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1)
Chapter 141. 페브라 왕도에서 Ⅵ
금빛의 안개가 엉기면서 홀시딘의 형상을 이뤘다.
“뭐야, 왜? 뭘 이렇게 빨리 부르나?”
투란을 향해 울컥한 표정을 짓던 홀시딘이었으나 파쿠란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슬쩍 말을 돌리고 있었다. 적어도 파쿠란이라면 용건 없이 이렇게 부를 리가 없다고, 그나마 조금 다행이란 표정이었다.
그 꼴을 보며 투란이 툴툴거린다.
“부를 수도 있죠, 뭘 화부터 내려 하세요?”
쯧 하는 짧은 소리를 내며 홀시딘은 파쿠란만 응시하는 표정을 지었다.
투란이 으르렁거리는 표정을 짓는 사이, 파쿠란이 쓴웃음과 함께 말한다.
“엉겁결에 이상한 정보를 획득했는데, 이쪽에서는 손쓰기가 애매해서 연락드리는 겁니다. 아무래도 도적 토벌이란 명목하에 이상한 일이 꾸며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이상한? 조금 더 말해보겠나.”
홀시딘이 투란에 대해 툴툴거리던 표정을 싹 지우고 진지하게 물었다.
투란은 그런 금빛 홀시딘을 부면서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파쿠란의 이야기를 가로막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일을 어떻게 정리하는가, 슬그머니 귀를 기울이는 투란이었다.
“도적끼리의 다툼이라고 해야 하나, 서로 패싸움하는 일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고는 했지요. 그 와중에 도적 아닌 누군가를 초대해서 그 싸움에 도움을 받는다는 경우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런 일에 귀족이 끼어 있을 경우, 대부분은 몰락한 귀족이거나 몰락 직전의 귀족가에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다가 그러는 거였지요. 한데…… 이번에는 지휘의 마법과 관련된 약물이 등장했습니다. 마스터 홀시딘, 아시다시피 그건…….”
“왕가에서 허락받고 사용해야 하고, 유출은 금지되어 있지.”
홀시딘이 인상을 구긴 채로 파쿠란의 설명을 끊었다. 바로 상황을 설명하라는 재촉인 셈이었다.
파쿠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법과 약물의 부분을 생략하고 이야기를 잇는다.
“도적 길드가 자리 잡고 오랜 세월, 많은 정보가 축적되기는 했지만 그 부분은 그저 소문만 모아놓은 정도가 고작입니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군단과 귀족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일 뿐이지, 지금 당장 상아탑과 왕가에서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있는가는 전혀 몰라요. 그러니 이쪽에서는 추적이 어렵습니다.”
“그 약물, 샘플링은 되어 있나?”
“복용…… 투여받은 녀석들의 혈액 표본은 있습니다만, 뭘 해볼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꺼내봐, 표본측정을 바로 해주지.”
홀시딘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파쿠란은 가만히 그 손 위에 소매를 떨구듯이 늘어뜨렸고, 피가 담긴 조그마한 유리병 셋이 바로 홀시딘의 금빛 손 위로 떨궈졌다.
투란은 고개를 기울이면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가를 눈을 부릅뜬 채로 지켜봤다.
딱히 큰일 났다고 보이는 부분은 없었다.
약병 셋이 투명하게 그 안에 담긴 피를 보였고, 금빛의 안개가 유리 안으로 스며들어 가면서 푸른색, 노란색, 검은색의 다채로운 얼룩을 만들어내며 휘저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홀시딘이 이를 지켜보면서 중얼거리는 소리…….
“제대로 허락받은 약물이로군. 상아탑에서 제조했고, 확실하게 왕가의 허락을 받아둬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야. 이놈들, 막 군단에서 귀환했거나 한 경우는 아니겠지?”
파쿠란이 바로 고개를 젓는다.
