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1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13)
“파마의 검은 여러 갈래로, 여러 계통으로 전승되지. 하지만 투란, 자네가 사용한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이고 특별한 파마의 검…… 오러를 활용한 검투술 중에서도 흔하지 않은 도적왕의 비기(祕技)에 속하는 것이었어. 도적 길드에 오래 몸담아온 탓에 장로라고까지 불리는 내가 잘못 봤을 것 같나? 이 몸으로는 착각할 수도 없다고.”
가르 영감의 몇 마디는 아주 신중하면서도 명확했다.
물론 투란은 그 신중함, 그 분명함에 바로 의문을 내던질 수 있었다.
“대체 그 몸이 어떤 몸인데요?”
이자닌도 곧장 여기에 보태 말한다.
“그래, 뭔 몸뚱이인데 그런 걸 착각할 수 없다고 큰소리야?”
재스퍼는 이 광경을 자기 혼자 구경하는 것이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끼어들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고 지켜만 봤다.
가르 영감이 혀를 차며 이자닌과 투란을 둘러보는 채로 말한다.
“딴 녀석들은 눈치조차 못 채고 있지만, 너희 둘은 알고 있잖나? 내 몸에 새겨진 마법의 각인이 뭔지 말이야. 그래서 이자닌 너는 내게 단검을 거침없이 내던졌잖아? 투란, 파마의 검을 사용한 시점에서 자네가 마법을 간파할 줄 안다는 것은 훤히 드러났어. 그리고 자네가 사용한 파마의 검은 내게 알려주지, 내가 물려받은 이 마법의 각인처럼 그 또한 도적왕의 비보에 속한다고 말이야.”
“도적왕의 비보? 잠깐만요, 영감님! 그거 혹시 반역왕의 전설에 나오는 얘기 아니에요?”
멍하니 듣다가 투란이 흠칫하며 짚었다.
발끈하려던 이자닌도 ‘응?’ 하면서 미간 사이를 확 구기면서 잠깐 입을 다물었다.
비기니 뭐니 하는 거야 그냥 갖다 붙인 소리겠거니 할 수 있지만, 도적왕의 비보라는 말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 반역왕의 전설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수십 년 전에 있었던, 백 년도 되지 않은 실화이기 때문이었다. 반역왕이 도적왕의 비보가 애들 장난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실증했기 때문이었다!
―저거, 금색의 마도사가 만든 주문의 마법 각인 맞는데?
드라고니아는 약간 짙은 의혹을 표현하고 있었다.
가르 영감에게는 듣지도 못하는 의혹이었지만, 그 입에서는 그에 대한 대답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맞다, 에테온의 패왕 이야기에 나온다. 에테온의 패왕이 오래된 마법 각인을 통해서 자신의 잊힌 혈통을 깨웠다고 하는 부분, 이게 그 옛날에 완성된 마법 각인이다. 이자닌, 믿지 못하는 거냐? 하아…… 알았다,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마. 재스퍼, 이건 듣고 잊어버려. 이 마법 각인은 스펠 스택커, 어떤 주문이든 담아두고 반복적인 사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 바로 알아차렸구나 이자닌.”
가르 영감의 느닷없는 칭찬에 투란은 이자닌을 바라봤다.
재스퍼가 ‘그게 뭔?’ 이란 표정을 지을 때 이자닌은 ‘그럴 수가!’라고 화끈하게 놀란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둘로 갈라진 반응이라면, 과연 투란 자신은 어느 쪽에 가담을 해야 하는가?
―스펠 스태커가 마법 각인이었다고! 말도 안 돼!
드라고니아은 확실히 놀란 쪽을 고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가면 속에서 놀란 표정을 짓다가 멈칫하고 한숨을 쉬었다.
표정을 드러낸 채도 아닌데 뭘 따라 놀라는 얼굴을 흉내 내봐야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이게 왜 놀라야 하는 일인가 제대로 납득도 못 하고 있는 중이잖은가.
투란은 시무룩한 목소리를 내면서 재스퍼 쪽에 가담하기로 하는데…….
“그거 꼭 알아야 하는 거 아니겠죠?”
이 말이 귀에 닿기가 무섭게 재스퍼가 화들짝 놀라면서 외친다.
“아니, 그럴 수가!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정말로?”
뭔가 순간적으로 자신을 배신하고 이자닌 쪽에 붙은 듯한 모습이라고 투란은 느낄 수밖에 없으니, 냅다 묻고 말았다.
“아저씨, 진짜 알아듣는 거예요?”
“이봐! 내가 무슨 꼴통인 줄 알아! 어떤 주문이든! 저 각인 속에 담아두고, 몇 번이든 쓰게 해준다잖아! 사람 몸에 마도구를 때려박았는데 죽지도 않고 말이야! 그런 거잖아요?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하지? 가르 영감님, 공갈치는 거 아니죠?”
재스퍼는 구경하던 태도를 싹 내던지고 흥분해서 떠들고 있었다.
