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2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21)
Chapter 145. 페브라 왕성, 붕괴 Ⅲ
―정신 차려! 도적 길드 원로가 꾸민 은신처에 마도구를 써서 뚫고 올라선 작자다! 괴상한 몰골이라고 냅다 이야기해달라고 조를 궁리부터 하지 마!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속내를 짓밟겠다는 듯이 외쳤다.
‘에? 안 돼?’
―야, 이!
진심으로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재밌는 얘기해 줘요!’라고 외칠 뻔했던 투란이 정말로 그런 말 하면 안 되나 묻는 것이었기에 드라고니아는 속이 뒤집어졌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이자닌이 발딱 일어서면서 차갑게, 아주 우아하게 하는 말이 먼저 구멍 뚫린 비밀의 방을 장악하며 투란의 관심을 앗아갔고 드라고니아의 뒷말이 끊어지게 했다.
“허락도 없이 남의 방에 구멍 뚫고 쳐들어오는 놈팡이가 어디서 레이디의 교양을 따지는 거야? 기본적인 예의를 제대로 배워야 할 쪽은 대체 누구지? 그런 상식도 없으니 그런 몰골을 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네?”
“그런 몰골이라니, 설마 내 차림새를 이상하다고 여기는가? 이자닌, 상식이 있다면 이 차림새가 얼마나 우아하고 교양 있는가에 감탄을 해야 할 텐데!”
다모스 킬튼, 자칭 남작이 정말로 놀라서 잠깐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다가 격하게 자신의 차림새를 둘러보는 눈길과 함께 반박하고 있었다. 그 진지한 표정은 잠깐 이자닌의 말문을 막은 듯했고, 투란을 이모저모로 놀라게 했다.
‘우아아! 저런 게 우아하고 교양 있는 차림새였구나!’
―아니거든! 정신 차려!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소리 없는 감탄에 경악해서 부정하는 외침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강력한 반박은 투란의 마음에 깊게 스며들었고,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
‘아니면……?’
소리 없는 투란의 의문에 드라고니아가 답하기 전에 이자닌이 버럭버럭하는 외침이 실내를 울렸다.
“보석으로 쳐바르는 게 뭔 교양이야! 그게 우아하다고 믿는 거야? 진심으로? 지나가던 도적을 꼬드기는 미끼가 되려는 차림새잖아! 정말 그게 우아랑 교양을 찾는 차림새라고 믿어?”
다모스 킬튼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한숨짓는 표정을 꾸미는 채로 대답하는데…….
“정말로 당신은 레이디로서의 교양도 없고,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책임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소이다! 더 이상 당신과 대화를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수치스럽게 할 뿐이오!”
말을 마치자마자 팔짱을 끼고 눈을 감으면서 이자닌의 꼴도 보기 싫다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잠깐 그 광경을 보다가 투란이 살짝 얼어붙은 듯한 이자닌에게 묻는다.
“저 아저씨, 미친 거 아냐? 왜 바닥에 구멍 내고 올라왔지?”
이자닌이 이 물음에 어깨를 떨구면서 한숨과 함께 대답을 내뱉는다.
“미친 거 맞나봐. 대체 저 몰골을 하고 왜 여기 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잖아!”
둘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떠드는 말은 다모스 킬튼을 움찔하게 했고, 그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다시 눈을 뜨게 했다. 민망해하는 헛기침과 함께 다모스 킬튼이 꾸벅하는 몸짓과 함께 말한다.
“실례했소, 교양 없는 레이디를 상상도 못 한 탓에 잠깐 내 임무를 망각했소이다.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으니, 임무를 빠르게 수행하도록 하겠소. 내 임무에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를 부탁드리지 않을 수가 없어 슬프지만, 부탁드리겠소.”
이자닌이 두통이 난다는 표정을 구겼다.
투란은 가면을 쓴 탓에 ‘대체 저 아저씨 뭐라는 거야?’ 하고 입술만 달싹이는 소리 없는 중얼거림을 들키지 않는데…….
―뭔가 지독하게 자의식이 과잉된 묘한 정신상태로 보이는군. 자신에게 심취해서 주변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만…….
드라고니아는 희귀한 표본이라도 본다는 듯이 분석하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괴상한 설명이었다.
그러는 사이 다모스 킬튼은 이자닌의 질렸다는 지친 눈빛도 가면 눈구멍 사이로 투란이 연이어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도 상관없다는 듯, 아니면 아예 못 본 척하는 당당한 태도로 자신이 꺼낸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레이디 이자닌…… 이미 레이디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소만, 내가 당신에게 줘야 할 소환장에 그리 쓰여 있기에 그냥 읽는 것뿐이오. 내가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을 레이디로 인정하다고 착각하지 말아주시길 바라오! 어흠! 레이디 이자닌, 밤의 가호를 받는 길드의 대의회가 당신을 정식으로 소환하니, 이에 응하길 권하겠소. 이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면, 대의회는 길드의 이름을 내걸기를 마다하지 않고 당신에게 현상금을 걸 것이오. 이것이 소환장의 내용이오. 자, 소환장을 받으시오.”
