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14)
“손을 떼게라…… 결론은 타협이군요?”
너무 담담해서 냉혹하게도 들리는 말이었다.
조금 지루한 생각을 마친 것처럼 이자닌은 무표정하게 그리 말하고 있었다.
가르 영감이 바로 그에 대한 대꾸를 한다.
“타협이 아닌 다른 길이 있기나 한가? 이자닌, 있다면 알려다오.”
재스퍼가 곁에서 씁쓸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며 투란은 갸웃했다.
‘손을 떼게 한다는 말이 협상한다는 소리가 되나? 흐흠…….’
―넌 무슨 뜻으로 쓰는데?
‘쳐 없애자는 말이잖아?’
―도적 길드에서는 다른 뜻인가 보지. 아니면 너 말고 다른 인간은 그냥 적당히 물러서게 한다는 말로 쓰든가.
드라고니아가 나름대로 상황을 해석해본다는 듯이 말했다.
그 사이에 이자닌이 느릿한 말투로 가르 영감에게 말한다.
“무책임하게 숨고 떠넘기고…… 가르 할배, 여전하네.”
재스퍼가 이 소리에 풋 하고 웃었고, 가르 영감의 표정은 팍 구겨졌다.
투란은 이자닌이 뒤이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듯한 표정인 것을 보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 있을 거야?”
“아니. 생각 좀 정리하면서 기다려보고…… 파쿠란이 올 때까지만 있을 거야.”
“그럼, 난 좀 둘러봐도 되려나?”
투란이 가르 영감과 재스퍼를 둘러보고 문 쪽을 고갯짓하며 말했다.
가르 영감은 그 의미를 알았다는 듯이 바로 말한다.
“귀족을 위한 술집이야. 여기는 지하 2층의 창고랑 붙어 있지. 여기랑 옆 방은 그린 베어의 주인도 몰라. 밖으로 나가는 통로는 외부의 골목길이랑 이어져. 시야를 가리고 있기는 하지만 나가서 거리까지 살필 거라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둘러보고 올게.”
투란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이자닌에게 말하고 움직였다.
이자닌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재스퍼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도 좀 둘러보자고. 심심한 녀석들 함부로 뭐 하지 말라고 말도 해둬야 하니까.”
그래서 투란과 재스퍼가 옆 방으로 건너가려 문을 여니…….
“크아! 좋다!”
“아, 시원하네!”
“이게 지하실의 맛인가!”
어째서인가 옆방에서는 짙은 향이 맴도는 술병과 그릇, 통으로 갖다 놓은 고기를 차고 있는 단검으로 썰어 먹고 있는 일행이 잔치하는 광경이 보였다.
“헤에?”
“야, 이 꼴통들아!”
투란은 흥미로워했고, 재스퍼는 욕을 했다.
지하수로에서 들어선 방은 커다란 소파, 탁자 따위로 앉아서 쉬라는 듯했는데 그 옆에 붙은 방은 선반에 먹고 마실 것이 잔뜩 채워져 있었다. 보아하니 보관기한을 늘리기 위해서 소금에 절인 고기라든가 말린 것, 밀봉된 술병 따위였는데 가차 없이 뜯고 따서 먹고 마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재스퍼의 욕설에 고개를 돌려 나온 대꾸는…….
“왜?”
“지금 배를 채워야잖아!”
“재스퍼도 먹어!”
나름대로 진지하잖은가!
재스퍼가 어처구니없어할 때, 투란이 슬쩍 그 어깨를 미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맞는 말이네요. 쉬면서 배를 채우고 있어요.”
“아니, 이건…….”
투란은 곤란해하는 재스퍼의 어깨를 툭툭 쳐서 재촉하고 나서 방 한편에 나선으로 박힌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선반들 사이로 보이는 계단은 벽에 붙어서 위로 치솟는 것처럼 갖춰져 있었고, 올려다보니 한 바퀴 완전히 돌아서 올라가지 않으면 어떤 끝이 나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 뭐가 나오나 볼까!’
재스퍼 일당을 남겨둔 채로 투란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빙빙 돌아 대강 7, 8미터 정도 높이를 올라섰다 싶을 때, 둥글고 좁은 구덩이가 거꾸로 세워진 듯한 모양이 나왔다. 계단 모양의 끝에는 쇠로 된 손잡이가 굵직하니 붙어서 당기기 좋은 모양이었다.
‘밖인가?’
투란이 손잡이를 잡으며 물으니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답한다.
―밖이다. 지하 2층에서 바로 지상으로 이어졌군. 지하 1층은 이 건물의 창고이고…… 일터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만. 꽤 재밌는 구조야. 저 손잡이를 당기면 바로 열린다, 나가기 전에 손잡이를 반 바퀴 돌려놓지 않으면 저절로 잠기는 구조야.
