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31)
Chapter 147. 왕도의 만가(輓歌)
휘잉!
맑은 날이었지만 바람은 꽤 힘차게 불고 있었다.
“아으흣! 시원해! 아, 이제 겨우 좀 쉬겠네!”
덜컹, 옆에서 밖으로 젖혀 열린 다락방의 창문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투란은 그 창문을 밀어 닿고 나서 지붕 위 한편에 앉았다.
들고 나온 주머니 속에서 마른 과일을 꺼내 입에 우겨넣고 나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숨을 크게 들이쉬는 투란의 표정은 편안했다.
―구경만 해놓고 뭘 힘든 일 한 시늉이냐.
드라고니아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핀잔했다.
‘앙? 구경만이라니! 엿새 동안 쉴 새 없이 상아탑의 그랜드 마스터에다가 도적길드의 원로회라든가 눈치 보고 다니느라 힘들었구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게 구경만이냐, 몸가짐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쭉 봐놓고 몰라? 드라코눔의 아칸은 전부 너처럼 매정하냐?’
―눈치를 봐? 그냥 뒤에 바싹 붙어서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만 했잖아! 누굴 데려다가 놓고 물어봐라! 너보다 이 왕도 사람들이 더 혼란스럽고 힘든 일을 겪었겠지!
‘음? 이 도시 사람들? 왜?’
투란은 갸웃했다.
아삭거리며 마른 과일을 씹어먹는 채로,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것을 느낀 드라고니아가 황당해하며 한숨과 함께 말을 잇는다.
―도시 상공에서 갑자기 왕이 왕자를…… 여러 아들 중에 셋째라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총애하던 아들을 참형(斬刑)으로 벌했다. 그 왕이 그 자리에서 퇴위(退位)를 해버렸고 겨우 사흘 만에 왕도 밖에 있던 첫째 왕자가 돌아왔는데 그 손에, 날아갔던 왕관이 들린 채였다. 느닷없이 왕위가 계승돼버린 데다가 첫째 왕자가 혼자 말 타고 돌아오지도 않았지. 몇 년 동안 부리고 있었다는 페브라의 군단을 통째로 끌고 왔잖아. 그다음의 사흘을 생각을 해봐라. 왕도 밖으로 도망치려던 귀족들부터, 군단에서 탈주해버린 병사들…….
‘에이, 그게 무슨 혼란이고 힘들 일이야. 원래 순환시켜야 했던 군단이 몇 년 만에 겨우 임무 교대한 것뿐이잖아. 그걸 훼방 놓던 셋째 왕자가 죽었으니까, 그 셋째 왕자를 돕던 녀석들은 지은 죄가 있으니까 튀는 거였고…… 임무 교대하지 않는 군단에서 편안하게 군역(軍役)을 넘기던 녀석들은 지은 죄가 있으니 딴 데로 도망간 것뿐이고…….’
드라고니아가 짚는 바를 투란은 차곡차곡 대꾸하고 있었다.
그 대꾸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툴로쉬가 했던 말이잖아? 그걸 외우고 있었냐?
‘어? 뭐…… 좋은 이야기였잖아.’
아삭, 아삭.
키득거리는 표정으로 투란은 마른 과일을 먹어치우면서 다시 페브라의 왕도를 한쪽 끝에서 끝까지 훑어봤다. 드라고니아가 꺼낸 이야기가 저절로 투란에게 지난 엿새 동안의 일을 되새김질해주고 있었다.
왕자를 베어버리고 왕관을 벗어 날려 보냈던 왕…….
먼저 왕궁에서 물러나 버린 이자닌 일행에게 합류하지 못하고 투란은 왕궁의 성벽 안에서 홀시딘과 함께 움직여야 했다. 딱히 처리할 일이 남은 것은 아니었지만 홀시딘 곁에서 투란은 느닷없는 일에 왕궁이 어떻게 하는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꼴이 된 셈이었다.
나름대로 생각을 해본 투란은 느닷없이 머리 잘린 꼴이 돼버렸으니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의아해했는데, 의외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왕궁은 멀쩡하게 ‘기능(機能)’했다.
이자닌은 나중에 코웃음 치며 말했다.
“춤추는 산맥에서 왕이랑 왕자가 몬스터에게 죽은 일이 한두 번 있었냐? 그런 일로 머리 잘린 뱀처럼 파닥거리다가 푹 고꾸라질 정도로 한심한 녀석들은 나라라고 내세울 수도 없는 곳이 춤추는 산맥이야.”
딱히 몬스터 때문에 왕이랑 왕자가 함께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런 선례가 있었기에 왕국은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기능’에 따라서 왕관을 든 첫째 왕자가 사흘 만에 왕도로 돌아왔다.
첫째 왕자는 혼자 돌아오지 않았고, 몬스터를 막기 위해 거느리고 있던 군단…… 제일군단을 이끌고 돌아왔다.
투란에게는 원래 왕자가 군단지휘를 맡으면 그러는 건가 갸웃했을 뿐이었지만, 페브라 왕도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체 왜 몇 년 동안 떠나있던 군단이 돌아왔다고 그러는가, 이해할 수 없어 하는 투란에게 툴로쉬가 설명해줬다.
