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3)
‘툴로쉬? 엥?’
투란은 내색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노는 헌터를 보낸다더니, 알드바인에 와서 헌터 길드를 찍어누르며 금전을 쏟아냈던 전설적인 헌터를 가면으로 덮어 보냈다니! 대체 홀시딘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중인가?
―투란, 아는 척할 처지가 아닌 거 알지? 넌 그냥 툴로쉬를 엿보고만 있었다. 괜히 누군가 아는 척하다가 의심받지 않도록 조심해!
‘윌 라이트도 조심해야 하는 거 아냐?’
―그렇지. 깊이 은닉해야겠군. 프로브를 제대로 못 쓸 거야, 조심해라.
‘그래…… 근데 왜 싸우고 있는 거야? 여기서 우리 만나기로 해놓고 왜 저러고 싸움질이지?’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게 무슨 일인가 궁금해했다.
이자닌이 그런 투란의 팔을 턱 잡아당기더니…….
“가서 말리든가, 빨리 끝내든가! 아무튼 정리해!”
스윽 싸움판으로 밀어넣으면서 또박또박 속삭이잖는가!
“에? 왜!”
투란이 화들짝 놀란 소리를 냈고, 이는 저쪽에서 맞아 굴러오던 이의 눈길을 끌었다. 구르던 이가 냉큼 일어서며 쥐고 있는 칼로 투란을 겨누더니 외친다.
“하, 한패다!”
“아냐!”
투란은 과감하게 바로 부정했다.
칼을 겨냥한 이가 살짝 주춤하다가 두 눈을 부릅뜨고 훑어보더니, 더욱 큰 소리를 지른다.
“같은 가면이고 같은 차림이구만! 한패 맞잖아! 죽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질을 하며 덤벼들기도 했다.
“아니라고!”
퍼억!
입으로 부정하면서도 투란은 달려드는 이를 바로 걷어차 버렸다.
채인 자가 저쪽으로 굴러가면서 비명을 질렀다.
“끄억! 찌, 찔렸어!”
“뭘 찔러! 살짝 차기만 했는데!”
투란이 반박했다.
그러나 굴러가는 이를 따라 피가 퐁퐁 튀며 남기는 흔적은 찔린 것이 맞다고 증명하고 있었다.
“왜!”
투란이 잠깐 당황해 외쳤다.
―자기 칼에 찔렸구만.
“제 손에 든 칼에 찔렸구만!”
소리 없는 드라고니아의 툴툴거림과 동시에 이자닌이 목소리 높인 외침이 울렸다.
이에 호응하듯, 와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쪽에서 벌어지는 난장판 사이로 투란과 색채만 다르고 같은 형상인 가면을 쓴 툴로쉬…… 투란이 모르는 척해야 하는 툴로쉬의 외침이 터져나온다.
“여어, 투란! 만나서 반갑네!”
투란이 거기에 뭐라 대꾸해야 하나 어처구니없어할 때, 그 난장판 틈새로 한 명이 칼질을 하며 버럭 외친다.
“뭐가 반가워, 이 미친 새끼야! 난 전혀 반갑지 않아!”
휭휭, 칼날이 휘둘러지는 것을 피하는 가면 쓴 툴로쉬가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다시 외친다.
“자네도 투란?”
“불만이냐!”
휭휭, 칼질과 함께 다시 저쪽의 또 다른 ‘투란’이 사납게 대꾸했다.
투란은 목뒤가 뻐근해진다는 듯, 허탈하다는 듯이 어깨를 툭 떨구면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냐고…… 대체 왜 저러고 있냐고…….”
“그러게, 왜 저러고 있는 걸까?”
파쿠란이 투란 곁에서 동감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자닌이 팔짱을 끼며 높은 목소리로 말한다.
“바쁘니까, 빨리 끝내요. 이야기할 것이 많잖아요.”
“아, 그러…….”
툴로쉬가 뭐라 대꾸하려는 순간이었다.
“휘이! 아가씨가 빨리 끝내라잖아!”
“은밀한 대화를 하고 싶다잖아!”
“아주 많은 대화를……!”
느닷없이 주변에서 박수 치며 꽥꽥대는 목소리들이 울려퍼졌다.
파쿠란은 한숨을 쉬었고, 투란은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툴로쉬가 벌인 싸움판을 구경하던 이들이 저리 떠들고 있었다.
칼질하며 피를 흘리는…… 비록 투란이 피나게 한 것은 아니지만 피 흘리면서 바닥을 기고 있는 작자까지 있는 광경을 보고 저들은 그저 잠깐의 여흥이란 듯이 구경하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음…… 못된 사람들인가.”
