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1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8)
“한 번만 더 착각해봐! 눈알을 확 발라버릴 줄 알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눈알 따윈 필요 없잖아! 아, 목소리도 못 알아들었으니 귓구멍도 다시 팍 뚫어줘야 하나? 억울한 표정 짓지 말고 발딱 일어나서 안내해! 저 얼간이들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닌 줄 알지? 너넨 한번 더 까불면 죽는다는 거 알고 그냥 자빠져 있어라!”
신랄하고 차가운 이자닌의 말은 재스퍼를, 숨어 있다가 채찍에 먼저 맞아 기습에 실패했던 녀석들을 사납게 썰어버리는 듯했다. 그 효과는 확실해서 재스퍼가 엉거주춤하니 몸을 일으키며 급하게 대꾸하게 했다.
“알았다고! 험한 소리 안 해도 잘 알아듣는다고! 어이, 일어설 수 있나? 그러면…… 몸 추스르면서 계속 이 자리 지키고 있어. 나는…… 가르 영감에게 손님을 데려갈 테니까. 걱정 마라, 이자닌은 가르 영감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테니까.”
두서없는 듯하면서도 빠른 말에 저편에서 몸을 굴려 일어서던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스퍼는 두 번 확인하지 않는다는 듯이 창과 검을 챙기며 앞장섰고, 이자닌에게 작게 고갯짓했다.
이자닌이 바로 재스퍼의 뒤를 따르고, 투란도 떨궜던 꼬챙이 칼을 챙기며 이자닌의 뒤를 따랐다.
재스퍼가 가는 길은 왔던 쪽과 다른 방향이었고, 직각으로 굽은 통로를 두어 곳 더 돌아서 길게 이어진 통로를 서넛 정도 거쳤다.
따라가며 투란이 가만히 보니 한두 번 다녀서는 이 어둠 속에서 제대로 방향 잡을 리가 없을 듯이 복잡한 하수로였고, 가끔 허리까지 물이 차 있는 곳도 있었다.
‘여기도 알드바인처럼 상아탑이 관리하나?’
투란은 문득 알드바인의 지하, 상아탑이 직접 마법으로 관리하는 미궁(迷宮) 같은 수로(水路)를 떠올렸다. 어설프게 프로브를 움직여서는 들키지 않고 조사하기 어렵다 해서 그 입구와 노출된 출구 몇 곳만 외부에서 확인하고 말았다. 그러니 거기 들어가면 이 도의 하수로와 닮은 풍경을 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상아탑의 마법사가 직접 관리하는 낌새가 없다. 아니, 마법으로 관리하는 기척이 전혀 없다고 해야겠군. 덕분에 저렇게 숨어 다니는 작자도 있고, 아예 숨어지내는 작자도 있는 모양이고 말이야.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강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그런가? 그런데…… 어째 점점 지저분해지잖아? 왕도라는 도시인데 이런 지저분한 하수로를 그냥 두나?’
―투란, 하수로는 원래 지저분하다!
‘엥? 왜!’
―오물(汚物), 버리는 물과 오물을 도시에서 밀어낼 목적으로 만들어지니까! 그나마 이 정도는 다니는 녀석들이 정돈해서 깨끗하다 할 지경이라고!
‘헐? 그럼, 알드바인 아래도 더러운 거야? 으아, 안 들어가 보길 잘했네!’
―아니, 거긴 마법으로 정화시켜서 물을 재사용하는 곳이라 전혀 더럽지 않아.
‘엥? 뭐야, 그건!’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 사이로 뭔가 덜렁거리듯이 섞인 것을 보며 투란은 소리 없이 투덜거렸다. 다른 도시라 해도 어쨌든 도시의 하수로란 점은 같은데 어째서 알드바인과 페브라 왕도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
―사람이라고 다 똑같지 않잖아. 도시라고 다 똑같을 리가 있냐!
‘어? 아, 그런 건가.’
드라고니아의 핀잔으로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이 왕도는 상아탑의 도시보다 더럽다고…… 단지 지하의 풍경만이 아니라 오가며 본 거리 또한 그렇다는 것을 되새긴 셈이었다. 어쩌면 그 차이는 왕이 다스리는 도시와 마법사가 다스리는 도시의 차이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이 새로운 풍경에도 슬슬 투란이 지루하다 느낄 때…….
“이제 다 왔어, 이자닌. 가르 영감을 보고 너무 놀라지 말라고.”
재스퍼가 걸음을 느릿하게 하면서 말하고 있었다.
이자닌이 묻는다.
“왜?”
“왜냐니…… 알고 찾아온 거 아니었어?”
재스퍼는 의아해서 되묻고 있었다.
곧바로 이자닌의 단도가 재스퍼의 어깨에 얹어지며 차가운 말이 나온다.
“재스퍼, 꼴통 소리 듣기 싫으면 어설프게 간 보는 시늉을 하지 마! 왜 내가 가르 영감을 보고 놀랄 수가 있는지, 까불지 말고 말해!”
단도의 끝이 까닥이며 재스퍼의 볼을 긁적였고, 재스퍼는 볼이 뚫리는 것을 피하는 고갯짓과 함께 급하게 말한다.
