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15)
“그런 되지도 않는 핑계를!”
가르 영감이 울컥한 외침을 터뜨린 것은 대강 열을 센 다음이었다.
이자닌이 곧바로 반박한다.
“왕의 계승자는 되는 핑계야?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으면서 나한테는 말이 되는 소릴 하라니! 정신 차려요, 할배!”
파쿠란도 바로 보탠다.
“가르, 중요한 것은 실리(實利)라도 명분(名分)을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계승자 얘기를 꺼냈잖아. 그렇다면 왕의 보고 또한 좋은 명분이란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잘 생각해봐.”
가르 영감은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는 채로 잠시 침묵했다.
투란이 보니 정말로 ‘잘’ 생각해보려는 태도였다.
이자닌과 파쿠란은 그런 가르 영감의 생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듯, 혹은 할 말은 다 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어쩐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것은 이 방 안에서 투란 뿐인 듯한 기묘한 분위기가 아닌가.
‘명분은 뭐고 실리는 또 뭐야.’
―이들에게는 너와 다른 경험, 살아온 시간이 있다. 그 공유되는 과거 속에서 지금 이야기가 나온 거겠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해봐야 무리야. 그냥 지켜봐라.
드라고니아의 조언(助言)에 투란은 가면 속에서 한숨을 참으며 기다렸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하니, 왠지 투란에게는 지루하면서도 심심할 뿐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자신이 맡은 일에 조금 더 충실하기로 마음먹고 감각을 가다듬었다. 이자닌을 보고 배운 오러의 기술, 예민하다는 한마디로 퉁치고 넘어가고 있는 그 감각을 조금 더 가다듬고 섬세하게 사용하기 위한 집중은 금세 지하 2층의 경계를 넘어서 위로, 보고 들어왔던 높이 치솟은 건물 전체를 ‘인지(認知)’하게 해줬다. 그리고 그 덕분에 투란은 살짝 놀란 소리를 내야 했다.
“어라? 툴……?”
건물의 2층 언저리에서 툴로쉬가 느껴지고 있었다.
어째서 지금 툴로쉬가 가르 영감이 고른 은신처, 그린 베어의 2층에 있는가?
그 답을 알기 전에 파쿠란이 중얼거렸다.
“이런…… 길이 겹쳤나.”
이자닌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바로 묻는다.
“무슨 일이야?”
투란은 입을 다물었고 파쿠란이 이야기한다.
“툴, 그 헌터가 위에 있어. 어쩌다 길이 겹친 건지, 따라온 건지 모르겠군.”
이자닌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묻는다.
“여기 오면서 무슨 소란을 피워서 따라온 거 아냐?”
파쿠란의 머리가 바로 휘저어졌다.
“전혀 아냐. 거기 소란은 내가 일으킨 것도 아니고, 눈에 띄지 않게 숨었다가 나왔거든. 그러니까…… 내려오네?”
말하다가 파쿠란이 천장을 노려보면서 낯을 구겼다.
투란도 슬쩍 천장을 올려다봤다.
분명히 툴로쉬는 2층 정도에 있었는데, 그 움직임이 아래층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투란이 파악하기로는 혼자도 아니고 누군가를…….
‘질질 끌고 있네?’
―그래, 걷지도 못하게 때려눕혀서 뒷덜미를 잡고 지하로 내려섰군.
드라고니아가 보다 명확하게 툴로쉬의 상황을 말했다.
갑작스럽게 위를 올려다보는 분위기를 깨겠다는 듯, 가르 영감의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무슨 일인가, 누가 내게 설명을 좀 해줬으면 좋겠군.”
이자닌은 입을 다물었고 투란은 뭐라 말해줘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파쿠란이 둘의 상황을 안다는 듯이 가르 영감을 향해 말한다.
“우리가 협력하는 몬스터 헌터가 그린 베어를 찾아왔다. 그런데 지금 우릴 알아차렸는지 이리로 내려오는 것 같다고.”
