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2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17)
루노스 자작은 눈가에 핏줄을 세운 채로, 붉게 충혈된 눈동자를 이글이글 불태우는 표정을 하고 방 한쪽 구석에 놓였다. 꽁꽁 묶인 모습이지만, 그보다는 팔다리가 마비된 탓에—실상은 목덜미에서부터도 마비를 일으키고 썩히는 독이 침투한 탓에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몰골로 구석에 밀려나 관심까지 잃은 꼴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잡아온 자를 망각(忘却)해버린 듯, 툴로쉬는 심각한 목소리로 파쿠란에게 묻는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마법사를 잡았다는 건가? 잡아서 어디 가둬놓고 심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야? 그게 아니면 그 마법사들의 내막을 완전히 알고 있으니까 걱정할 일이 없다는 건가? 대체 어느 쪽이야?”
이자닌은 이에 보태듯, 반쯤은 이미 안다는 듯이 묻는다.
“뭘 알아낼 수 있는 거야? 그 마법사들, 하수로에 버리고 왔다고. 말만 들어서 바로 뭔가 짐작할 수 있다는 거야? 아는 거라고는 상아탑의 마법사란 것뿐인데? 상아탑의 마법사가 한둘이 아닌데 그중에서 어떤 놈이 미쳤나 알 수가 있어?”
가르 영감은 둘의 물음에 끄덕끄덕하면서 자신도 궁금하다는 표정을 한껏 피워올리면서도 입은 다물고 있었다.
투란이 보니 다들 자신이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온갖 이야기를 하려는 참으로 보이는데, 괜히 끼어들고 싶다는 기분과 함께 묘한 심술이 피어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슬쩍 목소리를 낮춰 파쿠란에게 묻는 말을, 다들 관심을 떼어버린 루노스 자작에 대해 묻는 말을 던져본다.
“정말로 저거 저대로 썩을 수밖에 없어요? 회복할 방법이 전혀 없이 사흘 안에 썩어서 죽어야 하는 거예요?”
실로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난 물음이었는데, 파쿠란은 이것부터 냉큼 대답을 꺼내고 있었다.
“회복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아. 기록에 따르면…… 해독제 따위 없이 회복한 경우가 있기는 해. 뭐 정상적인 방법은 아냐. 로튼랫이라는 몬스터가 있는데, 그 녀석에게는 저게 전혀 안 통하거든. 오히려 다친 몸에 저걸 발라 회복할 지경이지. 그러니까…….”
“몬스터 로드?”
투란이 앞뒤 자르고, 어이없어하면서 가면 구멍을 통해 파쿠란을 향한 또렷한 눈길로 중얼거렸다.
가끔 지나가는 뜬소문처럼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특수한 능력의 몬스터를 이용해서 독을 치유했다든가, 몸의 병을 완치시켰다든가.
하지만 그 대부분이 돈 없고 기댈 곳 없는 처지라 그런 것이지, 저기 자작님처럼 귀족이시고 돈도 많아서 ‘옷 입은 쥐’까지 챙겨 다닐 분들의 선택지는 전혀 아닐 텐데?
빙긋 파쿠란이 말없이 웃었고, 잠깐 루노스 자작을 잊었던 일행이 흘깃 그쪽을 바라봤다. 그 갑작스러운 눈길, 다시 쏟아지는 관심에 루노스 자작은 입을 막은 끈을 꽉 깨물며 더욱 성난 모습을 드러냈다.
툴로쉬가 툭 뱉듯이 말한다.
“틀렸어. 그 부패하는 쥐를 찾아 몬스터 로드가 될 정도로 독한 놈이 아냐. 그럴 정도로 독한 성격의 조각만 있었어도 여기 일 왕자나 이 왕자의 군단에 복무를 해서 백작가의 권한을 되찾으려 했겠지. 암살에 나선 마법사의 앞잡이 노릇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
이자닌도 뚱하니 이 말을 받아 보태는데…….
“목 아래를 아예 못 움직이는 지금 저 몰골로는 아무것도 못 할 테니까, 그거 다 소용없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영감 죽이려 했던 상아탑의 마법사들, 뒤를 캘 수 있나 없나 얼른 얘기해보라고!”
