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40)
“놀랍게도 여기 셋째 왕자께서 아예 빚쟁이 마법사를 제거하겠다고, 페브라 상아탑까지 선동해서 나선 거였지. 뭐, 새로 등극한 왕에게는 낯설고 시답잖으면서도 심각한 얘기지만 책임질 의무를 옥좌와 함께 물려받은 꼴이고…… 마스터 홀시딘은 이미 격파한 몬스터 현상금도 못 내놓는 나라라면, 그냥 망해라 하고 대놓고 욕을…… 아니, 험담이라고 해야겠군. 어쨌든 그런 상황이라…… 나도 바로 나서기 좀 곤란한 처지가 돼버렸어. 투란, 넌 어때?”
“빚지고 안 갚는 작자들이라면 고생 좀 해봐야겠죠!”
이야기 끝에 슬쩍 툴로쉬가 묻는 말에 투란의 대답이 왠지 단호했다.
너무 단호해서 툴로쉬는 당황스러워 눈을 끔벅거렸다.
이자닌과 파쿠란은 헛웃음부터 흘리면서도 투란에게 동의하고 인정한다는 듯,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치 빚 갚지 않는 놈들이 아주 지긋지긋하다는 표정도 살짝 띤 채였다.
켈 데릭 또한 은근히 툴로쉬를 흘겨보면서 찬성한다는 표정이지만 티 내지 않겠다는 듯이 입은 꼭 다물고 있었다.
덕분에 미묘하게 고요해진 틈을 타서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소리 없이 핀잔한다.
―돈을 받는 입장이 되니 아주 엄격하구나?
‘시꺼! 중요한 일이라고! 남 죽을 고생시켜 놓고 돈도 못 준다고 버티다니! 그냥 난리가 나게 내버려 둬야 할 작자들이라고! 그보다…… 넌 화려한 과거를 덮겠다고 키클롭스 눈깔 얘기를 짚었지? 흐흥!’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흐흥! 잘못 건드렸어! 흐흐흣!’
비록 뇌리에서 소리 없이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흘려대는 음흉한 웃음이었지만 투란은 결정을 내렸고, 바로 켈 데릭에게 묻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지금 나온 이야기를…… 다 적어두고 있는 건가요? 이렇게 그냥 펼쳐진 채로 떠들면 이야기가 담겨요?”
켈 데릭이 살짝 고개를 젓고 말한다.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수록 지시를 하지 않은 상태지요. 아, 물론 지금 나온 키클롭스 이야기는 원래 담겨 있을 겁니다. 헌터 길드의 보고서에 착실히 기록된 내용일 테니까요. 그렇죠, 툴로쉬 님?”
“그래.”
툴로쉬는 투란을 묘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주변 눈치 따위 보지 않겠다는 듯한 투란의 물음은 바로 이어졌다.
“아까, 은전 열 닢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은전 열 닢을 내면 이 도감에 새로운 얘기가 추가된다고요. 그런데 그거 꼭 이 가게를 찾아와서 해야 하나요? 상아탑의 도감은 상아탑 근처에서 저절로 된다던데…… 상아탑 마법사 근처라도 된다든가? 음, 아무튼…… 멀리 있다가 새로운 얘기 더해졌나 알 수는 없나요?”
“오호홋, 중요한 것을 잘 짚으셨습니다! 하하핫! 과연 대마법을 느끼신 분답게 생각이 깊으시군요! 자, 보십시오! 보여드리지요!”
뭔가 신난 듯한 켈 데릭이 곧바로 도감을 덮었다.
두툼하고 쇠테가 둘러쳐진 듯한 책자가 켈 데릭의 손짓에 따라 뒤집어지고 엎어졌다가 반으로 접히며 다시 작은 판형으로 변해가는 듯했는데, 딱 사 분의 일 정도로 맨 처음의 판형보다는 두어 배 더 큰 상태에서 변화가 멈췄다.
“자, 이 틈새가 보이시죠?”
