은 모습이 되었다.
델릭은 약병 몇 가지, 바늘과 그릇을 두 손에 가득 챙겨서 파쿠란 곁으로 돌아와 내밀었다. 파쿠란이 바늘과 그릇을 받아들더니, 곧바로 묶인 자객 셋의 주변을 돌며 볼을 찌르고 입술을 긁어서 그릇에 문질렀다.
곧 델릭이 약병을 기울여 한 방울씩 그릇에 떨궜고, 그릇 안에서 흐릿한 색채가 다양하게 일렁이면서 이리저리 다른 색으로 변했다.
파쿠란과 델릭이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고, 투란은 기웃거리며 궁금해했다.
‘뭐야, 저게? 저래서 뭘 아는 거야?’
―시약을 이용한 성분분석이잖아. 연금술에 대한 기초상식을 알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모르면 그냥 닥치고 구경해. 어차피 파쿠란이 결과를 알려줄 테니까.
‘칫.’
소리 없이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투란은 이자닌과 로렐리를 보며 자신처럼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고서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드라고니아의 예상대로 파쿠란이 그릇을 델릭에게 돌려주면서 지켜본 바에 대해 말을 한다.
“조금 복잡해졌다. 이건 군단병에게 보급되는 약물이야. 조건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약물인데…… 몬스터와 전투 중에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군단병을 보조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크게 효과가 없어. 즉…….”
“이 녀석들은 자발적으로 누굴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가면을 썼단 말이네? 그렇다면 그 약물을 누가 활용할 수 있지? 아무나 쓸 수 있는 거야? 아니면 군단 지휘관의 특별한 뭔가가 필요해?”
이자닌이 날카롭게 물었다.
로렐리의 눈치를 슬쩍 본 파쿠란이 말을 흐릴 기회를 냅다 차버린 듯한 엄격한 말투였다.
씁쓸하게 파쿠란이 대답한다.
“군단 지휘관에게 부여되는 마법도구가 있어야 해. 그래야 이 약물의 조건부 행동을 지정할 수 있고, 작용시킬 수 있어. 애초에 군단 병사 개인의 판단을 무력화시키고 명령에 따르게 할 목적으로 조제된 약물이니까.”
“그런 약물도 있어요? 그거 군납포션으로 정신 차리면 쓸모없는 거 아니에요?”
갑작스럽게 투란이 갸웃하면서 물었다.
어느 왕국의 군단이든, 춤추는 산맥의 군단에는 군납용으로 규격화시킨 치유 포션이 보급된다. 그 포션의 효과가 아주 탁월한 덕분에 상처를 말끔히 씻어낼 뿐 아니라 정신이 번쩍 들게 해서 웬만한 정신교란의 효과는 바로 박살 낸다 했다.
덕분에 아무리 흉악한 몬스터의 기묘한 몰골에도 군단병은 광기로까지 보일 과격한 용맹으로 무찌른다잖던가!
이런 애매한 약물 따위, 그런 군납포션을 들이키면 순식간에 사라질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란은 고대 왕국의 군단병이 약물 들이키고 명령에 따라 정신줄 놓고 움직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너무 이상해서 끼어들어 물은 것이다.
파쿠란이 한숨과 함께 투란을 향해 말한다.
“이건…… 칠왕국에서 개발된 약물이야. 브로큰 킹덤의 신생 왕국에서만 쓰는 약물이지. 이걸 보급할 때는 군납 포션을 누락시키기까지 해서 활용해.”
투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군납되는 포션은 군단병의 생명줄이었다.
그걸 빼고 치유효과는 전혀 없어 보이는 저런 것으로 대처할 수 있는가?
투란이 보기에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파 아저씨, 그거 왕국의 군사기밀 아니에요?”
로렐리가 조심스럽게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