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29)
투란은 슬쩍 홀시딘을 쳐다봤다.
빌며 애원하는 마법사, 여자 마법사를 보면서 홀시딘은 그리 좋은 분위기를 띠지 않았고 기분도 나빠진 듯했다. 주변을 맴도는 마력의 흐름이 그런 기분을 고스란히 담아내듯 왠지 사나운 낌새를 풀풀 휘날리는 듯이 느껴질 지경이니!
“용서를 입에 담지 마라, 아직 벌을 받지도 않았으니! 어서 가라! 이 자리에서 저런 징벌을 받고 싶지 않다면!”
오우거를 언급하는 말은 마법사들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퍼뜩 고개를 든 마법사들의 눈길은 홀시딘을 향했고, 전혀 농담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로 여기 앉아서 힘겨운 소리를 내고 있다가는 멀뚱거리며 서 있는 저 오우거의 모습이 자신들 생의 결말이 될 수 있다! 이런 자각은 곧바로 마법사들을 일으켜 세웠고 다급하게 움직이게 했다.
홀시딘은 둥실둥실 뜬 채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홀시딘 발아래 쪽, 살짝 뒤편에 서서 구경했다.
오우거가 된 마법사, 이제는 그저 오우거일 뿐인 존재는 그 자리에서 두리번거리며 시뻘건 눈알을 굴리는 채로 ‘누굴 찢어놓으면 돼요?’라고 묻는 것처럼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몸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며 사방에 험악한 분위기를 흘리는 중이었다.
마법사들이 왕궁 한편으로 사라지고 나니 로열 가드들이 왕자를 챙기느라 부산스러운 소리만이 고요함을 뒤척이는 것처럼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 광경은 툴로쉬가 왕자를 패도 그냥 팬 것이 아니라 아주 교활하게 팼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왕자님, 얼굴을……!”
“무릎이 빠졌어! 탈골(脫骨)이라고!”
“어깨도 마찬가지다!”
“조심해, 늑골도 부러지신 듯하다!”
“부은 자리에서 피를 빼야 해, 이대로 두면 죽은 피가 고인다!”
“치유사, 치유사는 아직 멀었나!”
“로열 가드! 어서 일어나지 못해!”
투란이 오락가락하며 나오는 말을 들으며 보니, 왕자를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고 나뒹구는 동료를 챙기지도 못한 채로 로열 가드들은 툴로쉬가 알뜰하게 남겨놓은 흔적을 더듬으면서 좌절하고 있었다.
‘툴 아저씨, 조심해야겠네.’
투란은 로열 가드들과 다르게 바들거리며 오락가락하는 이들을 흘깃하면서, 그들 또한 간접적으로 내팽개쳐지고 튕겨나가는 로열 가드랑 충돌해서 이리저리 깨지고 다쳐서 공황(恐惶) 상태인 것을 확인하면서 다짐했다.
―조심?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뭘 조심한다는 것인가 의아한 듯 짧게 물었다.
‘괜히 주먹 날아오지 않게 조심할 아저씨라고. 왕자 붙들고 팬 게 한 시간 동안도 아니었고, 몇 분 사이였다고. 그런데 저 로열 가드들…… 갑옷 봐, 튼튼한 철제(鐵製)잖아! 은으로 바른 것처럼 반짝거리기도 하고! 저런 가드들을 다 쳐내면서 왕자를 저렇게 정성껏 패놨다고. 방심하고 있다가 뒤통수 한 대 맞으면 알몸으로 길바닥에 버려질 수도 있을걸!’
―툴로쉬가 너한테 그럴 일이 있을까부터 의심스럽다만.
드라고니아가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였다.
‘알아, 그런 일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할 참이지? 나도 알아! 하지만 변덕쟁이 기분으로 장난이랍시고 그러는 헌터들도 있거든! 그러니 미리미리 각오하고 조심해야지!’
―흠, 뭐든 조심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지. 아, 홀시딘이 움직인다.
‘어? 흣, 오우거도 움직이네!’
투란은 홀시딘이 왕자 쪽으로 나아가는 광경과 함께 저쪽에서 두리번거리던 오우거가 쿵쾅쿵쾅 요란한 걸음과 함께 홀시딘 곁으로 다가서는 것을 봤다. 슬그머니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투란도 슬쩍 홀시딘의 발아래 자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투란으로서는 오우거가 갑작스럽게 미쳐 덤빌 경우도 생각하며 미리 대비하는 자세를 갖추는 셈이었다.
홀시딘이 슬쩍 그런 투란을 돌아보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눈길을 딱 가면 속의 눈구멍에 꽂아 넣는 표정으로 나직하니 말한다.
“오우거는 우리를 지킬 거야. 창칼은 염려 말고, 화살이나 마법은 주의해라. 아직 궁정 마법사들이 여기저기 숨어서 눈치 보는 중이니까.”
“옙.”
짧게 튕겨내는 대꾸를 하며 투란은 감각을 예리하고 민감하게 가다듬었다.