새로운 판형이 된 책의 한곳을 짚으며 하는 말이었다.
투란은 고개를 기울였고, 확실히 봤다.
“네, 뭘 찔러 넣는 구멍 아니에요?”
켈 데릭이 짚어준 부분은 길고 넓적한 틈새, 안으로 깊이 파인 구멍이기도 했다. 뭔가 딱 맞는 것을 꽂아넣기를 기다리는 듯한…….
“여기 은전 꽂으시면 됩니다! 아, 꼭 은전으로 모양 잡지 않고 그냥 은을 갈아 넣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금붙이를 꽂아 넣어도 문제없고 말이죠! 은전 열 닢을 초과한 부분은 도로 밀어내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바로 도감의 내용이 갱신된답니다! 하하핫, 어떻습니까!”
“…….”
벙긋, 벙긋.
투란도 열린 입으로 바로 뭔 소리를 못 냈지만 툴로쉬는 더 놀라서, 아주 어처구니가 없어서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이자닌이 약간 날카롭게, 미치겠다는 듯한 기분을 토해냈다.
“이런 미친……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마법사가 돈 먹는 도감을 만든 거야!”
이보다 더 크고 뜨거운 열정이 담긴 목소리가 바로 뒤이어 터지니…….
“굉장하군! 은을 촉매로 한 마법이란 말인가! 책의 내용을 그런 식으로 첨가할 수 있는 마법을 금도 아닌 은을 촉매로? 아니! 금까지 받아들인다면, 촉매를 이중처리하기까지 한다는 것……!”
“닥쳐, 파쿠란!”
이자닌은 자신의 목소리를 덮는 경외(敬畏)를 표현하는 마법사를 향해, 그 옆구리를 주먹으로 치며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놔뒀다가는 어째 눈앞의 경이(驚異)로운 마법작품에 대해서 더 열정적으로 웅변을 토해낼 낌새이니!
꽤 세게 때렸는지 파쿠란은 잠깐 숨쉬기가 곤란한 듯이 콜록거렸다.
덕분에 겨우 다들 제정신을 찾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 가게…… 대체 어떤 대마도사가 관여하고 있는 거지?
드라고니아도 꽤 놀란 듯, 뒤늦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투란은 겨우 정신줄을 다시 잡고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의 기억을 되짚으면서 켈 데릭이 언명(言明)한 이름을 되뇔 수 있었다, 소리 없이!
‘칼……시아크?’
―카엘 디아크라고 해도 믿겠군. 칼시아크는…… 모르겠다. 카엘 디아크 이름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하면, 그럴듯한데 말이지.
‘닮은 이름이잖아?’
대강 대마도사의 위업에 하나 더 추가하자는 투란의 말이었지만, 드라고니아의 대꾸는 단호하고 엄격하게 나온다.
―닮았지만 다른 이름이다. 다른 이름이면 다른 대마법사라고!
‘음, 까탈스럽기는…… 아무튼! 정신 차리고!’
후욱, 숨을 세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투란은 다시 진지하게 켈 데릭을 마주 보면서 잠시 나간 정신이 제대로 다시 돌아왔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입을 연다.
“끄러니…… 엣헴! 그러니까! 금은 가리지 않고 이 넓적한 구멍으로 밀어넣으란 말이죠? 막 구겨넣어도 되는 거란 말이죠? 그러면…… 이런 것도 되는 건가요?”
턱, 말과 함께 투란이 계산대 위에 작아진 도감 곁에 올려놓은 것은 ‘코인 백’이었다. 켈 데릭은 이를 보고 ‘가죽은 안 받…….’이라고 중얼거리려다가 콧등의 안경을 치켜올리더니 호옷 하는 소리와 함께 말을 바꿔 대꾸한다.
