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1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10)
“영감님 입을 쳐 막고 앓는 시늉을 하며 숨게 만들 정도니, 정말 대단한 왕자님이 되기는 된 모양이네.”
헛소리를 열심히 한다고 비웃는 듯한 표정이 가득한 채로 나온 말이었다.
그 말투가 너무 과격해서 가르 영감이 눈을 깜박였고, 재스퍼 일당은 헛기침과 함께 ‘그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웅얼거리면서 제대로 된 반론을 아예 꺼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자닌은 그렇게 모두의 입을 틀어막고 주욱 둘러본 다음에 말을 잇는다.
“그래서, 상대가 왕자님이니까 숨어 있던 영감이랑 훌륭한 왕자님이라 대들 생각도 못 하는 도적 일당이랑 이제 어쩔 거야?”
뭐라 대답할지 모르겠다는 모습으로 재스퍼 등이 서로 눈치를 보는 사이, 가르 영감이 되묻는다.
“이자닌, 넌 어떻게 된 거냐?”
길지 않고 짧은 물음이지만 노인(老人)의 눈빛과 표정은 한없이 진지한 채였다. 때문에 이자닌도 바로 튀어나오려던 비아냥이 담긴 채로 퉁겨내는 말을 한 번 참고 숨을 고르면서 고른 대답을 꺼낸다.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냐. 뭐 얻어 건질 게 있는가 관심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 나한테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지경이라서 온 거지. 설마 오는 길에 방해받고, 죽이려 하는 녀석들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어.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고 영감을 찾아온 거야. 그나마 말이 통하는…… 내가 아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어쩔 거야, 영감님은?”
“내가 필요한 거냐?”
가르 영감은 다시 짧게 되물었다.
진지한 노인의 눈빛에 이자닌은 잠깐 입을 다문 채로 재스퍼를, 하수로의 깊은 은신처에서 노인을 지켜온 이들의 모습을 주욱 둘러봤다. 그리고 표정을 바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중얼거린다.
“그래도 한 십 년 묵은 추억이 있어서 도움이 될 영감인가 했는데…… 하아.”
이에 가르 영감이 뭐라 하기 전에 바로 재스퍼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잠깐! 방금 그 표정, 그 눈길 뭐야? 왜 날 꼴통 보듯 하면서 그러는 거야?”
곧바로 다른 녀석들도 한두 마디씩 쏟아낸다.
“재스퍼랑 우릴 보는 눈길이 왜 똑같았지?”
“그건 아니잖아, 이자닌!”
“와, 오랜만에 만나서 꼴통 보는 눈길이라니!”
“재스퍼는 재스퍼고, 우린 우리라고!”
나오는 말마다 재스퍼와 선을 긋는데, 딱 재스퍼만 떼놓고 우리라고 칭하는 상황이었다. 바로 재스퍼가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야! 이것들이! 나 아니었으면 여기 무사히 숨지도 못했을 거면서!”
하지만 이 또한 곧바로 반박하는 소리에 파묻힌다.
“에이, 그건 아니지.”
“가르 영감이 아픈 게 아니라 아픈 척한거잖아.”
“재스퍼가 아니었어도 왔을걸.”
“아프지도 않은 영감한테 홀랑 넘어가다니…….”
“음, 과연 재스퍼!”
쉿!
갑작스럽게 세차게 나온 소리가 모두의 입을 단숨에 막았다.
재스퍼도 얼굴이 붉어져서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로 뭐라 하려다가 느닷없이 입술에 손가락을 올리는 시늉을 하며…… 가면 탓에 손가락에 가려진 입술은 보이지 않는 채로 투란이 낸 소리에 흠칫해서 입을 꽉 다물었다.
가르 영감조차 어리둥절한 사이에 이자닌이 바로 묻는다.
“투란, 뭐야?”
투란은 대답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침묵이 맴돌았고, 다들 은신처 밖에서 은은하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울림을 금방 느끼고 들을 수 있었다.
모두가 그 다가오는 음향, 진동을 느낀 것을 확인한 다음에 투란이 말한다.
“마법이야. 벽을 부수면서 오는데?”
“뭐? 마법으로 벽을 부순다는 말이냐?”
가르 영감이 급하게 물었다.
투란이 뭐라 하기 전에 이자닌이 이마를 손끝으로 짓누르는 시늉을 하면서 거칠게 대답한다.
“이런 썩을! 마법사란 것이 뭐 저리 무식하게 날뛰는 거야?”
이에 보태듯이 보다 또렷하고 과격한 파괴의 음향이 은신처의 벽을 통해 짙게 울려나왔다. 벽을 그대로 으깨고 갈아없앤다는 것이 그 울림을 통해 명확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재스퍼 등이 당황한 채로 가르 영감을 봤고, 이자닌을 봤다.
