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4)
촤아아, 둥실둥실.
물속에서 굵은 줄기의 가닥이 꿈틀거리며 움직였고, 오러 몽거의 몸을 실은 굵은 줄기 뭉치는 물가에서 슬그머니 멀어졌다. 떠내려가는 길은 같더라도 저 뿌리를 뽑아 걷다가 도로 땅에 박아 넣는 괴상한 나무 패거리와 엮이고 싶지 않은 투란의 기분을 그대로 반영하는 표류였다.
그사이에 투란은 열심히 생각했다.
‘물이잖아, 그냥 물! 그런데 왜 처맞고 터지냐? 왜 저 나무가 저리 신경질을 내냐고!’
알 수가 없었다.
오러 몽거의 4미터가 넘는 몸뚱이로도, 비록 앉아서 더 낮은 자세이기는 하지만 일어섰다 해도 저 나무의 굵고 큰 길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저 숲의 나무는 하나같이 적어도 12, 3미터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고 두툼한 나무 굵기는 얼핏 봐도 지름이 2, 3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런 것이 걸어서 움직이며 가지를 팔다리처럼 움직인다.
도끼 들고 온 기가둠 왕국의 거인 병사가 아니면 뭔가 당해 낼 낌새가 보이지 않잖은가!
꼼짝도 못하는 오러 몽거의 형상을 뒤집어쓴 투란에게는 정말 뭘 어찌할 수가 없는 상대였다. 그저 저 나무 괴물이 물을 싫어하니, 그 싫어하는 물 깊은 곳에서 둥둥 떠내려가는 것이 최선!
물이 튀었다고 성질을 부리면서 뱀 닮은 녀석을 붙잡아 물에다 팽개치고 물가에서 멀어진 나무 괴물 떼는 그런 투란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귀찮은 일 끝났으니 다시 고요하게 땅에 박혀 보통 나무 흉내라도 낸다는 듯, 예정에 없이 움직인 것조차도 이제는 다 잊고 푹 쉬겠다는 듯이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아무도 붙잡지 않는 숲의 물가에서 멀어져서 계속 떠내려갔다.
낮이 흐르고, 밤이 찾아오고…… 흐린 날에도 달빛의 어스름함을 느끼면서, 투란은 그렇게 며칠을 떠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풍경이 변한 곳에 다다랐다.
‘골이 띵하네.’
투란은 피로가 겹쳐지고 쌓인 것을 느끼면서, 눈알에 힘을 줬다.
악마의 심장과 ‘이상한 심장’이 격하게 뛰기를 며칠째, 밤에는 달빛을 통해 상당한 힘을 보충받았고 물속을 헤집는 굵은 줄기의 가닥들 덕분에 양분도 꽤 넉넉하게 쌓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이 몬스터 로드로서 쌓이는 피로를 어떻게 해 주지는 못했다. 오러 몽거의 형상은 거의 억지로 투란의 고유 마력을 움켜쥔 채로 버티고 있었고, 다른 몬스터 로드처럼 잠을 자거나 의식이 날아가면 몬스터의 형상이 저절로 해체되는 경우와 다른 투란의 기묘한 능력은 끝없이 소모되는 고유 마력을 조금씩 잠들어서 계속 보충하며…… 피로를 쌓았다!
푹 잠들지 못하기 때문에 쌓이는 이상한 피로가 낯설고 처음 겪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몇 날 며칠을 잠복하며 사냥감을 기다리는 사냥꾼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라 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자라면 한두 달씩 잠복해야 할 때가 있고,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이라도 몇 날 며칠 사냥감과 인내심을 겨룰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다섯 날 이상 못 자면 미쳐 버린다던데…… 나 며칠째지?’
피로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눈알에도 힘을 주고 시야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투란은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가슴속에서 악마의 심장이 돕고 있는데도 기억해 내는 것은 어려웠다.
악마의 심장조차 피로를 느끼며 힘겨워하는 판이니까.
그나마 ‘이상한 심장’과 함께 뛰는 중이라 다행이었다.
두 개의 심장이 함께 맥동하며 돕는 형태가 아니었다면, 지금 오러 몽거의 가슴에서는 커다란 악마의 심장 껍질이 몇 미터짜리로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꼴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행이지, 그런데 이거 어째야 하냐고!’
투란은 불행한 상태 속에서 행운의 끄트머리를 보며 안도하기 보다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 끄트머리에 진정한 행복의 문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으니 남은 것은 울컥하는 기분뿐이다.
정말 이대로 오러 몽거의 형상에 겨우 늑대의 팔을 얹은 꼬락서니로 꼼짝도 못하는 채로 계속 둥실거릴 수밖에 없는가?
이제는 갑자기 움직였던 검은 나무의 기괴한 숲을 지나서, 좀 푸르스름한 빛이 맴도는 좀 더 그럴듯하게 멀쩡해 보이는 숲의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큰 물줄기도 제법 늪보다는 강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뭔가 정상적으로 변해가는 듯한 풍경 속에서 투란은 정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상태인 셈이었다. 그야말로 누가 돕겠다면 넙죽 ‘제발!’이라고 외칠 판이었다.