“다쳤잖아, 가르 영감이! 그래서 제정신이 아니라서 여기 숨은 거고, 나도 그래서 고용돼서 지키는 거라고! 하지만 벌써 한 달 넘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영감한테 매인 탓에 다들 초조해하는 중이고…….”
“다들?”
이자닌이 다시 짧게 짚었고, 재스퍼는 한숨 쉬며 대답을 잇는다.
“영감한테 신세 졌고, 영감 편이라고 알려진 녀석들 전부. 아, 몽땅 여기 와 있는 거는 아니고…… 나처럼 침입자를 맡는 호위랑, 영감 간호하는 몇 명 정도가 머물고 있을 뿐이야. 나머지는 영감 패거리를 수습하느라 도시 안에 숨어서 바쁘고…….”
“어디야?”
이자닌은 재스퍼가 발을 멈추자마자 물었다.
재스퍼가 바로 벽의 한곳을 손으로 짚었다.
벽돌 하나가 부드럽게 안으로 밀려 들어갔고, 그 옆의 벽이 크륵거리며 바닥 긁는 소리와 함께 안으로 스며들면서 미끄러져 열렸다. 열린 벽에는 통로와 나란히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투란은 그 광경을 보면서 ‘더 아래로?’라며 중얼거렸다.
이자닌이 그 계단을 흘깃하고 묻는다.
“함정은?”
재스퍼가 계단을 먼저 밟고 내려서면서 대답한다.
“내가 밟는 쪽으로 밟고 따라와. 목숨이 위험한 함정은 없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위험하다 싶으면 뒤로 빨리 물러서기만 해. 통로를 막는 벽이 떨어지는 것뿐이니까. 걱정 마, 그렇게 갈라져도 내가 다시 와서 데려가 줄 테니까.”
그다음에 투란은 재스퍼의 걸음이 계단의 왼쪽, 오른쪽을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계단 하나를 세 부분으로 나눠서 적당히 밟는 듯한 모습이었다.
―흠, 밟으면 정말로 천장이 떨어지는 모양인데? 순전히 기계적인 구조만으로 이뤄져 있어. 이런 하수로에 저런 거 설치하는 짓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제법이야.
‘여기 만들어진 다음에 만든 통로야?’
투란이 드라고니아의 말투에서 느껴진 바를 바로 물었다.
―그래, 이 하수로가 완성된 다음에 나중에 다시 파내고 끼워 붙인 모양이다. 하수로의 구조를 해치지 않고 겹쳐 만들었으니, 보통 재주로는 안 되는 일이지. 인간의 몸으로 만든 곳인지 의심스럽군.
‘마법으로 만든 걸 수도 있지. 만든 결과물에는 마법의 흔적이 없어도 말이야.’
투란은 이자닌처럼 재스퍼의 걸음을 흉내 내면서 게단을 내려갔다.
대강 이십여 미터의 계단이 끝난 다음에 다시 통로가 나타났다.
횃불이 좌우로 걸려 밝았고 물의 흐름이 전혀 없는 말끔한 통로였다.
“기름 냄새?”
투란은 그 통로에 발을 딛자마자 들으란 듯이 중얼거렸다.
이자닌도 바로 묻는다.
“횃불 걸고 기름칠까지 해놓다니, 이거 무슨 배짱이야?”
재스퍼가 어른거리는 횃불 아래에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너네, 무슨 개냐?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있어?”
투란은 이자닌을 봤고, 이자닌은 발끈해서 재스퍼를 향해 대꾸한다.
“꼴통! 오러 마크를 찍어놓으면 뭘 해! 눈과 귀만 신경 쓰고 코와 혀는 없는 취급이라니! 감각을 강화해도 생각이 없으면 대체 어디다 쓰냐고!”
“꼴통이라고 하지 말라고! 젠장, 들이대고 맡는 시늉도 안 하고 어떻게 기름 냄새를 단번에 알아차리냐고! 너네가 이상한 거라고! 암튼! 다 왔으니까, 어서 가자고. 안쪽에 안전문이 있어, 그 너머로는 여기서 불을 내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투덜거리며 재스퍼가 통로를 나아갔고, 한 굽이 돌아선 다음에 문이 나타났다.
투란은 그 문을 보고 가면 속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나무잖아?’
불을 걱정 말라 하더니, 정작 문짝은 무슨 통나무를 썰어 만든 꼴이었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이런 투란의 의혹에 답한다.
―속은 쇠다. 방열 구조를 갖췄군.
‘에? 그런 거냐.’
납득하면서 투란은 소리 내서 궁금해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자닌은 재스퍼에게 묻고 있었다.
“기름칠한 통로에 잘 타는 통나무 문짝이야? 이거 정말 숨어 있어도 되는 곳 맞아?”
재스퍼가 문을 두드리며 대답한다.
“맞아, 맞다고! 이 소리 들으면 알잖아, 이게 그냥 통나무가 아니란 거.”
“안에서 숨 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네.”
