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1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11)
Chapter 143. 페브라 왕성, 붕괴 Ⅰ
쿨럭.
마법사가 눈과 코, 입에서 동시에 피를 쏟아내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흔들거리다가 바로 균형을 잃고 한편으로 쓰러졌다.
“음?”
투란이 갸웃하는 소리를 냈다.
―응? 마력파동이 역류한 걸 못 버텨? 어지간히도 엉망진창인 마력제어로구만!
드라고니아는 사정을 간파한 듯, 세 번째 마법사의 상태에 대해서 어이없어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때문에 투란은 먼저 튕겨나간 두 마법사와 세 번째 마법사를 비교하며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돌더미에 꽂힌 것보다 더 아파 보이잖아?’
―당연하지. 더 큰 충격과 상처를 입었으니까.
‘더 큰? 왜!’
―튕겨나간 둘은 자신이 지닌 마력을 어느 정도 유지한 채였다. 미숙하든 어쨌든 마력을 지닌 마법사이니 그걸로 어느 정도 몸을 지킬 수 있는 거지. 물론 너무 미숙해서 충격을 완전히 억누르지 못하면 저렇게 정신 나간 꼴이 되는 거지만…… 몸을 지켜야 할 마력이 기본부터 뒤틀려서 해를 끼친 것보다 흉악하지는 않아.
‘기본부터……? 키린이 알려준 검술이 그렇게 흉악한 거였어!’
―그 녀석 사고방식이 꽤 흉악하기는 하다만, 저 마법사가 너무 형편없는 탓이 더 커. 지금 투란 네 수준으로 저런 결과가 나오기는 힘들거든.
‘그게 대체 뭔 소리야?’
―방금 네가 사용한 ‘파마(破魔)의 검(劍)’은 저 녀석의 마법을 해체하기 위한 것이지 저 녀석을 해치려던 게 아니었잖아. 그런데도 그 여파에 저 지경이 된 까닭은 저 마법사 녀석이 상당히 얼치기이고 엉터리인 때문이란 말이다.
‘아, 그런 얘기…… 잠깐, 저거 상아탑의 마법사인데?’
투란은 고개를 갸웃하며, 드라고니아와 대화를 멈춘 채로 슬쩍 고개를 돌려 이자닌 쪽을 향해 묻는다.
“이 사람들, 상아탑의 마법사 맞아요?”
신속한 대화 끝에 고개를 돌리기까지는 한순간이었고, 이자닌이나 다른 이들이 듣기에는 이 물음이 세 번째 마법사가 피를 토하며 주저앉자마자 튀어나온 상황이었다. 왜 묻는 것인가 하는 어리둥절함이 주변으로 번져가는 듯한데, 이 물음에 바로 이자닌이 동참한다.
“진짜 상아탑의 마법사라고? 저런 녀석들이? 가르 영감, 재스퍼. 아는 얼굴이기는 한 거야?”
재스퍼가 먼저 단호하게 대답한다.
“몰라, 상아탑의 마법사랑 얼굴 볼 일이 없잖아!”
이어 나온 가르 영감의 대답은 이 단호한 의견과 어긋나고 있었다.
“헌터 길드 쪽에 자주 나타나는 녀석들이다. 상아탑에서 만들다 꼬인 물품을 실험해보라고 넘기는 경우가 많지. 말하자면 뒷골목을 담당하는 말단 같은 셈이다. 이렇게 하수로에 들어와서 사람 죽이는 일도 맡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재스퍼가, 가르 영감을 호위하던 이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눈을 껌벅였다.
헌터 길드에 뭐 팔러 다니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중에는 정체를 감춘 척하는 로그메이지도 잔뜩 있었다. 그들 중에서 이런 셋을 알아본다니…… 상아탑과 헌터 길드의 거래에 대해 세심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어떤 놈이 어떤 놈인지 모르는 게 정상인데, 가르 영감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자닌은 이런 놀라는 분위기를 외면한 채로 묻는다.
“뒤로 빼돌린 걸 파는 거예요, 빼돌린 척하는 거를 파는 거예요?”
“둘 다.”
이번에 가르 영감의 대답은 짧았다.
투란은 마음속에 의문만 잔뜩 피어올랐다. 하지만 지금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가 아니기도 했다. 당장 해야 할 일을 결정해야 했다.
“이자닌, 이제 어쩔 거예요?”
“정말 이제 어쩌나? 일단 영감님이랑 다들, 다른 곳으로 가자고요. 파쿠란이랑도 다시 얘기해봐야 하니까…… 그다음에 정해야겠네. 재스퍼, 길잡이 노릇은 할 수 있지?”
짧은 물음에 대해 이자닌은 조금 느슨하게, 마치 딴 사람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답을 늘어놓고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른 이들에게 의견을 묻는 듯도 하고, 대답을 강요하기라도 하는 묘한 낌새까지 풍기면서.
재스퍼가 거기에 가장 먼저 반응했다.
