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32)
―뭐가 궁금하냐, 궁금하긴! 페브라의 상아탑을 대표하는 마스터도 알드바인에 왔었잖아! 단지 그 마스터란 작자가 페브라를 떠난 후 칠팔 년을 딴 데로 돌아다니다가 왔었을 뿐이었다잖아. 알드바인의 회합 뒤에도 또 다른 곳으로 튀었고!
‘어? 아, 그 얘기가 그 얘기였나.’
투란은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의 말에 멋쩍어하며 대꾸했다.
마스터 잘카탄과 함께 불려온 다른 마스터들의 말에 따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페브라의 상아탑도 꽤 정상이라 했었다. 삼 왕자의 농간에 놀아난 것이 몇 년 사이의 일이란 말이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상아탑이 이렇게 망가진 꼴이 되었다는 사실에 꽤 놀라기도 했었다. 그리고 놀란 김에 페브라 상아탑의 상급 마법사들, 마스터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정상적이었던 상급 마법사들의 현재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탓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모인 마스터들이 내린 판단 탓이었다.
파쿠란은 그런 이야기를 건너 듣고서는 피식 웃으면서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너무 자신감이 넘쳐서 자신들 사이에서 타락이 있겠느냐고 교만한 결과라고 했다. 이자닌은 딱히 교만하지 않아도 인간 세상에 흔한 일이냐고 툴툴거렸다. 어느 쪽이든 투란으로서는 굳이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투란은 마법사의 일이니, 마법사들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갈 뿐이다!
―듣고 본 이야기도 홀랑 까먹고 넘기지 말라고!
‘알았다고.’
끊임없이 이어질 듯한 잔소리에 적당히 대답하면서도 투란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거의 엿새 동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졸졸 따라다니며 보고 들은 상황 중에 투란이 전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으니까…… 어떻게 생각해도 그냥 옆에 세워놓은 통나무 꼴이었다고, 책임질 일이 없어서 꽤 느긋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역시 아는 게 없어서 입 쳐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묘한 짜증도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짜증을 투란에게서 박박 긁어내는 이도 있었으니…….
덜컹!
“뭐야, 지붕 위에 홀로 앉아서 한 잔……이 아니고 군것질이냐?”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서 툴로쉬가 투란을 향해 떠들고 있었다.
열린 창문에 치여 옆으로 구를 뻔한 모습으로 투란이 대꾸한다.
“아, 밀지 마요! 떨어진다고!”
“오? 떨어져? 떨어져 다치면 주머니는 내 거?”
툴로쉬가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투란은 한숨을 쉬며 먹고 있던 마른 과일을 담은 주머니를 내미는 채로 말한다.
“이거 먹고 끝내는 걸로?”
“야, 누가 몇 푼 안 되는 군것질거리 담은 주머니를 금전을 펑펑 낳는 주머니랑 바꾸냐!”
조금 진지한 척하면서 말하는 툴로쉬였다.
투란은 그 얼굴을 잠깐 바라봤다.
가면을 벗은 채이기는 했지만 역시 지금 툴로쉬의 얼굴이 온전한 진짜인가 가짜인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저 갈색의 머리카락은 정말 갈색일까? 사실은 빨강인데 뭔가로 물들인 것은 아닐까? 저 뺀질거리는 낯빛은 그냥 건강한 살색인가, 아니면 마법의 도료(塗料)를 발라놓은 것인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마음 한편으로 밀어버리면서, 그런 의심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툴로쉬에게서 눈길을 떼어 지붕 아래와 좌우, 위를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하며 투란이 말한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자꾸 그렇게 떠들어요? 금전 반 토막 때문에 사람 죽이겠다는 작자도 많잖아요.”
“소문나는 게 무서워? 그럼, 포기?”
“포기 안 한다고 했잖아요! 아니, 그보다! 마스터 홀시딘은 왔어요? 상아탑이랑 왕궁 일 보고 나서 온다고 했잖아요? 와서 금전 주머니 처분에 대해 본다고 했잖아요, 아직 안 왔어요?”
투란은 틈을 노리는 툴로쉬의 말을 부정하고 외면하면서 아예 이야기를 바꿔버리려 했다. 하지만 툴로쉬는 투란보다 노련했으니…….
“아래층에 다 모이면 환영(幻影)을 투사(投射)해서 대화를 시작할 거라고 했어. 파쿠란이 그 준비가 끝났다고 널 찾고 있었지. 이자닌도 가구 정리를 대충 하고 기다리는 중이고. 즉, 이제 주머니를 누가 갖는가를 결정하는 일에 투란 너만 없으면 바로 내가…….”
“으랏차!”
투란은 지붕 아래로 훌쩍 뛰어내리는 시늉을 하며 소리쳤다.
동시에 투란은 지붕 모서리를 잡고 아래층의 열린 창문으로 몸을 날리기도 했다.
툴로쉬가 다락방 창문 너머로 빼꼼히 윗몸을 내밀다가 그런 투란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잔머리도 굴릴 줄 아네?”
