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26)
Chapter 146. 페브라 왕성, 붕괴 Ⅳ
‘미친 마법사?’
투란의 뇌리에 의혹이 닿자마자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런 불길을 일으킨 마법사를 제정신으로 볼 수 없으니까.
발화한 범인을 미친 것으로 여길 증거는 가득했다.
단지 안채에 널브러진 이들만 태운 불길이 아니었으니까.
이 커다란 건물을 통째로 태우고 있었고, 건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아 있는 것이든 놓여 있는 기물(器物)이든 상관없이 전부 잡아먹는 화마(火魔)를 풀어놓은 상황이었다.
고기 타는 냄새와 온갖 옷감, 목재(木材), 돌까지 달구고 으깨는 불길은 어떻게 봐도 이미 정상을 벗어난 마법의 결과물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팽팽한 마력으로 거침없이 번지는 미친 불길은 누가 시작한 것인가?
설마 파쿠란이 이렇게 미친 것인가?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파아앗!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라, 파쿠란도 피해오는 모양이니까.
불길을 가르고 파쿠란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원래 불 지른 작자도 자기가 지른 불을 피하……는 거는 아닌가?’
방화범이라 해도 시작된 불길은 공평하게 삼켜 태울 것이란 생각을 하던 투란은 4층 불길 사이로 뛰쳐나오다가 1층 안채로 추락하는 파쿠란이 그을린 꼴로 마력의 파동을 일으키는 광경을 보며 드라고니아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화앗!
불길의 일부가 파쿠란의 마력과 만나 흩어졌고, 그 자리는 잠시 불이 꺼진 듯이 보였다. 하지만 연이어 사방에서 흘러넘치는 불길이 곧바로 다시 그 자리를 메우며 파쿠란을 향해 더욱 거세게 불길을 몰아넣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 틈새를 뚫고 둥실거리며 내려선 파쿠란은 소매를 휘저으며 물러서는데…….
‘어라? 이야기꾼 남작 어디 갔어?’
그 움직임의 궤도를 가로막고 있어야 할 자가 없었다.
거긴 조금 전까지 다모스 킬튼이 선 자리였는데 불길이 너울거리기만 하며 파쿠란이 지난 자리일 뿐이란 듯, 다시 메우는 광경만 보이잖는가.
―널 덮치고 있잖아! 아니, 이자닌을 노리는 건가?
드라고니아가 짜증 섞인 외침을 투란의 뇌리에 세게 터뜨렸다.
‘아으! 조용히 말해, 조용히!’
소리 없이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곁을 흘깃했고, 드라고니아의 말대로 불길을 몰아내며 습격해오는 다모스 킬튼을 볼 수 있었다. 이야기꾼 남작은 어느 틈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 사이에 숨었다가 그 불더미를 밀어내며 투란을…… 투란의 옆구리에 끼어 있는 이자닌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달려들고 있었다.
명백하게 이자닌을 채가겠다고 한 손을 준비하는 모습이었지만 다른 한 손에 들린 칼로는 투란의 몸에 구멍을 뚫겠다는 의도 또한 분명한 모습이었다. 아주 잠깐, 투란이 위를 올려다보는 사이에 그 시야에서 벗어나 불길을 방패 삼아 움직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가면을 쓴 투란의 눈길을 정확하게 읽지 못했음에도 얼굴이 향한 방향, 이글거리며 몰아치는 불길을 활용해 저런 기습을 시도하는 배짱은 비범하다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투란도 다모스 킬튼이 원하는 대로 맞장구쳐주기로 했다.
먼저 이자닌을 끼고 있는 오른쪽 옆구리를 오른발과 함께 뒤로 빼었고, 왼발을 축 삼아 반회전하며…….
“꺅! 날 던지냐!”
이자닌의 외침 그대로 파쿠란과 툴로쉬가 선 쪽으로 냅다 이자닌을 던져놓고 왼손으로 뒤편을 후려치는 척했다.