“군단 근처에도 간 적이 없는 도적이고, 지금은 자객이며 암살자 노릇을 하다가 잡혔어요. 왕족이 아니라 그냥 망해버린 귀족과도 관련된 적이 없다더군요.”
“내 쪽에서 조사를 해야겠군. 하지만 자네 쪽에서도 계속 파 들어가 볼 필요는 있어. 음, 상아탑 쪽으로는 얼마나 파헤쳐볼 수 있나?”
약간 기대한 듯한 홀시딘의 물음은 파쿠란을 난감하게 한 모양이었다.
“그건 좀…….”
“곤란한가? 음…… 그렇다면 헌터를…… 제멋대로 뒤질 수 있는 몬스터 헌터를 보내주도록 하지. 어차피 지금 놀고 있는 꼴 보는 것도 울화가 치미니까, 자네 쪽으로 보내서 돕게 해주겠어!”
홀시딘이 잠깐 궁리를 하다가 살짝 수상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했다.
파쿠란은 금방 그 묘한 낌새를 알아차린 듯, 조금 당혹스러운 시늉을 하면서 바로 묻는다.
“누굴 보내시려고……?”
“여기서는…… 아, 이쪽에서는 놀고먹지만 그쪽으로 가면 아주 할 일이 많은 작자가 있어! 그렇잖아도 심심하다고 뒹굴면서 투덜거리는 중이었으니까, 아주 열심히 협력해줄 거야.”
홀시딘은 흐흣거리는 아주 음흉한 표정인 채로 이리 말하고 있었다.
파쿠란으로서는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고, 혹시 아는가 해서 투란을 흘깃했다. 그 눈길에 뭔가 자극을 받았다는 듯, 투란이 냉큼 입을 여는데…….
“마스터 홀시딘! 혹시 이런 가면 하나 갖고 있지 않아요? 이거 너무 눈에 띄어서 뒤통수만 봐도 들통날 수 있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놀림받았어요! 근데 하루 지나야 다시 얼굴을 꾸밀 수 있다잖아요. 당장 바꾸고 싶은데, 비슷한 거라도 없어요?”
대뜸 마법 가면 에모틱에 대해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로렐리가 한 말을 되새김질한 듯한 그 모습에 파쿠란은 나직하니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처음에 주의사항을 조금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말해주지 않은 자기 탓인 듯싶으니!
한데 홀시딘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투란의 투정에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거 여태 망가뜨리지 않고 잘 쓰고 있었냐? 흐흠……?”
퍼뜩 파쿠란은 그 말투를 통해 알아차렸다.
홀시딘이 투란이 몬스터 로드로서 발끈하다가 에모틱을 구기거나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점을 의아해한다는 것. 과연 에모틱이 특별해서인가 투란이 자제를 잘해서인가, 어느 쪽인가 궁금해하는 것이다.
물론 투란은 그런 물음에 대해 바로 툴툴거리고 있었다.
“알드바인에서도 마법 걸린 거 잔뜩 사용했거든요? 어떻게 하는지 요령 알아내서 익숙해진 게 언젠데!”
“그랬어? 허어, 벌써 그런 재간을 익혔을 줄이야.”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묘한 칭찬이 홀시딘의 금빛 입술 사이로 질질 새듯이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마지못해서 하는 겉치레만 잔뜩 둘러친 헛소리처럼!
이를 느낀 투란이 바로 투덜거리면서 보챈다.
“가면! 이거나 어떻게 해달라고요!”
“그냥 얌전히 있으면 되잖아! 하루 정도 가만히 어디 숨어있으면 될 텐데!”
홀시딘이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곧바로 파쿠란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대답한다.
“이래 봬도 호위 의뢰를 받아 고용된 몸이거든요! 바쁘고 위험한데 어딜 처박혀 있어요, 처박히긴! 쩨쩨하게 굴지 말고 이런 가면 적당한 거 있으면 하나 줘요!”
