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34)
“뭔 가게요?”
투란은 다시 꺾인 골목을 타고 사라지려는 듯한 툴로쉬를 더 빠르게 쫓으며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뭔 놈의 가게이기에 말하면 알 것처럼 ‘그 가게’라 하는가.
그런데 뒤따라오는 파쿠란과 이자닌은 투란과 다르게 놀란 소리로 골목을 울리는 중이었다.
“그 가게? 설마 그 가게!”
“어, 그 가게라니, 진짜 있는 거야 그 가게가?”
덕분에 투란이 슬쩍 뒤돌아봤지만, 둘의 표정이 정말로 놀라면서도 기대에 가득 차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도대체 뭐라는 건지는 전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뭔지 모를 ‘그 가게’가 어떤 의미 있는 곳이라고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뭔 가게인데 저러지?’
갸웃하면서도 투란은 툴로쉬를 쫓는 발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슥슥 돌아가는 툴로쉬는 상당히 빨랐고, 골목길은 외길인 듯하면서도 어딘가로 새는 경로가 툭툭 불거지는 미로였기에 투란은 더욱 주의하며 따라가야 했다. 뒤에 따라오는 이자닌과 파쿠란이 딴 길로 새는가에 대한 염려를 할 틈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툴로쉬가 마침내 미로 같은 골목을 벗어나니…….
“형제 상회?”
일단 투란은 정면에 문을 활짝 열어놓는 가게의 간판부터 읽었다.
좌우로 높이 치솟은 벽은 다른 건물의 등짝처럼 보였고, 앞의 가게도 어느 건물의 등짝을 째고 끼워넣은 듯한 모양새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골목에서 나선 다음에 돌아보니, 이자닌과 파쿠란이 나오는 골목 저 너머는 꽉 막힌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 들여다본 골목처럼 직접 걸어나가지 않으면 옆으로 돌아가는 샛길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자닌도 투란처럼 사방을 둘러보더니 간판을 보고 중얼거린다.
“켈 데릭 형제 상회?”
그 소리에 투란이 다시 간판을 봤다.
한복판을 꽉 채운 것은 분명히 형제 상회란 낱말인데, 그 앞쪽에 위아래로 낙서처럼 흘려 쓴 것이 켈 데릭이란 이름이 맞았다.
파쿠란이 감정을 자제하는 말투로 중얼거린다.
“허, 이렇게 생겼었나. 형제 상회란 이름이었군.”
툴로쉬가 문턱에 선 채로 돌아보며 말한다.
“어서 들어가자고. 구경거리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잔뜩 있으니까.”
투란은 재빨리 그런 툴로쉬를 향해,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는 사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리는데…….
―이건…… 뭐지?
갈피를 잡지 못해 당황해하는 말투가 역력했다.
그 말을 투란은 그냥 넘기면서 문턱을 넘어섰다. 그리고 바로 똑같은 소리를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이게…… 뭐야?”
낯선 곳이지만, 낯익은 느낌이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감각의 기억이 되살아날 듯한 순간, 투란은 귓가를 쩌렁쩌렁 울리는 말을 들어야 했다.
“우호호홋! 오히히힛! 손님이시군요! 손님이야아아! 으허허헛! 이것 참! 아, 이런! 실례했습니다! 음하하핫! 이런 시기에 우리 형제 상회를 찾아오실 손님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서, 제가 좀 많이 놀랐습니다! 우허허헛!”
‘누, 누구야…… 저 배불뚝이 아저씨는!’
투란은 입을 벙긋거리면서도 소리를 못 내는 물음을 흘리고 말았다.
둥글고 큰 덩어리에 장난처럼, 팔다리, 머리를 붙여놓으면 저런 몰골이 될 듯한데…… 사람이 그런 모습일 수는 없잖은가! 한데 온갖 소리로 쳐웃고 손님을 반기는 저 인간…… 인간인가 투란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 가게의 주인은 그런 몰골로 유쾌해하며 떠들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떠다니는 건가? 아, 그래! 떠다니네!’
둥글둥글한 몸집이었지만 발끝으로 살짝 땅을 짚으면서 둥실둥실 움직이는 꼴은 도저히 걷는다고 보기 힘든 몰골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한층 더 그 광경에 당황하며 스스로 납득할 말을 찾아야 했는데…….
―리프트가 새겨진 벨트를 차고 있잖아. 그 정도는 보는 즉시 좀 알아차려라!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어? 아…….’
문턱을 넘으면서 놀랐던 낌새를 어느새 지운 말투였고, 이는 투란 또한 숨을 고르고 상황을 다시 살피게 했다.
“으아앗! 저 살덩이가 어떻게 저런 가볍게!”
뒤따라 문턱을 넘는 이자닌이 바로 투란 곁에서 똑같이 놀란 소리를 냈다.
“이자닌…… 리프팅 벨트 처음 보는 시늉 하지 마!”
파쿠란이 민망하다는 듯이 구박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 어째 투란과 드라고니아의 대화를 재현하는 듯하잖은가.
