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3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35)
‘고글? 저렇게 콧등에 올려놓는 고글이 있었나?’
―안경이다. 마법이 걸려 있어. 물품 판정에 사용되는 모양이군. 로어의 각인인가…… 그렇다면 저 주머니에 대한 정보가 있다는 건데…….
‘로어?’
―물품에 대한 지식을 간직했다가 회상해서 물품의 진위라든가, 상태를 판별하는 마법이라고.
‘아, 그거…… 에? 그러면 저 안경이면 힘들게 진짜 가짜 눈치 안 보고 고를 수 있다는 말이야? 우와!’
투란은 켈 데릭이 하는 짓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바라봤다.
콧등에 살짝 얹은, 외알 안경과 다르게 두 눈동자를 확실히 담을 듯한 네모난 유리를 움켜쥔 테에는 분명히 마법의 힘이 느껴지는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무늬가 투명하게 유리로 번지며 움직이는 듯한 광경이 얼핏 엿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켈 데릭이 신음하듯 거친 숨결과 함께 입을 연다.
“진품이군요! 진짜 그 로그메이지…… 악마와 계약한 레클리스 앙리의 작품이군요! 정말로 대금전낭(大金錢囊)이에요! 이건 도적왕의 손에 넘어간 다음에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던데! 대체 이걸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툴로쉬는 입을 달싹이는 시늉을 했지만, 아무 소리도 못 냈다.
이자닌도 ‘어?’ 하면서 갸웃하더니 바로 파쿠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켈 데릭의 콧등 위에 얹어진 사각 안경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거…….’
―로어의 안경 중에서도 엄청난 걸 갖고 있었나 보군.
드라고니아도 꽤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켈 데릭의 흥분한 숨결이 두어 번 더 무슨 말을 토해낼 것을 예고할 때, 파쿠란이 먼저 입을 열어 외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제작자의 유래까지 알고 있다고! 어떻게? 그건 대체 뭐 하는 고글이지? 어디서 났나? 누가 만들어준 것이야!”
갑작스럽게 광분(狂奔)하는 낌새가 역력한 마법사의 모습은 다른 이들의 기분을 가라앉혔고 침착하고 냉정한 생각을 하게 했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마법사란 날뛰는 몬스터만큼 위험하니까!
그래서 이자닌이 먼저 차갑게 말문을 연다.
“파쿠란, 여기 어디?”
파쿠란의 대꾸는 거칠고 격정적으로 나온다.
“그 가게라잖아! 형제 상회란 이름을 쓰는 줄도 몰랐던 그 가게! 바라크 님 시절에도 겨우 두어 번 다른 사람의 인도(引導)로 들러봤다는 곳! 그런 게 여기 있었다잖아, 이 페브라에! 보물창고에 얼마나 오래 처박혀 있었는지 모를 아티팩트를 단박에 간파하는 저런 안경까지 갖춘 채로!”
“한 대 칠까?”
격렬한 파쿠란을 보면서 툴로쉬가 이자닌과 투란을 둘러보면서 동의를 구하듯이 말했다. 말과 함께 손을 스윽 들어 올리는 꼴은 둘이 장난으로라도 고개를 끄덕이면 바로 파쿠란을 때려누일 속셈이라고 과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자닌과 투란이 어떤 낌새를 보이기 전에 켈 데릭이 느릿하니 뭔가 손에 쥐고 흔들고 있었으니…….
“마법사님, 진정 좀 하시지요? 블랙메이지의 후예답게, 격렬한 만큼 침착하셔야죠.”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파쿠란의 격정이 사라진 듯…….
“그렇군.”
담담한 대꾸가 바로 나오고 있었다.
툴로쉬가 들었던 손을 내리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자닌과 투란도 ‘어라?’ 하면서 파쿠란을 바라봤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마법사가 한번 흥분하면 쉽게 냉정을 되찾지 못한다.
한데 파쿠란은 단숨에, 가게 주인의 말이 나오자마자 격정을 가라앉히고 있다니?