“거의 육칠 년 정도를 교체 없이 유지된 군단이니까. 아무리 브로큰 킹덤, 이 섀터드 세븐의 한 조각에 불과한 나라라고 해도 군단이 여럿 있지. 여기는 한 여덟아홉 되든가? 아무튼 그 군단이 보통은 일 년, 길어도 이 년 안에 임무 교대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단 말이지. 그런데 군단 하나를 몇 년 동안 몬스터 앞에 첫째 왕자랑 같이 던져놓고 나머지 놈들은 왕도 안에서 편안하게 구르면서 군역을 거저 때우고 있던 참이란 말이지. 그런데 그 군단이 대뜸 돌아왔으니, 딴 놈들이 몬스터 앞에 가서 군역이라고 재롱 피울 때가 된 거잖아. 남 등쳐먹는 일에는 용감해도 막상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외면하는 놈들한테는 완전히 재앙이지! 하하핫!”
그 이야기에 투란은 어느 정도는 납득했다.
몬스터와 싸우는 일에 끌려가는 군단병이 투덜거리는 이야기는 이리저리 건너서 헌터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니까, 첫째 왕자의 군단과 교체될 군단에 속한 이들이 당황한 정도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귀족들마저 우왕좌왕하다가 한밤에 다른 도시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투란에게 이해고 뭐고 그냥 멍하게 하는 소리였다.
샤오콴 마을에서 듣는 귀족들 이야기란, 몬스터랑 싸우는데 지휘해야 할 작자가 앞장서다가 먼저 뒈지는 통에 아주 곤란했다는 헌터들의 투덜거림이 가득했으니까…… 이 페브라 왕국의 귀족들 하는 짓은 웬만큼 감안하고 들어도 납득할 여지가 없는 이상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의아해하는 투란을 보며 툴로쉬는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렸고, 이자닌이 냉랭하게 말했었다.
“야, 고대왕국의 귀족들 중에서도 뒤로 수작 부려서 군역 피하는 놈들 많거든? 딱히 브로큰 킹덤이라고 해서 이 나라 귀족만 그리 못돼먹지는 않았다고!”
투란도 딱히 도망치는 귀족들이 못돼먹었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귀족조차 고개 숙이게 만드는 왕자가, 왕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왕위를 계승받는 제일 순위의 왕자가 몬스터와 싸우는 군단을 몇 년 동안 지휘하고 있었다고 하잖던가.
첫째 왕자가 그 휘하에 거느린 귀족의 수가 적은 것도 아니었고…….
다만 이 왕도에 사는 이들이 기겁하고 놀라서 와글거리는 광경이 투란에게는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자닌도 굳이 도망치는 귀족들에 대해서 변명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짜증 났을 뿐이었기에 그에 대해서 더 뭐라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게 바쁘게 왕도에서 탈주하는 이들 덕분에 성벽 가까운 이 높은 건물이 갑자기 아주 싼 값이 나왔다는 점은 이자닌을 조금 기쁘게 했다.
투란이 홀시딘과 왕궁에서 상아탑으로, 페브라의 높은 계층에 속한다는 이들을 구경하는 사이에 이자닌은 툴로쉬와 파쿠란을 거느리고 불타오른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 도적 길드의 원로들, 가르 영감에게 반대하며 삼 왕자의 지휘를 받아들였다는 원로들을 싹 정리했고…… 죽였는지 살렸는지 정확한 이야기는 피해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그 정리는 매우 상식적인 도적 길드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라 했다. 그런 정리를 하다 보니 이자닌과 파쿠란은 왕도 안에 다른 눈치 보지 않고 머물 곳이 필요해 적당한 건물을 찾아야 하는데 싸게 살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좋아했었다.
문득 투란은 건물 안을 정비한다고 한창 들쑤시는 이자닌과 파쿠란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하늘에 뭐가 비치는 것에는 전혀 놀라지도 않으면서 군단 돌아오니 놀라 도망가다니, 역시 이 나라 사람들이 이상한 거겠지?’
―왕자가 그리 토막 났는데 안 놀랐겠냐!
‘어? 아니, 뭐…… 그래도 무슨 대관식이니 뭐니 하는 일이 있으면 왕이 하늘에 그렇게 나타난 일을 자주 봤다잖아. 왕자가 토막 난 일이 좀 뜻밖이라도 도망칠 정도로 놀란 것 같지도 않드만…….’
―뭘 자주 봐! 수십 년 전에 대관식 이래로 못 보던 거라고 신기해하드만.
‘에이, 그래도 무슨 일 생기면 하늘에 그런 거 비춘다는 정도는 다들 알고 있었잖아. 옛날에 몬스터 범람일 때는 자주 왕이 얼굴 비추고도 그랬다 하고…….’
투란은 양 떼처럼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보면서 다시 마른 과일을 입에 가득 채워넣었다. 한꺼번에 넣고 오래 잘게 씹어먹을 궁리였지만 마른 과일은 부드럽게 훌훌 목젖으로 흘러가듯 입안에서 사라졌다.
