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28)
‘왕궁에서 왕자님 패도 되는 거였나?’
투란은 머리 한구석이 마비되는 느낌 속에서 원초적인 시점부터 다시 생각하기를 시도했다. 분명히 이자닌을 말리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태도로 뛰어나가더니 툴로쉬는 냅다 왕자님부터 골라 패고 있었다.
―섀도우 볼트를 쏜 것이 저 왕자잖아.
드라고니아가 슬쩍 투란의 생각에 보태듯이 말했다.
‘어, 그건 그러네…….’
문득 투란은 자신이 되돌린 섀도우 볼트도 사수(射手), 이 경우에는 저 왕자에게 되돌아간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전혀 누가 맞은 흔적이 없잖은가? 어디에 꽂힌 것 같지도 않고…….
“이자닌, 섀도우 볼트가 뭐예요?”
투란은 나직하게 씩씩거리며 불만으로 가득 찬 이자닌에게 물었다.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짓는 낌새가 투란의 마음에 울렸고, 이자닌은 뭐 하나 걸리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말투로 대답을 한다.
“도적왕의 비보(祕寶)에 새겨진 독자적인 마법이야! 저놈이 끼고 있는 저 시커멓게 꾸물거리는 것이 그 비보, 섀도우 핸드라고! 왕자란 새끼가 대체 뭘 잘못 처먹고 도적왕의 보물을 훔쳐다 쓰냐고!”
파쿠란이 한숨을 쉬었고 투란은 가면 속에서 눈을 껌벅여야 했다.
도적왕의 비보라니, 그것은…….
“모조품이다. 섀도우 핸드는 비보가 아니라 비보인 섀도우 마스크의 모조품이야. 거기 담긴 주문서 섀도우 윌더를 통해 알려진 마법 몇 가지를 새겨놓았을 뿐인 모조품이지.”
이자닌의 울화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은 투란의 머리 위에서 울렸다.
투란이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홀시딘이 둥실둥실 떠서 머리 위를 느릿하니 지나며 하는 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자닌이 곁에서 파쿠란을 향해 ‘진짜?’라고 묻는 말이 투란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홀시딘은 허공에 뜬 채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다음에 주욱 주변을 둘러봤고…… 저편에서는 툴로쉬가 포악하게 왕자를 두들겨 패는 소동이 더 격하게 번지고 있었는데…….
“벗기 싫어? 암살자의 왕이 되고 싶었나, 왕자님? 그럼, 내가 아예 팔을 싹둑 잘라줄까? 오, 그편이 좋아? 과연! 옷 갈아입는 것도 시종 없으면 못 하는 왕자님다워! 좋아, 내가 평생 팔이 필요 없는 왕자님의 몸에서 필요 없는 팔다리를 찢어내 줄게!”
점차 포악해지는 목소리가 구타와 비명을 삼키는 중이었다.
잠깐 홀시딘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이자닌도 당황했는지 파쿠란을 향해 아까 물었던 말을 치우는 것처럼 다시 묻고 있었다.
“저거……! 문제 복잡해지는 거 아냐? 왕자 팔뚝을 자르겠다니!”
파쿠란이 헛기침으로 잠깐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기분을 감추는 듯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이자닌, 팔뚝이 아니라 팔다리를 자른다고 했어.”
“그게 농담이라고 하냐, 이 미친 마법사야!”
이자닌의 대꾸는 험악했다.
저쪽의 상황은 더욱 험악해지고 있었다.
툴로쉬는 ‘좋아, 배짱 좋은 왕자님을 위해 화끈하게 해주지!’라면서 너클 블레이드를 뽑아내서 왕자의 겨드랑이에 대고 정말로 어깻죽지까지 썰어버릴 자세를 하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도망치는 이들과 달려드는 이들로 번잡했다. 왕궁의 호위, 로열 가드들은 갑작스럽게 왕자를 위협하는 툴로쉬에게 아까부터 덤벼들기는 하는데 전부 걷어차여 날아가거나 그 자리에 내리꽂히는 중이었다. 덕분에 소동은 그 주변으로 점점 심각해지는데, 왕자의 사지(四肢)가 절단되는 참극(慘劇)을 막을 자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결국 왕자도 포기하는 듯했고…….
