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33)
짝, 짝.
“우호오! 파쿠란, 꼭 경매장의 거간꾼 같았어!”
이자닌이 박수 치고 놀리는 소리를 질렀다.
홀시딘의 환영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능숙하군!’이라고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이었다. 이자닌처럼 치려던 박수는 손을 올리다가 흘겨보는 파쿠란의 표정에 살짝 참았지만.
그러는 사이에 투란과 툴로쉬는 탁자로 다가가 두 걸음 정도 간격을 두고 빙빙 돌며 마법의 주머니 둘을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서로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신의 감에 따라서,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제대로 고르기 위해서라는 듯.
―투란, 솔직히 너한테 필요 없잖아? 너는…….
‘시꺼! 훼방 놓지 마! 금전, 금전, 금전!’
투란은 집중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몇 마디 잔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난 엿새 동안 이 정도로 집중하고 주변을 살폈으면 정말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 거다! 악마의 동굴을 털어서 금덩이를 낳는 항아리를 통째로 털어먹은 놈이 대체 저딴 주머니를 왜……!
‘왼쪽? 오른쪽?’
잔소리를 깔끔하게 무시한 채로 투란은 맴돌던 발걸음을 멈추고 두 주머니 중에 어떤 것을 골라야 하는가에 더욱 몰입하고 있었다. 마법의 양상(樣相)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주머니, 모조품 ‘코인 백’조차도 그런 치밀한 구성을 지녔기 때문에 들고 열어 보기 전에는 어느 쪽이 금화이고 어느 쪽이 금전인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남은 것이라고는 순수한 눈썰미와 육감(六感)…… 가장 믿을 수 없고 운에 맡기는 관찰뿐이었기에 투란은 집중하고 몰입하는 셈이었다.
그런 투란을 흘깃거리며 툴로쉬도 나름 집중하는 모습이었는데, 투란이 어느 순간에 그 눈길을 깨닫고 툴로쉬가 뭘 보는가를 슬쩍슬쩍 엿보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마도구, 아티팩트와 모조품을 분별하려던 태도에서 슬그머니 경쟁자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새나오는 광경이었다. 툴로쉬도 그런 투란에게 살짝 호응하듯 눈가에 웃음을 매단 채로 흘깃거리는 중이었다.
파쿠란은 이렇게 둘이 시간을 끄는 꼴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귀속 주문의 효력이 지속되는 동안에 고르지 않으면, 다시 보물창고로 되돌아갑니다. 도적왕의 보물창고, 아무 때나 쉽게 열리지 않는다는 거 알고들 있겠지요?”
투란이 어리둥절해하는데, 툴로쉬가 움찔했다.
드라고니아가 가볍게 탄식하는 중얼거림을 흘린다.
―아하, 그래서 저 엘더 헌터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고 저러는구만. 도적왕의 보물창고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없으니까.
‘이번에는 대체 어떻게 뚫었대?’
툴툴거림을 소리 없이 흘리면서 투란은 주머니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툴로쉬의 눈치를 봤다.
―뚫은 게 아니라 열린 것을 닫으러 간 거였다고 했잖아! 이자닌이 그 일을 주도했고 원래 네가 도울 일이었다고 그게!
‘어? 아, 그랬지.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뭘 나중이야!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어느 쪽인지 말해주기 싫으면 조용히 좀…… 어, 왼쪽인가!’
투란은 툴로쉬가 눈동자를 딴 곳을 향하는 채로 어깨를 들썩이며 팔을 꿈틀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투란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재빨리 한쪽을 낚아채려는 듯한 동작의 전조(前兆)처럼 그 낌새가 보이는 순간, 투란의 손이 날렵하게 툴로쉬가 겨냥한 주머니를 낚아챘는데…….
―바보냐?
냉큼 튀어나오는 드라고니아의 한마디는 아까 하던 잔소리랑 완전히 다른, 지금 투란이 저지른 짓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 까닭을 투란은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고 바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툴로쉬가 투란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히죽 웃고 있는데, 움직일 듯했던 손은 그냥 겨드랑이 사이로 쏙 들어가면서 팔짱을 끼고 있었잖은가!
“엥? 어? 에? 허엇!”
연속적으로 짧은 숨결과 함께 당황스러운 소리를 다양하게 토해내다가 투란은 퍼뜩 깨달았다.
기사의 무투술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요술처럼 불리는 잔재주, 페이크 액션! 당하는 이들은 정말 무슨 요술을 겪은 듯한 착각 속에서 당황스럽게 한다는 짓이 방금 툴로쉬가 투란에게 한 일이었다.
“이, 이런 치사……!”
뒤늦게 툴로쉬를 향해 투란이 성난 소리를 뱉으려는데…….
