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27)
“……초래(招來)하노라, 여기 이 자리에! 상아탑이여, 맹약에 따라 나와 이 자리에서 나를 의심하는 맹약의 무리에게 시련을 부과하라! 마스터의 자격을 재검(再檢)하라!”
홀시딘의 목소리는 무겁게, 하지만 전혀 무슨 뜻인가 짐작도 못 하게 투란의 등골을 서늘하게 찌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이 마법 할배!’
따지고 싶다는 생각이 투란의 뇌리에서 무럭무럭 피어났지만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새나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이상한 마법이기에 저 많은 마법사들에게 쳐맞으면서 버티며 외웠는가? 그렇게 완성시킨 마법을 굳이 투란 등짝에 대고 읊는 것은 너무하잖나!
투덜거리고 불평 가득한 투란의 사고(思考)에 드라고니아가 제동(制動)을 걸듯, 소리는 없지만 쩌렁쩌렁 마음과 뇌리를 울리게 말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방어 준비해라! 오러 가드 최대한 올리고…… 헌터스 배너의 위장 따위는 잊어버려! 아케인 포스가 요동칠 거다! 저건 상아탑의 파워 소스에 직접 닿는 위험한 주문이야!
‘에? 왜!’
투란은 ‘헌터스 배너’의 최대용량에 맞춰 오러 가드를 펼치면서 주변을 최대한 넓게, 멀리 살펴봤다. 드라고니아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급박한 말투, 심상찮은 분위기에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홀시딘이 뭔가 심각하게 위험한 짓을 하는 것은 분명하니까!
투란으로서는 왜 그랜드 마스터 홀시딘이 이러는가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알드바인에서 몰래 엿본 바로는 홀시딘은 상아탑의 다른 마스터 마도사들보다 상위였고, 지시를 내릴 수 있었는데…… 여기 와서 대체 뭘 하고 있었기에 이 황당한 광경의 중심에서 불 지르는 심지 꼴을 하고 있다가 저러는가.
의아해하는 순간은 짧았고, 투란은 아케인 포스가 요동친다는 의미를 몸으로 느끼며 오러 가드에 집중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폭포수, 하나둘도 아니고 십 수 가닥의 폭포수가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광경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그중 한 가닥이 투란의 등 뒤로 꽂히며 홀시딘을 맞췄다.
‘홀시딘?’
―괜찮아.
투란의 눈길이 앞쪽을 훑었다.
홀시딘과 싸우고 있던…… 일방적으로 홀시딘을 향해 마법의 광채를 뿜어내며 공격하던 마법사들에게도 아케인 포스의 폭포수 같은 가닥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홀시딘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앞쪽의 마법사들은 전혀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진짜 괜찮아?’
몸을 뒤틀며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고통스러워하며 땅바닥을 맨손으로 긁는 십 수 명의 마법사를 보고 있자니 투란으로서는 등 뒤의 홀시딘이 멀쩡하다고 믿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괜찮아…… 조금 이상하지만, 이건 상아탑의 등급 인증절차를 소환한 것뿐이니까. 세이프티 가드가 확실하게 기능하고 있으니까, 딱히 다치거나 죽는 일은…….
“끄아아아아!”
“쿨럭, 크어억!”
드라고니아가 설명하는 사이에 투란의 시야 속에서 마법사 두엇이 비명을 지르고 피도 토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드라고니아가 하던 말이 끊겼고, 투란은 그 머쓱해하는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입술을 달싹이며 투란은 묻는 말을 꺼낸다.
“홀시딘, 괜찮아요?”
나직해서 아무도 못 들을 소리이기는 했다.
누가 혹시 엿들었다 해도 투란이 등 뒤에 선 홀시딘에게 묻는다고 착각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절반 정도는 드라고니아가 관측하고 투란이 느끼는 범위 안에 있기는 하지만 그 상태를 알 수 없는 홀시딘에게 직접 묻는 속셈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절반은 그냥 드라고니아에게 ‘진짜? 정말로?’ 하며 핀잔주는 기분!
푸으핫!
긴 숨을 토하는 소리와 함께 투란은 홀시딘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괜찮……다.”
그 소리에 투란은 주변을 스윽 훑어보며 빠르게 묻는 말을 더한다.
“좋은 눈으로 보는 것 같지 않은데…… 물러설까요?”
“아케인 브레이크로 뚫고 온 거냐?”
홀시딘은 대답 대신에 되묻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투란은 짧게 ‘맞아요.’라고 대답했다.
홀시딘이 다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투란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잠시, 이 자리에서 나를 지켜다오. 아케인 브레이크를 다룰 정도의 실력이라면 내게 간섭하려는 것들은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거야.”
투란은 빠르게 ‘충분히’라는 한마디에 이의를 제기해야 했다.
“저기 저 엄청난 포스는 무리인 것 같은데요?”
“그건 괜찮아.”