확실히 오우거는 다른 오우거가 돌격해 와서 충돌할 경우도 대비하는 것처럼 넉넉한 간격을 둔 채로 홀시딘의 주변을 맴돌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두어 바퀴 빙빙 도는 탓에 그냥 어슬렁거리는 미친놈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홀시딘과 투란은 확실히 왕자와 가까운 거리에 도달했다.
왕자와 대강 4, 5미터 앞에서 멈춘 홀시딘이 말한다.
“정신 잃은 척하지 말고 똑바로 앉지, 페브라 제삼 왕자님. 어설프게 삼 왕자의 연기에 동조하지 말고, 로열 가드들은 물러서. 싫다면 여기 죄 많은 오우거의 손에 날려가겠나? 아까 그 친구처럼 적당히 탈골시킬 거란 기대는 하지 마. 이 오우거는 자신에게 죄를 짓게 한 이들 앞에서는 용서가 없으니까.”
왕자를 둘러싸고 떠들던 로열 가드들이 움찔할 때, 투란은 한마디 웅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연기?”
―호오? 그럼,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한 것이 아니라 그냥 혼미한 척하는 중인가? 흐흠, 고통은 진짜인데도 정신은 멀쩡하다고? 그건 나름대로 대단한데?
드라고니아는 전혀 엉뚱한 쪽을 더듬으며 왕자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오우거가 쿵쾅거리며 왕자 쪽으로 다가갔다.
로열 가드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대뜸 검을 뽑아 들며 일어섰다.
저편에서 끙끙거리던 이들…… 대부분 다리가 뒤틀린 몰골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로열 가드들도 일단 검을 빼 들더니, 지팡이 삼아 땅을 짚다가 푹푹 꽂히는 꼴이 되어 당황하면서도 움직이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꼴을 보고 홀시딘이 가볍게 혀를 차다가 손가락을 튕기며 속삭인다.
“마그네틱 포스, 거스트.”
투란은 홀시딘의 손가락에 끼인 반지를 바로 눈치챘다.
과거 그랜드 마스터였던 카티야의 마법 한 가지를 발휘한다고 눈치채는데, 갑자기 자신의 몸 곳곳을 당기는 듯한 힘…… 바람결이 주변을 맴돌고 저쪽으로 억세게 몰려가는 것에 몸이 딸려 들어갈 듯한 순간을 투란은 분명히 느꼈다. 하지만 그 느낌이 피어나는 찰나에 가면으로부터, 홀시딘이 넘겨준 장비로부터 미묘한 마력의 파동이 퍼지면서 바로 그 당기는 힘을 물리치고 있었다.
‘어라? 이게 뭐지?’
의아해하는 순간, 투란은 저편에서 로열 가드들이 한꺼번에 날려 가는 광경을 봤다.
우당탕거리는 와중에 로열 가드들의 검이 그 손에서 벗어났고, 은색 강철의 갑주를 두른 로열 가드들은 무슨 풍뎅이가 굴려 모으는 똥구슬처럼 뭉쳐서 저편으로 굴러가 처박히고 있잖은가!
신음과 소란, 저쪽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사이에 왕자는 그냥 부은 얼굴을 땅바닥에 댄 채로 누워 꼼짝 않고 있었다.
홀시딘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고, 오우거가 쿵쾅거리며 왕자를 향해 두어 걸음 디뎠다. 곧바로 홀시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오우거의 괴력에 목을 잡힌 채로 일어나고 싶은가? 그러고 싶다면 그러던가!”
스윽 손을 내미는 오우거의 모습은 이 말이 전혀 농담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바로 왕자가 움찔거리는 시늉을 하다가 한 팔로 몸을 버티며 일어나 앉았다. 다른 팔은 어깨가 탈골되었는지 그냥 축 늘어뜨린 채였고, 두 다리는 버티고 서기는커녕 앉은 채로 내뻗는 것도 힘든지 바들거리며 굽은 꼴로 엉덩이랑 균형만 맞추는 것처럼 보였다.
투란은 그런 왕자의 모습에 다시 한번 툴로쉬의 솜씨를 느끼고 감탄했다.
‘와, 이 아저씨 악질이네. 딱 한 팔로만 앉아 있을 수 있게 해놨잖아! 다 분지르고 빼놨으면 누워서 눈알만 굴리고 있을 텐데…….’
―홀시딘과 대화하라고 남겨둔 모양이지.
드라고니아도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오우거는 다시 쿵쾅거리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왕자가 일어나 앉았으니 일으켜 세울 필요가 없다고 인정한다는 듯, 일으켜 세우는 순간에 목뼈부터 등골, 갈비뼈 쪽이 다 으스러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한 오우거가 말의 투레질을 흉내 내듯, 다른 할 일이 없냐는 듯이 푸흣거렸다.