“버, 벗는다! 섀도우 핸드를 벗는다고!”
코피를 흘리며 입술이 터진 채로 외치고 있었다.
“닥치고 벗어!”
툴로쉬는 보다 사납게, 왕자의 겨드랑이 옷자락을 너클 블레이드로 베어 찢으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다가 투란은 문득 알아차렸다.
‘나랑 같은 팔찌다.’
툴로쉬 역시 가면과 함께 유틸리티 브라켓을 받은 것이다.
―가면 모양과 색만 다르고 같은 장비 준다고 했었잖아. 왜 새삼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냐? 정신 나갔어?
‘아니, 왕자님 패는 걸 보니 기분이 좀 이상해서.’
에테온의 왕자인 키린에게 저러다가는 불꽃에 휩쓸려 단숨에 재가 되지 않을까, 하고 떠오르는 망상을 물리치며 투란은 지금 상황에 보다 집중하기로 했다.
티잉, 툭, 툭.
왕자의 팔에서 검은 안개가 벗겨지더니 묘한 모양의 얄팍한 건틀릿이 되었고, 툴로쉬의 손에 내던져서 굴러오고 있었다. 얼핏 보면 투란의 발치를 겨냥한 듯도 했고, 이자닌을 향해 넘겨주는 듯도 했다. 투란이 갸웃하며 지켜보니, 이자닌이 얼른 손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곧 투란은 홀시딘이 살짝, 아주 살짝 마력을 휘둘러 굴러오는 얄팍한 건틀릿을 파쿠란 쪽으로 튀게 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네가 잠깐 간직하게. 암살왕의 도구가 내가 잘 모르는 숙녀분 손에 바로 넘어가게 둘 수는 없는 입장이라서…… 나중에 정리해보자고.”
“알겠습니다, 잠시 섀도우 핸드를 맡아두죠.”
한숨과 함께 파쿠란이 품 안에 날아든 얄팍한 건틀릿을 받아 들었다.
이자닌은 조금 입술을 삐죽였지만 내민 손을 꽉 쥐면서 말없이 우뚝 설 뿐이었다. 마치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똑바로 지켜보며 평가라도 하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홀시딘은 그런 이자닌을 향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2미터 정도 높이에 발을 둔 채로 떠가며 주변을 넓게 둘러봤다. 그 모습을 보던 투란은 퍼뜩 느낄 수 있었다.
‘어? 사라졌네?’
굵직하게 내리꽂혀 마법사들을 괴롭히던 아케인 포스가 더 이상 없었다.
하늘 높은 곳을 맴돌며 어딘가로 푹푹 꽂히는 중인 구름 같은 아케인 포스는 여전했지만 홀시딘을 공격하던 이들에게 꽂힌 기둥인가 싶던 느낌의 아케인 포스가 사라진 것이다.
―검증이 끝난 모양이다.
드라고니아는 이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듯 말했다.
투란에게는 무슨 말인가 전혀 의미 모를 이야기였다.
저쪽에서는 툴로쉬가 달려드는 로열 가드의 마지막 한 명을 멱살 잡은 왕자로 내리찍으며 소동을 끝내고 있었다. 그렇게 자기 주변을 평정(平定)한 다음, 왕자까지 엎어진 로열 가드 틈새로 내던지면서 툴로쉬가 호통친다.
“왕자란 새끼가 암살도구를 들고 설치는데 말리는 놈이 왜 없어! 다들 비명횡사하고 싶냐! 한 번 더 내 눈에 띄어봐, 오늘처럼 다른 사람에게 심판을 넘기지 않고 뒈지는 줄 알아!”