홀시딘은 땅바닥을 뒹굴거나 눈을 뒤집어 까고 있는 마법사들,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강렬한 아케인 포스의 거대한 기둥 같은 형상을 놓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이 저건 아케인 브레이크로 어떻게 막고 끊기 어렵다는 말에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말투였다.
그래서 투란은 다시 저쪽에서 웅성거리는 귀해 보이는 왕궁의 여러 사람을 흘깃하며 확실하게 말해둬야 했다.
“저쪽…… 다가오면 피 나게 베어놔도 되는 거죠?”
“죽여도 된다.”
홀시딘의 대답은 더욱 간결하고 명확했다.
투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나중을 위한 말을 살짝 더해놓는다.
“설명은 나중에 듣죠. 꼭 들려줘요!”
“……그래.”
약간 머뭇거리는 낌새였지만 홀시딘은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곧 투란은 홀시딘 주변으로, 성벽의 쪼개진 틈새를 넘어 다가오는 툴로쉬과 파쿠란, 이자닌을 느끼면서 앞으로 두어 걸음 나가 두 자루 장검을 늘어뜨린 채로 섰다. 너무 가까이 있다가 다시 아케인 포스의 저 묵직한 파동에 뼈가 울리는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과연 투란의 예상대로 홀시딘은 아까만큼이나 강렬한 ‘힘’이 담긴 영창을 시작하고 있었다. 동시에 투란은 바닥을 긁고 신음하던 마법사 몇몇이 억지로 힘준 손을 내밀며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강대한 아케인 포스를 뒤틀며 마법의 섬광을 뿜어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파워 블래스트라…… 웃기는군.
드라고니아는 그 마법의 광채를 대놓고 비웃었다.
투란의 두 손은 장검을 휘둘러 허공에 글자 쓰듯이 움직였다.
오러의 파동이 투란의 몸에서 팔로, 검을 타고 흘렀다.
날아드는 마법의 섬광이 뒤틀어져 뭉치다가 되돌아갔다.
마법사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졌다.
제대로 된 것이라 보기 힘든 음향도 섞여 있었다.
섬광을 뿜어낸 마법사 중 두엇은 얼굴 가득히 피를 흘려내며 쓰러졌다. 눈과 귀, 코, 입으로 피를 뿜어내는 것이 머리에 받은 충격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증명하는 듯했고, 입고 있던 로브가 터져나가는 광경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뒤이은 공세가 없었기에 장검을 늘어뜨린 채로 다시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으로 서며 투란이 소리 없이 묻는다.
‘뭐가 웃긴 거야?’
―저런 거대한 마력(魔力)을 사역(使役)해서 한다는 짓이 하위 마법사가 장기(長技)로 삼는 마력충격파였잖아. 심지어 그 위력도 간신히 중위 마법사에 닿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저 꼴 봐라, 가벼운 칼질에 튕겨나간 것을 감당 못 해 저런 몰골이라니! 하수로에서 만났던 이상한 놈들보다 더 웃기잖아.
드라고니아가 차갑게 떠드는 소리는 투란에게 한 가지 의혹을 바로 떠올리게 했다.
‘설마 저 마법사들…… 상아탑?’
지하수로에서 가르 영감을 찾아와 죽이려 했던 어정쩡한 마법사들, 그들은 상아탑 소속이라 했었다. 홀시딘에게 내리꽂혔던, 홀시딘은 무사하지만 저쪽 마법사들은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크고 굵은 아케인 포스도 상아탑의 것이라 했다.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 상황을 엮어보자면 저들 또한 상아탑의 마법사들이라 볼 수 있잖은가?
―맞아.
드라고니아는 복잡해지는 투란의 생각을 단칼에 끊듯이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인정하고 있었다.
‘아니, 대체 왜 싸우고 있었던 거야? 그랜드 마스터한테 막 대들 수 있었어? 어떻게? 이게 무슨 일이야!’
덕분에 투란은 더욱 납득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해 미묘하게 울화까지 치미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으니 답답했고, 이럴 때는 짜증을 내는 것이 왠지 맞는 듯하기도 했고…….
―글쎄, 이게 내가 아는 그런 상황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옛날에 한두 번 있던 일이 과연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벌어지는 건지 아닌지. 나중에 홀시딘에게 제대로 듣는 편이 좋겠지? 아, 영창 끝났군.
드라고니아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뭐라 묻기 전에 투란은 홀시딘의 ‘영창’이 끝난 다음에 찾아오는 거대한 아케인 포스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굵게 내리꽂히는 대신에 하늘을 무슨 먹구름처럼 채우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먹구름과 다른 흐릿한 섬광, 눈을 깜박이다가 눈가에 물이 얹힌 듯한 묘한 광경을 꾸미고 있었다.
거기에 홀시딘의 목소리가 웅장(雄壯)하게 얹히는 듯하니…….
