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19)
“연락은 무슨! 그냥 내가 두드리면 그 신호에 맞춰 내가 있는 주변을 스캐닝해서 보는 거야. 그게 염탐이지, 뭔 연락이냐고!”
툴로쉬의 툴툴거림은 이 말을 끝으로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일단 끝났다.
더 할 말이 잔뜩 있는 듯했지만 가면을 썼어도 어깨를 촤악 늘어뜨린 채로 건들거리는 투란의 태도와 가면 없이 노골적으로 마법사의 험담을 마법사에게 하지 말라고 불편하고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꾸미는 파쿠란의 얼굴을 더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꺼낸 이야기는 여전히 바람 반지와 격이 다른 가면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알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파쿠란은 인내심을 쥐어짜 내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 무슨 일을?”
툴로쉬는 갸웃하면서 물음을 재촉했다.
“삼 왕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파쿠란이 간략하게 말했다.
툴로쉬가 가면 쓴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의아한 듯이 되묻는다.
“삼 왕자? 삼 왕자에 대한 소문은 잔뜩 있잖나? 소문의 내막을 파헤치려고? 그런 소문의 자세한 이야기가 필요한가?”
“소문이 엉망진창이라서 그럽니다.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기는 했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조차 앞뒤가 맞질 않아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페브라 왕국 북방의 지하미궁에서 몬스터 떼가 몰려나왔을 때 병사를 이끌고 출전해서 막아낸 이는 일 왕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나오면 상처 입은 병사들에게 치유약을 베풀고 몬스터 떼로 인해 마을이 박살 난 이들을 위로했다면서 삼 왕자를 칭찬하는 말만 잔뜩 나오죠. 일 왕자는 몬스터와 직접 맞서서 칼을 들고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뒷짐 지고 서서 구경만 했다는 것처럼 과소평가되더군요. 하나 더 예를 들면, 왕국의 구휼(救恤) 관리들이 재난을 만난 공민에게 지원해주는 일을 실효가 있게 손보고 관리한 이는 이 왕자입니다. 한데 구휼받은 공민들은 삼 왕자가 자신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위로했다고 그 구휼이 이 왕자와 전혀 상관없다는 것처럼 떠들더군요. 심지어는 일 왕자가 몬스터와 싸우고 이 왕자가 행정의 처분을 개선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칭송은 삼 왕자에게 바치는 작자까지 있습니다. 툴, 이건 자연스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에요. 하물며 그 칭송받는 삼 왕자가 도적 길드에 손을 대려 한다는 것은 한층 더 위험한 예상까지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무슨 말인가 알았어. 알아봐 줄게!”
뭔가 멍한 태도로 서 있다가 툴로쉬가 두 손을 내저으면서 외쳤다.
가면 쓴 채로 멍하니 서 있었더니 납득을 못한 것이라 여긴 것처럼 파쿠란이 계속 납득시키겠다고 온갖 사례를 다 끄집어낼 모습인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듯한 툴로쉬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파쿠란의 보채는 말은 그럼에도 몇 마디 더 이어졌다.
“오래 걸리면 곤란합니다. 당장 암살자가 들이닥치고 있잖습니까. 그냥 암살자도 아니고 상아탑의 마법사까지 동원되고 있어요. 오래 끌게 되면 도적 길드에서 얌전 떨고 있던 녀석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사고 칠 수 있습니다. 도적 길드의 멤버란 것들이 별별 녀석들이 다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사고의 범위는 왕도 전체를 뒤흔들 수 있고…… 왕국의 안위도 불안해질 겁니다. 툴, 그런 거 원하는 거 아니겠죠?”
“이 동네야 뭐, 내 알 바 아니기는 하지. 아, 그렇다고 부추길 생각이 있는 거는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어차피 브로큰 킹덤이잖아. 여기 나라가 하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도 일부러 망가지는 꼴을 구경만 하지는 않아. 그러니 너무 염려 말라고. 아, 내 말을 못 믿는 표정이잖아! 정말 이상한 성격만 바라크를 닮았다니까! 바라크랑 피도 안 섞였으면서 성격만 쏙 빼닮는 거 보면…… 역시 배우는 과정에서 세뇌라도 당하는 것 같다고! 젠장!”
툴로쉬가 투덜거리다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투란은 강력한 몬스터 헌터와 비범한 흑마법사가 한 번씩 입을 열 때마다 길게 자기 할 말을 잔뜩 늘어놓는 광경에 아주 깊이 감동해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도 모르기는 했지만 말하는 태도를 보면 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가는 욕과 저주를 한꺼번에 얻어먹을 수 있다는 낌새가 역력하기도 하니!