마법사를 기반으로 한 오우거의 크기는 대략 그랑츄 정도였지만, 투란은 그 안에 꾸물거리며 맴도는 마력을 기반으로 한 괴력이 그랑츄를 압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투란 자신이 품고 있는 오우거, 그 기억을 통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마법사였는데…… 이거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건가?’
―불가능하다. 이건 원래 형상을 간직한 트랜스모프(Transmorph)가 아냐. 하나의 형상, 그 본질을 파괴하고 다른 것으로 채운 것이야. 트루세이어의 징벌과 마찬가지다. 한번 실행되면 되돌릴 수 없어.
‘그냥 쳐죽인 것보다 심하구나.’
투란은 등골이 서늘한 것을 느끼면서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툴로쉬도 위험하지만, 지금 홀시딘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해 보이니까!
그런 투란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홀시딘은 부은 얼굴로 흘깃거리는 왕자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페브라 왕가의 일족이란 점을 고려해서,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주도록 하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합당한 벌을 받겠는가?”
과연 왕자가 뭐라 답할까, 투란이 잔뜩 궁금해서 보는데…….
“아, 아버지! 아버지, 구해주세요오오!”
왕자는 전혀 생각도 못 한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홀시딘도, 이 주변의 상황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두리번거리면서 길 잃은 아이가 엄마, 아빠를 부르듯이 소리치고 있다!
‘에? 뭐야? 아빠 부르는 거야?’
너무 괴상해서 투란이 뒤늦게 이게 무슨 일인가 되짚어 생각하려는데…….
―왕자의 아버지면, 페브라 국왕 아니냐?
드라고니아는 족보와 혈통을 짚고 있었다.
‘으응? 그, 그렇지?’
투란은 재빠르게 주변을 훑어봤다.
다행스럽게도 딱히 쳐들어오는 왕궁의 군단병은 없어 보였다.
단지 저쪽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서로 들러붙은 채로 당황해하는 로열 가드들이 슬슬 욕설을 시작하는 것이 살살 귓가에 들려올 뿐이었다. 그렇게 만든 마법이 당분간 풀리지 않을 듯하니, 그쪽은 그냥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성 한쪽의 성벽을 쪼개며 벌어진 이 소란, 생각해보면 싫든 좋든 왕성의 주인인 국왕의 귓가에 닿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과연 이 상황을 홀시딘은 어떻게…….
“멈춰랏! 멈추시오, 상아탑의 마법사! 페브라의 왕관에 걸린 권위로서 명하오! 내 아들에게 손대지 마시오!”
투란의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왕궁 안에서 누군가 나오고 있었다.
크고 넓은 마당, 그 안을 비 맞지 말라고 오락가락하라는 것처럼 길 따라 지붕을 세워놓은 한쪽에 성안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고, 그 굽은 모양 아래의 문짝을 확 열여 젖히면서 왕관을 손에 들고 내밀며 뛰어나오는 화려한…… 다모스 킬튼과는 다른 의미로 화려한 복장을 한 왕이 보였다.
그런 페브라 국왕을 본 감상을 투란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크게 외쳤다.
‘와, 배 나왔잖아!’
―헐?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다른 것보다 먼저 국왕의 허리띠가 슬쩍 처진 채로 통통하게 옷을 밀어내는 꼴이 된 복부에 집중하는 것에 어이없어했다. 그렇게 배가 불룩하다고 해서 국왕의 팔다리, 건장하고 두툼한 사지(四肢)의 힘이 약하다는 증거는 아닐 텐데 투란은 그 체형이 굉장히 방해된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으니까.
‘저 정도면 열흘은 거뜬히 굶고 버틸 수 있겠어! 물만 마시면 된다고!’
―엥, 뭐?
조금 전에 ‘약하다!’라는 듯이 생각하던 투란이 금세 발상을 전환했기에 드라고니아는 어이없어 되묻는 말을 해야 했다.
‘몸은 약하지만, 덫 놓고 숨어 기다릴 수는 있겠다고.’
―대체 뭘 기준으로 무슨 평가를 하는 거냐?
이어진 투란의 사고(思考)에 포기했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음? 그야…… 저 배 볼록한 임금님이 몬스터 사냥할 경우 얘기잖아.’
―왕이 직접 나서서 몬스터 사냥을 한다고? 대체 어떤 나라에서 그런 짓거리를 한다고!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가면에 닿을 정도로 입술을 삐죽이며 바로 대답한다.
‘키린 왕자님 아빠. 아, 의붓아빠 말고 친아빠. 에테온의 반역왕!’
―그거 정상 아니야! 정신 차려! 키린 녀석보다 더 이상한 작자라고, 그거! 아니, 키린 녀석이 그렇게 이상한 거는 그 작자가 아빠인 탓이라고! 그 아빠만 아니었으면 키린도 정상적인 녀석이 되었을 거라고!
강렬하게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생각을 부정하려 했다.
이 외침에 투란이 반박하기 전에, 페브라의 국왕이 손에 들고 왔던 왕관을 머리에 쓰면서 홀시딘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먼저 울렸다.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