그 수수께끼는 파쿠란이 바로 중얼거리는 소리로 풀리고 있었다.
“캄플의 열매라니, 놀랍군.”
툴로쉬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그런 것도 있었어? 혹시 파는 건가?”
투란은 갸웃했고, 이자닌은 그냥 묻는다.
“파쿠란, 그게 뭔데?”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마력을 강제로 진정시키는 효과를 지닌 열매야. 흥분한 마법사를 침착하게 만드는 특효약인 셈이고…… 마수화된 나무에서 채취한 열매를 가공해서 만들어. 그냥 따서 휘두르는 과일 따위가 아냐.”
파쿠란의 대답에 툴로쉬가 바로 몇 마디 보탠다.
“캄플이란 괴물나무가 백 년에 한 번 눈에 띌까 말까 하는 희귀종이라서 그 열매를 몇 십 개 구해 갈아넣어야 하는 저 물건도 아티팩트 취급을 받고 있지. 말로는 들었지만…… 나도 보는 거는 처음이야.”
말과 함께 툴로쉬는 켈 데릭에게 자신이 물음에 대한 답을 재촉하는 눈빛을 짙게 흘렸다. 켈 데릭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면서, 그 위에 올려놓은 2, 3센티 정도의 오그라든 열매를 드러내면서 대답한다.
“형제 상회의 역사가 긴 탓에 백 년에 한 번 정도는 거뜬히 캄플을 찾아 열매를 수확할 수가 있었습니다. 뭐, 상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에는 이걸 은밀한 특판품으로 삼아서 기본 자금을 마련했다고까지 하니, 우리 상회의 기반이 된 제품이라 해도 좋겠죠. 다만 긴 세월 동안 쌓아온 재고품보다 팔려나간 쪽이 더 많아서…… 지금 상회 전체 재고품이 가게 주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 정도에서…… 한 두엇 정도 여유분이 있을 뿐이지요.”
“그러니까, 팔아 안 팔아?”
툴로쉬가 긴말이 필요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켈 데릭이 대답하기 전에 파쿠란이 말한다.
“여분이 두엇이라고 했으니, 우리에게 둘 정도만 팔겠다는 말이겠죠. 너무 많은 분량을 풀기는 곤란하다는 말이기도 하겠고…… 그래서 얼마요?”
알아줘서 좋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켈 데릭이 대답한다.
“금전 여덟 닢…….”
“뭐가 그리 비싸요! 진정제라며! 급하면 아무거나 갖다 꽂으면 되는 게 진정제잖아요! 무슨 금전 여덟 닢이야!”
누가 뭐라기 전에 투란이 버럭 소리질렀다.
툴로쉬가 킥하고 새는 웃음을 흘렸다.
파쿠란은 침착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으로 투란을 보며 타이르듯이 말하는데…….
“투란, 네가 말하는 진정제는 그냥 마취, 마비시키는 거고 저거는…… 이자닌?”
곁에서 이자닌이 굉장히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잖은가? 그리고 이름을 부르자마자 투란처럼 버럭 소리친다.
“너무 비싸잖아! 희귀고 뭐고 결국 마수나무 열매로 만든 진정제라며!”
툴로쉬의 새는 웃음이 그대로 터지면서 큰 웃음이 흘렀다.
파쿠란이 난감한 표정으로 이자닌을 보며 ‘대체 왜 너까지!’라는 눈길을 보낼 때, 켈 데릭이 허헛하는 웃는 소리부터 내고 말한다.
“우선, 동료를 위해 값비싼 것을 지적하신 두 분께 확실히 말씀드리지요. 캄플의 열매 값에는 에누리 없습니다! 에헴! 혹시 두 분이 캄플의 열매에 대해서 정말 모르신다면…… 간단히 설명드리죠. 이 열매는 마법사의 마력을, 마법물품에 담긴 마력을 언제나 안정시켜 줍니다. 흥분한 마법사가 진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항상 침착하게 마력을 배분해서 주문을 완성하게 해줍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마력의 낭비를 원천봉쇄하는 보조 마도구입니다. 마법사도, 마법물품도 이것과 함께 사용할 경우의 효과는…… 예상을 늘 뛰어넘지요! 아, 그리고…….”
