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2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20)
‘키린, 키린은 대체 뭘 배운 거예요?’
뇌리에서 입 밖에 낼 수 없는 의문을 되뇌다가 투란은 한숨만 쉬고 말았다.
툴로쉬과 파쿠란의 대화에 휘둘리다가 이자닌 쪽에서 일어나는 일에 잠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사이에 가르 영감은 루노스 자작과 함께 사라졌고, 이 은신처가 박혀 있는 건물의 위편 공중에 그냥 둥실거리며 머무는 채로 관찰과 감시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 뭔가 따지고 생각해야 한다면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일 텐데…… 이자닌은 가르 영감과 다른 생각일지라도 투란이 사용했던 ‘아케인 브레이크’라는 검술에 대해 뭔가 원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더 생각하지 않고 투란은 바로 묻기로 했다.
“그거, 중요한 일이에요? 도적왕의 검술이냐 아니냐?”
이자닌이 풀썩 침낭에 엎어지듯이 뒹굴면서 느릿하니 대답한다.
“아니, 중요한 거는…… 도적의 비보(祕寶)야. 검술을 비롯해서 도적왕의 온갖 비술(祕術)이 도적의 비보랑 함께 숨겨져 있었다니까. 결코 갈라서지 않는 비보와 비술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비술을 지닌 자는 비보에 대한 단서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 도적왕이 남긴 도적의 비보를 찾고 싶어 하면, 당연히 비술을 쫓게 되어 있는 셈이야.”
“아, 그런 거군요. 어, 그런데…….”
“알아. 도적왕의 유산을 단편적으로 얻은 경우는 종종 있었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야. 너처럼 자신이 얻은 것이 도적왕과 연관이 되어 있는 줄 모르는 경우도 당연히 있었지.”
“으흠…… 그러면 가르 할배는 괜한 욕심을 부린 셈인가요? 내가 왕의 검을 썼네 어쩠네 했지만 결국 별 소용없는 얘기가 되는 거잖아요? 그냥 어쩌다 배운 것이 그런 거니까.”
투란이 창밖을 내다보면서 살짝 쓴웃음을 짓듯이 말했다.
이자닌의 단호한 목소리는 그런 투란의 눈길을 다시 되돌렸다.
“그렇게 소용없는 얘기가 아니라서 가르가 고집을 부린 거야. 그 할배는…… 괜한 짓을 하지 않아.”
“소용이 있어요?”
“응. 파마의 검은 도적왕이 남긴 비술 중에서도 많이 특별하니까.”
“특별?”
“도적이 아닌 투란은 몰라도 되는 일이야. 그만하자, 잠깐 잘 거야. 바로 도망칠 일이 아니면 깨우지 마.”
말을 마치자마자 이자닌은 반듯이 자세를 고쳐 눕더니 배에 손을 얹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곧바로 고른 숨결과 함께 잠든 모습이 돼버렸다.
투란이 자는 척하는가 하고 갸웃하는데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린다.
―흠? 수면 상태인데? 재주가 있군.
“진짜?”
투란은 뒤늦게 놀라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오러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나?
드라고니아가 갸웃하는 말투로 물었다.
입을 다물고 투란은 소리 없이 대답해야 했다.
‘이상한 짓을 한다 싶었지. 굉장히 약하고 흐릿해서 그냥 몸을 편히 눕히려고 하는 건가 했어. 그게 잠들려는 짓인 줄은 몰랐어. 졸립지도 않고 자야 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오러로 잠드는 기술도 배우지 않았나? 그 못된 키린도 가끔 비슷하게 잠들고는 했었는데?
드라고니아의 의문에 투란은 쓴웃음부터 지었다.
대체 언제쯤이면 드라고니아가 키린에 대해 ‘못된’ 기분을 치우고 그냥 키린이라 부를 것인가,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 때까지는 아무래도 투란 홀로 키린은 못된 녀석이라고 하는 드라고니아의 평가를 반복해 들어야 할 듯하니, 왠지 씁쓸하면서도 우스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투란도 키린의 ‘못된’ 짓을 실컷 겪은 탓인가 그 평가가 완전히 틀렸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기도 했다. 그래서 그저 이자닌이 보인 잠드는 재간에 대해 되새기면서 키린이 몸으로 겪게 해줬던 그 오러의 운용법을 검토해보는데…….
‘아, 있다! 잠들어야 하는데 아주 심한 충격이나 고통으로 잘 수 없을 때 쓰는 거라고 있어! 이자닌이 쓴 재주랑은 다르지만 효과는 같은 모양이야.’
―이자닌이 쓴 거랑 다르다고? 그 운용법의 차이를 알아?
‘어, 차이가 좀 나기는 하는데 닮아서 알기 쉬워. 음, 이자닌은 그냥 피로를 털고 체력을 회복할 목적으로 쓴 거라 그러나? 아무튼, 키린의 말대로라면 사람 몸에 적용되는 기술이라서 본인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쓸 수 있어. 아, 그러고 보니 이거 잠깐씩 써본 거 같은데? 굉장히 지쳤다고 느꼈을 때, 오러의 힘을 쓰고 있으면 저절로 되기도 했고…… 생각 없이 그냥 쓰기도 했었나? 으흠…….’