“미리 만나기로 한 것은 아니고?”
가르 영감이 살짝 의심하듯이 물었다.
이자닌이 단호하게 이를 부정하는데…….
“전혀 아냐.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줄은 몰랐는데, 그린 베어의 쉼터에 뭐가 있는 거지?”
묻는 말이 날카롭게 노려보는 눈길과 함께했기에 가르 영감은 대답을 해야 했다.
“여긴 십여 년 전이나 마찬가지야. 귀족의 자제들이 모여들고, 온갖 소문을 뿌리고…… 그 얘기를 주워 모으는 곳이지. 그래, 지금도 여전히 도적 길드가 사냥감을 찾기 위해 이용하고 있어. 그냥 그뿐이다만?”
“아, 귀족! 그렇군.”
돌연 파쿠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닌이 ‘귀족?’ 하고 갸웃하는 사이, 가르 영감이 한숨과 함께 약간 성난 목소리를 흘려낸다.
“그러니까! 설명을 하라고, 설명을! 그렇게 혼자 납득하지 말란 밀이야, 이 망할 마법사야!”
파쿠란은 피식 웃었지만 요구대로 설명을 한다.
“우리와 협력한다고 했잖아. 저쪽은 귀족이랑 관계가 있어서 그쪽 상황을 탐문하기로 하고 나중에 만나기로 했다. 아마 그린 베어를 이용하는 귀족가문의 누군가를 쫓아온 거겠지.”
“그런데 왜 내려와? 여긴 어떻게 알고? 파쿠란, 자네가 정말 연락한 것 아닌가?”
가르 영감은 의심을 떨쳐내지 않고 다시 묻고 있었다.
파쿠란이 고개를 갸웃하며 이자닌을 보는 채로 중얼거린다.
“그러게…… 이건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이자닌, 여기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자닌은 고개를 저었다.
“몰라. 아, 저 아저씨 엄청 사납네! 그냥 천장을 뚫잖아!”
쿵, 쿵, 쿵!
옆방 천장이 울리는 소리가 바로 문턱을 넘어왔다.
투란이 냉큼 문가로 가서 보니, 이미 천장에 구멍을 뚫어놓고 툴로쉬가 가면 쓴 모습 그대로 내려서고 있었다. 그 한 손에 누군가 뒷덜미를 잡혔는데, 입고 있는 화려한 옷차림이 순식간에 먼지투성이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한데 다른 한 손에 묘한 것을 들고 있었고, 그 묘한 것이 바로 투란의 눈길을 끌었다.
“옷 입은 쥐? 어라, 저거 설마! 한 마리에 금전 세 닢짜리 사냥용 쥐!”
외침이 바로 투란의 입가에서 우렁차게 새나가자마자 툴로쉬가 으르렁거리는 답을 해온다.
“어떤 놈이 그런 폭리(暴利)를 취해? 이거 한 쌍에 금전 두 닢으로 헌터 길드에서 정가를 정해놨거든! 그 바가지 팍팍 씌우는 놈 누구야!”
“아니, 그냥 말로만 비싼 쥐라고 들어서 말이죠. 실제로 본 거는 오늘이 처음이라 잘 몰라요.”
투란이 슬쩍 한 발 빼며 중얼거렸다.
가면을 쓴 둘이 이렇게 주고받는 이야기는 잠시 재스퍼 일당의 얼을 빼놓은 듯했다. 더불어 이자닌이나 파쿠란이 어처구니없게, 가르 영감이 황당한 눈길로 쳐다보게도 했다.
―지금 그거 가격 따질 때냐? 너도 저 녀석도 참…….
드라고니아가 기막히다는 듯이 혀를 차는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푹푹 꽂아 넣었다.
그래서 투란은 재빨리 말머리를 돌렸다!
“그걸로 누굴 쫓아온 거예요? 여기에 있는?”