―그 주머니가 어떤 것인지 아직 툴로쉬도 몰라.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말했고, 이자닌의 목소리도 투란의 귓가에 팍 꽂힌다.
“그게 금전이야? 금화야? 이미 손댔잖아! 얼른 끈 풀어봐!”
꿀꺽, 나오던 말과 침을 삼키면서 투란은 자신이 낚아챈 주머니를 살펴봤다.
붉은 끈에 주둥이를 조인 주머니는 살짝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가를 더듬어서 가늠할 수 없는 가죽의 두꺼움과 부드러움을 확실히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끈을 풀고 까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하지만 투란은 스윽 툴로쉬를 사납게 노려보면서 반쯤 확신할 수가 있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툴로쉬는 이미 주머니의 내막을 알고 있다고!
투란에게 이것을 집게 한 것은 분명히 계획된 것이고, 음모를 꾸민 것이 분명했다!
뿌득, 이를 가는 소리를 내며 투란은 툴로쉬에게 묻는다.
“미리 알고 있었어요?”
툴로쉬가 고개를 저었고, 파쿠란이 대신 답한다.
“봉인된 채로 꺼내왔고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 나도 봉인을 열지 않았지. 어느 쪽인지 몰라서 둘 다 꺼내온 것이었고…….”
살짝 투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굳이 봉인을 열어 확인하지 않고 가져온 것인가?
왜 이렇게 귀찮은 짓을 시키는 것인가.
파쿠란의 말이 이어지며 투란이 입 밖에 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짚고 있었다.
“도적왕의 보물창고는 봉인을 뜯은 물품은 가지고 나오지 못하게 하니까. 가지고 나온 물품이라도 한 사람이 두 개의 봉인을 뜯게 되면, 둘 다 다시 창고로 되돌아 버려. 고대의 마법이고 아직 해제된 적이 없어.”
―이제 와서 뭘 공평했냐고 따져? 얘기 나올 때 따졌어야지!
드라고니아의 핀잔 속에서 투란은 눈을 한 번 깜박거렸고, 바로 끈을 풀어 주머니를 거꾸로 들고 손바닥에 뭐가 떨어지는가를 봤다.
톡톡,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금붙이가 흘러나왔다.
타원형의 금붙이에는 세공(細工)된 성의 모양이 담겨 있었다.
춤추는 산맥에서는 물론이고 이제는 평원에서도 골동품, 유물 취급받는 제국의 금화였다.
투란이 배시시 웃었고, 번개처럼 탁자 위의 다른 주머니로 금화를 쥔 손을 내뻗으며 움켜쥐려 했다. 파쿠란이 한 말은 모르겠다는 것처럼 다른 주머니의 봉인도 마저 자기 손으로 열겠다는 모습이었다.
툴로쉬는 이 광경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투란보다 더 빠르게 두 손을 내밀어 주머니를 낚아채고 투란의 손을 막아내기도 했다.
“투란, 방금 굉장히 치사했어! 호홋.”
이자닌이 웃었다.
툴로쉬는 파쿠란을 향해 투덜거린다.
“왜 부추겨요. 설마 일부러 그랬던 거요? 치사하긴! 보상으로 시원하게 내주는 척하면서 도로 창고 안에 처박으려 하다니! 라바크도 그렇게 치사하진 않았는데!”
파쿠란은 슬쩍 툴로쉬의 눈길을 외면하면서 모르는 척했다.
홀시딘의 하얀 환영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징징거리려는 투란을 향해 말한다.
“그냥 쓰기에는 그쪽이 더 좋아. 마음껏 내던지면서 쓸 수 있잖아. 거기서 나오는 금붙이를 봤다고 해도 당장 칼 들고 설치는 녀석들은 없을걸. 제국 금화에 대한 평가가 아주 바닥이니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은전 몇 닢은 감당할 수 있다고, 그 금화 한 닢이 말이야. 그러니까…… 그만 좀 칭얼거려! 나, 간다!”
말하는 사이에 우잉우잉하며 우는 척하는 투란에게 성난 표정을 지어 보이고 홀시딘의 환영이 사라졌다. 그 광경을 향해 투란이 바로 외친다.
“으아! 다들 한패야! 나만 괴롭혀!”
“아니, 그건 아니지! 난 이거 반대했다고, 투란!”
이자닌이 고개를 젓고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파쿠란도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말한다.
“나도 갑자기 탐욕스러워진 엘더 헌터를 말리려고 애써봤다만…… 대체 무슨 까닭인지 들은 척도 하지 않더군. 듣자 하니 금전도 많아서 섀터드 세븐의 헌터 길드를 돈으로 사버렸다는 소문까지 돌게 했으면서 말이지.”
투란이 툴로쉬를 노려보면서 묻는다.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 대체 왜요!”
―야, 너도 마찬가지잖아!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지만 투란은 들은 척도 않고 툴로쉬를 할퀴듯이 노려봤다.
