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1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7)
콰직!
여러 장의 판자가 한순간에 깨지면서 똑같은 파열음을 한 가닥처럼 울려냈다.
그리고 드러난 뻥 뚫린 구멍…… 투란은 바로 그 구멍 속으로 발을 딛고 둘러봤다.
어두운 통로가 저 멀리로 이어졌고 빛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한 광경이 보였다. 그 풍경을 향해 투란의 발이 거침없이 내딛어졌고, 통로에 세찬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럼, 가볼게요!”
파쿠란을 향해 한마디 던지면서 투란은 냉큼 통로를 빠르게 걸어나갔다.
서두르지는 않고, 뛰지 않으면서도 뛰는 것만큼 빠른 걸음이었다.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사람도 물건도…… 앞서간 이자닌의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으…… 그 틈에 어디까지 간 거야?’
―아래로 통하는 구멍이 있다. 지하로 내려간 모양이야.
‘아? 저긴가?’
드라고니아의 말에 따라 투란은 조금 더 발을 빨리 움직였고 금방 가려진 구멍을 볼 수 있었다. 어두우면서 튀어올라온 계단 아래쪽이기에 보이지 않았던 구멍이었다. 통로보다 더 어두운 그 구멍 아래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투란은 그 구멍 안으로 냅다 뛰어들었다.
대강 4, 5미터를 내려왔다 싶을 때 발끝이 물에 닿았고, 발가락이 담가지는가 싶을 때 바로 단단한 돌바닥을 느낄 수 있었다.
‘흠? 이게 뭐야?’
살짝 몸을 낮춘 채로 투란은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나무판자로 가려지고 허름했던 위쪽 통로랑 다르게 물이 흐르는 이 아래편의 통로는 오히려 더 튼튼하고 정리된 모양이었다. 2, 3미터의 높이와 폭이 가지런한 것이 처음부터 그런 규격을 맞춘 듯했고, 바닥에 흐르는 물조차도 일부러 어딘가에서 끌어오는 듯한 느낌…….
―하수로(下水路)야. 도시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물이 넘칠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둔 시설구조물이다. 거미그물처럼, 도시 아래에 펼쳐놓은 미로(迷路)처럼 자리 잡고 있어. 이자닌은 여길 아는 모양이군. 꽤 빠르게 움직인다.
드라고니아의 말을 들으면서 투란은 재빨리 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것보다 미로란 한마디가 이 안에서 길을 잃거나 이자닌을 잃으면 다시 쫓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뜻으로 투란에게 들린 것이다. 때문에 투란은 내달리면서 재빨리 윌라이트에 마음을 썼고, 프로브를 빠르게 방출해냈다.
‘놓치지 않게 제대로 좀 붙여놓으라고.’
―놓칠 리는 없을 거다. 꽤 세게 발소리를 내고 있으니까. 한데 이자닌이 가는 쪽에서 다른 발소리가 있군. 들리나? 은밀히 발 딛는 듯한 낌새잖아.
‘그래, 들었어! 프로브가 도착하기 전에 기습당하려나? 에잇!’
투란은 더욱 빠르게 뛰면서 숨을 모아 외쳤다.
“같이 가아아!”
큰 목소리로 통로를 울려 이자닌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린 셈이었다.
이자닌만 달랑 덮치려 녀석들에게 뒤따라가는 자신을 알려 함께 처리하라고 부추기며 잠시 주춤할 망설임을 선물한 셈이었다.
―호오? 통한 모양인데? 발을 멈추고 널 기다린…… 이자닌이 먼저 공격하는데?
‘엥? 아! 이자닌 예민하잖아! 아흐!’
후욱 숨을 세게 들이쉬면서 투란은 직각으로 꺾인 통로 두엇을 지나서 이자닌이 보이는 자리까지 단숨에 뛰어갔다.
짜악! 피이잉!
이자닌의 손에 들린 채찍이 허공을 찢고 날아가는 광경이 투란에게 보였다.