길게 말하면서 켈 데릭은 슬쩍 투란 앞으로 손을 내밀었고, 손바닥 위에서 캄플의 열매를 이리저리 구르게 하며 말을 잇는다.
“몬스터 로드의 광란조차도 진정시켜 줍니다.”
투란이 움찔하면서도 바로 딴청 피우며 되묻는다.
“에? 몬스터 로드요?”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우기는 듯한 표정이 또렷하게 떠오른 투란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켈 데릭이 보들보들한 뺨에 방긋 웃음을 띤 채로 말한다.
“위대한 칼시아크 님의 배려와 은혜를 가득 받은 형제 상회에서는 자제력을 잃은 몬스터 로드라도 기꺼이 반기는 손님이지요. 캄플의 열매를 처음부터 갖추고 있는 우리 상회의 입장은 계속 그래왔어요. 때문에 칼시아크 님의 마도(魔道)를 문턱 넘어서는 순간에 알아차린 몬스터 로드라면, 그런 수준 높은 몬스터 로드라면 가게 주인으로서 바로 알 수 있기도 합니다. 하하핫.”
―진담인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속삭였다.
시침 떼는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투란은 정말 신기한 광경을 본다는 듯이 눈을 껌벅이면서 켈 데릭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헌터스 배너의 오러로 위장하고 있었건만…….
“아, 인간세상 흉악한 거 모르는 순진한 녀석 꼬드겨서 단골 삼을 생각 말고! 나랑 거래부터 먼저 마무리 짓자고! 지금은 우선 캄플의 열매, 정말 둘 정도 팔 수 있는 건가?”
툴로쉬가 계산대를 두드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켈 데릭이 볼을 살짝 실룩이면서 웃음부터 흘리며 대꾸하는데…….
“오우호호홋! 인간세상이 흉악하다고 해도 몬스터만큼이나 하겠습니까? 인간을 좀 믿으세요! 아, 캄플의 열매는…… 마침 이쪽에 여분이 둘이 있군요. 허흠, 허허헛!”
슬쩍 계산대 한 귀퉁이의 서랍을 뒤척이면서 두 알의 오그라들고 뭉친 열매를 꺼내 놓고 있었다. 꺼낸 개수가 파쿠란이 말한 대로란 것을 슬쩍 외면하는 듯한 말투였다. 마치 지금 정리해 보니 딱 둘이 나왔다는 듯!
파쿠란은 조금 꼬인 표정에 미소를 띤 채로 소매를 계산대 위에 흔들었다. 투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로 큼직한 금전 여덟 닢이 소매에서 떨궈지며 바로 쌓였다. 파쿠란이 바로 소매를 턴 손을 내밀자, 켈 데릭이 냉큼 그 손에 열매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 광경을 보며 툴로쉬가 툴툴거린다.
“에누리 시도도 안 하나, 마법사면서…… 웃는 척하면서 노려보지 마, 켈! 나도 깎을 생각 없으니까!”
철컹, 철컹…… 묘한 쇳소리와 함께 툴로쉬의 손가락 사이에서 금전이 하나씩 툭툭 튀어나오며 계산대에 나란히 놓였다. 그 금전이 여덟 개가 되자 켈 데릭은 바로 열매 하나를 툴로쉬에게 공손히 내밀고 있었다.
가만히 보는 척하던 투란이 파쿠란에게 살짝 붙으며 물었다.
“그거, 보통 사람도 진정시키는 효과 있어요?”
파쿠란이 뭐라 대꾸하기 전에 켈 데릭이 곧장 큰 목소리를 걸걸하게 울리면서 웃음 섞인 대답을 한다.
“음하하핫! 캄플의 열매는 마력이 없는 이에게 전혀 효과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상회에서는 사람의 본성(本性)을 해치거나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의지를 방해하는 물품은 팔지 않아요! 그러니 그런 용도의 진정제는…….”