말을 마치자마자 툴로쉬는 홱 돌아서서 그대로 홀시딘을 향하듯이 걸어왔다. 당당하게, 서둘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홀시딘과 서너 걸음 사이까지 좁혀진 다음에 툴로쉬가 낮고 빠른 목소리로, 저쪽에서 크게 외치던 호통과 전혀 다르게 말한다.
“혼자 남으실 겁니까? 다들 내가 데리고 나가요?”
홀시딘이 뜬 채로 다른 곳을 보면서도 바로 대답한다.
“투란만 나와 함께 있으면 돼.”
툴로쉬가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투란 쪽으로 다가오며 말한다.
“투란, 마스터 홀시딘을 부탁하지. 아가씨랑 마법사는 나랑 튀자.”
이자닌의 표정이 구겨졌다.
파쿠란은 바로 그런 이자닌의 팔을 살짝 건드리며 말한다.
“물러설 때가 맞아. 남아 있으면 일이 복잡해질 뿐이야.”
“알아! 칫, 혼자만 신나게 패고…….”
툴툴거리면서도 이자닌은 파쿠란과 함께 돌아섰고, 툴로쉬까지 셋은 재빨리 갈라진 성벽 틈새를 넘어 파괴된 건물을 지나 거리로 스며들며 자취를 감췄다. 그러는 사이에 투란은 앞에서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마법사들이 하나둘씩,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면서도 악착같이 일어서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홀시딘이 그들을 향해 입을 연 것은 저쪽에서 마법사들처럼 힘겨운 몰골로 일어난 로열 가드들이 두들겨 맞은 왕자를 둘러싸며 왕궁의 치유사를 부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마스터랍시고 잔뜩 으스대던 녀석들 중에 상급 마법사에 입문한 놈이 겨우 하나냐? 그것도 열흘 안에 재심사 대상으로 간신히 상급? 그런 놈들이 다른 마스터를 강등시켜 추방하려 시도해? 네 녀석들, 제정신이긴 한 거냐?”
귀를 기울이던 투란은 여전히 뭔 소리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한숨을 쉬고 말았다.
‘알아듣게 얘기 좀 하시라고, 제발!’
―뭘 못 알아들어? 저 녀석들이 집단으로 홀시딘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거꾸로 강등당한 거잖아. 그런데…… 상아탑의 마스터 노릇을 했던 녀석들이 대체 어떻게 상급도 못 되는 수준이었지? 이 나라가 엉망인지 이 주변 상아탑이 엉망인지 알 수가 없군. 아, 그래서 이 주변 나라를 다 언급해서…….
‘얌마, 너도 좀 알아듣게 얘기하라고! 주변 나라가 뭘!’
―홀시딘이 두 번째 시도한 마법, 그건 이 주변 나라를 다 포함해서 상아탑의 등급 검증을 다시 하란 거였다. 범위 내에 있던 상아탑의 마법사라면 전부 거기 걸려들 수밖에 없는 대규모 마법이었어.
‘헐? 여기 와서 온통 다 적이었다는 거야?’
소리 없이 투덜대며 드라고니아와 떠들던 투란은 장검을 쥔 손에 힘을 넣으며 긴장했다.
툴로쉬는 도적 아가씨 이자닌과 블랙 메이지 파쿠란을 데리고 튀었고, 홀시딘 곁에 남은 것은 투란뿐이었다. 주변의 적이 상아탑의 마법사 한가득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디선가도 홀시딘의 마법에 당해서 열 받아 있는 누군가까지 있다면 투란이 넋 놓고 잡담하고 있을 때가 아니므로!
그렇게 대비하던 공격 대신에 힘겨운 목소리가 한편에서 울려나왔다.
“다,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당신도 알드바인에 마스터를 모아놓고…… 담합해서 그랜드 마스터가…… 꺼어흐? 크륵…… 쿨럭.”
