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2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22)
‘진짜 미친놈인데?’
투란은 단정 지었다.
이자닌의 표정을 보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말이 딱 투란 자신과 똑같을 거라고 확신할 수가 있었다.
다모스 킬튼, 진짜 남작인지 가짜 남작인지 모를 그 작자는 제대로 미친 녀석이 틀림없다! 그러니 사냥감이 되기 싫으면 지키라는 시간과 장소에 대해 텅 빈 두루마리를…… 독가루만 잔뜩 바른 것을 던져놓고 사라진 것! 애초에 지켜야 할 약속의 중요한 부분을 빼놓고 그리 협박하고 갔다는 것은…….
“이 새끼가 처음부터 내 냄새만 기억하고 튈 생각이었군! 블랙 펜서로 인지만 해놓으면 내가 갓 태어난 눈먼 강아지 같은 사냥감이 될 줄 알았나!”
이자닌의 격노한 말이 아주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투란은 자신의 확신과 약간 다른 이자닌의 반응에 살짝 놀랐다.
미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랬다 여기는 부분…… 투란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잖은가.
―그냥 미친놈과 널 죽이겠다고 나서는 미친놈 중에 누가 더 위험한 거냐?
‘날? 아니, 이자닌이 목표……라고 해도 내가 지켜야 하니 마찬가지네?’
슬쩍 발뺌하려다가 투란은 곧 자신이 맡은 바를 느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다모스 킬튼이 어떻게 미친놈이든, 이자닌을 사냥하겠다고 했고 그 의미는 투란이 가로막으면 그냥 두지 않는다는 셈이었다.
“어쩔 거야?”
투란이 살짝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성난 이자닌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시도였지만, 이자닌은 더욱 성난 목소리를 터뜨리며 하수로를 울리고 있었다.
“뭘 어째! 이 미친놈 멱을 따줘야지!”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투란은 가면 눈구멍 사이로 엄청나게 어이없다는 눈길을 최대한 뿜어내면서 다시 물어야 했다. 미친놈 쳐잡는 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갔는지 모를 그 미친놈을 어떻게 찾아내서 멱을 따려 하는가, 방법을 제시하라고!
성난 이자닌의 눈가가 잠깐 실룩거렸지만 녹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데굴거리면서 잠깐 생각을 하는 낌새가 드러났다. 성난 채로 되는대로 말했는데 사실 목표만 정하고 그 방법은 미처 생각도 못 했다는 것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살짝 기다리면서 둘까지 침묵의 순간을 세다가 투란이 대놓고 가면 사이로 한숨을 ‘하아!’ 하고 길게 흘려내니, 이자닌이 재빠르게 말한다.
“어디 갔나 모를 이상한 놈 찾는 일은 역시 마법사가 잘하지!”
“아, 그렇긴 그런데…… 파쿠란?”
“당장 구할 마법사가 따로 또 있어?”
“없기는 없지만…… 뭐 하러 갔든지 아직 돌아오지 않는 것은…….”
“불러서 빨리 마무리하라고 해야지!”
“음…… 부를 방법은 있는 거지?”
조금 전의 상황을 되새기듯, 미심쩍다는 듯이 묻는 투란을 향해 이자닌은 고개를 젖히면서 웃는 시늉을 하는 채로 대답한다.
“파쿠란은 언제든 부를 수 있어!”
“여기서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슬쩍 하수로의 위 천장과 좌우를 훑어보며 투란이 또 물었다.
이자닌은 냉큼 앞장서면서 대답한다.
“가던 길이었다고, 가던 길!”
가면 속에서 쓴웃음을 지으면서 투란은 이자닌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해서 한참 이리 돌고 저리 돌면서 하수로를 통과한 곳에는 위로 올라가는 쇠로 된 사다리가 있었고, 촘촘한 창살 모양의 뚜껑이 거리로 나가는 구멍을 막고 있었다.
이자닌은 거침없이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는데, 손으로 창살 뚜껑을 두어 번 밀다가 바로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투란에게 말한다.
“투란, 열어!”
“네, 그러지요.”
투란은 일부러 굽신거리는 태도를 꾸민 채로 키득거리며 대꾸했다.
“웃지 말고!”
이자닌이 살짝 발끈했지만 다시 올라가서 자기 손으로 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녹슨 채로 단단히 고정된 창살 뚜껑이 어지간한 힘으로는 밀어 올릴 수 없는 것을 바로 확인한 다음이니…….
삐익, 키키킥!
길고 날카로운 소리에 이어 녹슨 쇠가 마찰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창살 뚜껑이 밀려 올라갔다.
투란이 재빨리 구멍을 나서서 둘러보니, 거리의 한 귀퉁이 골목이었다.
이자닌이 바로 구멍에서 나와 투란에게 손짓한다.