“어딜 가는가 알아야 길잡이 노릇을 하지! 영감, 아까 갈 곳이 있다잖았나? 마법사들 때려눕혔으니 갈 수 있는 거 아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고, 가르 영감은 쓴 것을 삼킨 표정과 함께 쓰러진 마법사 셋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일단 나가자. 마법사들이 정신 못 차릴 때…… 괜히 죽일 생각하지 마! 얼치기로 보여도 상아탑의 마법사다! 죽을 뻔했다고 진짜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만들지 말라고! 이자닌, 부탁한다.”
무겁게 튀어나온 몇 마디에 재스퍼를 비롯한 일당이 살짝 움찔했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들을 죽이겠다고 왔으니 이런 은밀한 곳에서는 기회를 봐서 먼저 죽이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정도 상처를 입었다 해도 살려두면 회복해서 또 찾아올 수 있으니까!
덧붙여 생각하면 그냥 칼 들고 죽이러 온 것도 아닌 마법사 아닌가!
살려둬서 뒷일이 개운할 리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죽이지 말라니…….
왠지 억울하잖은가!
하지만…… 가르 영감의 말이 옳기는 했다.
상아탑은 누가 자신들을 건드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상아탑에 속한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러도 그 심판은 상아탑에서 직접 나서야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 끼어들어 벌주면 두고두고 앙갚음하는 악명이 자자한 마법사 일당!
그게 바로 도적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아탑의 본성(本性)!
가르 영감은 그 점을 짚은 것이고, 억울하지만 옳은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페브라 왕도에서 사는 도적으로서 가르 영감의 말에 나름대로 납득하는 재스퍼 일당이었는데, 이자닌은 별로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투란, 저기 일어나려는 모양인데 때려눕혀!”
피 흘리고 쓰러진 한 명이 바르르 떠는 사이에 저쪽으로 날려 간 마법사 둘이 부스스하니 비틀거리는 채로 허우적거리며 일어나는 광경을 손가락질하며 나오는 말이었다.
두 자루 검을 거두면서 투란은 냉큼 그 둘을 향해 움직였다.
가까운 한 명부터 냅다 그 멱살을 잡아당겨 바닥으로 깔면서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시원하게 팬다!
따악! 풀썩.
하나가 맞고 쓰러지는 경쾌한 소리에 일어나던 다른 마법사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손을 들며 마력을 모아 어떻게든 저항하겠다는 시늉을 했다. 거기에 다가가며 투란이 손가락을 퉁겼다.
오러의 파동에 마력이 흐트러졌고, 마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어깨를 잡아당겨 마법사의 허리를 굽히며 투란이 다시 시원하게 그 뒤통수를 갈긴다.
따악, 풀썩.
쓰러진 마법사를 발끝으로 슬쩍 밀어 치우면서 투란이 가르 영감과 그 일당들을 향해 변명하듯 말한다.
“안 죽였어요.”
가르 영감이 더듬거리는 말로 대꾸한다.
“어, 그래…… 그럼 된 거지, 뭐…….”
죽이지 않고 저리 냅다 패놨으니 원한은 더 심하게 쌓였을 것 같지만, 지금 처지에 그딴 거 따지면서 투란 탓을 할 수는 없었다.
이자닌이 재촉한다.
“재스퍼, 길잡이!”
재스퍼가 불끈해서 대꾸한다.
“그니까, 어디로 가냐고!”
가르 영감이 한숨과 섞은 대답을 한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왕성 쪽으로 방향을 잡아봐. 다들, 간단한 것만 챙겨서 바로 움직여라. 귀중품 따위는 없으니까 괜한 거 욕심내지 말고!”
그래도 나름 오래 머문 탓에 갖다 놓은 사물(私物)을 챙기려던 이들이 움찔하다가 툴툴거리면서 가르 영감의 말에 따라 간편한 배낭과 주머니만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재스퍼가 그 광경을 흘깃하고는 바로 투란 곁을 스쳐 뛰면서 말한다.
“간다, 나만 따라와!”
투란은 이자닌을 바라봤다.
이자닌이 투란 곁으로 오면서 나지막하니 말한다.
“저거 죽지 않게 뒤 좀 봐줘. 걱정 마, 난 바로 네 뒤에 있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투란은 바로 재스퍼의 뒤를 쫓았다.
분분히 움직이고 일행이 비워버린 은신처에는 정신을 잃은 마법사 셋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대단한 미궁(迷宮)이로군.
드라고니아가 감탄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구불구불한 하수로를 따라 걸은 다음이었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거 아냐?’
투란은 불만스러웠다.
감각적으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 번을 돌아 제자리로 온 듯한 느낌이 강했으니까.
―벽 안에 도수관이 얽혀 있다. 벽을 깨고 편안하게 가려다가는 물에 잠겨서 떠내려갈 거야. 벽을 부수지 않고 움직이려면 저 재스퍼가 인도하는 길이 최적화된 지름길이다.
피식 웃는 듯한 낌새로 드라고니아가 설명했다.
‘그렇게 빨리 물이 고여?’