“코인 백이군요! 오호홋! 과연! 이 명작이 다시 우리 상회를 찾아올 줄이야! 음허헛, 오늘은 참으로 대단한 날이군요! 제 조부님이신 셀 데릭, 형제이신 멜 데릭 시절 이후로 이렇게 여러 가지가 겹치는 날은 처음인 듯합니다! 허허헛! 아, 네! 상관없습니다. 코인 백의 금화 또한 거뜬히 쓸 수 있지요!”
“명작이 다시?”
투란은 어딘가 깊은 감회, 추억을 담은 듯한 말을 놓치지 않고 짚었다.
켈 데릭이 빙긋 웃으면서 투란을 향해 칭찬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며 대답한다.
“코인 백은 오래전에 우리 상회에서 거래된…….”
“여기서 만든 거였어요!”
투란이 억울하다는 듯, ‘코인 백’과 툴로쉬가 넘겨준 대금전낭…… 아직 계산대 한구석에 얌전히 놓인 아티팩트를 오가는 눈길, 덤으로 툴로쉬도 스쳐가면서 분해하는 표정으로 켈 데릭의 말을 싹둑 자르며 외쳤다.
켈 데릭은 슬쩍 손을 움직여 계산대 아래의 서랍으로 대금전낭을 떨궈넣으면서 투란에게 잘린 말을 잇는다.
“제작자에 대한 정보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로그메이지 레클레스 앙리가 그런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도전한 어느 위대한 마도사님이 굉장히 심심할 때 반쯤 장난삼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누군지 모르는데 굉장히 심심했던 위대한 마도사란 정보는 확실히 아네?”
이자닌이 ‘장난하냐?’라는 눈빛을 노골적으로 흘리면서 핀잔했다.
켈 데릭이 살짝 헛기침을 하며 그 눈빛을 외면하다가 퍼뜩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자신의 이마를 툭 치면서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투란에게 재빨리 말한다.
“이걸로 금전을 벌 수 있습니다!”
“매일 모았다가 나중에 다 녹여 뭉쳐서요?”
투란이 뚱하니 대꾸했다.
켈 데릭이 고개를 팍팍 저으면서 서둘러 이야기한다.
“아니, 그런 원초적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코인 백에서 생성되는 금화…… 아직 몇 가지인가 확인해보지도 않으셨지요? 그게 네 가지, 고대 제국의 사종(四種) 금화이거든요! 옛날에 이 춤추는 산맥의 여섯 고대왕국에서도 통용되던 화폐였답니다. 코인 백이 아니고서는 이제 원형을 구할 곳이 없기도 하죠! 아무튼, 그런 금화를 금전이랑 일대일로 교환해서라도 갖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 농담 아니라고요! 희구품에 대한 수집가란 직접적인 손익보다는 옛것에 대한 원초적인 향수를 더 중요시하니까요! 그리고 코인 백에서 마법으로 제조된 금화라는 점에 깊은 흥미와 관심을 갖고 기꺼이 금전이랑 일대일 교환을 해주는 마법사분들도 계시죠! 네, 상아탑에도 있고 상아탑이 아닌 마도학파도 여럿입니다! 흐흐흣, 그러니까…… 한꺼번에 왕창 풀지 않고 조금씩, 네 가지 형태의 금화를 살살 풀면…… 금화 한 닢에 금전 한 닢! 제대로 한몫 챙길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이 도감 값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켈 데릭의 장황한 이야기에 투란은 띄엄띄엄 ‘미친?’ ‘장난?’이란 두어 마디를 흘리다가 신중하게 되묻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미쳐서 장난친다면 결코 도감을 내놓을 리가 없다는 얕은 계산도 깔린 물음이었다. 한데…….
“크크크큿! 당연하잖습니까! 으흐흐흣! 만약…… 사종 금화를 사십 닢씩 맡기신다면, 중개를 이 켈 데릭에게 맡기신다면! 금전 백 닢을 남겨드리겠습니다!”
어딘가 음흉하고 어딘가 악랄하게까지 느껴지는 느끼한 웃음으로 켈 데릭이 큰소리치고 있었다!