한숨을 쉬며 투란은 계산대 너머로 옮겨간 가게 주인을 봤고, 거기에 다가가는 툴로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주변에 쌓인 검, 창, 방패, 활을 곁눈질로 보고 그 정체가 궁금한 쇠막대, 그물, 화살 따위를 둘러보는 채로…….
“여어, 이 가게의 주인이신가? 반가워! 너무 오랜만이라 형제 상회에서 내 이름을 기억은 할지 모르겠구만! 나는 툴로쉬…….”
“엘더 헌터! 우아앗! 진짜 툴로쉬입니까? 정말요?”
이름 나오기가 무섭게 가게 주인이 둥실거리는 몸짓과 함께 제자리에서 붕붕 떴다 내려섰다 하면서 외치고 있었다. 툴로쉬마저 그런 주인의 모습에 움찔한 것처럼 잠깐 걸음을 멈출 지경인 모습이었다.
그래도 용건이 있어서 온 사람답게 툴로쉬는 한 손을 올려 손가락을 튕기는 채로 말한다.
“맞아, 내가 바로 엘더 헌터 툴로쉬야.”
계산대 위에서 푸르스름한 광채가 맺혔다가 사라졌다.
투란은 그 광채가 툴로쉬의 손가락 끝에서 번뜩했던 묘한 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뭐가 어찌 된 일인가는 알 수가 없었다.
―계약 마법인가? 신호를 주고받는 용도인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는 그 광경을 바로 마법과 연관 짓고 있었다.
‘마력이었나? 조금 다른 느낌 아니었어?’
―글쎄?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약속된 암호를 주고받는 마법 같았다만…….
‘음, 그런 거였나.’
투란은 갸웃하는 채로 슬슬 툴로쉬의 뒤로 다가서면서 가게 주인과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가게의 풍경을 둘러봤다. 진열된 물품을 가늠하는 눈길을 뿌리면서도 문턱을 넘어섰을 때의 기묘한 느낌, 그 기억을 더듬으려 애쓰는 것인데…….
“으험! 엣헴! 툴로쉬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만! 조부님으로부터 전해온 엄격한 지시에 따라 미리 말씀드립니다! 대여 안 됩니다! 후불 안 됩니다! 할부 어쩌구 하는 것도 절대 안 됩니다!”
가게 주인이 진지하게, 하지만 한껏 목청을 높여 버럭 외치는 소리는 투란의 주의를 확 잡아끄는 이야기였다.
‘대체 뭔 소리야?’
이자닌과 파쿠란도 투란처럼 놀란 듯…….
“응? 뭐?”
“대여? 후불?”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툴로쉬의 옆에 가 서면서 그 얼굴을 파헤치듯이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툴로쉬는 발끈하면서도 씩씩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왜 안돼? 엘더 헌터라고, 엘더 헌터! 아무리 반세기 만이라지만, 내 신용이 그렇게 바닥을 칠 리가 없잖아!”
“그 반세기 전에 하신 일을 기억하세요! 조부님이 얼마나…….”
가게 주인이 두 손으로 넓은 바 형태의 계산대를 누르면서, 덕분에 더욱 둥실둥실 떠올라 아예 사람을 내려다보는 곳까지 눈높이를 높이면서 길게 말하려 했다. 툴로쉬가 그 광경을 보고 바로 말을 자르며 묻는다.
“켈 데릭이지? 그럼, 그 조부님은 셀 데릭? 멜 데릭? 어느 쪽이야?”
떠올랐던 몸이 살짝 가라앉는 와중에 가게 주인, 켈 데릭의 대답이 나온다.
“셀 데릭이 제 조부님이십니다! 형제 상회의 역사를 새로 시작하신 위대한 성과를 이루신 분이죠! 하지만! 그 위대한 성과를 엘더 헌터로 인해 싹 날려먹을 뻔한 분이시기도 하고 말이죠!”
“잠깐! 그거 설마 나랑 거래한 것 때문에?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그때 대여해간 물품은 나중에 정상적으로 값을 다 치렀다고!”
툴로쉬가 강하게 따지고 들었다.
그러나 켈 데릭은 그 둥글둥글한 몸매, 보들보들한 뺨을 부풀리며 보다 강하게 반박한다.
“듣도 보도 못한 할부 어쩌구로 몇 년에 걸쳐서 대금을 치르셨죠! 그런데 그것도 본인이 지불한 것이 아니었잖습니까! 위대한 성과를 이뤘음에도 셀 할아버지께서 형제들 앞에 몇 년 동안 고개를 못 들게 하셨잖아요! 그거 복구하는 데만 거의 십여 년이 넘게 걸렸단 말입니다! 그러니 조부님께서 강력하게 유언을 남기실 수밖에 없잖습니까!”
“도대체 무슨 유언을…… 지시를 남겼다는 거야?”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툴로쉬가 물었다.
켈 데릭이 스윽 몸을 젖히면서, 얼핏 보면 뭔가에 앉은 듯한 자세로 대답한다.