말끝은 결국 파쿠란을 보채는 것으로 매듭짓고 있었다.
파쿠란도 이제는 루노스 자작의 일을 한편에 내려놓고 잊어버린 것처럼 진지하게 둘의 물음에 답을 꺼낸다.
“페브라 왕도에는 상아탑이 있지요. 미숙하든 엉터리든, 성질이 망가졌든 간에 상아탑은 소속된 마법사를 지켜요. 이자닌, 알잖아. 상아탑의 수호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본 적 있잖아. 툴도 알지요? 그러니까 이 왕도는 그 수호의 영역 안이고, 그 영역 안에서 상아탑 마법사의 행동은 그들보다 상위 마법사의 힘을 빌리면 추적 가능해요. 툴, 이제 알겠지요? 이자닌, 영감님이랑 여기서 기다려. 투란, 우리는 가자. 이 일에 끼어든 상아탑 마법사가 더 있는가, 우릴 찾아왔다가 자빠진 놈들이 전부인가 알아봐야 하니 말이야.”
빠른 설명이었고, 바로 움직인다는 손짓으로 재촉도 하고 있었다.
이에 투란이 슬쩍 툴로쉬의 눈치를 보니 바로 알았다는 표정으로 툴로쉬도 냉큼 움직일 태도였다. 가르 영감은 낯을 찌푸렸지만 마법사인 파쿠란의 말에 딱히 뭐라 하는 것을 마땅치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자닌은 불만을 토했다.
“그게 뭐야! 결국 나랑 영감이랑 저 자작님 모시고 있으라고? 그러다 자작님 손발 떨어져 나가고 목은 얼마나 천천히 떨어지나 구경하라고?”
곧바로 저 귀퉁이에서, 루노스 자작이 막힌 입속에서 읍읍, 괴성을 올리며 자신이 그리 죽을 수는 없다고 항의하는 듯했다. 물론 이자닌은 그런 자작의 항의를 깔끔하게 묵살하면서 더욱 화난 목소리를 내지를 뿐이었다.
“내가 여기 놀러 왔어? 무슨 귀한 집안의 아가씨 흉내나 내면서 여기 처박혀 있으라고? 멋대로 내가 할 일을 정하지 말란 말이야!”
파쿠란은 점차 격앙되는 이자닌의 목소리에 귀가 막힌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두어 번 후비고서 대꾸한다.
“그럼, 자작님이랑 사흘 뒤에 장례식 어찌 치러주면 되는가 진지하게 상의라도 하고 있든가. 아니면 오랜만에 아는 얼굴들 찾아서 왕도 나들이라도 하든가. 알아낼 거 알아낸 다음에 연락할 테니까, 영감님이랑 언제라도 연락할 수 있게 대책만 마련해 놓고 마음대로 하라고. 우선 우리 일은 늦출 수 없으니까, 다녀올게.”
“이봐!”
이자닌이 다시 뭐라 따지려 할 때, 파쿠란은 재빠르게 벽 속의 통로를 뛰어 내려갔고 툴로쉬와 투란은 그런 마법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가면 쓴 머리를 흔들거리면서 뒤쫓았다.
그 꼴을 보고 이자닌이 씩씩거리며 쫓아갈 낌새를 보이는데, 가르 영감이 슬쩍 그 앞을 막아서면서 말한다.
“저리 갔으니, 옛날대로라면 사흘 뒤에 저 자작님 시체가 되고 나서야 돌아오겠구나. 죽는 거 구경하는 취미가 없으니, 완전히 죽어서 여기서 치워졌는가 확인하고 낯을 들이밀지 않을까? 어떠냐, 이제 그런 일은 없는 마법사가 된 것이냐?‘
“자기가 죽인 시체 처리는 여전히 떠넘기죠. 남이 죽인 것은 사인(死因)이 뭔가 캐보는 재미로 구경이라도 하지만 확실히 자기가 사인을 제공한 경우에는 거들떠도 안 보려 해요, 여전히! 저 자작님이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오히려 관심 가질걸요.”
