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30)
“이 아이는 왕가의 혈통! 어떤 죄를 지었든 그 징벌의 권한은 내게 있소! 이것은 이 왕관에 걸린 약속! 상아탑의 마법사라면 왕관에 걸린 약속을 따르시오! 알드바인의 홀시딘, 당신에게는 내 아들을 벌할 자격이 없어! 내 아들은 상아탑 소속이 아니라고!”
숨이 찰 정도로 뛰어온 듯했지만, 페브라 국왕의 외침은 강렬했고 아주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있었다. 비록 그 머리 위에 쓴 왕관이 조금 기우뚱하니 자리 잡아 보기 이상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투란은 살짝 한편으로 걸음을 딛고 갸웃하는 시늉을 하면서 홀시딘을 바라봤다. 둥실둥실 뜬 채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에? 웃고 있어?’
보고 나니 투란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홀시딘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잖은가. 마치 페브라의 왕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 오히려 반갑다는 듯!
―위험한데?
드라고니아가 뭔가 섬뜩한 것을 본 듯이 중얼거렸다.
‘어? 약간 기분이 으쓱하기는 한데…… 뭐가 위험해?’
감각적으로 드라고니아에게 동의하면서도 투란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가 알 수가 없어 물어야 했다.
―눈가는 전혀 웃지 않고 입꼬리만 치켜올리고 있잖아. 저거 상아탑 마법사들이 밖으로 나갈 때 챙겨본다는 대인(對人) 처세술이란 거에 있는 표정이다. 마법만 들이파다가 인간성이 모자라거나 세상 사람 대하는 것이 이상해져 버린 마법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본인데…… 감정표현이 부족해진 마법사가 그 교본으로 훈련해서 얻은 표정은 다들 비슷해. 그러니까…… 상아탑의 마법사가 저런 표정을 꾸몄다는 이야기는 지독하게 위험한 짓거리를 하기 전에 상대에게 보내는 선전포고(宣戰布告)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빠르지만 장황한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을 한층 더 혼란스럽게 했다.
‘설마…… 여기서 오우거로 임금님 머리통이라도 으스러뜨린다는 얘기야?’
―야, 그런 짓까지는…… 안 하겠지?
혀를 차며 당차게 부정하려던 드라고니아는 말을 맺기 전에 완전히 자신 없다는 듯이 되묻고 있었다. 이런 반응을 투란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홀시딘의 몸에서 아련하게 감춰지는 듯했던 아케인 포스가 강렬하게 맥동하며 퉁퉁 튀듯이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거기에 반응한 오우거가 그륵그륵 목젖을 울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드랑이에 팔꿈치를 척 붙이는 모습은 손가락으로 방향만 가리키면 냅다 뛰어가 뭐든 일단 주먹으로 쥐어박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듯이 보였다.
페브라 국왕 또한 이 상황을 바로 알아차린 듯, 다급하게 다시 왕관을 한 손으로 잡아 머리에 꽉 눌러 앉히면서…… 여전히 기우뚱한 꼴을 고치지는 못해서 긴박한 표정과 다르게 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모습으로 외치고 있었다.
“사, 상아탑의 마법사라면 맹약을! 나의 권한을!”
그 외침은 완전한 말이 되지 못했고 중간이 흐려지고 안간힘 속에 그냥 고함이었고 홀시딘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홀디딘은 국왕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만히 완전히 빈 한 손을 들어 올렸고, 왕궁 전체를 울리는 듯한 목소리, 듣는 이가 누구든 간에 그 안에 담긴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음성을 천둥처럼 울려낼 뿐이었다.
“왕좌의 맹약에 따라 대관(戴冠)을 마친 자여, 페브라의 왕위에 오르며 맹세한 자여! 그 순간, 그 모습을 기억하라!”
순간 투란은 왕궁을, 왕궁의 성벽까지 울리는 거대한 마력의 파동을 느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배 속에 있는 듯한 감각이 투란의 오러 가드를 긁었다.
‘으갹, 이게 뭐야?’
―왕도(王都)의 수호마법인데?
드라고니아는 당황하는 낌새를 흘리면서도 바로 홀시딘이 불러내는 마법의 실체를 파악한 듯 읊조리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짧은 말이었기에 바로 되묻는 말이 소리 없이 튀어나간다.
‘해롭냐? 나나 홀시딘에게 공격적인 거야?’
―전혀 아니다.
조금 더 깊이 파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흐릿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대답보다 국왕의 몸가짐이 변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둬야 했다.
기우뚱했던 왕관이 좌우 균형을 맞춰 위로 솟아올랐는데, 거기 머리를 끼운 국왕도 함께 둥실 떠올랐다. 더불어 국왕의 몸 주변으로 환한 빛줄기가 피어나는가 싶더니 사라졌는데, 그 빛줄기가 있던 자리에는 검과 갑주가 둥실거리며 나타나 있었다. 전부 입으면 로열 가드보다 더 단단한 무장(武裝)을 한 것처럼 보이려나 싶은 순간, 나타난 검과 갑주가 국왕을 집어삼킬 듯이 덮쳤고…… 입혀졌다.