투란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사이에 툴로쉬의 싸움판은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이리저리 피하면서 적당히 때려 굴리고 다시 일어나면 또 패던 툴로쉬가 이자닌의 끝내란 말 다음에는 다시 일어날 수 없게 제대로 때려눕히고 있는 탓이었다. 거의 십여 명에 가까운 이들이 그렇게 바닥에 누웠고, 툴로쉬는 손을 털면서 투란 쪽으로 다가오면서 피 흘리며 칼을 짚고 일어서려던 이의 뒤통수를 갈겨 쓰러뜨렸다.
“자, 잔인하다!”
투란이 웅얼거렸다.
칼에 찔려 피 흘리는 사람까지 저리 패다니!
다가오던 툴로쉬가 들은 모양이었다.
“내가 때려서 피 흘리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잔인해? 내가 팬 놈 중에는 칼에 찔린 놈 하나도 없어. 네 탓이야, 네 탓.”
투란을 향해 이죽거리는 소리를 넉살 좋게 퍼붓고 있잖은가.
“엥? 아니 내가 뭘! 처음 보는 사이에 칼질해서 발로 민 것뿐인데!”
“음? 배 속 깊이 발을 꽂아넣고 밀었다고? 푸하핫! 어쨌든 제 손에 든 칼에 찔렸으니 남 탓할 리는 없겠지?”
툴로쉬는 가면 쓴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낄낄거렸다.
이자닌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정리된 거면, 조용한 곳으로 가죠. 아는 곳 있어요?”
“정리? 아, 그건…… 어이, 은전 열 닢 받고 이 녀석들 돌봐줄 녀석 없나? 몇 명이 나서도 전부 열 닢이다! 길드 창구에다가 은전 맡겨 놓을 테니, 이놈들 챙기고 나서 받아가.”
툴로쉬는 구경꾼을 향해 외치면서 일행에게 손짓했다.
이자닌이 가만히 앞장서는 툴로쉬를 쫓았고, 파쿠란은 슬쩍 쓰러진 이들을 훑어보고 투란에게 말한다.
“가자. 저건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어? 아, 예…….”
투란은 딱히 끼어들 생각도, 할 말도 없어서 적당히 대꾸하며 따라갔다.
먼저 들어간 툴로쉬는 창구 앞에서 서 있는 우락부락하고 덩치 큰 털보 앞으로 가더니, 나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은전 열 닢, 약속했으니까. 알아서 챙겨주라고. 주기 싫으면 직접 저것들 돌보든가 하고. 왜? 마음에 안 들어? 안 들어도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억울해? 그럼, 당장 돈 내놔. 없지? 규율 어기고 힘으로 해보고 싶나? 그건 나도 좋은데 말이야. 힘으로 하기 싫으면 규율에 따라. 눈알 굴리면서 딴 생각해봐야 소용없는 거 알지? 그럼, 난 손님들이랑 조용한 방에서 이야기 좀 하고 있겠어. 응? 당연히 자네 방이지! 여기 가장 조용한 방이 길드 마스터 룸뿐이라며? 미리 접객실 좀 많이 준비해두지 그랬어? 그럼, 가볼게.”
투란으로서는 들어도 무슨 일인가 짐작할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이자닌이나 파쿠란은 별 상관없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만약을 대비해서 살짝 경계하는 태도로 가만히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투란도 슬쩍 그 흉내를 내면서 헌터 길드의 창구 앞 풍경을 둘러봤다.
알드바인에서 본 풍경과 닮기는 했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태도는 꽤 달랐다.
‘적당히 칼만 차고 있네?’
알드바인의 헌터들은 가능한 자신의 장비를 완전히 챙겨 다니는데, 이쪽에서는 툴로쉬와 싸우던 이들처럼 적당한 장검, 단검 정도를 몸에 지녔을 뿐이지 몬스터 사냥에 쓰는 장비를 완전히 갖춘 이들은 없었다. 단지 큰 자루, 배낭 정도는 뭔가로 채워 갖고 있는 모습이었다.
“투란, 가자고.”
구경하며 갸웃하는 투란을 파쿠란이 재촉했다.
툴로쉬와 이자닌은 이미 십여 걸음 저쪽에 있었다.
“예, 가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투란은 파쿠란과 함께 걸었다.
정말로 길드 마스터의 방으로 들어가는가 궁금했는데…… 도달한 곳은 진짜 길드 마스터의 방이었다. 창구 안쪽의 복도를 지나며 문이 열린 탓에 볼 수 있었던 어떤 방보다고 크고 넓은 데다가 손님을 위한 소파와 탁자가 한복판에 떡하니 놓여 있는 풍경은 투란에게 꽤 낯설었다.
그 방 안에 들어서서 파쿠란이 문을 닫아걸기가 무섭게, 이자닌이 묻는다.
“여기 털보 마스터가 보통 고집 센 아저씨가 아닌데, 어떻게 이 방을 이렇게 내놓게 한 거죠?”
“음? 그야 내가 그 털보를 찍어누를 정도로 엄청난 몬스터 헌터니까 그렇잖겠어? 물론 그 털보가 마스터 노릇을 하는 이 페브라의 헌터 길드가 내게 갚아야 할 빚이 막대한 점도 있고 말이야.”