다모스 킬튼은 원래 투란의 오른쪽 옆구리 자리로 칼을 내지르는 움직임을 멈추지 못했고, 투란의 왼손에 그대로 아래턱이 맞는 것을 각오하며 충격을 버티려 했다. 아래턱에 잘못 적중된 주먹질은 머릿속을 흔들어 시각, 청각을 망가뜨리며 균형을 빼앗고 상황판단을 못 하게 할 수 있으니, 이런 경우에 오러 윌더의 방어는 그 충격을 최대한 분산시켜 흘려내는 것이었다.
“흣?”
“잡았다!”
다모스 킬튼이 놀란 소리를 냈을 때 투란은 즐겁게 소리쳤다.
그리고 바로 다모스 킬튼은 턱수염, 멋들어진 외모의 끝마무리처럼 적당히 키워 다듬어놓은 수염을 투란이 가차 없이 잡아당겨 거의 얼굴을 마주할 자리로 옮기는 것을 느껴야 했다.
치는 줄 알았더니 잡았다는 것에 놀랐지만 갑자기 얼굴 마주하자는 듯이 당기는 움직임이 예상 밖이라 다모스 킬튼으로서는 바로 ‘왜?’라는 의문을 떠올려야 했다. 하지만 그 의문은 투란이 내지르는 오른손, 그 손목에서 튀어나오는 칼날을 보며 바로 해소되었다.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 치는 동작, 그 치는 손목에서 튀어나온 칼날.
투란은 다모스 킬튼이 불길을 장막 삼은 것처럼 자신의 몸을 장막 삼아 저 감춰둔 칼날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수염 잡힌 것을 어찌하지 않으면 다모스 킬튼은 그대로 목이 뚫리고 가슴팍까지 베일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모스 킬튼은 빠르게 발을 놀렸고, 허리 아래의 균형을 찾은 다음에 손에 든 칼을 휘두르며 힘껏 머리부터 허리까지 뒤로 젖혔다.
찍, 후득.
투란의 손바닥 아래로 뻗어나온 칼날, 팜 블레이드가 다모스 킬튼의 가슴 옷자락에 닿았지만 찌르거나 베지 못했다. 대신 다모스 킬튼의 턱 아래 수염이 살갗과 함께 뜯어져 나갔다.
뿌득, 이를 간 다모스 킬튼과 이를 바라보며 가면 속에서 빙긋 웃은 투란은 이 싸움을 더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불과 1, 2초 안에 둘이 이렇게 맞닥뜨려 기습과 역습을 하는 사이에 주변을 가득 메운 불길이 안채를 모두 채우며 사방을 가로막는 벽까지 날려버릴 듯한 거칠고 사나운 열풍(熱風)으로 돌변하는 때문이었다.
다모스 킬튼은 두 팔을 교차해서 얼굴과 가슴을 최대한 막으며 뒤로 있는 힘껏 뛰었고, 투란은 그 모습을 향해 팜 블레이드를 거두는 오른손을 내밀며 겨냥하는 채로 파쿠란 쪽으로 몸을 날렸다.
콰으으!
열풍의 괴성 속에서 뒤로 굴러 이자닌 곁에 앉은 투란은 궁금했다.
‘맞았나?’
홀시딘의 하클의 팔찌를 모방해 만든 유틸리티 브라켓은 가볍고 짧은 핑키 볼트를 대신해서 20센티 길이의 두꺼운 은화살을 연속으로 세 발 쏘아냈다. 그 은화살이 목표인 이야기꾼 남작을 맞췄는가는 불길 탓에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거센 마력의 뒤틀림, 격돌은 ‘헌터스 배너’의 규격 속에서 발휘되는 오러의 감각도 흐려놔서 투란은 더욱 은화살이 맞추고 꽂혔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었다.
―손등에 한 발, 팔뚝에 한 발 꽂혔고 무릎에 차인 한 발은 불길에 삼켜졌다. 벽에 충돌했는데 벽이랑 통째로 튕겨 날려갔어. 한데 투란, 이제는 그쪽에 관심 둘 때가 아닌 것 같다만…….
