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0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5)
“수염 들이대고 권위를 세우던 길드 마스터가 수염을 날렸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다니…… 벡커드가 해준 이야기를 바닥부터 다시 더듬어봐야겠어, 이자닌.”
파쿠란이 한편에서 넋두리하듯이 중얼거렸다.
툴로쉬가 바로 이 말에 호응하듯 말한다.
“호오? 오랜만에 와서 접촉한 이가 회생의 벡커드? 그런데…… 헌터로 자리 잡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도적 길드와도 연관이 있었나? 흐흠…….”
“남의 과거에 너무 관심 갖지 마시고! 왕도의 일에 대해서 우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티 내고 싶으면, 일단 중요하다 싶은 일은 다 털어놓기부터 하시죠?”
이자닌이 삐딱한 말투로 차갑게 말하고 있었다.
가면 속에서 툴로쉬의 웃음소리가 조금 기묘하게 울려나왔다.
“이거 참…… 왕의 후예다운 아가씨네. 이러다 이야기로만 며칠 걸리겠는걸.”
투란은 이 말에 바로 동감하고 동의할 수 있었다.
오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게 무슨 몬스터의 수수께끼 같은 약점과 행태를 분석하는 것보다 더 까다롭고 이상한 말뿐이니까! 무엇보다 산돌프가 투란을 데려갔던 악마의 유산이 숨겨진 동굴에서도 이렇게 비비 꼬인 채로 사연을 듣지는 않았잖은가.
그야말로 투란에게는 툴로쉬, 이자닌, 파쿠란이 떠드는 이야기가 오락가락하고 뒤죽박죽이라 어려운 말투성이일 뿐이었다. 정말로 그냥 듣기에도 며칠 밤낮을 그냥 보낼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도대체 무슨 비전(祕傳)이라도 된 것처럼 저렇게 말 돌리고 있는 까닭이 뭔가?
이자닌은 툴로쉬의 말에 조금 더 차가운 표정과 말투로 대꾸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솔직하게 털어놓지 그래요?”
“음? 난 아주 솔직하게 터놓고 있잖아. 내 정체까지 툭 놓고 있을 정도로 말이야! 설마 내가 저 마법사가 말한 사람이 아닐까 봐 의심하는 건가? 그래서 솔직하지 못하다고 의심하는 거야? 진실을 말했는데 믿지 못한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지! 마법사, 그렇잖습니까?”
툴로쉬의 말은 빠르게, 가면 속에서 침이라도 튈 것처럼 열렬하게 흘러나오면서 파쿠란을 향해 정중한 물음을 쏘아 보내는 것으로 매듭짓고 있었다.
투란이 듣기에도 딱히 뭔가 잘못된 것이라 여겨지는 부분이 없었다. 그 탓에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그러네?’라고 고개를 살짝 끄덕일 지경이었는데, 이자닌은 전혀 아닌 모양이었다.
“아, 그러세요? 그러면 먼저 대체 여기 왜 와 있는가부터 설명을 좀 해주시죠? 전설적인 헌터 할배가 대체 왜 도적 길드의 일에 가면 쓰고 나타나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어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사람 기다리면서 싸움질하고 있던 거는 또 뭔가요? 눈에 띄고 싶으면 그냥 벌거벗고 왕도를 질주라도 할 것이지, 우리와 만나기로 해놓고 그러니까 그 의도를 모르겠잖아요. 그렇잖아요, 사람을 의심하게 만들어놓고 시침 떼는 할배!”
“가면 때문에 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할배 몰골이 아닌 것은 알 텐데, 너무하네. 흠.”
공손한 말투로 신랄하게 쏘아붙이는 이자닌이었지만, 툴로쉬는 그중 한마디인 ‘할배’란 것에만 툴툴거리는 듯했다. 그런 툴로쉬를 향해, 그 가면을 꿰뚫어 보겠다는 것처럼 이자닌은 눈을 가늘게 하고 노려봤다.
파쿠란이 다시 문에 등을 기대면서 한숨과 함께 말한다.
