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4)
‘왜 이리 복잡해.’
투란은 한숨을 쉬었다.
―너 좋아하는 옛날이야기 아니냐?
드라고니아가 놀리듯이 말했다.
‘옛날이 아니잖아, 지금이잖아!’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오가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게 귀를 기울이는 중이기도 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도적왕이니 암살왕이니 한 다음에도 툴로쉬, 자신을 툴이라고 줄여 말한 전설적인 헌터와 파쿠란은 말다툼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먼저 툴로쉬가 파쿠란이 경계하며 묻는 말에 되묻고 있었으니…….
“내가 누구냐고 하기 전에 자기가 누구인가부터 소개해야 하지 않나? 블랙메이지 바라크의 후예인가, 아니면 검은 연금술사 라바크의 유산을 쫓는 자인가 말이야. 그리고 여기 아가씨는 왜 저 음험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친구를 후원하는가를 밝혀주면 좋겠는데?”
이자닌은 자신에게 가면을 돌리고 묻는 말에 고개를 돌려 파쿠란을 바라봤다.
이런 이야기는 순전히 파쿠란에게 맡긴다는 듯한 태도였고, 파쿠란은 그런 모습에 호응하듯이 말한다.
“내 이름은 파쿠란. 툴, 당신이 짐작한 대로…… 툴? 잠깐! 당신 툴이라고? 그거 이름을 축약한 것인가? 당신 설마 툴로쉬!”
“하여간 마법사란!”
툴로쉬가 혀를 차면서 소파에 몸을 잔뜩 기대면서 툴툴거리는 채로 대답을 잇는 듯한데…….
“두어 마디 더 하다가 눈치챌 줄 알았는데, 뭘 그리 빨리 알아차리나? 대체 내가 무슨 단서를 넘긴 거야?”
슬그머니 자신의 이름을 인정하는 척하면서 묻는 말이었다.
이자닌은 그런 툴로쉬를 보며 낯을 찌푸렸고, 투란은 문득 예전에 봤던 어떤 사제를 떠올렸다.
“내가 인정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했나? 그렇게 들었다고 네가 착각한 것이지!”
그런 말을 입에 매달고 줄줄 흘리는 듯했던 그 사제는 오라클이 샤오콴 마을에 도달하기 전까지 계속 그런 짓을 반복했었다. 누가 뭐라 하면 마치 그렇다는 듯한 시늉을 하면서도 절대로 그 입에서 그런 말을 꺼내놓지는 않는, 아주 기묘하고 이상한 말버릇을 지닌 사제였다. 그는 오러클이 와서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나무에 매달고 ‘고기를 연하게’ 하려면 패야 한다면서 뭔 식인 괴물처럼 신나게 두들겨 패고 난 다음부터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그 꼴을 보고 샤오 할배는 연초를 깊이 빨았다가 짙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한통속이라고 멱은 안 따네. 딴 놈이 그랬으면 멱을 땄을 녀석이…….”
덕분에 투란에게 오러클은 ‘사제 말고 딴 놈은 멱을 따는’ 아저씨로 첫인상이 박혔었다. 그 뒤로 일어난 온갖 것이 그 첫인상을 지우는 데 며칠 걸리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투란은 그 첫인상을 기억했다.
‘그 사제 같은 짓을 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지금 툴로쉬에게서 오라클에게 죽지는 않을 정도로 쳐 맞은 사제의 모습이 슬쩍 엿보고 있는 투란이었다. 한데 대체 툴로쉬가 구체적으로 뭘 했기에 지금 저런 말이 오가는가?
투란이 파쿠란을 흘깃하고 툴로쉬를 흘깃하면서 이자닌의 눈치를 보는 시늉을 열심히 했다. 누가 이 상황에 대해서 친절하고 상냥하게 설명 좀 해주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눈빛을 꾸미면서!
―가면 쓰고 그러면 표정이 보이겠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시도를 바로 비웃었다.