기억을 더듬으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억 속에서 찾아내고 보니, 왠지 익숙하고 자주는 아니지만 여러 번 써봤다는 느낌이 짙었다.
이런 투란의 기분에 드라고니아가 바로 툴툴거린다.
―생각하고 배운 게 아니라 그 모양이겠지. 키린이 네 몸에 강제로 새겨놓은 거니까 말이야. 생각 없이도 몸이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해놨잖아.
‘으엑…… 그런 건가!’
언제 생각하고 의도해서 썼는가를 떠올리려던 투란은 바로 포기했다.
쓸 수 있으면 좋은 것이지, 굳이 지금 이걸 언제 써봤더라 더듬을 필요는 없으니까! 괜히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키린의 강제주입식 학습법이 발동할 듯한 기분은 투란이 바로 다른 것을 생각하도록 부추긴 셈이었다.
그래서 투란이 생각을 돌린 것은 이자닌, 파쿠란과 엮이면서 시작된 이 도시로의 여행과 도착한 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일들에 대해 생각을 시작하고 둘을 세기 전에 투란은 바로 드라고니아에게 묻는 말부터 내던지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될 것 같냐?’
―뭐가?
드라고니아는 모르는 척했다!
‘야, 내가 대체 무슨 일에 엮인 거냐고!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이냐고!’
투란은 울컥했지만 다시 조금 길게 덧붙여 물었다.
―인간 세상의 복잡한 관계를 내가 어떻게 예측하냐? 너도 모르면서!
‘드라코눔의 아칸이잖아. 거기서 귀족이니 왕족이니 하는 높으신 분들이랑 엮여봤잖아. 인간 세상에 나와서 키린이랑도 어울려봤고…… 내가 모르는 일도 잔뜩 봤으니까 뭐든 대강 알 거 아냐!’
조금 더 진지하게 투란은 드라고니아를 향해 대답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드라고니아도 살짝 놀란 듯, 조금 신중해진 말투로 답한다.
―그런 거라면…… 이 상황에 어울릴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림잡아 예상해볼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하다만, 전혀 엉뚱한 예측이 될 수도 있어.
‘난 엉뚱한 예측도 안 된다고! 뭘 알면 엉뚱하지 않은 예측이 되는 거야?’
투란이 투덜거렸다.
드라고니아가 살짝 새는 웃음이 걸린 듯한 말투로, 하지만 아주 신중하게 예측이 담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럴 때는 마법사의 말을 기반으로 추측하는 것이 가장 좋아. 너랑 함께 이 왕도에 도착했고, 너 아는 만큼 아는 입장에서 너와 전혀 다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자, 그럼 먼저 왕자들의 일이 첫 번째다. 투란, 파쿠란이 이 나라의 세 왕자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는 말을 들었지? 그건 이 나라가 지금 왕자들 간의 다툼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할 근거가 된다. 하지만 셋이 모두 서로를 적으로 여긴다기보다는 첫째 왕자, 둘째 왕자가 한편이고 셋째 왕자가 그 적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거야. 두 번째 추측은 셋째 왕자는 매우 음흉하다는 점이다. 그 근거는 셋째 왕자가 도적 길드를 손에 넣기 위해서 상아탑의 말단 마법사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야. 첫째 왕자는 몬스터와 싸우는 병력을 이끌고 있고, 둘째 왕자는 왕국의 행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파쿠란이 한 말이잖아, 그게 그런 말이다. 아무튼, 셋째 왕자는 둘과 다르게 사람들 사이의 소문을 조작하고 있다고 할 거야. 하는 일 없이 칭찬을 듣는 작자가 암살자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그건 사실이라고 단정해도 괜찮을 부분이다. 이게 대략 왕족들 간의 일이고, 왕국의 중심인 왕도의 분위기를 만드는 첫 번째 요소야. 그리고 도적 길드는 거기에 휩쓸려 있는 채이고, 이자닌을 따라온 너는 도적 길드의 일에 휩쓸리는 중이란 거지. 세 번째 추측은…… 귀족들과 헌터들 또한 휩쓸리고 있는 중이란 점이겠지. 그러니 왕도 전체가 큰 사건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라 보면 된다. 대강 이런 상황이라고 예측할 수 있어. 자, 그러면 이제 너는 어찌할 거냐, 투란?
‘몰라. 왕족이니 귀족이니 길드니…… 헌터 길드도 아니잖아! 대체 뭘 어쩌라고!’
투란은 이자닌이 자는 모습을 흘깃하고는 창문 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여전히 낯선 거리, 높이 솟은 왕성이 한편으로 보일 뿐이었다.
세어보라 하면 금세 질릴 듯한 건물들…….
알드바인의 풍경처럼 한쪽 높은 곳에서 보면 시작과 끝이 명확한 그런 도시가 아니었다. 빙빙 돌면서 어디서 봐도 건물 사이에 가려서 그 끝이 어딘가 애매한 도시는 그 안에 담긴 사정(事情)조차도 애매했다.