“이자닌, 너무 예민해. 툴로쉬, 우린 지금 그리 한가하지 못합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거, 마음에 새기고 제대로 이야기해야 해요.”
투란은 이자닌이 다리를 꼬면서 등을 뒤로 젖혀 긴 소파에 푹 기대는 것을 봤고, 툴로쉬도 맞은 편에서 조금 비슷하니 몸을 젖히는 꼴을 봤다. 파쿠란의 말에 뭔가 고집을 세우는 것처럼도 보였고 생각을 가다듬는 것으로도 보였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바로 입을 열 낌새는 없다. 그래서 투란이 대신 슬그머니 묻는 말을 꺼내놓으니…….
“칼질하고 덤비던 헌터들…… 뭣 때문에 거기서 그러고 있었어요? 덕분에 내가 칼 맞을 뻔했잖아요. 왜 그런 거예요?”
툴로쉬가 목뒤를 긁적이면서 뚱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사냥에서 파티 멤버를 잃고 돌아온 녀석들이었어. 사냥은 성공한 모양인데, 돌아와서 하는 말이 죽은 동료의 몫을 자기네가 가족에게 전할 테니까 내놓으라고 떼를 쓰고 있었지. 뭐라더라…… 음, 그래. 길드에서 그거 전한답시고 시간 끄는 것보다 자기네가 직접 전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도움이 된다고 말이지. 그러면서 죽은 동료의 계정을 아예 자기네한테 옮겨달라고 박박 우기고 있었어. 뭐, 정직한 녀석들이라면 그것도 괜찮겠다 하겠지만…… 평판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닌 녀석들이 그러고 있기에 끼어들어서 몇 마디 했다가 싸움 난 거지. 그냥 그런 일이야.”
“알아서 전해주겠다는데 왜 끼어들어요?”
이자닌이 툭 하니 물었다.
투란은 그 말투가 살짝 삐딱하고 비아냥거리는 듯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파쿠란도 문가에서 쓴웃음을 짓는 채로 한숨 쉬는 것이 동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툴로쉬도 씁쓸하게 대답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고 돈 받아가서는 자기 사정 때문에 잠깐 딴 데 쓰는 녀석들이 늘 있었으니까. 평판 좋은 녀석이라도 잠깐 빌려 쓰고 다시 채워놓으면 되겠지 했던 돈주머니를 날치기당해서 같이 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평판 나쁜 녀석들이 그러니 보기 짜증이 나잖아.”
“길드는 믿을 수 있고요?”
이자닌이 다시 툭 물음을 던졌다.
가면 구멍으로 툴로쉬의 눈동자가 빛나는 듯하며 대답이 바로 나온다.
“그러기 위한 길드니까. 계정이란 형식을 채택하고 개인의 신상을 감춰주는 까닭도 그런 때문이니까. 본인이거나 본인이 지정한 이가 아니면 보관 중인 돈이든 물품이든 내놓지 않는 규칙도 그 때문이지. 애초에 그 죽은 녀석이 파티 멤버를 죽은 다음의 수령인(受領人)으로 지정해놓지 않았다고. 따로 가족을 수령인으로 지정까지 해놨는데 내줄 수가 있겠어?”
“믿을 수 없는 녀석들에게 내줄 수는 없겠죠. 그런데 그게 지금 우리 상황에서 끼어들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요? 헌터 길드 창구에서 소란 떨고 있었다는 말은 길드에서도 내줄 낌새가 없으니 그런 거잖아요? 굳이 거기 끼어서 그렇게 대신 싸워줄 필요가 있었나요?”
“이자닌, 아까 저기 마법사가 말했잖아. 나는 헌터라고, 몬스터 헌터이면서 헌터 길드를 지키는 의무도 함께 받아들인 엘더. 그런 소란을 가라앉히려고 대충 꺼내주고 죽은 헌터의 가족을 모르는 척하는 꼴을 보고 그냥 둘 수는 없어.”
이자닌이 신중하게 짚는 물음에도 툴로쉬는 단호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투란이 불쑥 끼어들어 당황스러운 말투로 묻는다.
“꺼내줘요? 따로 받을 사람을 정해놨는데? 어째서?”