주저앉아 말을 하던 마법사가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후벼 파는 시늉을 하면서 숨 가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목에는 은은한 은빛 광택이 맴도는 끈이 감겨 있는데, 교수대의 올가미처럼 바싹 조여드는 중이었다.
홀시딘이 그를 향해 가만히 손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린다.
“트루스레드, 그림 퍼니쉬먼트.”
주문의 영창과 함께 마법은 순식간에 발휘되었다.
끈에 목 졸리던 상황에 처했던, 홀시딘에게 힘겹게 대꾸하던 마법사가 입을 크게 열었지만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몸이 폭발하듯이 부풀어 오르며 입고 있던 의복이 모두 찢겨 나갔다. 목을 조르던 은빛 끈은 그 목 줄기 안으로 스며들며 사라졌고, 그 목은 몇 배로 두꺼워졌다. 팔다리 또한 더 이상 인간의 형상으로 볼 수 없는 두툼하고 굵은 형태로 변했다. 허리와 가슴, 허벅지까지 알몸이었다가 불쑥불쑥 솟아난 털에 휩싸이며 털가죽 하의를 입은 꼴이 되면서 마법사는 어림잡아도 2미터를 훌쩍 넘는 거구로 변해갔다.
그 광경은 투란을 놀라게 했다.
‘오우거?’
마법사의 변신이야 그냥 마법이니 하겠지만, 그 변신의 결과가 오우거라니!
투란만이 아니라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자들이 다들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로 오우거가 된 마법사, 이제는 그냥 새빨갛게 뭉클거리며 눈동자도 없는 눈알을 굴리는 오우거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경악, 그 위에 뒤늦게 찾아온 공포로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을 홀시딘이 바로 깨뜨리겠다는 듯이 한쪽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말해봐라, 이것이 어떤 마법에 의해 이뤄진 결과이지?”
홀시딘의 손끝에 걸린 마법사는 파르르 떨기부터 했지만 힘겹게 쥐어짜 낸 목소리로 바로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트루세이어…… 그 권능을 연구해서 만들어낸 진실의 끈으로…… 맹약을 외면하고 진실을 왜곡하려는…… 마법사에게 내려지는 영구징벌(永久懲罰)…… 흉포한 언약(言約)의 심판……입니다.”
갈라진 성벽 앞, 마력의 충격파로 갈아엎어진 왕궁의 땅 위에서 오우거가 멀뚱거리면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그 몰골에는 조금 전까지 떠들었던 마법사의 모습이 전혀 없었다.
다들 이 광경에 압도당한 듯, 새롭게 정적(靜寂)이 찾아들었다.
그 정적 속에서 투란은 홀시딘이 소매를 흔들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 움직임이 끝나자마자 땅에 굴러다니듯이 엎어지고 겨우 일어나 앉아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마법사들의 목에서 은색의 끈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곧바로 마법사들이 당황하고 놀라 신음했고, 홀시딘의 목소리는 담담하게 퍼졌다.
“갱생(更生)의 기회를 한 번 주겠다. 상아탑으로 돌아가 징벌방으로 들어가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벌을 받아라.”
사아앗.
투란은 홀시딘을 중심으로 아케인 포스가 바람처럼 흘러나가는 것을 느꼈다. 두껍고 잔잔하며 믿음직스러운…….
“흐엇!”
마법사들도 느낀 모양인데, 조금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그쪽을 둘러보다 투란도 왜 그러는가 알 수 있었다.
목 줄기를 감았던 은색 끈이 어깨를 타고 움직여 손목을 감는 중이었으니, 어쩌면 뱀이 몸을 감고 슥슥 기어다닌다 착각할 수도 있잖은가. 아케인 포스에 왜 저 끈이 저리 반응하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 중 누군가 뾰족한 목소리로 절박하게 외치고 있었다.
“시, 싫어! 살려줘요! 용서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