‘어? 앗차!’
투란이 뒤늦게 움찔할 때…….
“뭔 이야기인가, 알아듣게 좀 이야기해 봐요. 툴로쉬라고? 그래서…… 이 아저씨가 툴이라고 애칭인지 약칭인지 불리는 게 이상하다는 거야? 아니면 툴로쉬란 누군가에 대해서 무슨 안 좋은 소문이라도 있다는 거야? 파쿠란!”
이 상황을 설명하라고 이자닌이 파쿠란을 보채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고개를 조금 크게 움직여 파쿠란과 툴로쉬를 돌아보는 시늉을 했다. 비록 가면을 썼다고 해도 이자닌처럼 의아해한다는 것을 확실히 드러내 보이는 셈이었다.
파쿠란이 숨을 고르듯이 깊이 들이쉬었다가 툴로쉬를 바라보며 다시 말문을 연다.
“툴, 그 애칭은 예전에도 썼잖습니까. 몬스터 헌터로서 아주 특별한 당신에 대해 세세한 기록을 물려받았으니 알 수밖에요. 설마 전설로 듣던 헌터를 만날 거라는 기대는 못 해서…… 오히려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해야겠군요. 어쨌든 지금 이자닌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허락하시겠습니까?”
이자닌의 표정이 구겨졌다.
파쿠란은 지금 툴, 툴로쉬에게 사정 설명을 해도 좋냐고 묻고 있었다.
뒤집어보면 툴로쉬의 허락 없이 파쿠란은 이 상황에 대해 전혀 설명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도적 길드의 마법사로서 파쿠란이 저렇게 남의 눈치를 보는 일은 흔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자닌은 간결하게 돌려 묻는 말을 불쑥 내밀었다.
“파쿠란, 이분…… 어느 나라 왕족이라도 되는 거야?”
파쿠란은 대답 없이 툴로쉬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그런 신분에 얽힌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말하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툴로쉬가 그런 파쿠란에게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채로 말한다.
“괜히 이 아가씨한테 의혹만 잔뜩 심어주는구만! 아닌 얘기는 내가 바로 아니라 할 테니까, 나에 대해 적당히…… 소개해준다 생각하고 말해보라고.”
이자닌의 눈매가 조금 더 찌푸려들 때, 파쿠란이 간단한 한마디로 ‘소개’를 시작하고 있었다.
“엘더 헌터. 들어봤지, 이자닌? 대마법사 카티야와 함께 활동했던 바로 그 엘더 헌터가 툴로쉬야. 춤추는 산맥의 헌터 길드, 그 최강의 헌터이고 신비로운 영약(靈藥)을 얻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수명의 한계를 벗어버렸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시지. 그래서 블랙메이지 바라크께서는 그 평소의 버릇, 즐겨 쓰는 가명에 대한 기록을 잊지 말라고 세세하게 전해주셨고 말이야. 아, 블랙 스완의 주인이기도 해. 블랙 스완을 제작할 재료를 구해준 일도 있었고, 그때 한 척 챙겨갔다니…… 아직 갖고 계시겠죠?”
“갖고 있어. 미친놈으로 소개해줘서 고마워.”
툴로쉬는 가면에 가려진 얼굴을 손으로 한번 더 가리는 시늉을 하면서, 파쿠란의 말끝에 붙은 물음에 대답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투란이 움찔했다.
“미친놈? 왜요?”
딱히 미쳤다는 말은 한마디도 들어가 있지 않은 파쿠란의 이야기에 왜 저런 소리를 하는가? 갸웃하며 투란이 이자닌을 흘깃 보니…….
“부정하는 말은 안 하네요? 뭐, 그럼…… 수백 살 먹은 할배라고 해두죠. 그래서, 그 최강으로 소문난 엘더 헌터가 대체 여기 뭘 하러 온 거예요?”