“초래하여, 명한다! 나, 아이본 탈렉 홀 시디넬은 그랜드 마스터의 위(位)로서 페브라, 야누트, 아프론, 마르크 왕국의 상아탑이 맹약자에게 다시 한번 인증의 시련을 부과할 것을 명한다! 더불어 위임, 결속, 공증에 의한 등급은 모두 무효화하며 시도를 금한다! 또한 진실의 끈을 승인하며 맹약의 규율을 남용한 자를 색출할 것을 청하노니, 상아탑이여! 맹약에 응하라!”
분명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투란으로서는 그게 무슨 뜻인가 전혀 알 수 없는 말을 잔뜩 늘어놓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정말로 저지르네!
드라고니아는 홀시딘이 하는 짓에 더 놀란 듯, 투란의 물음을 잠시 잊은 듯이 옆으로 치워놓고 있었다.
‘뭘 저지르냐고!’
가면 안을 콧김으로 채우면서 투란이 다시 세게, 소리 없이 물었다.
―응? 아…… 상아탑에는 등급체계가 있어. 적지 않은 마법사들이 상아탑의 소속이고, 그 등급체계로 인해 상하관계가 명확하다. 때문에 갈등이 생겼을 때 등급으로 찍어누르는 경우가 일상적이기도 하지. 그래서 대등한 등급에서 그 갈등이 극에 달하면…… 한쪽을 깎아내리려는 강등을 시도하기도 한다.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이 바로 자신의 등급을 다시 증명하는 거야. 덕분에 그 강등이 대부분 쓸모없는 짓거리라서 실제로 행하는 경우는 없기도 하고…… 갈등이 있으면 강등보다는 결투로 살해를 선택하는 것이 상아탑의 전통이기도 해서 말이야.
‘얌마, 마무리가 무섭잖아! 너, 제대로 말하는 거야? 괜히 앞뒤 없이 엉뚱하게 떠드는 것 같다고!’
―미안. 지금 내 생각이 많이 헝클어져 있어. 설마 이런 광경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해서 말이지.
‘아, 진짜! 알았어, 잘 보고 있다가 나중에 정리해서 얘기해줘. 홀시딘이 뭔 일인가 다 말해줄 것 같지 않으니까.’
투란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이제는 허우적거리고 주저앉아 엎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한 마법사들을 확인했고, 조금 여유를 두며 홀시딘을 돌아보며 적당히 찔러보는 물음을 던지려 했다. 그런데 그러려고 살짝 한 발을 뒤로 빼는 순간, 눈가에 저편의 귀해 보이는 왕궁 소속의 누군가가 묘한 것을 쏘아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야?’
팔꿈치까지 검게 일렁이는 안개 같은 것이 쌓인 채로 내밀어졌는데, 그 아래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길쭉하게 늘어나며 무슨 화살처럼 쏘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공중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림자만 따로 떨어져 날아온다는 것!
더 생각을 하기 전에 투란은 저것이 자신이 잠깐 틈을 보인 사이를 노려 홀시딘을 맞출 목적이란 것을 깨달았고, 자연스럽게 검을 흔들었다.
파앙!
땅이 출렁하더니, 날아오던 그림자 화살이 땅 위에서 빙그르 돌다가 되돌아갔다.
‘역시 마법이었네!’
투란이 살짝 자신의 방어에 만족할 때, 이자닌의 외침이 귓가에 쏙 들어왔다.
“섀도우 볼트! 저 썩을 새끼가!”
그리고 바로 칼 들고 뛰쳐나가는 이자닌의 모습은 투란에게 왠지 당연해 보였다. 이제까지 겪은 이자닌이라면, 저렇게 울화가 가득한 말을 꺼내고 가만히 서 있을 성격이 아니니까.
그런데 왜 저리 갑작스럽게 울화통을 터뜨리는가?
투란이 의아해하는 사이에 이자닌은 투란 곁을 스쳐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자닌의 뒷덜미를 뒤따라 나선 툴로쉬가 잡아채서 멈추더니 말한다.
“도적 아가씨,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고. 내게 맡기고 여기서 구경해. 투란, 이 아가씨 나서지 못하게 해. 파쿠란, 구경 말고 좀 말리라고!”
파쿠란이 헛기침과 함께 뒤늦게 말한다.
“이자닌, 왕궁 안이야. 나설 때가 아니야.”
“우, 씨! 그치만……!”
이자닌은 볼을 부풀렸고, 잔뜩 독이 오른 표정을 지었지만 노려보는 채로 일단 툴로쉬가 성큼성큼 저쪽으로 내닫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퍼억!
“으앗, 왕자님!”
툴로쉬의 주먹에 누군가 맞는 순간, 소동이 터지고 있었다.
‘에? 왕자님?’
투란이 소리 내지 못하고 의아해할 때, 이자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한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네.”
거기에 파쿠란의 신음소리가 얹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