―야, 아까 일대일 교환이라고 했어. 사종 금화 사십 닢이면, 백육십이라고.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백 닢!’이라고 입술 안에서 되뇌며 목젖을 울리고 정신이 쑥 빠져나가는 듯한 상황인 것을 간파하며, 냉정한 셈의 결과를 읊어줬다. 이자닌도 비슷한 셈을 한 듯 바로 투란의 귓가에 팍팍 울리는 차갑고 시원한 목소리를 꽂아넣고 있었다.
“뭐가 백 닢이야! 일대일이라면 백육십이잖아!”
투란이 ‘어?’ 하는 사이 켈 데릭은 보다 당당하게 대답한다.
“중개 수수료입니다! 그냥 되는 거래가 아니거든요! 구매자를 섭외하고, 적절한 값을 지불하도록 유도하는 능숙한 거래를 해야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예상보다 더 받으면 좋겠지만 덜 받을 수도 있는 거래이기도 하죠!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하지 않는 것은 몬스터를 잡아달라고 하고 현상금 떼먹는 것보다 더 나빠요! 그렇잖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 그래요? 아, 맞아요! 그렇죠! 거래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죠!”
보들보들, 포동포동한 낯짝을 계산대 너머로 들이대며 떠서 날아올 듯한 자세로 묻는 말이었기에 투란은 당황하면서 찬성해줄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투란 스스로 한 말에서 꼬투리를 잡아 밀어붙이는 듯한 낌새가 있기는 했지만, 거래에 대한 샤오덴 할배의 기억을 떠올리니 반대할 수가 없기도 했다.
“하? 나랑 흥정을 하자고? 이것들이 거래는 아무랑 막 하는 줄 알아?”
뭔가 약간 어긋난 느낌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자기 입으로 꺼낸 말이기에 투란은 바로 도감을 두드리며 묻는다.
“그럼, 이거 바로 주는 거죠?”
켈 데릭이 숨을 후욱 들이쉬면서 물러서더니, 과감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입니다! 이적(異蹟)의 도감은 바로 건네드리지요! 아, 그러면 코인 백의 금화는 며칠 방문해서 넘기시겠습니까? 아니면 코인 백을 맡겨두셨다가 며칠 뒤에 찾아가시겠습니까? 코인 백의 금화가 하루에 종류 상관없이 서른 닢 안팎이니 말이죠. 며칠 뽑아내야 합니다만…….”
“음…… 며칠이라…… 으음!”
투란은 ‘코인 백’을 노려보면서 살짝 갈등했다.
어쨌든 이 마도구 또한 저 대금전낭이란 것만 못해도 대단한 것이다!
당장 금화 몇 닢을 꺼내도 여러 날 거뜬히 놀고먹을 수 있잖은가.
이리 고민하는 투란을 향해 파쿠란의 목소리가 울린다.
“며칠 더 찾아오는 쪽이 좋잖아? 이 가게의 물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자닌이 눈을 가늘게 하면서 파쿠란을 바라봤다.
대체 왜 부추기냐는, 무슨 생각이냐고 따지는 듯한 눈길이었지만 파쿠란은 슬쩍 이자닌의 주먹이 닿지 않을 거리로 옮겨가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치 알드바인에서 투란이 이것저것 장비하고 노는 꼴을 봤기 때문에 이 가게의 다른 물품을 거론하며 부추긴 것은 아니라고 시침 떼는 듯!
여기에 툴로쉬도 넌지시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바로 어디 갈 것도 아니잖아? 바쁜가?”
“어? 아, 뭐…… 며칠 머물러도 상관없기는 하죠. 돌아가는 길이 꽤 머니까…… 아, 파쿠란! 이자닌! 여기서 알드바인까지 어떻게 가요? 같이 가요? 아니면 내가 길잡이를 따로 구해야 하나?”
투란이 머뭇거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묻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이자닌은 ‘음…….’ 하며 조금 망설이는 모습인데…… 파쿠란과 툴로쉬는 은근히 ‘그렇지!’라며 안도하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