“뭘 주든 제대로 망가뜨릴 거잖아! 여차하면 주먹에 힘만 줘도 좌악 찢기고 부숴버릴 텐데, 뭘 자꾸 달래!”
홀시딘은 이제 살그머니 징징거리는 태도로 입장을 바꾸고 있었다.
여기에 다시 투란이 뭐라 하기 전, 파쿠란이 가만히 투란을 향해 손짓하며 끼어들어 말한다.
“마스터 홀시딘, 투란을 보호하기 위해 하시는 말씀 알겠습니다만…… 저와 동료들은 이미 투란이 에어그립을 사용하는 것을 봤습니다. 아주 정교하고 세심하게 상대를 상처 없이 쓰러뜨려서 다들 오러 윌더로 착각을 하는 중인데…….”
“뭣! 투란이 에어그립……? 투란, 그런 오러 기술을 쓸 수 있었어! 상처를 입히지 않고 썼다고?”
홀시딘은 정말로 놀래서 바로 투란에게 확인하듯 묻고 있었다.
이는 파쿠란을 어리둥절하게 했고, 투란도 조금 당황시켰다.
“에? 그야 뭐…… 배운 대로 한 것뿐이에요. 어쩌다 보니…….”
“허어…… 별 재주를 다 부리는구만! 그냥 커다랗게 대책 없이 강한 놈만 패 잡는 줄 알았더니…….”
매우 이상한 감상이 홀시딘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진심이 가득 담겼는데, 투란으로서는 왠지 욕먹는 듯한 기분이었다.
“저기요, 대체 날 어떻게 보고…….”
“마스터 홀시딘, 혹시 카니야 님이 파티에 초대된 손님을 위해 준비했던 무장, 그 마법무장은 물려받으셨습니까?”
파쿠란이 재빨리 끼어들어 투란의 말을 자르면서 물었다.
이는 바로 홀시딘의 관심을 끌었다.
“응? 그 마법무장……? 그건…… 잠깐, 찾아봐야겠는걸.”
파쿠란의 의도를 바로 알았다는 듯, 홀시딘이 잠시 눈을 반쯤 감고 지그시 생각을 더듬는 모습이 되었다.
그 틈에 투란은 바로 파쿠란에게 묻는다.
“무슨 무장이요? 뭔 마법이 걸린 무장인데요?”
파쿠란이 대답하기 전에 홀시딘이 손을 내밀며 말한다.
“여기 있군, 꽤 괜찮은데? 투란, 손!”
엉겁결에 투란이 손을 내미니, 바로 홀시딘의 손에서 금색 조각이 하나 건너오는 듯했다. 조각은 순식간에 풀려나며 허공을 맴도는 금빛 바람결이 되어서 투란의 몸에 덧씌워졌다. 그와 함께 홀시딘이 말한다.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몸에 입는다고 생각해. 장착 후에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런 마법이니까…… 해롭지 않아! 내가 보증한다고!”
투란이 움찔거리다가 한숨을 쉬며 가만히 기다렸다.
드라고니아는 그사이에 건네진 금빛 조각의 마법이 뭔가 파악한 듯이 말해주고 있었다.
―네가 쓰는 무장마법과 같은 계열이다, 단지 이건 따로 제작한 마법무구를 입혀주는 거고…… 네 경우에는 기초무장을 생성하는 거지. 상아탑의 장비를 그저 입혀주는 거라고 봐도 되겠군.
‘내 모습이 지금 어떻지?’
투란은 얼굴을 툭툭 치면서, 얼굴에 쓴 단단한 가면을 더듬기도 하면서 몸을 살피는 채로 소리 없이 물었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투란의 시야 속에 지금 어떤 모습이 되었는가를 비춰줬다.
―대강 이런 모양이지.
‘헤에…….’
투란은 이 마법 무구가 몸을 덮은 광경에 살짝 감동했다.