“이쪽이야, 길드에서 마련해둔 집이 있어. 늘 비어 있고 급한 녀석이 쓰라고 말이야. 우리 말고 급한 녀석이 있을지도 몰라.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안에 들어가서 누가 보이면 그냥 때려눕혀 놔.”
“정말 길드에서 마련해둔 집인 거지?”
투란은 이자닌이 툭툭 두드리는 문을 보며 한번 더 확인한다는 듯이 되물었다.
누가 사는 집에 들어가서 일단 보이는 대로 때려눕히기란, 사실상 강도나 할 짓이 분명하니까! 게다가 도적 길드의 숙녀분이 권장하는 일이니, 정체가 들통나면 정말로 그냥 강도잖은가!
하물며 이자닌은 지금 안에 누가 있는 거 감지하고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
때문에 투란은 쳐들어가 때려눕히기 전에 한번 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우려하는 투란을 향해 이자닌의 대답은 시원스럽게 나온다.
“아니면 또 어때! 하지만 맞으니까 괜찮아!”
동시에 투란의 뇌리에 드라고니아의 비꼬는 말이 울린다.
―오늘부터 강도 투란으로 직업을 바꾸는 거로군!
‘시꺼!’
한숨을 참으면서 투란은 이자닌이 두드린 문을 밀었다.
안에서 빠득거리면서 빗장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자닌이 으읏 하며 투란 곁에서 중얼거린다.
“잠글 수가 없는 문짝을 만들다니…….”
“도적의 기술로 문을 열어주든가!”
투란이 투덜거리면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빗장 부러지는 순간에 안에 있던 이들, 두 명의 사내가 놀라서 탁자를 끼고 벌떡 일어서는 중이었다. 탁자 위에 놓인 밀빵, 얇게 구운 고기, 벌꿀과 잼 따위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한창 끼니를 때우다가 화들짝 놀란 듯이 보였다.
하지만 투란은 이자닌이 빠르게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토시 안에 비수가 있고, 부츠 안에도 단검이 있네. 재킨은 몽땅 이중처리된 주머니고…… 쟤네들,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주로 하고 빈집 터는 잡탕 도적이야. 저 지경이면 이 집의 이용권한 따위는 없을 텐데…… 하아, 길드도 많이 망가졌구만.”
“누, 누구냐!”
“뭐 하는 년이!”
투란은 두 사내가 떠드는 두어 마디 사이에 이자닌의 말이 다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드라고니아는 질린 모양이었다.
―뭔 말이 이리 빠르냐? 인간의 발성기관으로 저럴 수 있는 거냐?
‘이미 했잖아.’
소리 없이 대꾸하면서 투란은 날렵하게 움직였다.
이자닌의 말대로 두 사내는 당황한 와중에 한 명은 토시에서 비수를 꺼내 손에 쥐었고, 한 명은 침입자와 거리를 두려는 듯이 외발로 깡충거리면서 부츠 안에 든 단검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런 둘에게 투란은 냉큼 다가서서 목덜미를 손으로 한 대씩 쳐줬다.
키린에게서 배운 대로 가볍게 모은 오러의 힘이 단숨에 둘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기우뚱하며 쓰러지게 했다.
이자닌이 쓰러진 둘을 재빠르게 끈으로 묶는데, 그 끈이 둘의 몸을 뒤져 꺼낸 것이라서 투란이 흠칫했다. 아마 평소 장비 중의 하나로 끈을 가지고 다닌 모양인데, 이렇게 때려눕힌 다음에 저리 쓰이는 것을 보니 너무 잘 준비해서 다니는 것도 꽤 위험해 보이잖는가! 덕분에 투란의 뇌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생각이란…….
‘나도 끈 있는데…… 잘 숨겨두고 남은 못 쓰게 해야겠어!’
앞으로 조심할 것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투란은 자신이 밀어 부러뜨린 빗장이 걸려 기댄 문짝을 다시 닫아걸고, 적당히 아래쪽에 부러진 빗장을 밀어 넣어 바람결에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해놨다.
그리고 돌아서서 이자닌을 보니, 손에 둥근 장식을 든 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파쿠란, 일이 꼬였어. 나 찍혔어. 어떤 미친놈이 블랙 펜서를 몸에 달고 왔다 갔어. 일단 나 있는 곳으로 와봐.”
“마도구?”
투란이 이자닌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마디 던져봤다.
“일회용이야, 비상시에 한 번 쓰려고 부탁해놨던 거지. 시간 되면 알아서 찾아오는 게 보통 약속이지만, 지금은 시간 되면 미친놈부터 찾아올 테니까 어쩔 수 없지.”
어깨를 으쓱하며 이자닌이 대답했다.
투란은 소매치기라는 잡탕 도적 둘을 턱짓하며 또 묻는다.
“저 사람들은?”
“응? 쟤들? 왜?”
“저대로 뒀다 깨어나면 또 때려놔?”