조금 긴장한 드라고니아의 말투에 투란도 더 이상 다모스 킬튼 쪽에 주의하지 않고 파쿠란의 마력장벽을 두드리는 불길의 파동, 그 원천이 되는 자리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높고 거대하다 여겼던 건물, 뒤편이 왕성의 성벽과 맞닿아 있던 건물이 불길에 두 동강 나듯이 찢기고 있었다. 그 불길을 흘려내려 파쿠란은 온 정신을 집중해서 마력을 운용(運用)하는 중이고, 투란과 이자닌, 툴로쉬는 가만히 그 곁에 자세를 낮추고 앉아…… 구경하는 중이었다!
‘야, 이거 꼴사납잖아?’
뒤늦게 투란은 일행의 모습이 거센 바람 앞에 날려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마른 이파리가 한 장 매달린 잡초 뿌리 같다는 것을 깨달은 듯이 중얼거렸다.
―재가 되어 없어지는 꼴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부터 하시지?
드라고니아가 비꼬았다.
‘원인이 뭐야?’
한숨 쉬듯 투란이 물었다.
이 사나운 마력의 불길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은데, 파쿠란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가만히 곁에 앉아 쉴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해결하려면 이게 무슨 일인가부터 알아야 한다.
드라고니아도 비꼬기는 했지만 이 상황이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는 듯, 짜증이 섞인 말투로 대답한다.
―마법사들의 충돌이지, 별거 있겠냐. 이렇게 난잡하게 저질러대는 것도 쉽지 않아. 덕분에 대체 몇이나 뒤엉킨 상황인가는 알 수가 없다만…… 여럿이서 한 명을 공격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러 마법사가 한 명을?’
투란은 눈살을 찌푸렸고, 문득 마음에 걸린 한 가지를 바로 토해낸다.
“툴, 홀시딘은?”
곁에서 이자닌이 눈을 살짝 치켜뜨는데, 툴로쉬는 고개를 끄덕하더니 부츠 안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쥐고 파쿠란 옆으로 나서며 대꾸한다.
“마스터 홀시딘은?”
잠깐 파쿠란은 마력으로 이 불길을 막아내느라 대답할 수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툴로쉬가 단검을 쥔 주먹을 앞으로 내미는 순간, 앞쪽으로 넓게 퍼지는 안개와 같은 막이 형성되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파쿠란이 말한다.
“투란! 아케인 브레이크로 뚫고 가! 앞으로 달려! 함정에 빠진 홀시딘을 구해!”
이것저것 격식을 갖추지 않은 채로 투란에게 할 일만 가득 토해낸 셈이었다.
투란은 거기에 뭐라 되묻고 따지지 않고 바로 허리를 감싼 코르셋 아머를 두드렸고, 두 자루 장검을 끌어내서 바로 두 손에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두 가닥의 칼끝이 툴로쉬의 단검이 일으킨 안개 장막에 닿으려는 찰나, 안개 장막이 갈라지며 길을 열어줬다. 툴로쉬의 짧은 음성이 바로 투란의 귓가에 꽂힌다.
“가라.”
팅, 가볍게 두 자루 장검이 섬세하게 칼끝을 부딪치며 울린 순간에 투란은 안개 장막의 열린 틈으로 튀어나가 내달렸다.
―허? 실드 대거를 저렇게 다룰 수 있었나?
드라고니아는 달리는 투란의 귓가에 툴로쉬가 마도구인 단검을 다루는 솜씨를 칭찬했다. 그 자세한 이야기를 캐묻지 않고 투란은 두 자루 장검에 아케인 브레이크를 실어 마력의 불길을 후려치며 앞으로 내달렸다.
거칠고 사나웠던 불길은 그 흐름을 주도하는 마력이 뒤틀리고 갈라지자 바로 거기에 복종하듯 쪼개지며 투란 앞쪽으로 길을 열고 있었다. 그렇게 앞이 열리며 드러난 광경에는 건물이 찢긴 틈새, 그 너머로 찢긴 성벽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그 갈라진 성벽 틈새에 둥실거리며 떠 있는 상아탑의 마도사가 보였다.