얼핏 갑옷이 사람을 씹어먹는 괴현상(怪現象)을 기대했던 투란은 ‘에?’ 하고 자신도 모르게 살짝 실망하는 소리를 흘렸지만, 그런다고 검과 갑주, 왕관을 완전장비한 국왕에게 다른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대신 드라고니아의 핀잔이 투란의 뇌리를 쩌렁쩌렁 울릴 뿐이었다.
―야, 이…… 무장마법이잖아! 너도 뻔히 아는 거잖아! 왜 갑자기 그런 흉악한 생각을 하는 거냐고! 왕도 한복판의 왕성, 왕궁 담벼락 앞에서 갑옷 모양 몬스터가 사람을 씹어먹을 일이 있겠냐고!
‘세상일 모르는 거잖아. 아, 근데…… 왜 홀시딘이 임금님을 무장시킨 거야?’
툴툴거리다가 투란은 흘깃흘깃 열심히 홀시딘을 바라봤다.
배 볼록한 임금님이 나타나서 왕관만 흔드는 것이 꼴사나워서 제대로 차림새를 갖춰준 것일까,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기에 지금 홀시딘의 태도는 한없이 엄격했고 진지해서 페브라 국왕의 차림새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니까.
그렇다면 대체 왕도의 수호마법으로 국왕을 왜 무장시켰는가?
국왕조차도 지금 당황해서 허공에 뜬 채로 ‘어?’, ‘왜?’, ‘무슨?’ 하면서 손에 든 검, 몸에 입혀진 갑주, 머리에 쓴 왕관을 다시 확인하면서 홀시딘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 묘한 분위기는 주변에서 버둥거리던 왕궁의 귀하신 분들, 저쪽에 뭉친 똥구슬 모양이 된 로열 가드들까지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듯, 다들 기괴한 정적에 정신을 맡기는 듯했다.
“기억하라, 그대의 맹세를. 그 검을 들고, 그 갑주를 입고, 그 왕관 앞에서 그대가 한 맹세를 기억하라. 이 나라의 왕좌에 오른 자로서 자신이 무엇을 맹세했는가를 기억하고…… 법을 집행하라! 페브라 왕좌의 심판을 모두가 지켜보도록 하라!”
천둥처럼 홀시딘의 말이 울렸다.
이번에는 이 왕도의 모두가 들었을 것이라고 투란은 확신했다.
‘이 도시 전체에 울린 거 맞지?’
그리도 혹시나 해서 물으니,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답한다.
―그래, 이제부터 벌어질 일도…… 상공(上空)을 봐라.
퍼뜩 투란은 머리 위 높은 곳, 드라고니아가 말하는 텅 빈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맴돌던 아케인 포스와 전혀 다른 성질의 광채가 왕도의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그려내듯, 짙고 선명하게…… 그 모양은 어렵지 않게 금방 이뤄졌고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임금님?’
왕도의 수호마법에 의해 무장한 페브라의 국왕, 그 모습이 하늘에 비치고 있었다. 홀시딘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왕도 경계를 넘어 메아리쳐 나갈 무렵에는 또렷하게 국왕의 표정까지 왕관 아래에서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광경은…….
“왕가의 혈통을 이은 자여…….”
눈알이 통째로 빛을 뿜어내는 모습을 하고 페브라 국왕이 검으로 왕자를 겨냥하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 말에 응하듯, 홀로설 수 없었던 왕자가 검의 앞에 자신을 올려놓듯이 둥실거리며 떠올랐다.
“몬스터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한 예산을 절감한다 하고 보급을 훼방한 죄를 벌하노라…….”
파앗.
치켜 올라갔던 검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왕자의 멀쩡했던 한 팔이 싹둑 잘려나가며 핏줄기가 터져나왔다.
왕도의 하늘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 유혈(流血)이 비치고 있었다.
왕자의 비명이 하늘로부터 지상으로 피와 함께 흘러내리는 듯했다.
“왕가의 혈통을 이은 자여…….”
국왕의 검이 다시 치켜 올라갔다.
왕자가 비명 속에서 급하게 한마디를 외친다.
“아버지이이!”
국왕의 표정이 실룩였지만, 그 입가에서 나온 말은 아까처럼 엄격한 단죄(斷罪)를 담고 있었다.
“구휼의 행정을 밤낮없이 지휘한 형제를 모함하고, 그 공적을 가로채기 위해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흘리고 조작한 죄를 벌하노라!”
파앗.
탈골되어 늘어졌던 왕자의 다른 팔이 잘려나갔다.
왕자는 꺽꺽거리면서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는 채로 국왕을……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부은 눈을 크게 뜬 그 표정은 페브라 왕도의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유혈의 근원인 것처럼 선명하게 비쳤다.