숨어 있으면서 투란까지 한꺼번에 기습하려던 녀석들이 통로 한편에서 비명을 지르면서 채찍에 맞거나 그 끝자락에 목이 감겨 당겨지는 중이었다.
―딱히 끼어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만?
드리고니아가 중얼거리는 말에 투란도 바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기습하겠다고 하수로의 한편, 어두운 그늘에서 기다리다가 느닷없이 채찍에 쳐 맞고 감겨 나오는 쪽이 더 불쌍한 상황이잖은가. 이자닌보다 저 녀석들이 더 보호가 필요해 보인다!
게다가 이자닌은 한두 대 치고 묶어 당기는 걸로 끝낼 생각이 없는 듯…….
“가르 영감 어딨어? 어차피 찾아낼 거야. 입 다물어서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벌로 죽든가, 아니면 입을 열어 내 시간을 아껴준 보답으로 살든가. 어느 쪽이야, 잽싸게 결정해!”
채찍에 감겨 당겨진 녀석의 목 줄기에 단도를 들이대며 으르렁거리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투란은 기습하려던 녀석들이 바닥에 떨군 단도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를 느끼면서 가면 속에서 낯을 찌푸렸다.
‘독인데?’
알드바인에서 봤던, 맹수 사냥에 종종 쓰이는 마비독이었다.
목적이 마비시키는 것이라 하지만, 얕은 물에 떨궈져서 냄새를 풍길 정도로 많이 사용한다면 심장까지 마비시켜 죽일 수도 있어서 분명히 독극물로 분류되었고 사람에게는 느리게 죽이는 독약이라 했다.
이자닌이 먼저 제압하지 않고 당했다면 투란은 지금 그 해독약 찾으러 가야 할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투란은 채찍에 맞아 쓰러져 신음하는 녀석에게 주의하며 주변을 살피는 채로 이자닌이 하는 짓을 지켜보기로 했다. 독 바른 칼 들고 덤비려는 녀석들이니, 이자닌이 저러는 것은 그나마 상냥하게 상대를 배려해서 많이 봐준다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투란의 생각과 다르게 목에 채찍이 감긴 채로 목 줄기에 칼끝이 닿은 작자는 이를 상냥한 배려로 여기지 않았다.
“미친년! 날 죽이고 네년은 무사할 줄 알아? 여기가 어딘…….”
오히려 성내는 그 목소리가 어두운 통로를 세게 울리는 것을 들으며 투란은 이자닌의 뒤편에서 등을 맞대고 서며 재빠르게 ‘스틸레토’라고 중얼거리며 손을 움직였다. 홀시딘이 내준 마법 무장, 그 허벅지를 감싼 철갑 속에서 스틸레토 두 자루가 툭 튀어나와 투란의 손에 쥐어졌고 곧바로 허공을 쿡쿡 찔렀다.
티팅거리는 소리가 가볍게 몇 번 울렸고, 손톱만 한 쇳조각 몇 개가 벽에 박혔다.
‘헐? 이거 뭔데 돌에 팍팍 박혀?’
쳐냈으면서도 투란은 놀랐다.
빠르지만 가벼운 것들이었고 어렵지 않게 쳐냈는데 물기를 머금은 돌벽에 그대로 박히고 있었다. 저 정도면 철갑이라도 관통해서 뼈에 닿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것은 통로를 꽉 채우려는 듯이 넓게 펼쳐진 그물이었다.
―투망(投網)이로군. 저기 단도에 발린 것과 같은 독에 잔뜩 절여놨는데?
그 짙은 냄새 덕분에 투란은 굳이 드라고니아의 말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거참…… 살벌한 곳이네.’
바로 꼬챙이 칼을 거꾸로 잡으며 뭉툭한 칼자루로 허공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면서도 툴툴거리는 투란이었다.
세차게 날아들던 그물이 허공에서 출렁이며 잠깐 멈춰졌다.