방 안의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툴로쉬는 천천히 주머니 끈을 풀었고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넣어 금전 하나를 꺼내 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둥글고 단단하며 두꺼운 금전이 툴로쉬의 손가락 사이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나, 금전 맞아!’라고 으스대는 것처럼 보였다.
잠깐 투란도, 이자닌도 그런 금전의 자태를 바라보느라 말문을 닫았고 파쿠란은 그 분위기에 한숨을 쉬었다.
툴로쉬가 금전을 허리띠의 다른 주머니에 떨궈넣으면서 모두를 둘러보며 말한다.
“궁금하신가? 내가 대체 왜 이걸 얻고자 했는가? 투란, 궁금해? 알고 싶어? 알고 나면 덜 억울할 것 같아? 역시 그렇지? 그럼, 가자! 어떻게 쓰는지 보여줄게!”
말이 툭툭 튀는 듯한 소리였고, 그때마다 투란은 고개를 퍽퍽 소리 내겠다는 듯이 끄덕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앞장서며 방문을 향해 나아가는 툴로쉬를 보며 이자닌도 벌떡 일어서며 말한다.
“나도 궁금해! 따라가도 괜찮은 일이겠지?”
툴로쉬가 문을 열며 말한다.
“물론! 나도 궁금하거든, 과연 다들 잘 따라올 수 있는가 말이야.”
빙긋 웃는 그 표정이 꽤 수상하기는 했지만, 파쿠란까지도 느릿하니 투란과 함께 따라나서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골목길이 보이는 거리에 도달했다.
이자닌과 파쿠란이 꾸민 높은 건물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비슷한 높이, 크기의 건물 서넛을 지나온 다음에 바로 도달했으니, 이 왕도 전체를 놓고 본다면 오히려 가까운 곳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짧은 거리를 지나오면서 투란은 도시의 분위기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또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높은 건물에서 볼 때는 그저 오가는 이들이 서로 아는 척하거나 몰라서 지나치는 풍경, 멀리서 울려나오는 웅성거림에 불과했던 소리가 가까이 스쳐가면서 보고 듣는 동안에는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야기가 되니까.
그리 많은 사람들과 스쳐간 것은 아니었지만, 길 너머에서 보다 번화한 곳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저 먼 곳에서도 비슷할 것이라고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불안해하는 건가?’
―당연하잖아. 예정된 계승자라 해도 새로운 왕이다. 더군다나 몇 년 동안 왕도에 몇 번 돌아온 적도 없다는 얘기까지 있었잖아. 죽어버린 삼 왕자를 칭송하던 입장에서 바로 새로운 왕을 받아들이고 마음 편하겠냐.
‘그것보다는 몬스터랑 싸우러 나가는 군단 때문에 뭔가 일이 꼬였다고 징징대는 말이 아니었냐?’
―그게 바로 새로운 왕이 시작하려는 일이잖냐. 둘째 왕자도 왕국 순례에서 바로 돌아와서 왕도의 행정을 다시 정비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왕궁의 태도에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하단 말이다.
‘그래? 흠…… 난 그 왕자들 괜찮아 보이던데.’
―너한테 쇠뇌를 쏴 갈기지 않았으니까?
‘물론이지!’
―에라, 이…….
‘어, 여긴가?’
소리 없이 떠들다가 투란은 툴로쉬가 멈춘 것을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옆에 깊고 좁은 골목이 있는 것 말고는 별일 없어 보이는 거리를 확인했다. 이자닌과 파쿠란도 곁에서 가만히 그런 풍경을 살피며 툴로쉬를 흘깃거리는 중이었다.
천천히 툴로쉬가 돌아서며 묻는다.
“옆에 골목이 있다, 보이나?”
투란은 어리둥절해서 다시 골목을 봤다.
그냥 골목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투란이 이자닌과 파쿠란을 보니, 둘도 투란처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자닌이 ‘내가 장님도 아닌데!’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툴로쉬가 빙긋 웃더니 바로 골목으로 재빠른 걸음으로 들어서며 말한다.
“날 놓치지 말고 따라와!”
대꾸하지 않고 투란이 곧 그 뒤를 따라갔고, 파쿠란도 얼른 뛰듯이 따라붙었다.
이자닌은 ‘뭔 장난이야.’라고 투덜거렸지만 뒤를 확인하면서,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면서 잰걸음으로 빠르게 뒤따랐다.
그렇게 골목의 끝에 도달했다 싶은 순간, 투란은 툴로쉬가 옆으로 스윽 움직이며 밖에서는 가늠하기 힘든 새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을 봤다. 그 뒤를 따르며 투란이 묻는다.
“어디 가는 거예요?”
“그 가게!”
툴로쉬의 대답은 간명(簡明)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