―그보다 상아탑의 일은 어쩔 거냐?
‘음? 그건 마스터 홀시딘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나랑 상관없잖아?’
투란은 갑작스러운 물음에 갸웃했다.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며 묻는 말을 잇는다.
―그 연구실의 미친 마도사를 봐놓고 그런 소리가 나와? 정령의 궁전을 연구한다고 처박혀서 몇 십 년을 나오질 않았다잖아. 홀시딘이 그런 마도사를 두들겨 패서 끄집어 내놓고 하는 말을 들었잖아.
‘어, 그야…….’
그 광경을 떠올리며 투란은 쓴웃음과 한숨을 동시에 지어야 했다.
덤벼들던 상아탑의 마법사들, 그들 중 한 명을 오우거로 탈바꿈시킨 홀시딘은 나머지를 상아탑, 이 페브라 왕도의 북쪽 성벽 너머에 땅속 깊이 파고든 모양을 한 상아탑으로 보내놨다. 왕궁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된 다음에 홀시딘이 상아탑에 가서 맨 처음 한 일은 마법을 연구한다고 밖으로 몇 십 년을 나온 적이 없다는 마스터를 찾아가 행패 부린 짓이었다.
뭔가 아주 절실한 마법연구였다고 하는 듯해서, 세상일을 몽땅 외면한 채로 몰입하는 연구였다니 보통 연구일 리는 없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페브라 왕국의 상아탑 마스터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하던 연구는 ‘정령의 궁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게 상아탑의 마법사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고 그 마스터는 수십 년 전에 중요한 단서를 잡고 몰입해야 했다는데, 홀시딘은 연구하던 마스터를 강제로 잡아끌고 나와 중단시켰다. 그리고 한 말이란 것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척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내가 만들었거든? 그러니까 닥치고 이 엉망진창이 된 페브라의 상아탑을 정리정돈하라고! 연구한답시고 차박혀서 몰라라 하니까 애들이 개난장판을 만들고 있었잖아! 정신 차려, 이 미친놈아! 뭐? 어디다 어떻게 만들었냐고? 알고 싶어? 그러면 먼저 정리정돈을 한 십 년 하고 알드바인으로 날 찾아와!”
은근히 투란과 함께 무쇠뿔 오우거를 마무리 지었던 업적을 과시하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이 페브라 왕도 곁의 상아탑에서 유일한 마스터 마도사이면서 세상일을 외면했던 마법사는 그렇게 끌려 나와 일감을 떠맡았다. 징벌부터 시작해서, 어설프게 궁정 일에 끼어든 것의 뒷정리라든가 하는 기타 등등의 모든 일을!
구경하던 투란조차도 혼자서는 힘들지 않을까 갸웃하는데, 홀시딘은 알드바인에 찾아왔던 몇몇 마스터를 불러들여서 곁에 붙여줬다. 그런데 그렇게 불려온 마스터 잘카탄은 페브라의 상황에 아주 감동한 듯 말했다.
“야, 여기 왔다 간 지 이십 년도 안 된 것 같은데 그새 이렇게 되어 있었냐? 대단하네, 이놈들…….”
그리고 홀시딘에게 덤볐다는 마법사들을 한 명씩 따로 면담한 후, 절반 정도는 죽이고 절반 정도는 추방해버렸다.
어이없어하는 홀시딘과 다른 마스터를 향해 잘카탄은 나름대로 간결하게 말했다.
“골이 빈 놈들이다. 마법사가 저리 골이 비었다는 얘기는 반성도 없고, 개선도 없다는 뜻이잖아. 상아탑에 그런 놈들 둬서 뭐하게? 그냥 열 살 이하 애들을 새로 데려다가 키우는 편이 시간 단축하고 낭비가 없어.”
잘카탄에게 반대하는 의견은 없었다.
추방된 이들은 상아탑 근처에 다가서지 못하는 금기를 새긴 채로 살게 되었고, 다시 마법에 손을 대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파쿠란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추방된 경우라도 어떻게든 다시 마법사의 길을 걷는 수가 있다고는 하는데, 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투란에게는 딱히 관계없는 일이었다.
다만 투란은 여전히 이상하게 여긴 일은 상아탑의 비상체계라 불리는 것을 전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홀시딘과 다른 마스터들의 모습이었다.
애초에 이 페브라의 마법사들이 삼 왕자의 꼬임에 넘어가게 된 것이 그 비상체계를 이용하자는 꼬드김 때문이라 했는데…… 홀시딘이 그랜드 마스터로서 그 비상체계를 당분간 강제로 ‘잠금’시켜 놓은 정도로도 충분하다 여기는 듯했다. 심지어 그 ‘잠금’도 잘카탄의 일처리를 보고는 당장 해제해도 좋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잖아.’
―마법사랑 엮일 대로 엮여놓고 발 빼는 거냐?
‘발 뺄 일도 없잖아. 그보다 이 페브라의 상아탑 마법사들은 전에 알드바인에 아무도 안 왔던 거였나? 그게 더 궁금하지 않냐?’
아삭, 마른 과일을 입에 물고 하늘을 보며 투란은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