제멋대로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본의도 본심도 아닌 말을 한다고 자책하는 표정을 짓던 다모스 킬튼은 붉은 밀랍의 봉인이 붙은 두루마리를 이자닌에게 던져줬다. 가볍게 건네는 손짓이었고, 작은 호선을 공중에 그리듯이 날아온 두루마리라서 한 손으로 받기에 적당해 보였지만…….
푹.
이자닌은 단검으로 두루마리를 공중에서 찔러 꿰어버렸다.
다모스 킬튼은 그런 이자닌을 보며 그저 어깨를 으쓱했고, 투란은 가면 속에서 낯을 찌푸려야 했다.
‘이거 뭔 냄새야?’
단검에 꿰인 두루마리 안에서 묘한 가루가 흘러내리고 짙은 냄새가 배어나고 있었다. 그거 코끝에 그 냄새가 걸린다 싶은 순간에 투란은 온몸에서 오러가 저절로 반응하며 저항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이로군. 두루마리를 펼치면 중독되게 꾸며놓은 모양인데, 이자닌은 미리 알고 있었나 보군.
‘헐?’
투란이 놀라서 이자닌을 흘깃하니, 이자닌이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는 짓이…… 완전히 수백 년 전 이야기에나 나오던 짓거리냐! 요새 누가 독가루를 쳐바르고 싸놓은 두루마리를 맨손으로 받아서 펼친다고!”
“부주의하고 무식한 경우에 그러지요. 뭐, 독을 쓰는 법에 대한 최소한의 교양은 갖춘 모양이니, 칭찬해 드리지요. 아니, 훌륭한 오러 센스였다고 짚는 편이 정당한 평가일까요? 어쨌든…… 소환장을 무시할 경우의 일에 대해서 경고까지 해드리는 것이 나의 임무이니, 이제 경고하겠소이다.”
다모스 킬튼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중얼거림이 끝날 무렵, 투란은 보석으로 치장하고 이야기꾼처럼 떠드는 저 남작으로부터 소름 끼치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태도, 말투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다모스 킬튼 남작을 주변으로 두껍고 강렬한 ‘힘’이 방사(放射)된 것이다.
‘엑?’
―오러…… 윌더였나?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결론을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자닌이 곁에서 으득, 이를 가는 소리를 내는가 싶은 순간, 다모스 킬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에 강력한 의지와 ‘힘’이 배어 있는 말을 한다.
“느꼈습니까? 호오? 옆에 가면 쓴 친구도 완전히 약골은 아니군요? 보통 사람, 아니 어중간한 오러 마크를 지닌 경우라 해도 이 정도 오러의 파동이면 기절하는데 버티는 걸 보니, 꽤 좋은 호위를 섭외했군요. 칭찬해 드리지요, 이자닌. 하지만 이제 알았겠지요? 당신이 지닌 오러 사인, 스노우 라이온을 나의 블랙 펜서가 인지(認知)했습니다. 도주한다는 헛된 생각은 버리세요, 소환장의 장소와 시간을 준수해서 대의회에 출석하세요. 어긴다면 이자닌…… 당신은 내 사냥감이 될 겁니다. 비참한 미래를 피하고 싶다면, 꼭 출석해야 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냥하게 되면, 당신에게 교양부터 가르쳐야 하니 굉장히 피곤할 거라 쉽게 예상할 수 있잖습니까? 그러니 꼭 출석해서 나를 번거롭게 하지 말아주길 바라겠소.”
말을 맺고 나서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모스 킬튼은 자신이 뚫어놓은 구멍 아래로 세워놓은 계단을 밟고 차분히 내려가며 사라졌다. 계단이 다시 널빤지로 모양을 바꾸며 사라진 다음에 남은 것은 은신처에 뚫린 구멍뿐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느닷없이 사라진 셈이었다.
투란은 슬쩍 이자닌을 봤고, 침낭을 찢어 두루마리를 감싸 챙기는 모습은 보며 나직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자닌, 오러 윌더였어요?”
이자닌이 투란의 가면을 흘깃하고 짜증이 어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어…… 일단은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투란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다. 아래층에서 또 누가 궁금해서 올라오려나 보니까. 나가자.”
말과 함께 이자닌은 침낭 보자기를 들고 재빠르게 벽의 통로를 열고 있었다.
재촉하는 고갯짓에 투란이 얼른 통로로 들어서니, 이자닌이 바로 문을 닫아걸었다. 다모스 킬튼 다음으로 이 건물 최상층의 은신처에 누가 고개를 들이민다 해도 벽 속의 통로까지 열고 따라오려면 꽤 시간이 필요한 셈이었다. 그리 해놓고 이자닌은 바로 손짓하며 앞장섰다.
그 뒤를 쫓으며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늘어놓는 빠른 설명을 마음에 새겨둬야 했다. 그 설명은 다모스 킬튼, 남작이 나긴 두 가지 ‘스노우 라이온’과 ‘블랙 펜서’에 대한 것이었다.