‘음? 그럼, 나가는 거는 맘대로인데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 완전히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일방통행인 문이야. 부수고 들어오는 것은 또 다른 경우겠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투란은 손잡이를 당겼다.
무거운 느낌과 다르게 석벽은 부드럽게 한 귀퉁이가 잘려 밀리는 것처럼 안으로 당겨져 옆으로 밀려났다.
투란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고, 가르 영감의 말을 확인했다.
두 건물의 틈새, 골목이었는데 나란히 선 다른 건물을 밀어내겠다는 것처럼 벽에서 돌출된 채로 기둥처럼 치솟은 귀퉁이가 열려 있었다. 돌출된 부분 덕분에 열린 벽을 타고 바로 밖으로 나와도 거리에서 오가는 이들이 볼 수 없었다. 얼핏 본다면 누가 골목을 넘어오다가 잠깐 돌출부에 가려서 안보였다고 여기기 쉬웠다.
위를 올려다보니, 대강 봐도 한 십여 미터 이상 치솟은 건물이었고 돌출부는 진짜 기둥인 것처럼 지붕까지 이어졌다. 그 틈새에 창문 같은 것이 전혀 없으니, 건물 아래에서 골목으로 누가 들락거리거나 말거나 알 리가 없어 보였다.
‘도시의 복잡한 골목 사이란 게 이런 건가.’
투란은 문득 옛날에 들었던 정체 모를 구절을 떠올렸다.
―날개가 없으니 이런 구조물을 만드는가 보군. 날개가 있었다면 이런 좁은 틈새는 꽤 위험하니 말이야.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에게 왠지 엉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따지기 전에 투란은 다가오는 발소리를 느꼈다.
누군가 골목을 지나치려는 모양인가 싶어 투란이 재빨리 안으로 몸을 감추고 석벽을 닫으려 하는데…….
―파쿠란이다.
툭, 하고 드라고니아가 한마디 던지고 있었다.
‘뭐?’
갸웃하다가 멈칫하는 사이, 투란은 옆에서 걸음을 디디며 모습을 드러내는 파쿠란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들려온 짧고 작은 파쿠란의 목소리도 분명했다.
“닫지 마.”
“응? 파쿠란?”
투란이 가면 속에서도 놀란 시늉을 하며 속삭여봤다.
파쿠란은 그런 투란을 지나치며 계단을 밟았고…….
“이제 닫아. 얼른 따라와.”
다시 짧게 말하더니 아래로 훌쩍 뛰고 있었다.
몇 계단을 껑충거리며 내려가는 마법사를 보며 투란은 조금 황당한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석벽은 다시 닫아놓고 그 뒤를 따랐다.
아래에 도달한 파쿠란 덕분에 일어난 작은 소란이 바로 투란에게 들려왔고 보였다.
“우아앗!”
“으아앗, 진짜다!”
“진짜 기분 나쁘게 생겼…….”
퍽.
“파쿠란?”
재스퍼가 급한 김에 입을 막는다고 주먹을 날리면서 외쳤다.
파쿠란은 놀란 것인지 놀리는 것인지 모를 녀석들을 향해 한숨을 쉬어주고는 그대로 이자닌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투란은 갸웃하는 채로 바로 그 뒤를 따랐다.
“파쿠란…… 오랜만이야.”
가르 영감이 소파에 앉아 말했다.
“잔머리 영감이 다 된 건가…… 폭삭 삭았구나, 가르.”
파쿠란의 대꾸는 어딘가 신랄했다.
가르 영감은 어색한 웃음 사이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마법에 기댄다 해도 난 보통 사람이니까.”
뭔가 오래된 이야기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에 투란이 귀를 쫑긋하는데, 이자닌이 날카롭게 묻는 말로 마법사와 노인의 이야기를 싹둑 자른다.
“파쿠란, 별일 없었어?”
“있었지. 설마 빈민가에서 마법 대결을 벌이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파쿠란이 가르 영감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한탄하듯 대답했다.
가르 영감이 흠칫하며 얼른 묻는다.
“마법사와 싸웠다고? 진짜 마법사? 상아탑의 마법사였나?”
“상아탑? 빈민가에서 무슨 상아탑이 튀어나와? 자칭 로그메이지라고 까불어대는 스펠캐스터 셋 정도였어. 한 녀석은 정신 나갔는지 도시 귀퉁이에서 파이어볼트를 쓴다고 난리 쳤고, 두 녀석은 제법 라이트닝볼트를 다루더군. 이자닌, 지하에서 상아탑의 마법사라도 만났나?”
덤덤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듯했던 파쿠란이 불쑥 묻는 말을 꺼냈다.