하지만 둘이 잠시 입을 다물고 서로 눈치를 보며 여차하면 눈빛으로 칼부림이라도 할 듯한 묘한 분위기를 띠니, 투란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단순하고 간결하게!
“뭐 해요, 이제?”
이는 곧 파쿠란이 입을 열게 했다.
“투란, 너는 이자닌을 지켜줬으면 해. 마스터 홀시딘과 중재도 어느 정도 된 셈이니까. 나는…… 조금 더 거리를 돌면서 조사를 해야겠어. 툴, 어쩔 겁니까?”
툴로쉬가 잠깐 갸웃하다가 대답한다.
“나야 뭐…… 마스터 홀시딘이 알아본다는 일을 다른 쪽으로 따로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아탑의 마법사가 끼어들 일이라면 상아탑의 마스터는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해결하려 할 테니까. 삼 왕자 일을 더 파헤치고 싶으면 잠시 나랑 가는 것도 괜찮겠는데, 어쩌겠어?”
“그러죠. 그럼, 투란은…… 혼자 돌아갈 수 있어?”
파쿠란이 물었다.
투란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문제없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
더 복잡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말하자마자 투란은 뒤로 물러섰고 돌아서서 다시 이자닌과 가르 영감이 기다리는 은신처로 냉큼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툴로쉬가 툴툴거린다.
“굉장히 지루했나 보네…… 어이, 바라크의 후예. 저 녀석 정말로 어떤 녀석이야?”
파쿠란은 짧게 대답한다.
“마스터 홀시딘에게 물어봐야 할 겁니다.”
“가자고, 그것도 나중 일이니까. 닥친 일부터 해결하자고.”
툴로쉬가 앞장서고 파쿠란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하수로의 얕은 물이 철렁거리는 소리를 울리며 인기척을 지웠다.
* * *
“이자닌?”
투란은 은신처에 들어서자마자 스윽 둘러보고 바로 이자닌을 향해 가면을 똑바로 향하게 하면서 불렀다.
이자닌이 당당하게 대꾸한다.
“왜?”
“왜 혼자 있어?”
투란의 물음이 바로 튀어나왔다.
나갈 때는 묶어둔 자작도 있었고, 늙은 도적 영감님도 있었다.
한데 투란이 돌아오니, 이자닌 홀로 침낭을 널찍하게 깔고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나갔다 돌아온 사람으로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자닌의 대답은 매우 태평하게 나올 뿐이었다.
“그야 다들 나갔으니까 그렇지.”
“영감이랑 자작님은?”
“돈 받고 풀어주겠다고 데려갔는데?”
“누가 돈을 내는데? 아니, 잠깐! 그 전에 가르 할배 지금 나돌아다녀도 되기는 하나?”
“몰라. 알아서 하겠지. 젖먹이도 아니잖아. 아니, 그 나이면 내가 간섭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네!”
너무 당당해서 뻔뻔한 이자닌의 대답은 잠시 투란의 말문을 막았다.
하지만 투란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기어코 다시 말문을 열어 묻는다.
“이자닌, 여기 안전한 거야? 그냥 벡커드가 지키는 곳으로 돌아갈까? 가르 할배가 알아서 한다면, 우리도 알아서 하는 게 좋지 않아?”
“변태 있는 곳으로 왜 가! 아, 생각만 해도 혈압 치솟는다! 투란, 변태 벡커드랑 따로 있는 편이 훨씬 좋다고!”
“어, 그야…… 그렇겠지만 그래도 가르 할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 있는 것도 좀 위험한 거 아닌가?”
투란이 다시 매우 상식적인 몬스터 헌터의 자세로 말해봤다.
몬스터 사냥에서 은신처란 한 번 들락이면 바로 폐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자꾸 들락거리면 지나가던 짐승도 저기 뭐가 있구나 하고 한 번씩 쳐다보고 가니까. 숨어서 지켜봐야 하는 몬스터의 예민함을 피하려면 한 번 사용한 은신처는 일단 닫았던 문을 여는 순간에 바로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한데 이자닌은 이런 상식적인 물음에 대해 투란이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한다.
“가르 영감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여기 있는 게 더 안전하지. 가르 영감이 누군가에게 잡혔다면 가르 영감의 은신처를 뒤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잖아. 본인을 잡았는데 은신처를 뒤져서 뭐 하겠어?”
“어, 음, 그런가?”
투란은 뭔가 납득할 수 있을 듯해서 엉겁결에 대꾸를 하고 말았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투란의 뇌리를 울리는 타박을 한다.
―바보냐? 일행의 잔당을 캐자고 쳐들어올 수 있잖아!