―아주 희귀한 오러 사인이다. 춤추는 산맥의 고대 왕국, 그 군단에서 드물게 채용하던 것이라 했어. 스노우 라이온은 새하얀 사자 무늬로 새겨지고 블랙 펜서는 시커먼 산사자…… 펜서의 형태로 새겨진다고 하는데, 둘이 원래는 한 쌍으로 한 사람에게 새겨지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두 개의 오러 사인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두 사람에게 따로 새겨지는 전통이 생겼다더군.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도적 길드에 관련된 이들한테 전해지는가는 전혀 모르겠다만…… 스노우 라이온, 이자닌이 정말 그 오러 사인을 몸에 지녔다면 그 감지, 탐색 능력은 당연한 거야. 스노우 라이온은 전투능력을 배제한 채로 오직 감지하고 탐색하고, 사고능력을 가속하는 기능만 갖췄거든. 군단장, 군단의 참모를 위한 특별한 오러 사인이라고도 하지. 블랙 펜서는 그렇게 전투능력을 배제한 스노우 라이온의 오러 윌더를 지키기 위한 수호역할을 맡는 이들에게 새겨진다고 했어. 격렬한 전장에서 결코 지켜야 할 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다른 거는 배제하고 스노우 라이온의 각인만은 꽤 멀리서도 바로 포착할 수 있다더군. 그래, 저 남작이란 작자가 진짜 남작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이자닌을 마킹했고, 추적할 수 있다는 말은 맞아.
긴 설명에 대해 투란의 감상은 간단했다.
‘뭔 오러 사인이 전투능력을 배제해! 그런 거 들은 적 없다고!’
오러 윌더, 오러 사인을 지녔다면 강력한 기사란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살던 아이조차 잘 아는 상식이 오러 윌더는 몬스터랑 맞서는 강자라는 것인데, 스노우 라이온은 그런 상식을 거부하고 반역하는 듯했다.
―블랙 펜서와 한 쌍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지휘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특별한 오러 사인이다. 물론 사고에 집중하기 위한 최소한의 체력을 갖춰주기는 한다고. 대신 블랙 펜서는 스노우 라이온과 링크되기 전에는 제대로 된 전투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문제이지. 그러니 보통은 두 오러 사인의 링크하면 그 주인은 아주 우호적으로 협력하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던데…… 음, 이 경우는 전혀 그럴 리가 없다고 해야 하는 상황인가.
‘링크?’
―스노우 라이온이 감지한 것을 블랙 펜서가 바로 알 수 있는 연결이다. 두 사람이 부담을 나누기 때문에 두 사람임에도 거의 열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다고 했지. 고대 왕국에서 그렇게 활용하는 것을 보고 드라코눔에서 비슷한 형식의 마법도 만들어냈었어. 이제는 쓰지 않게 되었지만…….
‘이제는 안 써? 이자닌도 쓰고 저 남작도 쓰잖아!’
―왕국 군단에서 쓰지 않는다고! 한쪽이 쓰러지면 다른 한쪽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그걸 보완한 새로운 오러 사인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사용하지 않게 되는 거지.
‘도적 길드에서 쓰지 않아 창고에 처박힌 오러 사인의 문서를 훔쳐다 쓰는 건가? 싸우지 않는다 치면, 이자닌의 감지 탐색 능력은 굉장한 거잖아?’
―그럴 가능성이 크겠군.
투란의 추측에 드라고니아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렇게 소리 없이 투란이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이자닌은 하수로에 내려섰고 거침없이 한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발에 밟혀 찰랑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그 뒤를 따르는 채로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건지, 알고 가는 거겠지요?”
이자닌이 딱 발을 멈추고 홱 돌아보더니, 투란에게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투란, 갑자기 말투가 너무 공손해! 오러 윌더니 뭐니 해봐야 오러 마크보다 약한 거라고, 내 스노우 라이온은 그런 거야. 괜히 한 대 맞을까 봐 그리 공손하게 굴 필요 없어. 성질 더러운 오러 윌더 취급하지 말라고!”
“어, 원래 공손했었는데…… 알았어. 어디로 가는지 정한 거야?”
뭔가 날이 선뜩하고 예민해진 채로 노려보는 눈빛에 투란은 고용된 호위로서 오래 품고 있었다 여긴 공손한 말투를 치우고 물음을 되풀이했다.
이자닌은 침낭 보자기를 내려놓으면서 대답한다.
“우선 이 망할 소환장의 내용부터 확인해야지. 경고니 뭐니 떠들면서도 시간과 장소 얘기는 쏙 빼놓고 갔잖아, 그 미친놈이!”
“음? 흐흠, 안 가르쳐 주고 사냥하러 나설 생각이었나?”
투란이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 사이에 하수로의 물에 젖은 보자기 안에서 두루마리가 펼쳐졌고, 그 안에 채워진 독가루가 흘러가면서 텅 빈 여백이 훤히 드러났다.
―호오? 정말 네 추측대로인가 보네?
드라고니아가 흥미로운 듯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