“그렇군…… 여전하군.”
가르 영감이 노려보는 이자닌의 눈길을 피하듯이 슬쩍 옆으로 물러서면서, 파쿠란과 툴로쉬, 투란이 사라진 길을 따라가려면 가라는 듯이 이자닌에게 길을 내주면서 대꾸했다.
지하의 하수로로 내려가 꼬인 길을 따라 사라졌을 파쿠란들을 쫓기에는 이미 늦었기에 이자닌은 한숨을 쉬고 의자 하나를 내와 걸터앉으면서 씩씩거리고 흡흡거리는 루노스 자작을 향해 말한다.
“닥쳐. 조용히 있어. 사흘 뒤에 죽기 싫다면 지금 죽여줄 수 있으니까. 어차피 해독도 못 하는 처지잖아. 징징거리지 말고 깨끗하게 죽을 각오나 하라고.”
그야말로 나오는 대로 터뜨린 막말, 루노스 자작은 그 험악한 말투와 깔보는 태도에 격분한 듯이 얼굴이 붉어져서 파르르 떨었지만 꼼짝도 못 했다. 그저 숨결만 있는 대로 거칠어질 뿐이었다.
그 꼴을 보다가 가르 영감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넌지시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이자닌에게 묻는다.
“몇 년 살다 온 그 험한 곳에서 사람도 사고팔고 했었니?”
갑작스럽게 나온 매우 엉뚱한 물음에 이자닌이 눈을 깜박이며 되묻는다.
“갑자기 뭔 인신매매 경력을 캐물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가르 영감은 슬쩍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속삭이는 척하면서 차분하게 대답한다.
“그거 있잖니…… 귀족 가문의 아이들을 납치해서 돈 받는 거라든가, 귀족 가문의 귀한 분을 잡아놓고 몸값 받든가 하는 그런 거…… 험한 곳에 들른 귀족들이 그런 꼴을 종종 당한다고 들어서…… 혹시 너도 그런 일에 낀 적이 있나 해서 말이야.”
“뭐, 그냥저냥 구경은 했죠.”
이자닌이 곁눈질로 루노스 자작을 가리키면서, 얼굴은 똑바로 가르 영감을 향한 채로 얼버무리는 말을 했다. 그 눈짓을 똑바로 보면서 가르 영감도 비슷한 곁눈질을 하며 말을 이어 나간다.
“그래? 구경만? 흐흠, 그러면…… 자작 정도 되면 어느 정도 몸값인가 혹시 정해진 가격 같은 것이 있나 모르니?”
이자닌의 입꼬리가 뒤틀리며 웃을까 말까 망설이는 듯이 얼굴이 살짝 경련하는 듯했지만, 나오는 대답은 아주 담담하고 태연하다 못해 뻔뻔할 정도였다.
“에이, 그런 일에 정해진 가격이 어디 있어요. 다 그 가문의 사정을 봐가면서 값을 정하죠. 귀족이라도 가난뱅이 골라서 망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돈 낼 여력이 안 되니까 그냥 죽이라고 배 째는 경우도 있었어요. 잡힌 당사자가 직접 협상을 해도 가문에서 돈 못 내준다고 버티다가 납치범이랑 같이 집안 털러 가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니까요. 자기 죽이고 대신 가문을 차지하려느냐고 아주 미쳐 날뛰었다는 뒷소문이 돌았었죠.”
“그러냐…… 그럴 수도 있구나. 흐흠, 그러니까…… 그냥 얘기나 들어보자는 거다, 저런 자작님이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가르 영감은 조금 진지하게, 이제는 흘깃흘깃 루노스 자작을 엿보는 시늉까지 하면서 묻고 있었다. 너무 또렷한 그 태도에 루노스 자작이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는데, 입이 막힌 꼴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수작질이냐고 버럭 소리라도 질렀을 모습이었다.
이자닌은 가르 영감과 루노스 자작의 태도를 동시에 둘러보고 피식 웃으면서도 던져진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한다.