“에이, 칼도 팔고 활도 팔면서!”
투란이 눈을 가늘게 하고 웃는 낯빛을 꾸미면서 말했다.
켈 데릭이 잠깐 눈을 깜박이다가 ‘어흠!’ 하고 헛기침부터 하고 하던 말을 잇는다.
“위험한 제안이나 흉악한 협박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굽히고 판단을 수정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 모습이에요! 당연한 겁니다! 약물로 왜곡하는 거랑 다르죠! 아무튼 우리 상회에서 취급하지 않는다고요, 평범한 사람을 나쁜 의도로 진정시키는 약물 따위는!”
“그렇군요. 그래도 몬스터 자빠뜨리는 약은 팔겠죠?”
투란의 말투는 짓궂었다.
이자닌이 킥하는 소리와 함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 약으로 꼭 몬스터를 쓰러뜨리란 법도 없지, 뭐.”
켈 데릭이 볼을 부풀리며 또 뭐라 대꾸하려는데, 툴로쉬가 손을 저으며 말한다.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나랑 거래 끝난 다음에 하라고! 투란, 이자닌! 장난은 조금 뒤로 미뤄두라고. 내가 오랫동안 원했던 것을 지금 막 구하려는 참이니까 말이야! 자, 그러면…… 켈 데릭, 형제 상회와 나 사이의 계약서는 유효하지?”
콧등의 안경을 손등으로 살짝 밀어올리면서 켈 데릭이 표정을 가다듬고 대답한다.
“네, 유효합니다. 그렇지만 툴로쉬 님, 정직한 상회의 명예가 있으니 고객을 위해 진심으로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반세기 전에 원하신 이것들…… 춤추는 산맥의 엘더 헌터에게는 그렇게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이것들 때문에 레클리스 앙리의 대금전낭을 지불하시는 것은…….”
“아티팩트를 지불하겠다는 말이 아니야! 남의 귀중품을 냅다 삼킬 생각부터 하지 말라고! 내가 지불하는 것은 하루에 금전 삼십 닢! 내게 귀속된 아티팩트에서 생산해내는 금전을 지불한다는 거야!”
툴로쉬가 으르렁거렸다.
켈 데릭이 혀를 차며 대꾸한다.
“매일 가게에 들러서 금전 내신다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결국 대금전낭을 맡기고 우리 상회에서 알아서 꺼내 가란 말씀이잖아요!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시란 말입니다. 하루에 뽑아낼 수 있는 금전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열흘만 쌓여도 수백 닢이고 백일이면 수천 닢입니다! 그 정도면 그냥 모았다가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히 비싼 거라도 척척 구입해 가실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계약서대로는…….”
“켈 데릭, 나는 정말로 그 계약서에 요구한 것이 필요하다고. 엘더 헌터로서, 내게는 정말로 메일 박스, 채널링 데포랑 퍼블릭 키, 프라이빗 키가 필요해! 반세기 만에 찾아와 이러는 거, 진지하다고!”
“하아…… 진지하긴 저도 그래요. 툴로쉬 님, 하필이면 나라가 어수선할 때에 찾아와서 제 가게 일을 어수선하게 들쑤시려 하시다니…… 이거 며칠 내로 되지 않는다는 거 아시죠? 특히나 지금 페브라 상황이…… 빨라도 석 달 이상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켈 데릭이 결국 고개를 저으면서도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투란이 듣기에는 마치 페브라 왕국을 들썩이게 한 엘더 헌터 툴로쉬가 형제 상회도 들썩이게 한다고 투정 부리는 소리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투란으로서는 딱히 이 가게랑 그 일이 무슨 상관인가 어리둥절할 뿐인데…….
―새로운 왕이 옥좌를 채웠다. 이 왕도에서, 이 나라에서 그냥 구경꾼인 사람은 아무도 없어.
드라고니아가 잔소리했지만, 역시 투란에게는 모호한 말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