이자닌이 고개를 끄덕였고, 가르 영감이 조금 침착해진 태도로 말한다.
“셋이나 찾아왔지. 왕의 검술을 아는 저 친구…… 투란 덕분에 물리치고 여기까지 도망쳐 올 수 있었어.”
“왕의? 도적왕의 검술? 투란이?”
파쿠란은 투란을 바라보며 되묻듯이 되뇌었다.
가르 영감은 눈을 깜박이면서 파쿠란을 바라봤다.
어째서 모르는 척하는가 하고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는데, 곧 이자닌에게 눈길을 돌리고서 가르 영감은 바로 깨달았다.
“자네들도 모르던 일이었어?”
“중요한 일이 아니잖아, 바보 영감님.”
이자닌이 상쾌한 기분을 담아 냅다 쏘아붙였다.
하지만 가르 영감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가면을 꿰뚫겠다는 듯한 뜨거운 눈길을 뿜어내며 투란에게 묻는다.
“자네, 누군가?”
“투란. 본명이에요.”
냉큼 튀어나오는 투란의 대답이었다.
가르 영감이 입술을 살짝 떨었지만, 어딘가 화난 듯한 눈빛도 번뜩였지만 이자닌이 이를 싹 무시하는 태도로 먼저 말한다.
“내 호위로 고용했어요. 얼굴 알릴 필요가 없으니까 가면도 씌웠고! 그러니 엉뚱한 생각은 이제 그만해요.”
“엉뚱한……? 아, 그렇군.”
파쿠란이 갸웃하다가 홀로 뭔가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 영감이 그 모습에 혀를 차며 짜증을 낸다.
“묻지도 않고 고작 한두 마디에 다 안다고 하지 말라니까! 설혹 알아차렸다 해도 모르는 척하라고! 마법사들 그럴 때마다 마법사 아닌 사람이 얼마나 짜증 나고 열 받는지 알아?”
“아, 그랬지. 그래도 우리 사이에 뭘…….”
파쿠란의 대꾸는 꽤 넉살 좋게 나왔다.
가르 영감이 울컥한 표정을 잠깐 지었지만, 곧 자신을 가라앉히고 말한다.
“길드의 마법사인 자네랑, 뭐라 해도 도적왕의 계승자 자격을 갖춰서 길드 마스터의 후계자 권리를 지닌 이자닌이 왔어. 게다가 상아탑의 마법사를 왕의 비전인 파마의 검으로 물리친 친구…… 투란도 있어! 그렇다면 당연히 해볼 만하잖아!”
파쿠란이 조용히 듣다가 이자닌을 흘깃하고 묻는다.
“타협?”
“응, 타협.”
이자닌이 입술을 삐죽하며 대답했다.
가르 영감이 발끈해서 한마디 더 한다.
“타협이 뭐가 나빠!”
파쿠란은 고개를 젖히며 가볍게 웃기부터 하고 말한다.
“우린 라비엔에서 십여 년을 살았다네, 가르.”
가르 영감의 입이 꽉 다물렸다.
이자닌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빼듯이 말한다.
“뭔 살인귀들 틈에서 산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배고프면 사람 잡아먹는 것들도 있지만, 그것들 두들겨 패는 여관주인도 있고, 주먹질 잘하는 마법사도 있던 곳이잖아.”
“에? 여관주인인 마법사가 아니고?”
투란은 문득 루비를 떠올리면서 웅얼거렸다.
루리라면 여관주인 노릇 하면서 자기 요리 대신 사람 잡아먹는 이들을 그 억센 주먹으로 한껏 두들겨 팼을 듯하잖나?
가르 영감이 순간적으로 투란을 향해 눈을 반짝였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볼멘소리로 대꾸한다.
“여기는 페브라의 왕도라고!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옛 도시의 잔해랑 비교하지 마!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든, 여기 사정이랑 아무 상관 없잖아!”
“그건 아니지. 거기서 무슨 일이 있는 바람에 우리가 길드에 요청을 했고, 그 요청을 무시당해서 온 거니까 말이야. 그렇지, 이자닌?”
파쿠란의 말은 느긋했고, 이자닌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 왕의 창고를 털렸는데 괜찮다느니, 없어도 된다느니 하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으니까!”
가르 영감이 살짝 맹한 소리로 되묻는다.
“창고?”
그 순간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놀리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음, 또 투란 네 탓이로구나!
‘닥쳐. 그냥 핑계잖아, 핑계! 그런데 왜?’
소리 없이 툴툴거리다가 투란은 갸웃했다.
새삼 라비엔의 창고가 왜 또 문제인가?
그게 이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것인가?
하지만 잃어버린 물품에 대해 딱히 애착도 없었잖은가?
투란이 가져갔다 짐작하면서 달란 소리를 한 적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