‘홀시딘!’
대강 지상에서 3미터 높이, 하지만 점점 낮아지고 있는 홀시딘이었다.
갈라진 성벽을 돌파하며 투란은 재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높이 치솟은 왕궁 쪽에서 위, 아래, 좌우로…… 투란이 뛰쳐나가는 홀시딘의 등 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다채로운 광채가 쏟아지며 홀시딘을 덮치고 있었다. 그 광채에 대항하는 홀시딘의 몸 주변에는 불꽃이 너울거리는 광경은 마치 홀시딘을 심지 삼아 타오르는 촛불처럼 보였다. 그 불꽃을 중심으로 불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중인데…….
‘저거, 불 지르는 게 홀시딘처럼 보이잖아?’
투란은 마력의 충돌 속에서 홀시딘의 불꽃장벽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가는 빛줄기, 그 여러 가지 색채로 드러나는 마법의 파괴광(破壞光)이 불길로 전환되면서 이 난장판의 화재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력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자가 본다면, 이 화재는 홀시딘이 불을 지르고 저쪽의 여러 마법사가 그 불을 끄려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라고 유도하는 모양인데? 홀시딘의 별명을 들먹이면서 그렇게 말한다면 넘어갈 것 같잖아?
‘아니, 이 할배가 진짜! 그랜드 마스터면서 이런 수작에 넘어가다니!’
전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마도사라면, 이런 수작은 훗 하고 콧방귀 한 방으로 훌훌 날려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조금 짜증 난 기분을 담아 투란은 냉큼 두 가닥의 궤적으로 아케인 브레이크의 오러를 흘렸다. 그 동작의 끝자락과 함께 홀시딘의 앞쪽에 서며 투란이 외친다.
“마법 할배! 정신 차려!”
그야말로 옆집 미친 할배를 향해 윽박지르는 꼬맹이의 싹수없는 말투!
홀시딘이 투란의 등 뒤로 내려오며 눈을 부릅뜨는데, 입술이 달싹거리고 한 손이 작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채로 투란의 말에 대한 대꾸가 전혀 없었다.
―영창(詠唱) 중이다. 말 걸지 말고, 주의력 분산시키지 마…… 조심해랏!
드라고니아가 한숨짓는 듯이 말하다가 경고했다.
그 경고대로 끼어들어 홀시딘 앞에 선 투란을 향해 빛줄기가 여러 색채로 맹렬하게 쏟아졌다.
투란은 두 손에서 장검을 회전시키며 대놓고 냉소했다.
“얼빠진 마술사들이냐…….”
오러의 흐름이 장검 두 자루로 흘렀고, 칼날과 칼끝, 칼자루를 타고 번져가며 투란을 중심으로 맥동하며 마법의 섬광을 전부 ‘받아’들였다. 주변을 몽땅 칠해버릴 듯했던 빛줄기듯이 순식간에 장검 두 자루를 물들이는가 싶었지만, 잠시 후에 하얀 광채가 되어 반구형(半球形)으로 펼쳐지며 투란과 홀시딘 앞을 물들였다.
주변에서 꺼지지 않고 번져가던 불길이 하얀 광채 속에서 지워졌고, 격한 신음과 짧은 비명이 여러 곳에서 울렸다. 시야를 가로막던 하얀 광채가 사라진 후에 투란은 앞쪽에 넓게, 반원(半圓) 형태로 깨끗하게 정리된 땅을 볼 수 있었다.
왕성 내의 포석, 장식…… 원래 있던 것이 무엇이었나를 전혀 알 수 없는 반원의 평지가 투란을 중심으로 대강 20여 미터 거리까지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원형으로 포진이라도 하듯 서 있는 십 수 명의 마법사들…… 그 너머로 여전히 건재한 왕궁의 회랑과 그 안에서 구경하듯 서 있는 귀한 신분의 여러 사람들이 또 수십 명은 되어 보였다.
저게 누구이고 이게 뭔가 따질 틈도 없이, 투란은 등 뒤에서 울리는 오싹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