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1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6)
Chapter 142. 페브라 왕도에서 Ⅶ
“그렇다고 치고, 서로 정보 교환이 이렇게나 곤란해서야 계속 함께 움직이는 것도 난감한 일만 잔뜩이지 않겠어? 그러면 아주 궁금하거나 필요하다 여겨지는 얘기만 나누자고.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이야기는 몇 가지 있을 테니까.”
‘……라고 한 다음에 대체 뭔 말이 오간 거야?’
투란은 멀뚱히 높이 솟은 건물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해야 했다.
볼수록 스타폴과 닮은 모양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왕도의 풍경, 왕성이라는 중심에서 돌출된 부분이 없다면 스타폴이 모양을 좀 바꾸었다고 여겨질 만한 광경이 다시금 투란의 마음을 두드렸다.
‘여기도 뭔 드래곤이 와서 난리 쳤나?’
―드레이크다! 드래곤이 아니야! 스타파이어를 드래곤이라 부르지 마!
‘에? 뭘 그리 따져? 도시를 담을 구덩이를 팔 정도면 뭐라 부르든 상관없잖아? 아니, 그게 아니고! 여기도 그런 것이 와서 구덩이를 판 곳에 도시를 지었냐고 궁금해하는 거잖아! 드레이크든 드래곤이든,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몬스터니까 뭐든 뭔 상관이냐고!’
투란이 거침없이 투덜거리니,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며 말머리를 돌린다.
―이 왕국은 이백…… 삼백 년이 넘지 않았다. 이 도시가 왕도라 불리며 형태를 갖춘 것도 그 시간을 넘지 못해. 단지 바퀴 도시의 형태는 브로큰 킹덤의 여러 곳에서 모방했다. 제법 깊은 안쪽에 있었으면서도 몬스터의 범람에도 싸우고 버티며 수백 년을 버텨온 도시가 스타폴이니까, 새로 지어지는 도시가 그 형태를 모방할 만했지. 하지만 여기는 스타폴과 지역적으로 차이가 나고 왕도로서 기능해야 하니까, 그 중심부에 왕성을 두고 요새화할 필요가 있어서 형태에 차이가 난 거겠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네…… 그런데, 이자닌은 어쩌려는 거지? 파쿠란은 이대로 두고 볼 생각인가 본데…… 아까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건지 넌 알겠어?’
투란은 앞서가는 이자닌의 주변을 살피는 시늉을 하면서, 그 뒤를 따르면서 다시 떠나온 길드 마스터의 방에서 오간 이야기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했다.
무슨 군부(軍部)가 어쩌고, 권한(權限)이 어쩌고 하더니 툴로쉬는 상아탑과 군단과 연계된 귀족들 쪽을 알아본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이자닌은 도적 길드 쪽을 뒤져서 장물(贓物)과 암살의 관계를 파헤쳐 본다는 대답을 했다. 그러고 나서 각자 조사한 것을 다시 만나 정보를 취합(聚合)하고 결론을 내리자 했다.
투란에게는 그게 대체 어떻게 그리 된다는 이야기인가 실로 아리송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냥 들은 대로 기억만 해두고 졸졸 따라다니며 칼부림 나는 일에만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칼부림 나면, 누굴 때려눕히고 누굴 지켜야 하는가 정도는 아주 명확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투란은 왠지 억울했다.
분명히 투란도 눈앞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인데, 왜 자기만 몰라서 어리둥절해하고 나머지는 다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가!
드라고니아는 혀를 차는 듯한 말투로 소리 없이 대답한다.
―간단한 역할 분담이었잖아. 파쿠란이나 이자닌이 손댈 수 없는 쪽으로 툴로쉬가 홀시딘과 협력해서 조사하고, 이쪽은 그냥 맡긴다는 거잖아. 몬스터 사냥에서도 역할 분담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그걸 굳이 가면 쓰고 만나서 얘기할 필요가 없잖아. 결국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는데 만나서 나만 칼 맞을 뻔했고!’
―그게 불만이었냐! 맞는다고 죽지도 않을 놈이!
‘불만이 아니라 중요하지! 죽느냐 마느냐가 아니고 칼 들이댄 흉악한 놈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아, 근데 어디 가는 거지?’
투덜거리다가 투란은 문득 주변 풍경이 급격하게 색채를 바꾸는 듯한 것을 느끼면서 한층 더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어째서 갑자기 음습하고 어둑한 분위기가 가득한가?
왕도의 풍경이라기보다는 엘데인의 한 귀퉁이 같은 느낌이잖은가.
그 모습에 파쿠란이 곁에 가까이 다가와 걸으면서 말한다.
“왕도의 치부(恥部)라 불리는 곳이야. 빈민(貧民)들의 거리라고도 하지. 놀랐나?”
“음? 아니, 어딘가…… 낯익잖아요, 라비엔이랑 꽤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투란은 슬쩍 엘데인의 풍경을 떠올리면서도 라비엔으로 떠넘기며 대꾸했다.