“뭐, 일단 얘기나 해보자면…… 저 자작님, 제대로 몸값 받기 힘들어요. 우선 해독할 수 없는 독에 절어진 채이고, 완전히 뒈지는 데 사흘 남았다잖아요. 겨우 사흘 살 사람을 누가 제대로 돈 주고 사냐고요. 가문에서도 아마 빠르게 포기할걸요. 단지 예외라면, 저 자작님이 가문의 인장(印章)을 갖고 다니는 이상한 분일 경우인데…… 그 경우라면 가문의 재산을 언제라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 그냥 자기 손으로 몸값 내고 풀려날 수는 있겠죠. 아, 물론 그건 우리가 그런 거래를 할 경우에 말이죠. 근데 죽이겠다고 독을 쓴 우리랑 그런 거래를 하겠어요? 인장 갖고 있더라도 없는 척하고 죽어서 자연스럽게 가문으로 승계되도록 하겠죠. 얼핏 들으니 위임이다 뭐다 하지만, 그래도 귀족이라고요. 그 정도 계산은…….”
으읖! 읍! 흐읍! 흡! 흡!
장황해지면서도 끊어질 줄 모르는 듯한 이자닌의 말을 자르겠다는 듯이 루노스 자작이 저쪽에서 갑작스럽게 입을 막은 끈을 밀어내고 어떻게든 말을 해보겠다는 강렬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자닌이 그쪽을 보면서 혀를 찼고, 입은 다물었다.
가르 영감은 이자닌이 옛날 하던 대로 ‘저건 뭔데 저리 쓸데없이 나불거려요?’ 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확인하고 느릿느릿 루노스 자작에게 다가가면서 중얼거리듯이 말을 건다.
“숨 쉬기 답답하시오? 귀족이라 그런 일은 겪은 적이 없으니 당연하겠군. 그렇다고 숨어 있는 우리 입장에서 마구 소리치라 풀어주기도 곤란한데…… 사흘 남은 목숨을 고려해서 그동안 숨이라도 제대로 쉬게 풀어주고 싶소만, 귀족의 명예를 걸고 조용히 하겠다 약속하시겠소? 구원을 외치는 비명 따위를 지르지 않겠다고 말이오. 질러봐야 어차피 사흘 안에 죽을 몸이잖소? 어쩌시겠소?”
나긋나긋한 말투였지만 상대의 죽음을 한 번 더 확인시켜주면서, 탈출의 의도를 짓밟는 말이었다.
한데 루노스 자작은 사납게 가르 영감을 노려보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숨 쉬는 것이 중요해서 어떻게든 입을 막은 끈을 풀고 싶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꼴을 보며 이자닌이 고개를 돌려 표정을 숨기는 채로 피식 웃었다.
이게 가르 영감이 저 입마개를 풀어줄 테고, 그러면 저 자작이 할 말은…….
“몸값을 내겠다. 얼마를 원하지?”
또박또박 울려온 저 소리로 시작되는 것이 당연했다.
거기에 가르 영감이 혹한 목소리로 꺼낸 대답은…….
“우리 목숨도 오락가락하는 판이오. 그런 돈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남아야 의미 있는 것 아니오? 괜한 생각 하지 말고 남은 시간이나 편히 계시오.”
다소 서늘하게 현실을 콱콱 짚어주는 말이었다.
때문에 이자닌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가르 영감이 뭔 속셈인지 애매하기는 한데, 루노스 자작으로부터 돈은 확실하게 뜯어낼 작정이란 것!
그렇다면 의문은 한 가지만 남는 셈이었다.
루노스 자작은 거기에 넘어간다는 것을 뻔히 느끼면서도 기꺼이 응할 것인가?
이자닌이 아예 등을 돌리고 앉아 알 바 아니라고 외면하며 귀를 기울이니, 루노스 자작의 성난 목소리가 낮고 또렷하게 울려나온다.
“살아남을 것이다! 난 그대들의 일에서 손을 뗄 거야! 누구에게 말할 필요도 없어. 그냥 내 영지로 돌아갈 테니까, 그대들은 몸값을 받고 나는 왕도를 떠난다. 그 조건이면 충분하지 않나?”
문득 이자닌의 고개가 갸웃했다.
‘루노스 자작의 저 당당한 태도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