“고리대금?”
“그건 아니고. 상아탑의 마스터에게 건물째로 뽑혀나갈 뻔한 돈을 대신 갚아줬거든. 여기 마스터들이 몇 대에 걸쳐서 쌓아뒀어야 할 돈을 거덜 낸 탓에 말이야. 자, 그런 얘기는 됐고! 도적 아가씨, 대체 요새 페브라의 도적 길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말이야.”
이 말에 이자닌이 소파에 앉으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우리도 가면 쓴 아저씨를 만나면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그러면 인사부터 해볼까요? 난 이자닌이라고 해요. 저기 문가에서 분위기 잡는 마법사는 파쿠란, 여기 가면 쓴 투란은 알고 있는 거죠?”
“세상에 투란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나도 일단 투란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음, 나는 그냥 툴이라고 부르면 될 거야. 직업은 몬스터 헌터. 춤추는 산맥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지. 도적 아가씨…… 이자닌은 페브라에 처음은 아닌 것 같고…… 오랜만에 돌아온 건가?”
“거의 십여 년 만이죠. 그래서 낯설어요. 그러니 얘기 좀 해봐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이 왕도에 어째서 군단의 허락받은 약물에 절은 암살자가 싸돌아다니는 거죠?”
오가는 이야기를 듣던 투란은 문득 툴로쉬와 이자닌이 슬슬 날을 세우는 것 같다는 느낌에 슬쩍 뒤로 빠지듯이 소파에 깊숙이 몸을 가라앉히면서 들러붙었다. 괜히 허공에 그어진 칼질에 자신이 맞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런 투란의 예상처럼 툴로쉬와 이자닌의 이야기는 서서히 날카로우진 채로 이어졌다.
“그건 도적 길드의 암살자 이야기 아닌가? 어딘가에서 훔쳐낸 이상한 약물을 들이켜고 미친 것 같다는 이야기 말이야.”
“도적 길드에는 암살자가 없어요. 어디서 돌아버린 높으신 분이 군단에서 이상한 약물과 비술을 빼돌려서 도적인 척하고 있는 거지!”
“암살자가 없어? 목숨을 훔치는 도적이 없다고?”
“당연히 없죠! 길드의 도적이 살인청부를 왜 받아요!”
강한 이자닌의 부정에 툴로쉬가 당혹스러운 듯이 가면을 긁적이다가 손을 내리면서 그 기분을 그대로 토해낸다.
“그건 꽤 참신한 주장인데?”
“왕의 후예로서 그딴 일 하지 않는다니까!”
이자닌은 한층 더 강하게 말했다.
투란에게는 아주 이상한 말이었다.
‘왕의 후예?’
설마 세상에 어느 미친 왕이 도적 길드를 만들었다는 뜻인가?
왕이 도적의 두목 노릇을 하겠다고 그런 짓을 할까?
―왕국의 왕을 말하는 게 아닌 것 같다만?
‘뭐? 그럼 무슨 왕?’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이 갸웃하는데, 툴로쉬가 웃는 소리와 함께 말한다.
“아하하, 그렇군. 도적왕의 후예란 말이지…… 확실히 도적 길드는 도적왕의 후예이지. 도적왕의 후예라면 청부살인을 할 리가 없기는 하지. 그런데 그건 이자닌만의 의견 아닌가? 최근 페브라 안에서 자주 암살 시도가 있었거든. 그 대부분이 도적 길드의 주도라고 하던데?”
“썩을! 어떤 연놈이 그래요? 잡히고 나서 도적이라고 둘러대면 다 길드의 도적이란 말을 하는 거는 아니겠죠?”
이자닌이 눈을 치켜뜨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가면에 가려진 툴로쉬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 난감해하는 태도는 그 분위기를 담은 말투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었다.
“흐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잡혀서 자결한 암살자가 도적 길드 소속이라고 말한 이들에게 따져봐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이 말은 문가에 등을 기댄 파쿠란의 입을 열게 했다.
“자결을 했다고? 그건 도적 길드의 방식이 아니야. 당신, 그 정도는 알 만한 사람 아니신가?”
“알지, 도적왕의 후예로서 암살왕이 된 경우도 있는 걸 분명히 아니까. 도적 길드의 알맹이가 언제 암살왕의 후예로 바뀔지는 예측할 수 없잖아? 그러니 확인해볼 수밖에 없지. 과연 어느 왕의 후예가 도적 길드의 대세인가 말이야.”
툴로쉬의 말은 담담했지만, 가면 구멍으로 드러난 눈빛은 아주 강렬했다.
파쿠란이 문에서 등을 떼며, 보다 심각하게 묻는다.
“당신…… 누구지? 어새신 킹(Assasin King)에 대해서…… 어떻게 알지?”
투란은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가 전혀 알 수 없으니, 눈만 깜박거리는 채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