말과 함께 툴로쉬 역시 바로 다락방 창문에서 튀어나와 지붕 아래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거꾸로 스쳐가는 광경 속에 먼저 한층 아래로 간 투란이 보이자 툴로쉬가 바로 손을 흔들며 짧게 말한다.
“다들 이 층에서 기다리거든!”
“으라앗— 차!”
말을 듣기가 무섭게 투란이 다시 창문 너머로 몸을 날리며 거꾸로 떨어지는 툴로쉬의 두 발을 잡는 시늉을 했다. 툴로쉬가 재빨리 다리를 접은 탓에 닿지는 않았지만 투란도 툴로쉬랑 똑같이 거꾸로 거리를 향해 처박히는 꼴은 되었다.
―뭔 짓이냐, 대체…….
드라고니아는 어이없어했지만, 툴로쉬와 투란은 손이 이 층 창턱에 닿는 순간에 재빠른 동작으로 추락하는 몸을 접어 창문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툴로쉬 다음에 투란이 그렇게 이 층 안에 들어서자마자 들은 소리는…….
“역시 재주 좋아. 겨우 두 손가락 닿는 걸로 몸을 당겨 내던질 수 있다니, 정말 오러 윌더라니까.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저런 재주라니, 이런 구경을 어디 가서 하겠어? 오늘 나 아주 운이 좋은가 봐!”
이자닌이 쏘아붙이는 말이었다.
툴로쉬가 밝은 웃음소리와 함께 대꾸한다.
“그럼! 운이 좋지! 수백 년의 전설을 간직한 금 낳는 주머니를 운이 없는데 챙길 수 있었겠어? 하하핫.”
이자닌이 볼을 실룩이다가 표정을 뒤틀었고, 파쿠란이 한편에서 한숨을 쉬며 탁자를 밀어내서 방 안 한복판으로 옮겼다.
투란이 그 탁자를 보니, 주먹만 한 가죽 주머니 둘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거의 비슷하게 생겼고, 갈색 바탕에 붉은빛이 한쪽이 살짝 더 진한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구분하기 위해 주머니를 조이는 끈은 한쪽이 붉고 한쪽은 회색으로 꾸며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 진짜야?’
투란은 살짝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이 두 전낭(錢囊)은 툴로쉬가 투란을 대신해서 이자닌과 파쿠란을 도와 도적 길드의 대의회 쪽 일을 해결하고 보물창고를 열어 가져온 것이었다. 투란이 갓 만들어진 오우거와 함께 홀시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왕궁 안을 구경할 때에 툴로쉬가 별 거리낌 없이 그 일을 대신한 셈이었다.
문제는 그러고 나서 툴로쉬가 당당하게 투란이 받기로 한 보상도 대신 받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는 것. 솔직한 속내라면서 자기 입으로 떠든 말에 따르면 그냥 장난치려고 한 수작이었는데, 그 보상이 전설의 ‘코인 백’이란 말에 툴로쉬는 진지해졌다!
거기에 대해 파쿠란도 매우 진지하게 대응했다.
“둘이나 있군. 하나는 금전을 낳는 것일 테고, 하나는 금화를 낳는 것이다. 어느 쪽인가, 맞히는 쪽이 가져가는 것은 어때?”
경쟁심을 도발시키는 말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은 투란은 살짝 어리둥절했었다.
똑같이 금을 낳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곧 금전이란 춤추는 산맥, 고대왕국에서 통용되는 것을 말하고 금화란 제국에서 금에다가 다른 것을 섞어 만든 얄팍한 금박 씌운 동전 같은 것이란 것을 알았기에 지금 투란도 매우 진지하게 드라고니아에게 묻는 셈이었다.
―아무거나 상관없잖아? 네 입장에서는…….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매우 심드렁하니 무성의했다.
‘야, 난 동전 낳는 주머니를 받기 싫다고! 이 먼 곳까지 와서 보상을 뺏기기 싫어!’
투란은 강력하게, 하지만 소리 없이 외쳤다.
여기까지 와서 이자닌의 놀림감이 되기 싫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파쿠란이 ‘코인 백’을 보상으로 걸었을 때, 이자닌은 동전 낳는 것이라고 조롱했었고 이번에도 역시 누가 동전을 챙기고 누가 금전을 챙기나 보겠노라고 이죽거렸다.
알고 보니 ‘코인 백’이란 금전을 낳는 아티팩트보다 금화를 생성하는 모조품의 명칭이었는데, 어쩌다가 그쪽이 더 유명해져 버렸다고 했다. 때문에 금전 낳는 가방 이야기가 나오면 거기서 나오는 금전이 평원에서 통하는 제국의 금화일 뿐이라고 바로잡는 말을 하는 경우가 당연하게 여겨진다고도 했다.
―동전이 아니라 금화잖아. 금 함유량에는 심각하게 차이가 나지만…….
‘이 그게 문제잖아! 제국 금화란 거, 거의 구리에다가 황금색 칠만 해놓은 정도라고 한다고! 그러니까 동전 튀어나온다고 이자닌이 계속 쳐놀리는 거라고! 여기까지 와서 진짜 놔두고 그런 가짜를……!’