“엘더 헌터랑 거래는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해라. 외상도 없고, 신용을 따지지도 마라! 무조건! 무조건 그 자리에서 지불하는 것만 팔아라!”
“너무하잖아, 그런…….”
툴로쉬가 질렸다는 듯이 투덜거리려 했다.
켈 데릭은 그 투덜거림이 더 이어지기 전에 단칼에 자르듯이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
“금전 이만 닢 어치 물품을 빌려 가서 싹 다 망가뜨린 다음에 십 년 가까이 걸려 찔끔거리며 갚는 꼴을 겪고 나면 어떤 상인이라도 그런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 상회는, 절대로, 다시는, 엘더 헌터랑은 그딴 거래 안 합니다! 원하는 물품이 있으시면, 현금 내세요! 현금!”
“쳇…….”
툴로쉬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켈 데릭이 너무 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함께 온 일행을 둘러봤다. 함께 왔으니 내 편으로서 몇 마디씩 해달라는 눈길을 보낸 셈이었는데…….
“금전 거래가 확실하지.”
이자닌이 냉큼 그 눈길을 배반하는 말을 했다.
더불어 파쿠란도 한숨처럼 말한다.
“무슨 대의(大義)를 위해서 그러셨겠지만…… 그런 꼴을 겪은 상인의 고통은 말로 할 수가 없었겠구만.”
툴로쉬가 둘의 말에 바로 표정을 구기면서 투란을 보는 눈길은 그야말로 마지막 희망이라고 믿겠다는 듯했다. 그 눈길에 응하듯 투란이 입을 열어 꺼낸 말은…….
“할부 어쩌구가 뭐에요?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왕성한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당장 돈을 내지 않아도 물품을 갖다 쓸 수 있다는 그 방법이 무엇인가를 궁금해하는 소리였다.
켈 데릭이 표정을 구겼고, 툴로쉬는 그냥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쥐어뜯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바로 둘이 입을 여는데…….
“신세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그건!”
“돈 없을 때 물품 받아놓고 나중에…….”
“사기에요, 사기!”
“돈 생기면 조금씩 갚는 거야. 신용 거래라고 하지!”
“값을 치르지도 않고 물품 가져다가 다 망가뜨려 놓고 무슨 신용!”
“어쨌든 갚았잖아!”
툭탁거리면서 말싸움하는 모습이었다.
벅벅, 이 분란을 부추긴 자신을 반성하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투란은 이자닌과 파쿠란에게 미안해하는 눈길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 다툼을 끝내라는 둘의 눈길에 세게 헛기침하면서 투란은 다투는 가게 주인과 왕년의 큰 손님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툴로쉬, 여기 왜 온 거예요? 돈 생겨서…… 크읏, 금전이 꽉꽉 채워지는 주머니를 얻어서 뭘 사러 온 거예요?”
그림 속의 인물처럼 툴로쉬와 켈 데릭이 말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봤다.
미묘한 침묵, 교차하는 눈길…… 켈 데릭이 나긋한 목소리로 다시 말문을 연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형제 상회입니다. 금전 좀 가져오셨나요?”
“내가 예전에 계약했던 것이 있는데, 계약서 아직 갖고 있겠지?”
툴로쉬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되묻고 있었다.
하나 켈 데릭은 고개를 갸웃했다.
“계약……?”
툴로쉬가 바로 품 안에서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계산대 위에 펼쳐놓았다. 완전히 펼쳐진 두루마리는 완전하지 않은 반 토막이었다. 중간을 찢어서 반쪽이 없는 문서였다.
켈 데릭이 그 반쪽 문서를 찌푸린 눈살로 잠시 훑어보더니 갸웃하며 계산대 아래의 서랍을 이리저리 뒤지는데, 리프팅 벨트로 인해 두 다리가 허공으로 치솟고 몸이 거꾸로 뒤집어진 듯한 몰골이 돼버렸다.
투란은 그 신기한 광경에 어이없어했고, 이자닌과 파쿠란은 헛웃음을 흘렸다.
다만 툴로쉬는 진지하게 이를 지켜봤고, 켈 데릭이 서랍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는 광경을 신중하게 바라봤다.
꺼낸 두루마리를 펼치며 켈 데릭이 말한다.
“이게 맞는가 모르겠습니다만…… 이거 벌써 반세기 전의 계약 아닙니까?”
새로 펼친 두루마리는 미리 펼쳐진 것과 맞물렸고, 은은한 빛에 물들면서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
툴로쉬가 그 하나 된 두루마리를 손끝으로 짚으며 말한다.
“백 년이 걸리든 이백 년이 걸리든, 형제 상회가 건재하고 내가 건재하면 언젠가 지켜질 약속이었다고.”
“어, 그렇기는 합니다만…… 툴로쉬 님, 하루에 금전 서른 닢씩 기한 없이 지불한다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런 것은…….”
켈 데릭의 말은 툴로쉬가 두루마리 위에 가죽 주머니를 얹어놓자, 멈춰졌다.
의아한 표정이었던 켈 데릭은 계산대 한편에서 뭔가를 집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