파쿠란이 그런 투란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하긴…… 라비엔을 봤으면 이 정도는 그저 갑옷 벗고 뒹구는 풍경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어. 하지만 투란, 갑옷을 벗었더라도 단검은 품에 감춘 채라고 생각해라. 여기서부터는 방심하면 곤란한 일이 많아.”
“그래요? 흐흠…….”
투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에게 돌진해오는 꼬마들 한 떼를 봤다.
자기네끼리 뭐라 떠들며 노는 듯한 모습인데, 서로를 보느라고 앞에 누가 있나 없나 전혀 신경도 안 쓰고 달리다가 투란이나 파쿠란에게 부딪힐 것처럼 보였다.
투란이 이를 옆으로 재빠르게 두어 걸음 피하고 보니, 파쿠란은 앞으로 손을 내밀면서 조금 전과 전혀 다른 음울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법사를 먹잇감으로 삼지 말라고 너네 아재비가 알려주지 않든?”
달려오던 꼬마들이 한순간에 허공에서 발을 허우적거리는 채로 뭔가에 매달린 몰골이 되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조금 전과 전혀 다르게 사색(死色)이 된 것처럼 보였고, 다급한 외침은 뒤늦게 터뜨린다.
“마, 마법사야!”
“마법사!”
“마법이야!”
그 외침과 함께 투란은 큰 건물의 뒤편으로 구불거리며 어둑한 광경에 어울리는 암울한 표정으로 가득한 채로 흘깃거리던 어른들이 움찔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꼬마애들의 외침 전에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지든 모른다는 듯이 맨바닥에 구르듯이 누운 채로 습기 찬 벽에 몸을 기대서 꼼짝도 않던 이들이 재빠르게 자리를 옮겨 피하는 광경이었다.
파쿠란이 그런 이들을 스윽 둘러보고, 어두운 풍경을 향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친다.
“그래, 내가 돌아왔다! 가르 영감을 보러 왔지! 가서 전해라, 마법사가 왔다고!”
투란은 가면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파쿠란을 볼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뭐라는 것인가. 여기서 저리 큰 소리를 내면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인가? 이런 파쿠란에게 이자닌은 뭐라 할까?
“엥? 이자닌?”
투란이 앞을 보니, 이자닌이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앞서가던 이자닌은 또 어딜 갔단 말인가!
―골목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나무판을 기대놓은 저기…… 저게 문이야.
‘뭐? 아니, 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야?’
투란은 당황스러웠다.
파쿠란은 갑자기 어둑한 거리를 향해 소리를 질러 대고, 이자닌은 문이 아닌 것처럼 꾸며놓은 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꼬마애들에게 애먼 마법을 걸자마자 뒤죽박죽이 된 것처럼 이상해지고 있잖은가.
‘이런 꼬마들에게 마법은 또 왜?’
뒤늦게 투란은 색다른 궁금증도 느꼈다.
넉넉히 잡아도 열 살이 되기 전의 꼬맹이들, 그 한 떼가 비록 소매나 팔 아래로 날카로운 꼬챙이를 하나씩 숨긴 채라 해도 파쿠란이 굳이 마법까지 걸 정도는 아닌 걸로 보였다. 오면서 지켜본 파쿠란이라면 마법 없이 그냥 손바닥으로 찰싹거리며 한 대씩 치는 정도로도 이 꼬마들을 혼내줄 수 있었다.
한데 굳이 마법을 쓰며 저리 소리치고, 애들은 공중에 매달아버리다니…….
―야, 저런 애들이 저런 흉기를 들었다는 것부터 정상이 아니잖아! 그건 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거냐?
투란의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 묻고 있었다.
‘응? 흉기? 꼬챙이 칼을 애들이 들면 안 돼? 저 정도는 그냥 몸을 지키려고 가질 수 있는 거 아냐? 맹수 새끼라든가 쪼그만 몬스터라든가 만나면 어쨌든 애들이라도 자기 몸은 지켜야잖아? 아, 너네는 안 그러나?’
인간적인 상식이 모자라서 묻는가 하고 투란이 되물었다.
곧바로 어처구니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대꾸가 돌아온다.
―투란, 알드바인에서 봤잖아! 안전한 도시 안에서는 애들에게 부엌칼도 들려주지 않는다는 거! 이 왕도에서 저런 애들이 저런 걸 가졌다는 것은 상황이 이상한 거라고!
‘에? 왜? 여긴 딱 엘데인이나 라비엔이랑 비슷하구만?’
―야, 이……!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여긴 인간의 도시이고, 맹수나 몬스터가 나돌아다니는 위험한 곳이 전혀 아니니까!
‘그런가?’
이렇게 투란이 드라고니아와 툭탁거리면서 갸웃하는 사이, 파쿠란은 손짓해서 애들을 더욱 높이 들어 올리는 마법을 보이며 말하고 있었다.
“둘 중 한 가지를 말해라. 너희의 아재비가 어디 있는가를 말하든 가르 영감이 어디 있는가를 말하든, 그러면 얌전히 땅에 내려주지.”
이미 파쿠란의 키보다 더 높이 꼬마들은 치솟은 채였다.