아예 툴로쉬의 정체가 뭐든 알 게 뭐냐는 말투로 지금 상황에 대해서 따져 묻는 말을 하고 있잖은가.
이는 잠시 툴로쉬의 몸짓을 멈추게 했다.
가면 구멍 속에서 툴로쉬의 눈동자가 이자닌을, 투란을 스쳐가는 듯싶은 정적이 잠깐 이어졌다. 그리고 허탈해진 듯한 툴로쉬의 목소리가 가면 속에서 흘러나온다.
“내가 온 이유라…… 하긴, 내가 뭐든 그건 중요하지가 않지만 그건 중요하지. 응, 현명한 판단이야. 그래 내가 뭐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럼, 중요한 용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그러니까 말해봐. 지금 도적 길드는 도적왕과 암살왕, 어느 쪽이 대세인 거지?”
“암살왕이 뭐에요?”
이자닌이 대뜸 되물었다.
그 순간에 투란은 툴로쉬의 분위기가 또 다른 고요함을 품은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납득하고 칭찬하는 것과는 다른, 살짝 어이없어하는 낌새가 역력했다.
파쿠란도 이를 느낀 듯, 바로 이자닌에게 말한다.
“이자닌, 툴로쉬에게는…….”
“어새신 킹이니 뭐니, 우리가 아는 소문이랑 툴이 아는 소문이랑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들어봐야 알 것 아니에요. 자, 말해보세요!”
이자닌이 파쿠란의 말을 싹 자르면서 눈을 부라리는 채로 말했다.
투란은 그런 이자닌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풋 하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툴로쉬도 가면 속에서 ‘헥?’ 하는 소리를 내면서 투란처럼 웃는 낌새를 보였다.
파쿠란이 그 광경에 한숨을 쉬며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이자닌은 조금 전에 툴로쉬가 한 그대로 갚아준다는 듯하잖나.
듣는 이들이 어이없어하든 말든 이자닌의 표정과 눈빛은 진지하기만 했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툴로쉬가 한숨 섞인 말투로 이야기한다.
“도적왕이 되지 못한 도적, 사람의 생명조차 훔치는 것을 꺼리지 않는 도적. 암살왕의 기본은 그런 도적이지. 하지만 암살자란 당연한 말 대신에 암살왕이라 일컬어지는 까닭은 그 도적이 도적왕의 유물 일부를 활용했던 것이 첫 번째. 그래, 그 활용이란 것이 자신의 이상과 희망을 위해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기를 서슴지 않는 짓이었지. 한데 그 이상과 희망이 절망에 빠진 이들을 구한다는 명분(名分)을 갖춘 것이었어. 이를테면…… 몬스터 떼가 몰려오는데 왕국의 군단병을 자기 주변에 배치한 채로 방어전에 골몰하며 왕국의 공민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외쳐대던 폭군과 그 측근들을 전부 죽여서 군단의 족쇄를 풀어준다거나 하는 경우라든가, 난폭한 권세의 앞잡이가 되어 날뛰는 암살단을 몰살시켜 버린다든가 하는 것. 자기 이외의 암살자를, 자기 허락 없이 나선 암살자를 가차 없이 처단한 것도 보통 암살자와 다른 이름, 암살왕이라 불린 까닭으로 꼽아야겠지. 그러니까…… 가장 자유롭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인간 틈새에 끼어 있는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을 사냥하는 전문가라고도 했지. 어때, 이 정도면 되었나?”
“뭐, 적당하군요. 그래서 왜 지금 암살왕이니 도적왕이니 하는 전설이 도적 길드의 내분에 중요하다는 거죠?”
이자닌은 턱을 치켜올리면서 계속 물음을 잇고 있었다.
툴로쉬가 어깨를 떨구면서 한숨과 함께 대답을 잇는다.