파앗.
투란이 탁자 위의 주머니 둘을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며 소리 없이 한껏 투덜거릴 때, 탁자 위에 하얀빛이 맴돌며 홀시딘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리고 바로 홀시딘의 목소리가 투란을 향해 울린다.
“뭐 하는 거냐?”
“뭐 하긴요…… 욕심 많은 헌터 아저씨한테 보상 안 뺏길려고 노력 중이잖아요!”
투란이 탁자에 턱을 올리고 킁킁거리며 대답했다.
홀시딘의 하얀 얼굴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한껏 꾸몄고, 파쿠란이 한편에서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이자닌은 투란에게 격려하는 소리를 지른다!
“그렇지! 알드바인에서 여기까지 와서 그 꼴을 겪고 포기할 수는 없지! 그래, 포기하지 말고 골라봐!”
파쿠란이 홀시딘이 투란 보는 눈길과 비슷하게 이자닌을 쳐다봤다.
홀시딘은 이자닌을 향해 ‘이 아가씨는 또 왜 이래?’라는 가는 눈길을 보내다가 툴로쉬에게 두 눈 부릅뜨는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정말로 할 셈인가?”
“당연히! 이번에야말로! 후후훗.”
툴로쉬는 눈을 번뜩거리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이 탁자에 턱을 댄 채로 살짝 올려다보는 시늉을 하며 중얼거린다.
“다음번에 노리지…… 꼭 이번에 노려야겠어요? 저 아주 멀리서 왔다고요.”
“엘더 헌터의 정체까지 훤히 드러내고 양보해달라 했는데 꼭 이렇게 나와야겠냐? 그냥 양보 좀 해라! 나 이거 수백 년 동안 원하고 있었다고!”
툴로쉬의 대꾸는 투란보다 훨씬 강렬했고…… 뻔뻔하며 당당했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일 수밖에 없었다.
아티팩트 ‘코인 백’, 모조품이 아닌…… 모조품의 이름으로 알려진 진짜 금전을 낳는 아티팩트를 받겠다고 나선 툴로쉬는 이전의 모호하고 애매한 태도를 걷어치우고 자신이 헌터 길드의 배후에서 활동하는 전설의 주인공, 엘더 헌터라고 노골적으로 자기소개를 다시 하기까지 했다!
그 소개를 들을 때처럼 지금도 이자닌은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아, 헛소리가 들려.’라고 손을 내젓기까지 했다. 파쿠란이 말하기로는 이자닌은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닥쳐오면 저러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홀시딘이 말한다.
“둘 다 진품인데 꼭 이렇게까지…….”
바로 투란과 툴로쉬가 크게 외친다.
“마스터 홀시딘! 평원 금화라고요!”
“둘 다 진품이라니, 그건 절대 아니지!”
살짝 눈가에 힘줄 세우는 표정을 짓고 나서 홀시딘은 그냥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래, 그래…… 멋대로들 해라. 파쿠란, 받겠나. 상아탑이 공증한 귀속 주문이랑, 제비뽑기 주문…… 페브라 마법공방에서 바탕을 만든 거라 카드 형태라더군. 쓸 수 있겠지?”
툭, 툭.
홀시딘의 환영으로부터 놀이용 카드 같은 것이 두 장 튀어나와 파쿠란에게 건네졌다. 파쿠란은 카드 두 장을 두 손에 나눠 쥐면서 살폈고…….
“쓸 수 있군요, 그러면…… 투란, 툴로쉬. 탁자에서 떨어져요.”
둘이 말대로 대여섯 걸음씩 멀어지는 것까지 확인했다.
이자닌은 한편에서 아예 의자를 놓고 앉아 구경하는 모습이었다.
파쿠란이 가만히 한 장이 카드를 탁자에 올려놓았고, 홀시딘의 환영은 둥실거리며 이자닌 곁으로 옮겨갔다. 바로 이자닌이 홀시딘의 환영 귓가에 대고 귓속말하는 시늉을 하며 큰 소리로 묻는다.
“일 끝났는데, 안 가세요?”
“볼 건 보고 가야지. 이런 구경, 백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잖아?”
노골적으로, 아까와는 달리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홀시딘의 대꾸였다.
파쿠란이 그런 둘을 향해 구겨진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툴로쉬와 투란은 눈을 번뜩이며 탁자만 노려봤다. 그리고 곧 포기했다는 표정과 함께 탁자 위의 카드를 향해 파쿠란이 마력을 담아 속삭인다.
“하나의 주인을 고르고, 그 생이 다할 때까지 머물라. 하임폴.”
탁자 위의 카드가 보랏빛을 흘려냈고, 보랏빛은 두 개의 주머니를 물들였다.
파쿠란은 가만히 한 걸음 물러섰고…….
“같은 것을 고르면 제비뽑기 주문을 씁니다. 다른 것을 고른다면, 함께 자신이 고른 것을 쥐면 돼요. 자, 그러면…….”
투란과 툴로쉬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주머니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