그냥 떨궈버리면 다칠 것이 뻔한 높이를 넘어서 계속 조금씩 허공으로 솟구치는 상황은 파쿠란의 위협이 진짜라는 증거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꼬마들은 그 작고 어린 모습과 다른 앙칼진 목소리로 저항하고 있었다.
“몰라요!”
“아재비가 뭔지 몰라!”
“가르 영감은 누군데!”
“내려놔, 이 사악한 마법사야!”
그나마 얌전한 외침은 이 정도였고, 그다음에는 투란에게 아주 낯설고 험한 욕지거리가 이어졌다. 그대로 떨어져서 다치는 것이 무섭지 않다는 듯한 그 태도는 투란을 어이없게 하면서도 감탄시켰다.
‘와, 도시에는 생각 없고 싸가지도 없는 애들이 있다더니! 얘네가 그런 애들인가 봐!’
이런 투란의 소리 없는 감탄에 파쿠란도 동의한 것일까…….
“모르는 일이라도 알아야 할 때가 아니냐? 정말 잘못 배웠군. 영악한 척하면서도 끝없이 멍청해. 내가 사악하다면……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지?”
파쿠란은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며 이리저리 뒤틀듯이 손목을 돌렸다.
꼬마들의 비명이 바로 터졌다.
“끼아악!”
“아, 아파앗!”
“으아앙!”
“꺼흐…… 꺼흑!”
목이 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몸이 뒤틀리는 고통이 이어지는 것을 격렬하게 드러내는 광경이었다.
다시 파쿠란의 손이 펼쳐지며 물음이 던져진다.
“자, 이제 말해봐라. 지나가는 사람 털라고 가르쳐준 너희 아재비는 어디 있나? 그걸 말하기 싫으면, 이 거리의 영감인 가르가 어디 있는가를 말하든가. 둘 중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면…… 사악한 마법사의 손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서 이 더러운 거리의 피얼룩이 될 수도 있어.”
이번에는 제대로 협박이 통한 모양이었다.
“몰라요, 엉엉…… 아재비는 숨어 있단 말이에요.”
“아재비가 우릴 때릴 거야! 으허헝.”
“가르 영감은 죽었다고요!”
“죽어서 자기 집에 파묻혔어요!”
두엇은 울고불고 정신 못 차리는 소리를 냈지만, 두엇은 필사적으로 사악한 마법사 파쿠란이 원하는 바를 맞춰주기 위해 애쓰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로잭 같은 독종은 없네.’
―뭐? 무슨 소리냐?
‘음? 아…… 샤오 마을에 살던 로잭이 저 애들만 할 때, 마을에 찾아온 이상한 사냥꾼이 뭘 묻다가 때렸거든. 로잭은 바로 그 사냥꾼한테 돌칼 들고 덤비면서 협박했어. 죽일 테면 죽이라고, 대신 너도 샤오덴 할배한테 죽을 거라고 말이야. 뭐, 나중에 할배한테 쳐 맞고 귀찮은 일 만들지 말라고 심하게 야단맞기는 했지만…….’
―어린아이는 보호해주는 거 아니었냐?
‘열여섯까지만. 그러니까 그 사냥꾼이 로잭을 죽였으면 샤오덴 할배한테 죽었을 거야. 아직 열두어 살 정도였을 때니까. 샤오덴 할배는 로잭을 매장하는 것부터 마을 규칙을 무시한 녀석을 죽여 처리하는 것까지, 그런 귀찮은 짓을 늘리지 말라고 로잭을 혼낸 거야.’
빠르게 투란이 지난날을 되새겨 대답해주고 둘러보는 사이에 파쿠란은 꼬마애들을 저편으로 내던지듯이 내려놔 줬다. 그리고 다시 음울하고 어둑한 거리를 향해 포효하듯, 그리 크지 않지만 포효하는 말투로 외친다.
“이 철없는 애송이들을 굳이 죽이지는 않겠어. 하지만 한 번 더 나와 내 일행에게 겁 없이 나서는 놈이 있다면, 그 구역의 주인을 찾아내 죽이겠다. 구역 주인자리를 내놓고 도망치는 몰골이 되기 싫다면, 얌전히 처박혀 있어라.”
―꽤 멀리 말을 전하는군.
드라고니아가 불쑥 짚는 말이었다.
‘뭐? 아, 파쿠란이 마력을 섞어 말한 거야?’
―그래, 확실하게 분위기를 바꾼 모양이다. 지켜보는 자는 늘어났지만 적대적으로 행동할 분위기는 확실히 줄어들었어.
잠시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살짝 파쿠란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바로 당당하게 어둑한 거리의 주인처럼 한 걸음 내딛는 파쿠란에게 투란은 속삭인다.
“어째죠? 이자닌, 따라가요?”
“쫓을 수 있어?”
“대강 흔적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쫓아가. 가는 길에 방해하는 거는 닥치는 대로 부수고, 되는대로 큰 소란을 일으키면 좋아.”
“에? 아, 네! 그러죠.”
조금 의아한 말이었지만 투란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이자닌이 살짝 열고 지나간 나무판부터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