서서히 드리워진 그림자가 낮이 밤을 향해 열심히 질주하고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게 해줄 때, 드라고니아가 조용히 한마디 한다.
―투란, 느끼고 있나?
‘뭘?’
갸웃하며 대꾸하고 나서 투란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발아래에서, 이 은신처의 방바닥에서 뭔가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었다.
곧바로 방바닥 전체로 그 진동이 전해지는데, 가벼우면서도 명확한 것이 꽤 신기했다.
이 상황에 투란이 흥미를 품고 아예 내려앉아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짚는 사이, 이자닌이 두 발로 허공을 걷어차면서 거꾸로 굴렀다. 곧바로 투란과 비슷한 자세로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손바닥으로 짚으면서 이자닌이 으르렁거린다.
“가르 영감! 대체 누구한테 여길 알려준 거야!”
투란이 슬쩍 여기에 반론을 제기해본다.
“알려줬다면 문 열고 들어오지 않았을까?”
상대는 벽의 비밀통로를 따라 제대로 문을 여는 대신에 바닥을 뚫고 있었다.
어떻게 은신처의 위치는 알아냈지만 출입방법을 전혀 모르니 우악스럽게 건물에 구멍을 내는 셈이었다. 그러니 가르 영감이 알려줬다기보다는 뭔가 다른 수단으로 은신처를 알아내고 찾아오는 것으로 보는 게 맞을 듯싶다.
이자닌은 투란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알려줬으면 쫓아가서 멱을 따버릴 텐데!”
왠지 섬뜩한 말투에 투란은 어이없었다.
이자닌은 은신처에 예상 못 한 침입자를 핑계로 가르 영감의 멱을 딸 궁리를 하고 있었던가! 대체 언제 그리 나쁜 사이가 되었기에?
퍽, 크르륵.
바닥에서 반짝이는 은색 꼬챙이가 치솟는가 싶더니, 그 주변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널찍하게 깔려 있던 침낭이 열린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 듯이 사라졌다.
“계속 자고 있었으면 엉덩이를 찔렸…….”
무심결에 이자닌이 자던 자리를 떠올리면서 중얼거리다가 투란은 말을 흐리고 끊어버렸다. 곁에서 이자닌이 번개라도 쏘아낼 듯이 노려보는 것을 느낀 탓이었다. 눈이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찌릿찌릿하고 속이 떨리니, 이건 대체 무슨 오러의 기술인가 궁금한 투란이었다.
―이 상황에서 할 말이냐? 네 양심이 찔린 거겠지!
‘아니, 그럴 수도 있었잖아!’
소리도 못 내고 투란은 비아냥거리는 드라고니아에게 반발했다.
그렇게 지켜보는 사이, 은색 꼬챙이가 한 바퀴 돌고는 가라앉듯이 사라졌다.
침낭을 빨아들인 구멍이 더 넓어졌고, 길쭉한 은색 널판이 그 한편에 턱 걸쳐졌다. 널판은 곧 주름을 만들었고, 주름은 계단이 되었다.
‘마도구?’
그 모양이 변하는 광경에 투란이 갸웃했다.
―아니야. 접히는 사다리를 계단 모양으로 만든 것뿐이야.
‘저렇게 깔끔하게?’
―확실히 깔끔하기는 하군. 일부러 저렇게 만들어달라고 한 모양인데?
드라고니아도 나름대로 은색 계단이 된 널판에 의아해하는 사이, 이자닌이 말없이 노려보는 사이에 계단을 밟고 올라선 자가 있었다.
투란은 뭐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자닌도 살짝 할 말을 잃었다는 듯 곁에서 ‘흐?’ 하는 신음 같은 소리만 낼 뿐이었다.
올라선 이의 모습이 꽤 화려한 탓이었다.
진홍(眞紅)의 바탕에 은색 테를 두른 망토, 검은 바탕에 온갖 금장식과 금빛 무늬가 가득 채워진 옷차림, 허리에 두른 벨트와 거기 걸린 칼자루조차도 세공한 보석을 잔뜩 박아놓은 몰골로 도적의 은신처에 구멍 뚫고 올라오다니…….
그 화려한 자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이자닌을 보더니, 정중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까지 하고 있었다.
“호오, 그대가 바로 소문이 자자한 아름다운 이자닌이시군! 하핫, 만나서 반갑소! 나는 다모스 킬튼, 내 이름은 들어보신 적 있으시오? 남작이기도 하오만…….”
이자닌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투란은 퍼뜩 기억난 것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아, 이야기꾼 말투다!”
다모스 킬튼 남작에게 뭐라 하려던 이자닌은 순간적으로 가면 쓴 투란을 흘겨봤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핫, 그 가면 놀이랑 잘 어울리는데?”
다모스 킬튼 남작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기다리던 답례를 포기했다는 듯이 손을 내리며 말했다.
“레이디 이자닌, 인사를 받으면 그 인사에 먼저 답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레이디로서 소양이 부족하시군요.”
투란에게는 그 모습이 더욱 이야기꾼 같다고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