이자닌은 둔탁한 나무 속이 조금 맑게 울리는 것을 들으면서도 투덜거렸다.
그러는 사이 문이 열렸고, 문 너머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누군가가 재스퍼를 보며 속삭인다.
“재스퍼? 혼자 아니야? 누구지?”
“이자닌이 찾아왔어. 가르 영감을 만나겠다고.”
재스퍼의 말은 문 너머를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이자닌? 아니, 그 이자닌! 신랑 패고 한몫 챙겨 간 이자닌이 돌아와? 왜?”
퍼엉!
재스퍼가 뭐라 하기 전에 이자닌이 냅다 문짝을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가며 외친다.
“신랑은 뭔 신랑이야! 가르! 이 영감탱이, 어디 있어! 당장 나와!”
투란은 문 뒤에서 고개 내밀고 떠들던 작자가 이자닌에게 밟히는 광경과 함께 훤히 열린 문 너머의 풍경을 봤다.
넓고 큰 홀…… 천장에는 둥근 바퀴에 등불이 잔뜩 걸려 있었고, 홀의 한 곳은 퍼브의 바 모양이 보였다. 그 반대편으로 투명한 장막이 드리워진 큰 침상이 놓여 있었고, 침상 위에는 얼핏 봐도 나이가 있어 보이는 누군가 드러누워 꼼짝도 않는 채였다.
“크억! 그만 밟아! 아프다고! 젠장, 내가 뭔 틀린 말을 했다고!”
밟히는 누군가가 이자닌에게 항의했지만, 이자닌은 그 옆구리를 걷어차서 저쪽 바로 밀어 보낸 다음에 바로 침상 쪽으로 내달았다.
“가르! 이 망할 영감! 셋…… 아니, 오랜만이니까 다섯까지 넉넉하게 세주겠어! 발딱 일어나지 않으면 칼로 가슴을 찍어주고 여기 불 질러 버릴 줄 알아!”
누가 들어도 침상 위에서 꼼짝 않는 이에게 말하기에는 이상한 협박을 하는 이자닌이었다. 그 뒤를 졸졸 따라가던 투란도 나직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데, 그럴 거야?”
이자닌은 코웃음과 함께 바로 셈을 시작한다.
“하나!”
재스퍼가 밟히고 채여 구른 자를 일으켜 세우다가 당황해서 외친다.
“이, 이자닌! 그런 억지가……!”
그 곁에서 바로 밟히고 차인 쪽도 놀라 외친다.
“도대체 그건 무슨 생떼야! 영감님이 정신 차릴 정도면 우리가 여기 숨었겠냐고! 아무리 떠난 지 오래되었어도 여기가 어떨 때 쓰는 은신처인가는 알잖아!”
투란이 흘깃 그들을 보고 이자닌을 보니,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셈만 한다!
“셋!”
그 셈하는 소리에 투란이 흠칫했다.
“응? 둘은 없어?”
치잉, 단검 빼 드는 소리와 함께 이자닌이 아주 스산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문가에서 밟히고 차인 자 말고도 침상 근처와 바 언저리에서 멍하니 있는 이들이 서넛 있었다. 하지만 재스퍼를 비롯해 모두가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면서 ‘정말로 불 지르려고?’ 하는 의아함만 가득 드러낼 뿐이었다.
이자닌은 그런 지하 은신처, 홀의 모두를 향해 선언하듯 외친다.
“다섯.”
둘과 넷을 건너뛴 셈을 끝내자마자 이자닌은 바로 침상을 향해 빼 든 단검을 냅다 던졌다.
장막을 관통한 단검이 바로 누운 이의 몸통에 꽂혔다.
재스퍼가 바로 비명을 질렀다.
“우아앗! 이자닌, 진짜로!”
그 곁에서 함께 놀란 소리가 터진다.
“토치 라이터는 왜 꺼내! 진짜로 불까지 지르려고!”
떠드는 말처럼 이자닌은 이미 허리춤에서 토치 라이터를 꺼내 틱틱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불을 당기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투란이 보기에도 이자닌은 과격했고, 이 은신처를 불태울 작정으로 온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에? 정말 하는 거야?”
홀의 누군가 덮쳐올 경우를 대비해서 나름대로 이자닌을 지켜주는 자리를 잡으며 투란이 물었다. 이에 이자닌은 입술만 삐죽했고, 대답은 침상 쪽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대신하는데…….
“그 성질은 여전하구나! 하아…… 도대체 십 년이 훌쩍 넘은 다음에 돌아와서 왜 그러는 거냐? 이러면 내가 죽은 척하고 피한 일이 다 헛수고잖아!”
침상에서 투척된 단검을 몸에 맞은 이가 일어나 앉으며 투덜거리는 말이었다.
―벡커드와 같군. 똑같은 패턴인 걸로 봐서는, 저자도 벡커드랑 똑같은 마법을 몸에 새기고 있다. 그래, 힐링 팩터.
드라고니아가 소리 없이 속삭였고, 투란은 홀의 다른 이들이 느끼는 어처구니없는 기분에 공감하면서 가만히 이자닌의 곁에서 만약을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