그물 사이에 날카로운 추가 고르게 붙어 있었고, 그물줄에는 철사를 감고 끊어 가시 같은 장식까지 해놓은 것이 보였다. 도대체 이런 그물을 어떻게 쏘아냈는가를 신기하게 여길 모양이었다.
투란이 그물을 감상할 때, 저쪽에서는 투란이 한 짓에 대해 놀란 외침이 터졌다.
“뭐야? 오러 윌더냐! 이런 빌어먹을!”
‘응? 에어 그립을 알아봐?’
이럴 때는 보통 칼자루에서 무슨 마법이 발휘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텐데, 상대방은 투란이 오러의 재주를 부렸다는 것을 바로 간파하고 있었다. 이 어두운 통로에서 저런 관찰이 가능하다면…….
투란은 입을 다문 채로 저쪽을 주시했다.
지나온 통로의 굽은 한편에서 크로스보우에 원통을 얹은 듯한 무기를 든 작자가 보였다. 그는 곧바로 손에 든 것을 바닥에 떨구면서 투란을 향해 돌격해오고 있었다. 입으로는 놀란 소리를 냈지만 그 몸은 투란이 오러 윌더이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움직이는 셈이었다.
그 순간이 살짝 지나고 공중에서 여러 가닥의 에어 그립에 잡혀 멈췄던 그물이 바닥에 떨궈졌다. 얕은 물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를 지우는 듯한 거센 발구름과 함께 투란을 향해 창이 찔러왔다.
―호오? 소매 속에서 창인가?
드라고니아가 재미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투망을 쏘아내고 놀란 척하던 작자는 헐렁하고 넓은 소매 안에서 기다란 창을 뿜어내서 투란을 찌르려 하고 있었다. 보는 눈이 착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면 저 소매는 창을 담아둘 수 있는 마법도구인 셈이었다.
‘꽤 날카롭잖아!’
게다가 그 창끝의 예리함에서 오러 윌더가 몸을 지키는 오러 가드도 관통시킬 위력을 분명히 느낄 수도 있었다.
바로 두 자루 꼬챙이 칼이 투란의 손에 똑바로 쥐어진 채로 교차했고, 창대를 가위처럼 물고 옆으로 밀어버렸다.
푹, 돌벽에 닿은 창끝이 가차 없이 파고들 때 투란은 손이 바르르 떨리며 칼자루가 튕기는 것을 깨달았다. 창을 통해 미묘하게 전해진 약한 힘, 그 섬세함이 투란의 손에 스며들며 무기를 놓게 한 것이다.
그리고 소매 속에서 뿜어져 나온 장검이 그 끝을 부르르 떨며 투란의 목과 가슴을 과녁 삼아 찔러오고 있었다.
‘야핫, 이 아저씨 재밌네?’
투란은 생각했고, 투란의 두 손은 그 생각과 무관하게 움직였다.
한 손은 주먹을 쥐었는데, 손등을 타고 뻗어나온 칼날이 장검을 비스듬히 비껴내며 쳐냈다. 다른 한 손은 엉뚱한 곳을 향해 갈고리처럼 손가락을 굽히고 꿈틀거리는 시늉을 했다.
“크엇! 이……!”
주먹 위로 뻗은 칼날은 홀시딘이 장담한 대로 마법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유틸리티 브라켓에서 너클 블레이드였고, 다른 한 손의 움직임이 자아낸 에어 그립은 강력하게 덤벼든 자의 목 줄기를 움켜쥐며 숨통을 조인 것이다.
곧바로 투란은 에어 그립을 발휘한 손을 크게 휘둘렀고, 습격자를 높이 매달아 창이 꽂히지 않은 다른 벽에 내동댕이치듯이 걸어놓은 꼴을 만들었다.
등짝에 센 충격을 받으며 다시 신음하는 소리를 내며 습격자가 축 늘어졌다. 곧바로 그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온다.
“왜 내 몸이! 이 새끼, 무슨 짓을……!”
투란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오러의 기술, 에어 그립을 이용해서 머리와 몸의 연계가 되는 목을 마비시켜 제압하는 이 방법은 키린이 알려준 왕가의 무투술이라고…….