헌터 길드의 계정은 꽤 잘 보호되고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에 자신이 남긴 것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것. 그러니 어설프게 꺼내줄 일은 전혀 없다고 여겼는데, 지금 툴로쉬가 말하는 꼴을 보니 내줄 뻔한 것 아닌가!
툴로쉬가 투란의 물음에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여기 길드가 그렇게 망가져 있었다는 거지. 춤추는 산맥의 헌터 길드에서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움직이겠노라고 큰소리치고 그런 짓을 해서 불신받고 있었던 거야. 뭐, 나도 딱히 믿는다고 못 할 지경이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움직이길 바라니까, 오늘부터라도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줘야지. 그래서 끼어든 거야. 이자닌, 그쪽은 어떤가?”
돌연 앞뒤 자르고 던져진 물음에 이자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파쿠란이 대신 느릿하니 대답을 한다.
“어째서인가 칠왕국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 해야겠군요. 고대 육왕국의 한 곳이지만, 고대왕국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난 나라들이라 그런 경향이 짙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직접 맞닿은 고대왕국이 없어서 그렇다고 해야 할지…… 이곳을 브로큰 킹덤이라 부르는 것에 반발해서 그런 일이 시작되었다는 옛말도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길드의 상황까지 그런 식으로 변명할 수는 없겠지요. 어쨌든 헌터 길드처럼, 도적 길드도 유난히 이 칠왕국 영역 안에서는 규율이나 원칙은 옛날 것이니 밀어내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떠드는 말이 많기는 했습니다. 툴로쉬, 당신이라면 오랫동안 지켜봐 왔으니 더 잘 아는 일 아닌가요?”
“도적 길드까지 잘 지켜보지는 않았어. 대부분, 내가 겪어온 세월 속에서 늘 도적 길드와 헌터 길드는 따로 놀았으니까. 서로 교차하는 영역이 적다고 해야 할까? 몬스터 사냥에 나선 이들이 아니면 내 관심이 적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오랜만에 와서 뒤죽박죽으로 얽혀버린 상황이 이해가 안 되고, 당황스러워.”
툴로쉬는 목덜미를 긁적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투란은 입을 다물고 이 분위기를 지켜봐야 했는데…….
‘뭐라는 거야. 이게 무슨 이야기야?’
살짝 마음속에 품은 의아함을 되뇌었지만 드라고니아 또한 마찬가지인 듯, 어리둥절한 추측만 늘어놓고 있었다.
―글쎄, 길드니 뭐니 하는 얘기는 전혀 알 수가 없군. 우리가…… 드라코눔이 겪은 춤추는 산맥의 길드는 강한 결속력을 지녔다고만 하던데 말이지. 이건 뭔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다투는 이야기처럼 들린다만.
물론 투란에게는 이 또한 밑도 끝도 없이 엉뚱한 감상이었다!
‘그건 또 뭔 얘기냐고!’
저절로 이마에 핏대가 돋으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는데…… 이 사이에 마음을 정한 듯, 이자닌이 다시 말문을 열고 있었다.
“간단히 한 가지, 반드시 짚어두죠. 엘더 헌터가 왜 지금 여기 와 있는 건가요? 이 왕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여기 와 있는 거죠? 그것부터 확실히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음? 흠…… 그거 딱히 확실히 하고 뭐고 할 일은 아닌데…… 아직 못 들었나? 칠왕국의 재앙, 언제 터질지 모르지만 터지면 몬스터의 대범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재앙이 몇 가지 정리되었잖아. 정말로 못 들었나 보네? 갈기 산맥의 거미 군단, 그보다 조금 더 깊은 자리인 좁은 평원의 몰튼노트…… 상금만 금전 몇 천 닢에 해당되는 재앙들이라고. 그런데 그 재앙이 해결되는 거랑 맞물리면서, 그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동시에 산맥 안쪽 깊은 곳에서 거대한 영역을 지배하는 몬스터가 소멸하기도 했어. 그 영역 안의 몬스터들이 제약이 사라지자마자 풀려나서 밖으로 몰려나오는 중이지. 한마디로 말해서, 브로큰 킹덤의 헌터 길드…… 칠왕국의 헌터 길드가 각자 따로 놀아서 어떻게 할 수 없는 큰일이 터지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 어떻게든 조져…… 어흠! 다독여서 원래 길드의 기능을 발휘하게 해야 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칠왕국이 다시 무너져 내리고 또 다른 왕국이 설 때까지 여긴 또 브로큰 킹덤이란 호칭에 걸맞은 곳이 될 테니까. 그래서 내가 와야 했어. 대강 이 정도면 충분한가?”