국왕의 검은 다시 치켜 올라갔다.
둥실거리며 왕자의 몸도 조금 높아졌다.
두 어깨에서 괄괄 쏟아지는 피, 축 늘어뜨린 두 다리가 덜렁거렸다.
국왕의 검이 살짝 옆으로 누우면서 다시 거대한 단죄의 천둥이 울려퍼진다.
“왕도의 그늘진 곳에서…… 공민(公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無故)한 이들의 재물을 갈취하고…… 진실을 밝히려 한 이들을…… 도적의 손을 빌려 암살하고…… 핍박한 죄를…… 벌하노라.”
파앗, 팟.
눕혀졌던 검이 좌우로 흔들렸다.
왕자의 두 다리가 끊어지면서 어깨에서 흘러내리던 두 가닥 핏줄기를 하나로 합하는 듯한 폭포 같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국왕과 왕자의 모습이 선명했지만, 페브라 왕도의 하늘이 섬뜩한 핏빛으로 물들여지는 듯했다.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팔다리를 끊었으니 이제 끝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어서 저 광경이 치워지길 바라는 소망이 저절로 피어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국왕의 검은 다시 치켜 올라갔고…….
“왕가의 혈통이여…… 그 의무를 외면하고 권리만을 누리려 한 자신의 죄를…… 그 벌을 받을 각오가 되었는가?”
어느덧 국왕의 눈가에서도 핏빛을 비치는 투명한 눈물이 맺힌 것이 드러나는 채로 왕자를 향한 물음이 나오고 있었다.
멈춰진 검은 마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고, 왕자는 팔다리가 절단된 채로 자신의 아버지…… 국왕을 노려보는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아니야…… 아버지…… 아빠는 마법에 걸린 거잖아…… 내게 이럴 리가…….”
파앗.
검이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왕자의 목이 떠올랐고, 몸통에서 치솟는 피가 터져나왔다.
검을 곧게 세운 국왕의 목소리가 토막 나서 떨어져 내리는 왕자의 모습 위로 겹쳐지듯, 여전히 천둥처럼 울려퍼진다.
“페브라의 왕좌에 오른 자로서, 검과 갑주, 왕관에 맹세한 바에 따라…… 심판하고 단죄하니…… 나라의 율법은 혈통으로 왜곡될 수 없음을…… 지켜본 자들이여, 반드시 기억하라.”
우르릉…….
투란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숙여 눈앞의 광경을 보다가를 되풀이했다. 하늘 위에 비친 광경이 과연 여기서 벌어지는 일인가, 아니면 단순한 환영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하지만 하늘에 비친 어떤 광경도 가짜가 아니었다.
바로 앞에서 페브라의 임금님이 자신의 아들을 썩둑썩둑 썰어내는 것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었다.
그 사이에 홀시딘은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도도하게, 상아탑의 마도사가 굳이 저런 일에까지 끼어드냐는 것처럼…… 혹은 그랜드 마스터의 고고(孤高)함을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홀시딘은 꿈쩍도 않고 왕자가 차근차근 도륙(屠戮)당하는 꼴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그 모든 것이 끝나서 페브라 국왕이 땅에 내려서며 자신의 검을 내팽개치며 토막 난 왕자를, 자신의 아들을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을 때도 상아탑의 마도사 홀시딘은 표정 한구석 바꾸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격분한 페브라 국왕이 고개를 쳐들고 홀시딘을 눈빛만으로 교살(絞殺), 도살(屠殺), 참살(斬殺)을 거듭하겠다는 듯이 노려볼 때, 상아탑의 마도사는 담담하게…… 너무 담담해서 끔찍할 정도로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맹약은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것을 기억하라.”
순간, 투란이 먼저 움찔했다.
페브라 국왕은 잠깐 눈을 깜박였는데, 감았다 뜨는 순간에 그 눈동자는 다시 광채를 번뜩이고 있었다.
‘으어? 설마 임금님, 자기 몸에 칼을……?’
투란은 또다시 하늘을 피칠하는 광경이 벌어질 것인가 하고 놀라는데…….
―아니, 계승이다.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한 듯 말하고 있었다.
‘뭐?’
투란이 의아해하는 사이, 국왕은 자신의 두 손으로 머리에 쓴 왕관을 쥐어 가슴 언저리로 내리더니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왕가의 혈통을 이은 자가 저지르는 부정(不正), 부덕(不德)을 지켜보면서도 사사로운 정(情)을 우선하여 왕좌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으니, 이제 그 의무를 준비된 새로운 왕좌의 주인에게…… 전하노라.”
왕관이 빛을 뿜었고, 빛은 왕관을 휘감으며 날개의 형상을 이뤘다.
‘설마……?’
투란이 날개 모양이니 날려나 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 왕관은 이미 어디론가 누군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