그 대신인 것처럼 이자닌의 목소리가 차갑고 날카롭게 울려퍼진다.
“꼴통 아저씨, 여전히 생각 없이 꼴통 짓을 하네?”
습격자는 그제야 이자닌을 제대로 본 듯,놀란 소리를 힘없이 내고 있었다.
“누가 꼴…… 너, 이자닌! 왜 네가?”
이자닌이 한숨을 쉬며 자신이 잡아 심문하던 녀석의 머리를 단검 자루로 후려쳤다. 그 몸이 바닥에 축 늘어지는 것을 걷어차서 저쪽 한편에서 신음하는 녀석 곁으로 날려 보낸 다음에 이자닌의 입이 다시 열린다.
“설마 나라는 거 모르고 덤볐다는 말을 하려는 거는 아니지, 꼴통 아저씨?”
투란이 벽에 걸어놓듯 붙잡은 습격자가 입을 뻐금거리는 꼴은 아무래도 그 말을 하려는 듯한 몰골이었다. 하지만 그게 굉장히 부끄러워서 바로 소리를 내지는 못하는 표정, 그 틈에 투란이 먼저 이자닌에게 묻는다.
“이 아저씨 이름이 꼴통?”
이는 이자닌보다 먼저 꼴통이라 불린 습격자의 대답을 끌어냈다.
“재스퍼다! 내 이름은 재스퍼야! 꼴통이라고 부르지 마!”
“흠? 재스퍼……?”
투란이 그 이름을 되뇔 때, 이자닌이 비아냥대는 소리로 말한다.
“꼴통 재스퍼. 앞뒤 가리지 못하고 사고부터 쳐댄다는 대책 없는 짓 때문에 별명이 꼴통인 재스퍼 씨야. 요새도 다들 꼴통이라고 부를걸? 그렇지, 꼴통 아저씨?”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그게 대체 언제 적 이야기냐고! 넌 갑자기 나타나서 왜 사람 욕을……!”
재스퍼가 버둥거리려는 몸짓을 시도하며 징징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몸짓은 축 늘어진 몸이 살짝 꿈틀거리는 정도로 끝났고, 그 말은 이자닌의 한층 더 심한 비아냥에 싹둑 끊겨야 했다.
“오랜만에 보자마자 사람 몸에 아머 피어싱 조각을 내던져놓고는 누군지 몰랐다는 척하는데, 꼴통 소리 듣는 게 당연하잖아? 왜 그랬는가 좀 들어보자고. 멱을 따주기 전에 나한테 무슨 원한을 품었나 궁금하거든. 자, 말해봐.”
“차, 착각한 거라고! 요새 상황이 험악해서 착각한 거야! 너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어, 정말이야 이자닌!”
재스퍼는 힘없는 목소리를 내서 열심히 힘주는 말투를 꾸미며 얼굴 붉힌 채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이 불쑥 이자닌에게 묻는 말을 꺼내니…….
“이자닌, 나도 지금 착각하면서 이 아저씨 목뼈를 분질러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지?”
“잠깐만 참아봐. 나도 이 꼴통 아저씨 뱃살이 잘 구운 고기로 보이는 착각 때문에 배를 가르고 싶은데 참고 있거든. 나중에 눅눅하게 젖은 장작으로 착각해서 도끼자루로 잘근잘근 팰 수 있을 테니까, 잠깐만 참아.”
이자닌은 길게 대꾸하며 진심을 가득 담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스퍼가 해쓱해진 표정으로 눈을 껌벅이더니, 겨우 머리를 쥐어짜 낸 듯한 말을 한다.
“가, 가르 영감님 보러 온 거잖아! 아, 안내해줄게!”
퍼억!
이자닌의 주먹이 시원하게 재스퍼의 볼에 꽂혔다.
투란이 그 주먹질에 맞춰 에어 그립을 풀었기에 재스퍼는 바닥에 철퍼덕 자빠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