툴로쉬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을 맺었다.
이자닌은 그 얘기를 잠시 눈만 깜박거리면서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자닌의 눈길이 파쿠란을 향했다.
마치 파쿠란에게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뭐 아는 것 있냐고 묻는 듯한 눈길이었다.
이에 파쿠란도 문에 기댄 채로 눈을 깜박이고 있다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입을 여는데…….
“오는 길에…… 엘데인에서 꽤 위험한 일을 겪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전부 하나로 엮인 일이었습니까? 몰튼노트의 평원은…… 그걸 대체 무슨 수로 해결한 겁니까? 거기 몰튼노트는…… 신장(身長)만 따져도 백여 미터짜리잖아요! 아니, 그보다 그 거미군단은 무슨 수로!”
말이 나오면서 점차 격해지고 있었다.
그런 목소리가 울리는 사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놀리는 말을 함께 들어야 했다.
―음, 결국 범인은 너구나! 투란, 이 모든 일이 다 너 때문이었어! 니가 일을 저지르는 바람에 이 꼴인 거야! 이 복잡한 상황이란 거, 전부 네 탓이다!
‘닥쳐! 시꺼! 조용히 해!’
찍소리도 못 낸 채로, 그야말로 숨죽인 채로 투란은 몸을 움츠리고 오가는 이야기가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탓에 당황스럽다는 시늉을 하며 지켜보고 들어야 했다.
툴로쉬가 따지고 드는 파쿠란을 흘깃하고 이자닌을 보면서 말한다.
“오는 동안 소문을 듣거나 정보를 수집하거나 하지 않았나? 도적 길드라면 그런 일에 오히려 민감한 거 아닌가? 금전 수천 닢이 오가는 일인데…….”
“여벌의 목숨을 가진 입장이 아니니까요.“
이자닌의 대답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도적은 도적일 뿐, 여벌의 목숨을 갖춘 것처럼 몬스터 앞에 들이대는 것이 바보짓일 뿐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키득거리는 웃음이 툴로쉬의 가면 속에서 살짝 울렸다.
“뭐, 도적왕의 후예다운 말이군. 하지만 그 때문에 칠왕국의 정세(情勢)가 난장판이 되었잖아. 뭣 때문인가 캐다 보면 어느 정도 소문을 들을 수밖에 없잖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여기 온 건가?”
“라비엔에서 오다 보니…… 아주 급하게 오다 보니 들리는 곳마다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난잡하게 할 얘기를 들을 틈이 없었지요. 뭐, 중간부터는 파쿠란의 멋진 배를 타고 사람 없는 곳을 지나서 휙 하고 온 것도 있고…….”
이자닌이 고개를 젖히면서, 툴로쉬의 가면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말했다.
툴로쉬는 그런 이자닌과 문가의 파쿠란을 둘러봤다.
투란이 보니 툴로쉬는 도적 길드의 두 사람이 과연 이런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는가 하고, 잘 알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는 태도가 분명했다.
―넌 잘 아는 일이잖아.
드라고니아는 여전히 놀렸고, 투란은 더욱 굳게 답해야 했다.
‘닥치고 좀 있으라고! 오는 동안에…… 나랑 있는 동안에 이자닌이나 파쿠란이 저런 얘기 들을 틈은 없었잖아? 그럼 그 전에 어디선가 들었을 수는 없나?’
―음? 의심하는 거냐? 너도 엘더 헌터 흉내를 내는 거냐? 둘이 알면서 저런다고 추측하는 거야?
‘잘 모르겠어. 이게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되는 거지?’
투란은 기억을 되새기며 생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