툴로쉬도 투란에게 바로 영합(迎合)하듯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손에 든 옷 입은 쥐를 내밀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겨냥하듯, 혹은 무엇인가를 찾으라고 손에 든 쥐를 시키는 듯한 태도였고 옷 입은 쥐가 거기에 충실히 따르듯이 금방 고개를 쳐들면서 찍찍거렸다.
손에 들린 작은 쥐가 옷을 입은 채로 발버둥 치면서 킁킁거리고 찍찍거리는 광경은 재스퍼 일당을 놀라게 하는데, 특히나 그중 한 명을 식겁하게 했다.
“뭐? 왜! 내가 뭘!”
회색의 작은 쥐가 옷을 입은 채로 천장 뚫고 내려온 사람 손에 들려 자신을 향해 쳐들어오겠다고 버둥거리는 광경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놀란 모습이었다. 하지만 재스퍼를 비롯한 동료들, 여기까지 함께 온 이들이 재빠르게 그 놀란 이에게서 멀어지며 노려보고 있잖은가!
마치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 쥐가 저러냐고 책임지라는 듯!
“아니, 내가 뭘!”
다시 한번 그가 항변했고, 툴로쉬가 큰 목소리로 말한다.
“이 쥐가 쫓을 수 있는 향수를 몸에 바른 것뿐이야. 본인이 뭘 했다기보다는 뭘 당하는지 모를 뿐이지. 너네 이 쥐에 대해 모르는 건가?”
재스퍼가 바로 불만스럽게 대꾸한다.
“헌터 길드에서 키우는 게 그딴 쥐 말고도 잔뜩 있잖소! 알 게 뭐냐고! 우리가 무슨 헌터도 아닌데! 우린 그렇게…… 살아 있는 비싼 거에는 관심 없다고!”
투란은 가면 속에서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자닌이 재스퍼가 있는 방으로 건너오면서 바로 구박하는 소리를 지른다.
“자랑이다, 자랑이야! 헌터 길드에서 금전으로 거래되는 품목 명단을 아직도 못 외우고 있어? 저런 거 가끔 잃어버리면 찾아주는 것만 해도 은전 열 닢이 나오는데! 여전히 꼴통이구만! 같이 있다가 다 함께 꼴통 된 거야? 왜 다들 몰라라 하는 건데!”
재스퍼 일당이 뭐라 하기 전에 가르 영감이 이자닌 곁으로 따라 나오면서 대신 변명한다.
“헌터 길드 쪽은 아예 건드리지 말고 살자는 게 요새 유행이니까. 헌터들이 취급하는 물품은 아무리 귀하고 비싼 거라도 관심 끊는 쪽이 훨씬 안전하니까 그렇지. 그래서 요새 애들은 우연히 직접 본 거 아니면 몬스터 헌터의 도구에 대해서 관심 갖지 않아. 이 녀석들뿐 아니라, 페브라 왕국 전체의 분위기라 그래. 새로운 풍조라면 풍조라 할 수 있겠지. 안전하니까 말이야.”
“안전? 범람을 잊었다는 말이로군…….”
툴로쉬가 가면 속에서도 가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 드러날 정도로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이자닌이 동조한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 파쿠란은 방문 턱에 기댄 채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투란이 살짝 달라지려는 분위기를 다시 돌이키겠다는 듯이 말한다.
“그 비싼 쥐를 저 아저씨 놀래려고 썼다는 거예요?”
툴로쉬는 ‘응?’ 하다가 동료들에게서 완전히 멀어진 채로 ‘왜! 나를 왜!’라며 정신 못 차리는 한 명을 보고 투란의 물음이 뭔가 알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내가 산 거 아냐. 이 녀석이 쓰고 있기에, 같이 잡아온 것뿐이지.”
툴로쉬의 한 손에 잡혀 있던 누군가가 바닥에 던져졌다.
재스퍼 일당이 어리둥절해서 기절한 채로 천장을 바라보는 꼴로 나뒹구는 그 얼굴을 내려다봤지만, 서로 고개만 저으면서 ‘누군지 몰라!’라는 의견을 일치시켰을 뿐이었다. 심지어 쥐의 열렬한 겨냥을 받는 이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 광경을 보고 가르 영감이 무겁게 말한다.