이 상황에서 어쩔 것인가를 결정해달라는 듯한 눈길에 이자닌이 가르 영감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결정권을 넘기는 그 눈빛에 가르 영감은 입술을 깨물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 틈에 투란이 불쑥 한마디 던진다.
“아주 희한한 마법사?”
이자닌이 어이없다는 듯이 투란을 바라봤다.
덩달아 재스퍼들과 가르 영감도 ‘엥?’ 하며 어이없다는 듯이 투란을 쳐다봤다.
어깨를 으쓱하며 투란이 그 묻는 듯한 눈길에 대답한다.
“무식한데 마법사라니, 희한한 거 아니에요?”
“그, 그렇기는 하네?”
누군가 일리가 있다는 듯이 웅얼거리며 대꾸했다.
꼴통 소리 듣는 재스퍼가 그 누군가를 향해 ‘에라, 이 꼴통아! 지금 뭔 소리야!’라고 투덜거렸고 이자닌은 그 투덜거림을 짓누르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투란에게 묻는다.
“투란, 벽 부수고 다가오는 마법사 상대할 수 있어?”
투란은 간단하게 고개를 까닥했다.
가르 영감과 재스퍼 일당이 순간적으로 ‘헐?’ 하는 소리를 내며 투란을 바라봤다.
이자닌이 잠깐 미간을 좁히다가 살짝 나직한 목소리로 묻는다.
“검으로 말이야, 투란. 검으로 상대할 수 있냐고.”
“응. 어렵지 않을 거야.”
투란은 짧게, 보다 자신 있게 대답해줬다.
이자닌이 가면 구멍 속에 보이는 투란의 눈동자를 가만히 보다가 안도한다는 듯, 한층 더 자신감 있는 표정이 되어 가르 영감을 향해 말한다.
“다른 곳, 여기 말고 은신할 곳 또 있죠?”
“있다! 하지만 나가는 길이 없어!”
가르 영감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투란이 마법사를 상대할 수 없다고 여기는 모습이었고, 이 자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태도였다. 이는 금세 재스퍼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듯싶은데, 이자닌이 쾌활하게 외친다.
“투란, 마법사 때려눕히고 나가자!”
“그래…… 와, 진짜 때려부수고 오네.”
투란은 이자닌에게 대꾸하다가 은신처의 벽 한쪽이 와르르 무너지는 광경을 보고 어처구니없어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가르 영감과 재스퍼 일당은 한층 더 절망적인 목소리를 흘린다.
“세, 셋이잖아!”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대체 뭣 때문에!”
“영감님이 무슨 보물이야!”
나타난 마법사가 한 명이 아닌 세 명인 광경이 자아낸 탄식이 가득했다.
거기에 투란도 감탄처럼, 너무 황당해서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말을 보탠다.
“무식한 마법사가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살짝 기묘한 고요함이 잠깐 맴돌았다.
마법사를 셋이나 앞에 놓고 대뜸 무식하다고 깎아내린 투란에 대한 놀라움이 번지는 듯한 시간이었다.
“도적놈이 감히!”
“허, 도적 따위가 상아탑의 마법사에게 저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대화할 상대가 아니다, 누가 할래?”
마법사 셋이 제각각 울화를 토해내듯 떠들며 그 고요함을 지웠다.
맨 처음 입을 연 마법사가 그 분노를 담은 듯이 앞으로 나서면서 손을 휘젓는 채로 외친다.
“내가 전부 죽이겠다!”
펄럭거리는 마법사의 로브를 보며 투란이 다시 두어 마디 던진다.
“진짜 상아탑의 옷이네? 어떻게 구했지?”
나서서 손짓하는 마법사가 한층 더 격노하며 투란을 향해 손끝을 겨냥하는 채로 대답한다.
“상아탑의 마법사니까! 이제 상아탑의 마법에 죽으면서 그 죄를 반성해랏!”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법사의 손끝에서 녹색의 불꽃이 피어나며 크게 번져 나오려 했다.
쿡, 파아앙!
녹색의 연기가 맴돌았고 마법사는 저 멀리 튕겨나갔다.
콰앙.
마법사의 몸이 부서져 내린 저편 계단 어딘가에 처박히는 소리는 격렬했다.
녹색 연기 중심에는 검이 하얗게 번뜩이며 박힌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검의 자루를 잡은 투란의 중얼거림이 기묘할 정도로 선명하게 울려퍼진다.
“와아, 이거 진짜 될 줄은 몰랐는데? 설마 저렇게 대놓고 마력 형태를 드러내는 얼치기 마법사가 있을 줄이야! 저리 무식한데 정말 상아탑의 마법사일 리가…… 없겠지?”
다시 아까의 고요함이 되돌아온 듯한 분위기 속으로 거칠고 투박한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며 투란의 목소리에 어우러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다들 숨만 쉬는 상황이었다.
투란이 허공에 꽂았던 검을 가슴 앞으로 세우면서 말을 잇는다.