“어이! 거기 몬스터 로드인가?”
누가 말을 걸어왔다.
촤촤촥!
투란의 감각이 벼린 듯이 예리해졌고, 굵은 줄기는 서둘러 움직여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그릇을 옮겼다.
‘사람이다, 사람이야!’
환청인지 뭔지 따질 겨를은 없었다.
어쩌면 환청이라도, 뭔가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낸다고 해도 투란은 상관하지 않았을 터였다.
도대체 얼마 만에 듣는 사람 목소리란 말인가!
얼마 만에 누가 말을 걸어오는데, 그게 진짜냐 가짜냐 따지겠는가!
일단 가까이에서 좀 더 그 목소리랑 어울리고 싶을 뿐이었다.
극심한 피로, 죽지 않을 뿐인 행운이 조금 더 맛있어지는 듯하니, 투란은 즐기기로 했다.
퉁, 툭, 툭.
단단한 땅이 굵은 줄기에 부딪쳤다.
강가의 한 귀퉁이에는 땅이 굳건하게 버티면서 더 이상 흘러갈 수가 없었다.
말을 걸어온 이는 분명히 이 땅 위에 있었다.
‘뭐지, 여기는?’
오러 몽거의 희끄무레한 눈알 위에 흐트러지는 색채처럼 드리워진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여서 살폈지만, 역시나 이곳의 풍경은 불꽃이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강으로 이어진 숲, 그 숲의 한적한 곳으로 이어지는 듯한 단단하고 마른 땅.
물과 만난 자리가 무슨 절벽처럼 깊이 파인 땅이었기에 투란을 실은 굵은 줄기가 닿을 수는 있었지만, 오를 수는 없었다. 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굵은 줄기는 그 움직임이 아주 둔해지고 금세 지쳐 쓰러질 테니까.
‘아, 그 나무 괴물 한 마리라도 삼켰으면!’
뿌리를 뽑아 걷던 놈들에 대한 뒤늦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이미 그곳은 며칠을 되돌아가도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오는 동안의 갈라지고 꼬이고, 엉킨 물길을 투란은 전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저 떠내려왔고, 여기저기서 흘러온 늪과 강의 엉킴 속에서 계속 세상을 향해, 이 기괴한 산맥의 밖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으니까.
‘누구야, 불렀으면 나와 달라고!’
툭, 툭, 퉁.
굵은 줄기가 물속을 헤집고 오러 몽거의 형상을 실은 덩굴줄기의 그릇배는 계속 땅에 부딪쳤다. 말을 할 수 없으니, 그저 이렇게 말을 건 사람을 부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 형상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나?”
누군가 투란의 사정을 납득하고 이해한 듯한 소리를 냈다.
분명히 투란에게 말을 걸어온 그 목소리였다.
―도와줘도 되겠나?
그냥 막 도와줘도 된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투란은 이에 답할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투란은 다른 방법으로 끄덕거림을 전하기로 했다.
굵은 줄기에서 가는 줄기가 솟아났고, 둥글게 뭉치며 사람 머리가 끄덕대는 모습을 흉내 내 보여 주는 것!
“재미있는 재주인데! 하핫, 알았어. 그러면…… 조금 뜨겁더라도 참으라고.”
의아한 말이었다.
‘뜨거……? 어!’
불꽃의 울타리가 물 위로 번져 갔다.
순식간에 오러 몽거와 함께, 굵은 줄기의 그릇이 울타리 안에 갇힌 꼴이 되었다.
불길이 기울어지며 물 위로 일렁이는 융단처럼 덮였고, 투란의 모든 것을 감싸듯이 밀려들었다.
불의 파도에 휩쓸린 투란이 후끈하다는 느낌을 깨닫는 순간,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이 강렬하게 그 불꽃에 반응했다. 가슴과 등, 허리 아래의 세 곳이 동시에 반응하며 투란은 사람으로서의 몸을 명확하게 자각해야 했다.
‘천칭의 문장’으로부터 샘솟는 강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그 자각을 이었다.
사람의 형상으로 변할 것인가, 아니면……?
투란에게는 선택의 여지 따위 없는 갈림길을 묻는 꼴이었다.
‘사람, 사람!’
그의 의지에 ‘천칭의 문장’이 호응했다.
투란은 온몸을, 자기라는 존재의 범위를 깡그리 휘젓는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을 알아차렸다. 이제까지 오러 몽거의 형상에 얽혀 있던 마력이 해방되었고, 늑대의 팔을 유지하던 마력도 회수되었으며, 두 개의 심장조차도 그 피로와 짐을 내려놓듯이 형상을 해체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악마의 심장은 제 본능에 따라 보다 강하고 지독한 맥동을 통해 격류를 흘렸고, 지배하에 뒀던 굵은 줄기 전체에 몬스터 엠블럼의 고유 마력을 세차게 퍼뜨리며 물들였다. 느닷없는 반항 같은 느낌이었지만, 투란은 그 까닭을 맥동하는 순간 몸으로 느껴 알 수 있었다. 굵은 줄기를 몽땅 양분으로 바꾸며 흡수한 악마의 심장이 겨우 해체를 받아들이면서 ‘천칭의 문장’ 속으로 사그라들었으니까.