“아, 그건 귀찮겠구나! 지하실에 던져놓자.”
이자닌이 방 한편에 놓인 상자 쪽으로 가더니, 그 상자를 밀면서 나무판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투란이 가까이 가서 보니, 지하실이라기보다는 그냥 지하로 통하는 구멍을 뚫어놓은 것처럼 사다리도 계단도 없었다.
“괜찮아, 우리 일 끝날 때까지만 넣어두면 되니까.”
씩씩한 이자닌의 말이 투란에게 오히려 불길하게 들렸다.
왠지 일 끝나고 시원하게 잊어버린 채로 떠날 듯하잖나!
그렇다고 딱히 어쩌자고 할 말도 없어서 투란은 일단 묶인 둘을 지하실 안에 떨궈놨다. 가능한 한 다치지 않게, 어디 부러져서 아파 깨어나지 않게!
―상냥하기도 하지.
드라고니아가 놀리는 말에 투란은 울컥하면서도 조금 더 상냥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혹시 잊어도 알아서 나올 수 있게, 작은 요술이라도 걸어줄 수 있나?’
―시간 되면 줄이 풀리는 정도는 윌 라이트의 작은 마력으로 흔적없이 당장 걸어줄 수 있지. 이자닌도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야.
‘그래? 그럼 해둬. 난데없이 날벼락 맞은 불쌍한…… 도적이잖아.’
―저 도적들에게 도둑맞은 사람들이 들으면 널 벼락으로 치고 싶을지도 모를 의견이로군.
‘어? 어라? 이것들, 하나도 불쌍하지 않은 놈들이었나!’
―푸흣! 아무래도 도적 길드가 어쩌고 하는 작자들이랑 너무 엮여서 도적이 착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대체 얼마나 바보냐!
‘시꺼어어!’
소리 없이 투덜거리면서 투란은 나무판을 다시 닫았고, 집 안을 둘러보며 굴러다니는 상자를 가져다가 나무판 위에 겹쳐서 쌓아 올렸다.
그 꼴을 보다가 이자닌이 중얼거린다.
“혹시 전에 알던 녀석들이야? 원한이라도 있어?”
“처음 봐! 이 왕도에 처음 왔다고 했잖아! 그러니……?”
심술궂게 대꾸하다가 투란은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끝을 흐렸다.
이자닌도 더 뭐라 하지 않고 투란이 바라보는 벽을 보며 낯을 구겼다.
―호오? 이건 또 뭐라 해야 하지?
드라고니아도 둘이 감지한 것을 느낀 듯,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관심을 갖고 보는 것은……거리와 무관하게 옆집으로 통하거나 옆집 담벼락을 마주 보고 있을 자리의 벽이 균열(龜裂)을 머금고 무너져 내리면서 구멍이 뚫리는 광경이었다.
구멍이 생기며 흘러내리는 벽의 잔해를 휘휘 저으며 검은 두건, 망토를 두른 채로 옆구리에 덜렁거리는 칼자루가 길어 보이는 장검을 매달고 나타난 이가 스윽 실내를 둘러보더니 이자닌에게 눈길을 고정하며 말한다.
“네가 스노우 라이온인가? 훗, 나는 블랙 펜서다! 후후훗, 넌 내 것이다!”
이자닌은 멍하니 대꾸를 못 했다.
투란은 잠시 그를 훑어내리다가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놈의 오러 사인…… 몸에 새기면 미치는 부작용이라도 있는 거야?”
전혀 다른 낯짝을 한 또 다른 작자가 나타나서 오러 윌더의 힘을 과시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란 것이 멀쩡한 집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 앞뒤 없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딱 미쳤다 여기기 좋은 말이잖은가!
물론 투란의 말을 들은 이는 눈꼬리를 치켜올리면서 부정한다.
“감히 누구를 보고 그런……!”
“어, 미친놈 맞네. 저거 아마 강간이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인신매매범일 거야. 투란, 연습 삼아 때려잡아 봐. 저건 그 변태 남작보다 약해.”
이자닌이 싹둑 말을 끊으면서 강경하게 말하고 있었다.
“약해? 흐흠, 연습이 되려나.”
투란은 갸웃하면서 이자닌 앞을 막아섰다.
욕을 먹은 상대는 이미 ‘블랙 펜서를 뭘로 알고!’라는 외침과 함께 이자닌을 패겠다고 주먹질을 하는 중이었으로!
쩌억!
“어, 약하네.”
손바닥으로 자칭 ‘블랙 펜서’가 ‘스노우 라이온’인 이자닌에게 주먹을 쳐내며 투란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모스 킬튼보다 이 작자는 분명히 약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뿜어낸 오러의 힘이 주먹에 가득 담긴 오러의 힘보다 더 강하니, 이자는 오러 사인을 다루는 솜씨가 형편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엉뚱한 오러 마크를 새긴 경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