퍼뜩 투란도 깨닫고 다시 이자닌에게 우물쭈물하는 말투로 묻는다.
“그 할배, 한패를 남겨뒀다고 버티거나 하지는 않겠지? 한패까지 다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일 같은 거 없겠지?”
이자닌이 뒹굴던 침낭에서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 태도가 투란에게는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고 대답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자닌은 담담한 웃음부터 지으면서 투란을 달래듯이 말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질까는 예측할 수가 없지. 도적 길드 원로 하나 때려죽이자고 상아탑의 마법사가 셋이나 몰려오는 일 따위, 농담으로도 안 먹히는 이야기잖아. 하지만 투란, 우리는 그 일을 겪었지! 그러니까, 어떤 상상을 하든 현실은 그 상상보다 더 험악할 수 있다고 여기고…… 그냥 쉬자고. 아, 그러고 보니 가르 영감이 돈 받아 돌아올 때 맛있는 것도 몇 가지 챙겨온다고 했으니, 기대해.”
나긋나긋한 말투 속에서 슬그머니 넘어가려 하는 이야기의 내막을 투란은 간파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딱히 숨기려는 태도도 아니고 그저 이런 말 저런 말 해서 대강 넘기자는 것이니, 조금만 신경 쓰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자닌, 누가 쳐들어오기를 기다려? 그런 거야?”
“응, 그런 거야.”
이번에는 꾸밈없이 맑게…… 다만 어딘가 잔뜩 심술궂고 음흉하게 이자닌이 씨익 웃었다. 녹색의 눈동자와 금발의 화사함이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사악한 흉계를 꾸미는 못된 악당으로 착각하기 딱 좋은 표정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기에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여야 했고, 문득 떠올랐다는 시늉을 하면서 되는대로 다시 묻는다.
“근데 돈은 뭐야? 누가 왜 줘?”
엿듣기는 했지만 모르는 척하고 대충 던진 물음이었다.
이자닌이 다시 풀썩 누우면서 대답한다.
“그 자작이 자기를 풀어주는 대신에 준다고 했어. 가르 영감이 그거 받겠다고 데리고 나갔다니까.”
“독은?”
“파쿠란이 로튼랫 얘기를 했잖아. 알아서 하겠지.”
“몬스터 로드가 된다고? 그런 부유한 귀족이?”
투란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자닌도 이번에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투란의 의혹에 더하듯이 말한다.
“그게 좀 이상하기는 해. 하지만 그 자작님 인생이 어떻게 꼬여 있는가를 우린 모르잖아.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나 보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살아나도 우리랑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거야.”
“다시 볼 일 없어? 정말로? 어떻게?”
투란이 이자닌의 확신을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자닌이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대답한다.
“북쪽에 있는 영지로 돌아간다고 했어. 우리는 여기 일 보면 왕도를 떠날 거잖아. 원래는 자기 영지에서 나오질 않았을 자작님이고, 우리는 여기 있을 리가 없는 몬스터 헌터니까 사실은 이렇게 만날 일이 없었지. 뭐, 묘하게 서로 어긋난 채로 엮이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랑 엮였다기보다는 그 툴이란 헌터랑 엮인 거잖아? 그렇잖아?”
“그렇지. 음, 정말 다시 보기 힘들겠네. 죽든 살든…….”
투란은 루노스 자작이 앉았던 의자로 가 앉으며 중얼거렸다.
묶었던 끈이 의자 아래에서 밟혔고, 투란은 은신처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곳임을 자랑하듯 걸려 있는 창턱에 팔을 기대면서 페브라 왕도의 풍경을 훑어봤다.
잠시 후, 이자닌이 불쑥 투란에게 묻는다.
“투란, 너 정말로 도적왕의 검술을 배운 거야?”
“응? 검술? 아니, 내가 배운 거는 검술이라고 하기에는 좀…….”
흠칫하다가 투란은 갸웃하는 채로 대답을 늘어놓으려 했다.
이자닌이 그 모호한 말을 자르듯이 다시 묻는다.
“그럼, 도적왕의 비술을 배운 거야?”
“엥? 아니, 그러니까 난 도적왕이랑 내가 배운 게 엮였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정말로 아케인 브레이크가 도적왕의 비술인 거야?”
다시 부정하면서 한숨과 함께 투란이 되물었다.
이자닌이 누운 채로 팔꿈치를 세우면서 투란을 보는 채로 대답한다.
“모르고 배웠더라도, 투란 네가 사용한 그 검술은 도적왕의 검이 맞아. 진짜 도적왕이 쓰던 파마의 검이야.”
투란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