사람의 몸이 되돌아오면서 투란은 허공에서 스르륵 떨어지는 꼴이었지만, 바닥에 처박히기 전에 얼른 땅을 발로 딛고 주춤거리며 설 수 있었다. 물에 빠지지 않고, 적절하게 누가 등을 떠밀어서 땅에 내려 준 듯한 느낌도 좀 있었다.
“아하하, 아하.”
투란은 형성시켰던 모든 몬스터를 거둔 순간에 찾아온 짙은 피로와 기쁨을 흘리면서 웃음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들이쉬는 숨이 시작되려던 순간, 당황해서 얼른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을 멈추는 시늉을 해야 했다.
순간,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튀어나왔다.
“숨 쉬어도 괜찮아. 이 울타리 안에서는, 내 불꽃이 바람을 정화해 주거든.”
투란의 눈이 소리 난 곳으로 돌아갔다.
불꽃이 사람의 형상을 허공에 그려 낸 듯한 광경이 말하고 있었다.
“부, 불?”
“그럴 리가 있나.”
불꽃이 걷히면서, 보다 분명하게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투란에게는 몇 살 위인 마을의 형들 또래로 보이는 이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투란은 알 수 없는 깊은 안도를 느꼈고, 쓰러졌다.
“응? 뭐야, 이봐 부상이라도…….”
쿠울, 드르렁!
크게 숨을 쉬고 코를 힘차게 골아 대는 소리와 함께, 투란은 침묵과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마치 이제 잘 테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선언이라도 하는 듯했다.
“어이쿠!”
웃음과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불꽃의 울타리를 흔들며 퍼졌다.
* * *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
투란은 몸이 발딱 일으켰다.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앉은 그의 머리가 저절로 좌우를 훑으며 돌아갔다.
바로 눈길은 냄새의 근원을 향해 꽂혔다.
굵고 긴 꼬리, 네 발을 활짝 펼친 몰골에다가 입을 좌악 벌린 도마뱀이 불에 지글지글 살을 익히며 꼬챙이에 꿰인 꼴이었다. 꼬챙이는 땅에 꽂혀 도마뱀이 입을 벌리고 땅을 물려는 듯한 모습을 만들고도 있었다.
“킁!”
투란은 그 광경을 향해 코를 벌름거렸다.
투란의 입안에서는 침이 바로 질질 새겠다는 듯이 맴돌고 있었다.
슬슬 엉덩이가 들썩이는 투란을 향해, 뭔가 엄숙한 척하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툭 던져진다.
“잘 만큼 잤으면 먹어야지. 사양 말고 집어 먹으라고.”
스스슥!
먼저 엉덩이가 껑충했고, 다음에는 두 손이 앞발이 된 것처럼 땅을 짚었다. 투란은 무릎을 뒷발인 양 버티고, 땅을 기는 맹수처럼 꼬챙이에 꽂혀 활활 익혀지는 도마뱀 앞으로 갔다.
대략 절반 정도 정신이 나간 듯했지만, 그래도 불꽃이 치솟아 휘감는 꼬챙이에 바로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입김이 호호 불어졌고, 꼬챙이 주변에서 불꽃이 살짝 주춤할 때를 맞춰서 투란의 손이 날름 꼬챙이를 챘다. 그리고 바로 도마뱀의 꼬리가 투란의 입에 콱 깨물렸다.
아삭거리는 감촉, 바삭한 껍질과 잘 익은 살점이 입안에서 씹혔고 투란은 알 수 없는 눈물이 눈가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눈물을 닦을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투란의 두 손은 따끈따끈한 도마뱀의 익은 몸통을 번갈아 가며 쥐었고, 꼬리부터 팍팍 깨무는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사람답게 익은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한껏 누릴 뿐이었다.
그렇게 도마뱀의 꼬리, 엉덩이, 몸통, 네 발, 머리껍질까지 한 마리가 홀랑 사라졌을 때, 투란은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유혹적인 한마디를 들었다.
“한 마리 더?”
“네!”
바로 내밀어진 꼬챙이를 덥석 잡으면서 투란은 입부터 벌렸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투란을 향해 묻는 소리가 나온다.
“이름이 뭐야?”
아삭!
“투란!”
“응?”
“진짜 내 이름이에요!”
흔한 이름이었기에 늘 듣던 반응이 투란에게는 꽤나 반가워서, 투란도 당연히 늘 하던 대로 한마디 덧붙일 수 있었다. 대꾸와 함께 입안에서 씹히는 도마뱀 고기는 정말 맛이 기가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