다리 쪽은 강철 갑주의 하반신을 따로 떼어온 듯, 두 다리를 강철의 껍질 속에 넣은 듯한데 발목을 감싼 두툼한 철갑이 발까지 이어지며 부드럽게 움직였다. 허리는 아머 코르셋으로 감긴 채이면서도 튼튼한 가죽소재로 엮인 듯한 바지로 이어지며, 강철 껍질 속으로 담가놓은 듯한 다리 쪽이랑 다르게 부드러운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어깨와 팔로 이어지는 곳은 철갑과 가죽이 잘 섞여 손까지 한꺼번에 감싸는 형태…… 얼굴을 덮은 은색의 가면은 턱 언저리에서 시작되는 금빛 불꽃으로 타오르는 나무줄기 모양이 눈과 입, 코의 형상을 흉내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구멍이 적절하게 뚫려 있기는 하지만, 쓴 사람에게는 전혀 숨 쉬고 말하고 보는 데 지장이 없지만 곁에서 보기에는 그냥 철가면으로 얼굴을 감금한 듯이 보였다. 그럼에도 머리카락은 거침없이 드러난 채인데…… 금색과 갈색이 섞인 색채가 전혀 투란의 머리카락처럼 보이질 않았다.
홀시딘은 투란이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광경을 보며 몇 마디 보태고 있었다.
“원래 마법 무장에 더해서, 내가 하클의 팔찌랑 같은 기능인 마법 팔찌도 추가해놨으니까 모자라지는 않을 거야. 검이라든가 다른 자세한 거는 가면에 집중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어쨌든 기본적인 사용법은…… 기억으로 전사(傳寫)될 거니까. 자아, 이 정도면 투란이 무슨 짓을 해도 그럭저럭 감춰지겠지, 파쿠란?”
“그렇군요, 그래 보입니다.”
파쿠란이 투란을 보며 대답했다.
홀시딘이 잠시 다른 곳을 보는 시늉을 하는데…….
“푸른 사슴의 여관이라고 아나? 헌터 길드 옆에 있다는군. 거기서 만나면 될 거야. 아, 투란이랑 같은 가면을 쓰고 있을 테니까. 서로 알아보기 쉬울 거네. 그럼, 나중에 다시…….”
말을 마치자마자 금빛 형상의 홀시딘이 사라지면서 투란과 파쿠란은 주변의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둘만이 일행에게서 슬쩍 떨어진 채로 빌려 들어왔던 처음과 똑같은 퍼브 한편의 빈방이었다.
투란이 파쿠란에게 묻는다.
“이거 너무 티 나지 않아요?”
파쿠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헌터 길드에 가면 그보다 더 굉장한 몰골을 한 녀석들을 볼 수 있어. 어쨌든 그 정도면 나중에라도 널 알아볼 일은 없을 거야. 음…… 푸른 사슴의 여관이라고 했었지? 가자, 이자닌은 데려가야지. 로렐리는 벡커드와 델릭에게 맡기더라도…… 이자닌은 이 일의 내막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까.”
“나보고 수상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투란이 불쑥 하는 말에 파쿠란이 잠깐 눈매를 좁히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오히려 이 정도면 정체불명의 오러 윌더라고 하기 딱 좋아. 아, 투란……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러 윌더처럼 움직일 수 있겠지? 위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는 오러의 기술만 쓰는 거야.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그러죠. 갑자기 몬스터가 튀어나오더라도, 일단 오러 윌더 흉내를 내볼게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만큼 넘어가 보자고요.”
투란은 갈색의 장갑이 끼워진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대답했다. 그 팔뚝에 감긴 은색의 덮개, 마법을 기반으로 홀시딘이 하클의 팔찌를 흉내 내서 만들었다는 유틸리티 브라킷은 가죽 토시 위의 장식처럼 보였다. 짧은 틈새에 전이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하클의 정교한 기술을 마법으로 대체해서 구현했는데 사용하기 까탈스러운 점은 마찬가지라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잊고 있었던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