“저 녀석은 은신처에 보급을 하려고 나들이 몇 번 한 적이 있었지. 그때 걸린 모양이군. 그렇다면…… 우리 은신처를 덮쳤던 마법사들도 그 쥐를 이용했던가? 마법사가 그 쥐를 사용하면 지정해놓은 상대의 위치를 지도에 바로 표시할 수 있다던데…….”
“그렇게도 쓸 수 있지. 아, 혹시 여기로 온 지 얼마 안 된 거야? 습격당해서 피해온 거였어?”
툴로쉬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투란이 냉큼 대답한다.
“맞아요. 아직 한 시간도 안 지났을걸요.”
“곤란한데…… 어이, 도적 길드의 거물 할배. 가까운 안가(安家) 없나? 추적을 끊어놓고 피해야 하는데 말이야…… 여기 이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가야 해. 아무래도 쥐가 한두 마리가 아닌 모양이니까.”
툴로쉬는 재스퍼 일당을 쥐를 들어 주욱 겨냥하며 둘러보는 채로 말했다.
가르 영감이 바로 그 의미를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재스퍼, 다들 데리고…… 스타폴로 여행준비를 해라.”
“에? 뭐요? 아니, 우릴 전부 스타폴로 보내겠다고!”
재스퍼가 흠칫 놀라더니 완강하게 싫다는 표정으로 되묻고 있었다.
가르 영감은 바로 한숨을 쉬었고, 이자닌이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넋두리하듯이 말한다.
“이 꼴통 아저씨야! 지금 가긴 어딜 가! 여행 준비를 하라니까, 왜 바로 여행 떠날 생각부터 하냐고! 일 처음 하는 애송이야?”
“미안.”
이번에는 재스퍼도 변명할 거리가 없는지 바로 사과했다.
가르 영감이 한 말은 바쁘게 어딘가로 도주하는 분위기를 꾸민 채로 대기하고 기다리라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있는 채로 가르 영감만 쏙 빠진 상황이라면 추적하고 주시하는 누군가가 무슨 일인가 지켜보려 할 테니 당분간 습격당할 일 없이 숨지도 않고 지낼 수 있으니까.
그런 얘기를 재스퍼가 입에서 나온 말 그대로 여기는 소리를 했으니, 애송이냐고 욕먹어도 당연했다.
그런 재스퍼 곁으로 툴로쉬가 다가서더니 묻는다.
“잘 안 쓰는 손이 어느 쪽?”
“에? 그건…… 오른손잡이니 왼손을 잘 안 쓰오만?”
어리둥절하다가 주변에서 눈치가 사나워지는 것을 느끼며 재스퍼가 대답했다.
툴로쉬는 냉큼 재스퍼의 왼쪽 손을 당기더니, 그 손목에 뭔가를 감고 조였다.
철컥, 소리와 함께 재스퍼는 자기 손과 쥐가 입은 옷의 뒷덜미 쪽으로 사슬이 이어진 것을 봤다. 바로 놀란 소리가 튀어나오는데…….
“헉! 왜 족쇄?”
“족쇄가 아니라 수갑! 발목에 채워야 족쇄지!”
“그거나 그거나! 왜 이러냐고!”
“꼴통 소리 나오게 하니까 그렇지. 이 쥐, 놓치지 말고 저 녀석이랑 같이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우린 따로 움직여야 하니까!”
툴로쉬가 억세게 재스퍼의 어깨를 누르는 채로 강요했다.
재스퍼는 울상을 지었지만, 이자닌과 가르 영감을 비롯한 일당들 전부가 ‘아,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툴로쉬가 부여한 임무를 당연히 여긴다!
“제, 제엔장…….”
이렇게 재스퍼가 자신의 새 임무를 받아들였고, 지하 은신처에서 일행은 일단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