“그걸 내게 묻다니…… 페브라에 오랜만에 돌아와서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거야? 어이, 마법사. 정말 모르고 있나? 암살왕의 비보, 원래는 도적의 비보로 꼽히다가 암살의 비보로 바뀌어 불리는 것이 나타났잖아. 그 얘기 못 들었어?”
“젠장, 못 들었어요! 대체 뭐가 나왔는데?”
파쿠란이 뭐라 하기 전에 이자닌이 으르렁거렸다.
툴로쉬는 가면을 긁적이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채로 대답한다.
“소울테이커, 스치기만 해도 영혼을 갈취해서 죽게 만든다는 단검.”
이 대답은 누구보다 먼저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소울테이커? 그건…….’
머릿속의 생각을 투란은 바로 입으로 토해내며 묻는다.
“무슨 몬스터 이름 같네요? 아, 그거 몬스터 블레이드에요?”
이자닌이 이를 갈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는 사이에 툴로쉬가 설명한다.
“응? 몬스터? 아냐. 순수하게 미친 마법사가 만든 마법의 단검이야. 그 칼날에 긁힌 상처만 나도 영혼이 사라진 것처럼 잠든 몰골이 되고, 그대로 깨어나지 못한 채로 말라 죽어. 딱히 몸에 중상을 입힌 흔적도 없이 그리 만든다고 해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거야.”
“어, 그래요…….”
투란이 조금 멋쩍게 웅얼거릴 때, 드라고니아가 소리 없이 말한다.
―몬스터 소울테이커에 대해서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거다, 투란. 애초에 영혼착취니 영혼갈취니 하는 특성이 엿보이는 것들에게는 소울테이커니, 소울디바우어니 하는 별명이 종종 붙기도 하고.
‘쳇, 빨리 말하라고 그런 건.’
투란이 소리 없이 투덜거릴 때, 이자닌이 묻는 말이 울렸다.
“누가 당한 거죠?”
툴로쉬가 바로 대답한다.
“도적 길드의 간부 중 한 명이라더군. 온건한 성향으로 욕심은 많아도 사람 다치는 일은 피하는 걸로 유명하다던데…….”
슬쩍 툴로쉬의 가면 속 눈길이 파쿠란을 향했고, 파쿠란은 그 흐릿한 말끝을 채우듯이 입을 연다.
“가르 영감이군요. 죽지 않고 몸져누웠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암살왕의 소울테이커에 당한 거라면 말라 죽는 중이겠어, 이자닌.”
다시 툴로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채로 말이 이어진다.
“그 영감이 쓰러진 덕분에 온건한 도적 편이 흔들렸고, 위험한 것을 느낀 도적 길드의 멤버들은 열심히 페브라 왕도를, 아니 이 왕국을 떠나고 있다더군. 그게 벌써 몇 년 진행된 일이야. 그래서 암살왕의 단검을 가진 쪽이 도적 길드의 정점을 차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거기 갑자기 아가씨가 등장했어. 지금 헌터 길드의 마스터가 털보란 별명이 붙게 한 수염까지 싹 밀어버린 것도 모르는 아가씨가 말이야. 자, 그래서 어쩌려는 거지?”
“에? 털보 마스터가 수염을 밀어요!”
이자닌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라 되물었다.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페브라 왕도의 헌터 길드 마스터는 여전하다 했는데, 대체 수염은 언제 없어졌단 말인가! 벡커드조차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한데 툴로쉬가 태연하게, 어딘가 뻔뻔한 태도로 말한다.
“응, 밀었지. 빚도 못 갚는 주제에 빳빳하게 수염 세우고 다니는 꼴이 거슬리잖아. 그래서 여기 온 날, 바로 싹싹 밀어줬어. 그게 한두 달 되었으려나? 꽤 소문이 퍼졌는데 못 들어봤어?”
“아, 네.”
이자닌은 문득 깨달았다.
남자 수염이 어찌 되든 말든, 벡커드에게는 중요한 소문이 전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