가르 영감이 그런 재스퍼를 보면서 ‘이런 꼴통 같으니라고…….’라는 웅얼거림을 토해냈다. 이자닌이 그 웅얼거림을 덧칠하듯 재스퍼에게 말한다.
“잊으란 말을 어제 들었어? 하여간 이 아저씨는…….”
거의 한숨을 쉬는 듯한 말투에 재스퍼가 흠칫했다.
가르 영감이 조금 당황한 그 표정을 보며 다시 이야기를 잇는다.
“도적왕의 비보는 이것 한 가지가 아니야. 하지만 그 후계자랍시고 까불어대던 도적 길드에서는 단 한 가지도 찾아내지 못했다. 내가 물려받은 이 각인조차도 원래는 반역왕의 동반자인 대마법사, 나중에 에테온의 궁정마법사가 된 분이 길드에 자비를 베풀어서 남겨준 것을 물려받았을 뿐이야. 게다가 내가 죽으면 내 몸에 새겨진 각인은 사라진다.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도 없고, 전해줄 방법도 없다. 이건 상아탑에서조차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 최상위 마법이라 그쪽의 도움도 받지 못하지. 기껏해야 내 시체를 넘겨서 마법의 흔적을 역추적하라고 해보는 정도겠지만, 이미 그렇게 해서 실패한 적이 있다. 알겠니? 내 몸에 새겨진 이 마법 각인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엄청난 각인이기 때문에 원래 목적과 다른 부수적인 효과를 담고도 있어. 누군가 마법을 사용할 때, 그걸 예민하게 느끼게 해줘. 달리 보자면, 누군가 마법을 깨뜨릴 때는 그 과정을 섬세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투란, 나는 자네가 사용한 파마의 검이 도적왕의 비전이란 것을 알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이자닌 감추지 마. 저 친구를 데려온 까닭은 길드 총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차분하고 담담하지만 무겁고 강인한 노인의 태도 속에서 또박또박 흘러나온 말이었다.
투란은 여기에 뭐라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자닌은 눈매를 찌푸린 채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전혀 알 수 없는 얼굴로 가르 영감의 단호한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묘한 분위기가 피어나는 것을 보며 재스퍼는 깔끔하게 입을 다물었다.
미묘한 침묵 속에서 숨소리만 오가는가 싶을 때, 이자닌이 불쑥 입을 열어 묻는다.
“벡커드…… 벡커드의 마법 문신도 관련 있는 거예요?”
“있을 거다. 내게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 녀석은 비밀을 지켜주기는 했지만 꽤 오랫동안 탐냈으니까. 몇 년 동안 어디론가 여행을 다녀온 다음에 녀석의 몸에도 비슷한 것이 새겨졌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지.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가를 물은 적은 없다.”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얻었나 말해줄 수 있어요?”
조금 느슨한 눈길로 이자닌이 물었다.
가르 영감은 완강한 표정 속에 입가를 실룩여 웃는 듯한 표정을 띠었고, 그 낯짝을 보는 이자닌은 괜한 것을 물었구나 하고 바로 후회하는 모습이었다. 하나 노인의 대답은 느리게, 머뭇거리는 낌새 없이 바로 나온다.
“이자닌, 왕의 계승자로서 그 의무를 받아들이겠니? 그렇다면 나는 네게 어떤 비밀도 감추지 않을 수 있다.”
“난 이미 때려치웠잖아요, 이제 와서 내가 왜! 다시 묻지 말아요!”
이자닌이 단칼에 자르듯이 으르렁거렸다.
가르 영감이 바로 투란을 향해 묻는다.
“자네는 어떤가? 왕의 검술을 잇는 자로서, 도적왕의 비보에 대해 더 듣고 싶은가?”
“저기요, 난 도적 아니거든요?”
투란은 입에서 바로 튀어나가려는 ‘듣고 싶어요!’라고 말을 깊은숨과 함께 억누르고 참으면서 겨우 말을 돌렸다.
도적왕의 계승자가 뭔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적 길드의 일일 터였다. 거기에 전혀 관련이 없는 투란이 끼어들어 뭘 할 수 있겠는가? 새삼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가 더 이상한 일에 엮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투란으로서는 나름 부드럽게 화제를 돌린 것이었는데…….
“반역왕도 도적은 아니었지. 과거의 유산, 보물을 쫓는 사냥꾼이었을 뿐이야. 거기에 도적 길드는 아무것도 보탬이 되지 못했고, 그저 휘말려서 잊혔던 것을 되새기며 약간의 이득과 교훈을 얻었지. 듣고 싶은가? 도적왕의 비보, 도적왕의 검술에 대해서 말이야.”
가르 영감의 담담한 말은 투란을 부추기고 있었다.
투란은 호기심이 치솟아서 당장 ‘관심 없어요!’라고 대답을 못 하는데, 이자닌이 쯔읏 하는 센 소리부터 내며 비아냥을 가득 담아 욕을 한다.
“길바닥 연금술사예요? 마시면 뭐든 다 낫는 포션 팔아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 이 못된 영감아!”