“무식한 마법사 두 분, 대체 그 옷은 어떻게 구한 거야?”
두 마법사가 이 물음에 깨어난 듯, 바로 움직인다.
하나 둘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 명은 한 걸음 물러서며 자기 앞에 손짓하는 모습이었고, 한 명은 그 자리에 버틴 채로 두 손을 바쁘게 교차시켜가며 투란을 겨냥하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물러서지 않는 쪽을 향해 느릿하니 걸음을 디뎠다.
열심히 손짓하며 버티고 선 마법사가 배 속에서 쥐어짜 낸 목소리를 울린다.
“아케인…… 버스터!”
투란이 잠깐 멈칫했다.
‘에? 저거 위험한 마법이잖아!’
―그럴 리가 있냐! 저건 그냥 마력을 때려 박아 물체구조를 파괴하는 기초술식에 불과하다! 아케인 버스터 체인이랑 비교하지 마!
‘응? 다른 거냐? 그런데…… 기초인데 저런 마력을?’
―아까부터 이상한 놈들이라고 했잖아! 마력 용량으로 보면 분명히 상아탑의 중급 수준이지만 그 활용수준은 알드바인의 저연령 수련아들만도 못하다고! 이놈들, 진짜 이상해!
‘음, 그럼 그 이상한 덕이나 좀 보자.’
―뭐? 야, 진짜로 하려고?
대화는 번개처럼 이뤄졌다.
가볍게 한 발 내디디며 투란이 보다 가볍게 검을 찔러냈다.
허공을 채우며 형태를 잡아가던 마력의 중심을 칼끝이 파고들었고, 칼날이 길게 관통한 채로 꽂힌 듯이 자리 잡았다.
쿠욱, 파아아앙!
“끄아아아, 컥!”
콰앙!
처음 날려 간 마법사 때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처음 마법사가 지르지도 못한 비명이 더해진 채로 두 번째 마법사도 날려 갔다.
투란이 한 걸음 물러선 세 번째 마법사를 바라볼 때, 웅성거림이 재스퍼 일당 쪽에서 흘러나온다.
“저, 저게 뭐야?”
“마법을…… 칼질했어?”
“칼질로 마법 부리는 거 아냐?”
“닥쳐, 이 꼴통들아!”
재스퍼가 외쳤고, 투란은 가면 속에서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세 번째 마법사가 하는 짓을 바라보며 검을 한 자루 더 꺼내 쥐었다. 곧바로 투란의 손을 타고 흘러간 오러가 두 자루 검에 얽혀들었고, 투란의 눈빛 속에도 강렬한 투지를 머금은 오러가 맴돌기 시작했다.
‘자아, 정말로 되나 안 되나 해보자고.’
―안 해도 되잖아?
툴툴거리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무시하며 투란은 세 번째 마법사가 날려 간 둘과 다르게 마력으로 장벽을 만들고 그 장벽 속에서 마력의 형태를 갖추며 제대로 주문을 구축(構築)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세 마법사가 지닌 마력 용량은 엇비슷했지만 이 세 번째 마법사가 마법술식을 형성하는 태도는 그나마 제대로였다. 마력을 허공으로 이끌어내 대책 없이 노골적으로 형태를 갖춘다는 시점에서 도저히 상아탑의 마법사로 여길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엉망진창인 마법사를 또 어디서 보겠냐고, 연습해야지! 이자닌 덕분에 예민해져서 할 수 있는 건데!’
투란은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키린에게서 주입받은 오러 무투술, 그중에서 아주 특별한 검술 한 갈래를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마법을 베는 검술, 아케인 브레이크를!
그리고 세 번째 마법사는 열심히 완성된 마법, 그 주문을 마침내 입에 담는다.
“아케인 플레임, 버스터!”
형태를 갖춘 마력이 장벽을 이뤄낸 마력을 잡아먹으면서 현상(現相)으로서 구축되었으니! 이글거리는 불길, 짙고 시뻘건 광채, 쇠를 녹일 듯한 뜨거움, 목표를 향한 가속이 거침없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을 향해 투란의 쌍검이 휘둘러졌다.
이는 허공에서 칼날과 칼날이 격돌하는 이상한 움직임이었는데…… 그 움직임에 따라 오러의 파편이 칼날을 타고 흐르며 격돌했고, 뒤틀리고 일그러진 파문이 되어 시작되는 마법을 덮쳤다.
파앗.
형태를 구축한 마법, 시뻘건 불꽃의 형상이 사라졌다.
촛불이 훅하는 세찬 입김에 아련한 연기만 남기고 사라지듯…… 그러나 연기라는 자취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세 번째 마법사의 역작(力作)이라 할 수 있는 마법이 사라졌다.
투란이 가면 속에서 웃을 때, 가르 영감이 갑작스럽게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케인 브레이크? 왕의 검술을…… 어떻게?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