투란은 떠내려간다는 부분을 의아해하며 물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놨다고 해야겠지. 벽 하나를 부수면, 도수관이 열려서 통로를 물로 채워 벽을 부순 이물질을 쓸어내도록 되어 있거든. 아마 이 도시 아래로 뭔가 치고 올라오면 물벼락을 씌울 셈이었던 모양이다. 춤추는 산맥이니까, 이곳이 나름대로 안전하다고 해도 그런 대비는 해놓은 거겠지. 너무 오래돼서 지금 사는 인간들은 잊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적어도 이 도적들은 그걸 잘 아는 모양이야.
‘그런 거냐…… 알드바인도 비슷하다더니…….’
투란은 알드바인으로 돌아가면 지하수로를 조금 뒤져봐야겠다는 궁리를 하면서 재스퍼가 안내하는 하수로를 새삼스럽게 둘러보며 기억했다. 마법이 잔뜩 있는 알드바인과 다른 점이야 많겠지만 기본적으로 도수관을 엮어놓은 수로란 점은 같을 테니까, 여기에 익숙해지면 알드바인의 수로도 익숙하게 뒤져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보는 투란이었다.
이렇게 이것저것 생각하고 지루해하며 투란이 쫓던 재스퍼가 걸음을 딱 멈췄다.
“영감, 다음은?”
벽을 울리는 물음에 가르 영감이 뒤편에서 대답한다.
“헌터 길드 쪽으로…… 일단 길드 거리의 하수로에 들어서야 해.”
재스퍼가 다시 길잡이답게 나아갔다.
투란은 그 모습을 보다가 슬쩍 뒤에서 두어 걸음 떨어진 이자닌에게 묻는다.
“파쿠란, 그 아저씨는?”
이자닌이 재스퍼를 턱짓하며 대답한다.
“나 있는 곳으로 알아서 찾아올 거야.”
어떻게 그러냐고 투란은 되묻지 않았다.
파쿠란은 마법사이니까.
사실…… 지금 어디서 뭘 하는가 걱정도 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재스퍼의 앞에 툭 튀어나온 괴상한 작자들의 상태를 걱정할 상황이기도 했다.
“우아앗! 뭐, 뭐야!”
재스퍼가 뒤로 껑충 뛰면서 투란에게 등짝을 잡히면서 외쳤다.
분명히 놀랄 만한 상황이기는 했다.
길잡이로서 가야 할 곳을 찾아 두어 굽이 벽을 돌았다 싶은 순간, 여태 보이지 않던 괴상한 몰골을 한 이들이 우두커니 서 있다가 고개를 홱 돌리며 재스퍼를 놀려보는데…… 절대로 제정신인 몰골이 아니니까!
“몽환초에 절어 있네?”
이자닌이 혀를 차면서, 아주 귀찮은 상황이란 듯이 말했다.
그 정도로 충분히 상황파악이 될 거라 여긴 듯했지만, 투란은 되물어야 했다.
“그거 먹으면 그냥 쓰러져 자는 거 아니었나?”
몽환초는 춤추는 산맥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무더기로 피어나는 풀이었다.
물에 달여 마시면 일단 꿈을 꾸게 해주는데, 그게 기분 좋은 꿈일지 다시 잠들기를 무섭게 할 악몽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하게 꿈을 꾸도록 잠든 상태를 만들어주니까, 몬스터에 대한 염려로 잠들어야 할 때 잠들지 못하는 처지인 헌터가 죽든 살든 운에 맡기겠다는 각오를 하고 섭취하는 것이 몽환초이기도 했다.
하지만 몽환초처럼 생겨서 먹으면 그냥 죽는 독초도 있으니, 웬만해서는 연금술사가 정제한 몽환초…… 수면 포션을 사용하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비싸다고 그냥 몽환초를 뜯어 빻고 물에 타 먹는 헌터가 적지는 않아도 어쨌든 정제하는 것이 맞다.
한데 그런 수면효과로 유명한 것에 절어진 작자들이 사람을 노려보고 움직인다?
투란에게는 납득이 가는 말이 아니었다.
이자닌이 투란의 의문을 안다는 듯이 바로 설명한다.
“몽유병을 유도할 수 있어. 잠든 채로 움직이는 병 말이야. 그런 상태로 만들고 부려먹는 거지. 가르 영감, 연금술사 쪽에 원한 산 일 있어?”
가르 영감이 묵직한 말투로 대꾸한다.
“없다. 받을 빚은 많지만, 연금술사에게 원망 들을 일은 전혀 없어.”
이자닌이 낯을 구길 때, 투란이 중얼거린다.
“설마…… 빚 갚기 싫어서?”
가르 영감이 입을 다물었고, 이자닌은 웃었다.
“푸하핫, 일리가 있네. 원래 남의 것 받아먹고 갚지 않아도 되면 기분이 찢어지게 좋다니까! 재스퍼, 설치려 하지 말고 물러서. 투란, 죽이지 않고 때려눕힐 수 있겠어? 움직이지 않게 말이야.”
“으흠, 흠…… 일단 해봐야겠네.”
살짝 거친 말투로 대답하며 투란은 앞으로 나섰다.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