“아니, 지금이 그럴 때다. 이자닌, 알고 있잖니? 지금 필요한 것은 길드 총회에 영향을 끼칠 왕의 계승자! 그 의무를 받아들일 지도자다! 네가 못 하겠다면, 나는 너를 대신할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지! 왕의 검술을 지닌 저 친구는 너를 대신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해!”
단호한 노인의 외침은 이자닌이 입을 연 채로 침묵하게 했다.
투란은 그 침묵이 울화나 분노가 치밀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어처구니가 없고 할 말을 잃은 상태란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재스퍼조차도 바로 앞에 앉아서 ‘영감, 미쳤어?’라고 입술을 달싹이는 중이니까!
이럴 때는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드라고니아의 중얼거림이 투란의 뇌리를 울린다.
―아, 키린의 아버지가 바로 반역왕이었잖아! 그렇게 된 거구나! 맞아, 키린이 배운 것은 괴물왕의 지식만이 아니야! 상당수가 궁정 교육의 결과였어! 맞아, 투란 너에게 각인시켜준 오러의 기술은 바로 반역왕으로부터 물려받은 거야! 그게 도적왕의 검술이었던 건가! 아하, 결국 투란 너를 도적의 후예로 착각하게 한 것은 키린이었군! 그래, 그 녀석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지!
‘야, 머리 울려. 그만하라고!’
투란은 친절하고 상세하게 키린의 가계(家繼)를 들먹이면서 늘어놓는, 중얼거림인 척하면서 버럭버럭 외치는 채로 키린 탓을 하며 놀려먹겠다는 드라고니아의 의도를 골이 울리도록 느끼면서 말려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투란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키린, 괴물왕자님은 에테온의 왕자님이며 그 아버지는 에테온의 패왕!
바로 반역왕이 키린의 친부이며, 키린은 궁정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투란은…….
‘아니, 그런데 왜 나한테 그걸 물려줘! 그렇게 험악하게!’
오한(惡寒)과 함께 강제주입의 추억이 떠오르며 본능적으로 원망하는 마음이 피어나는 채로 드라고니아와 동조하는 기분이 가슴을 채우잖는가!
복잡해지려던 투란의 기분은 이자닌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살짝 한쪽으로 밀렸다.
“가르 할배, 어쩌자는 거에요? 왕국의 셋째 왕자한테 저항할 생각조차 못 해서 죽은 척하고 있더니, 지금 우리한테 뭘 해보자는 거예요? 이제 와서 왜?”
침착한 말이었고, 투란에게는 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이야기였다.
이자닌이 왜 지하수로 깊은 곳에 숨어있던 가르 영감을 찾아갔는가는 투란은 알 수 없었다. 가르 영감이 왜 죽기 직전인 척하고 그리 숨어 있었는가도 역시 모를 일이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투란으로서는 별로 알려 할 까닭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냥 이자닌만 안전하게 지키면 될 뿐이니까.
한데 지금 영감님 소리 듣는 가르 할배가 발딱 일어나서 장소를 옮기더니 뭔가 꾸미는 입장에서 뭐라 떠들고 있었다.
분명히 투란을 무슨 일에 엮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왜 그러는지…… 이자닌이 대신 묻고 있으니 귀를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다!
가르 영감이 그 기대에 부응하듯 대답을 한다.
“내가 모르는 척해도 그쪽에서 가만히 있질 않으니까. 상아탑의 마법사까지 섭외해서 날 죽이려 했다. 내가 이 도시를 떠난다면, 온갖 누명을 씌워서 현상금을 걸겠지. 나에게 그런다는 것은 나를 따르는 패거리를 그냥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거야. 이자닌, 나는 물러설 수 없게 몰린 거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네가 이끌고 나타났고 말이야. 그래, 너 오기 전까지는 계속 팽팽하게 서로 저울질만 하는 중이었어. 하지만 이자닌 네가 돌아왔고, 저울질은 끝났다. 저쪽은 우릴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니 그냥 당해줄 수는 없지!”
“왕의 검까지 빌려 쓸 수 있으니 말이죠?”
서서히 달아오르는 노인의 이야기에 툭, 하고 얹듯이 이자닌이 중얼거렸다.
가르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한다.
“그래, 단지 너뿐이었다면 나는 네 지혜를 빌려서 적당한 타협책을 찾으려 했겠지. 왕족과 상아탑, 거기에 동조하는 길드 내부의 적들…… 타협 말고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파마의 검이 함께라면,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 도적 길드에서 그들이 손을 떼게 할 수 있어.”
문득 투란은 이자닌이 무표정해져서 가르 영감을 노려보는 것을 느꼈다.
뭔가에 화가 난 듯한데, 대체 무엇에?
‘날 이용한다고 해서 화난 거는 아니겠지?’
투란이 말없이 갸웃해서 보니, 이자닌의 분위기를 느낀 듯 가르 영감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묘한 고요가 찾아와 이자닌의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