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4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44)
“꾸에에엑! 내 가랑이이이!”
―헛짓거리 좀 하지 말란 말이닷!
투란이 다리를 너무 벌린 탓에 가랑이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비명 같은 소리를 흘리자마자 드라고니아가 구박했다.
한 발로 체스트 아이의 눈 없는 얼굴을 밟고 한 발로 가슴 쪽에 자리 잡은 눈알을 밟는다는 짓을 한 탓이었다. 신장(身長)이 9미터에 가까운 키클롭스 체스트 아이는 머리통이 컸고, 그 머리통을 단위 삼아 재면 머리통 일곱으로 탑을 쌓아놓은 정도의 키였으니…… 몸을 변형, 확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다리를 벌려봐야 얼굴과 가슴 쪽 눈알 사이의 간격을 메울 수 없어 가랑이 찢어질 정도로 낑낑거리는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몸짓 속에서도 부지런히 흘러내린 ‘파라블랙․잉크’는 거침없이 키클롭스의 마안에 닿아 스며들고 있기는 했지만, 되짚어 보면 그 덕분에 투란은 발이 닿네 하는 잠깐의 착각으로 거침없이 밟겠노라 두 다리에 힘을 주다가 가랑이 사이에서 치밀어 오르는 격통에 꽥꽥거리는 소리를 낸 것이다.
그나마 휘젓고 있던 손이 급하게 드레이크의 형상이 된 채로 눈알 없는 키클롭스의 낯짝을 긁적인 덕분에 발 딛는 곳을 잃자마자 훌렁 미끄러지는 꼴까지는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덕분에 드레이크를 닮은 네발짐승의 해괴한 몰골이 되기는 했지만…….
―그런 짓이 재밌냐! 왜 그러는 거냐고, 대체!
드라고니아의 구박은 이어지고 있었다.
‘실수야, 실수!’
―실수? 날개에 힘만 줘도 될 일을 놓고 어디서 헛소리야!
‘발에 힘주다 보니 날개에 힘주는 걸 깜박할 수도 있지!’
자세를 잡으면서 자신의 형상을 살피는 채로 투란은 투덜거렸다.
그 잠깐 사이에 드레이크의 손톱이 키클롭스의 얼굴을 두어 번 긁었다. 좀 더 단단히 매달리려는 짓을 한 셈인데, 손톱 끝에 걸리는 거친 감각이 키클롭스의 살갗이 갈라지거나 흠집나지 않고 부드럽게 눌리면서 버틴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응? 이놈, 질긴데?’
―아기 드레이크의 발톱이잖아. 제대로 형태를 갖춘 것도 아니니 당연한 결과…… 말 돌리지 말고! 제발 헛짓거리 좀 하지 말란 말이다! 보는 내가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단 말이다! 차라리 죽으면 다행이지, 죽지도 못하고 괴롭기만 하단 말이야!
투란의 호기심과 눈앞의 상황에 살짝 넘어올 듯하던 드라고니아가 다시 잔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보다 더 집중해서 우두머리 키클롭스 체스트 아이를 ‘감찰(監察)’해 나갔다.
―야, 내 말 듣…….
오직 자신의 뇌리만을 울리는 소리는 마음 한편으로 밀어버린 채, 투란의 몸 곳곳에서 검게 샘솟는 잉크가 체스트 아이의 살갗을 타고 문신(文身)을 그리듯이 번져나갔다. 채색된 듯이 자리 잡은 시커먼 잉크 속에서 간간이 작은 넝쿨 가지, 뿌리의 단편이 치솟았다.
곧 투란이 혀를 날름하며 소리 없이 중얼거리니…….
‘살갗이 질기고 힘줄이나 핏줄도 장난 아닌데? 역병의 숲에서 강화된 놈들이랑 엇비슷하잖아? 어때?’
―안에서 나온 놈이다.
드라고니아가 마지못한 말투로 대꾸했다.
‘안에서?’
투란은 흠칫했다.
한숨처럼 드라고니아가 ‘악마의 심장’을 통해 체스트 아이를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투란이 알아낸 바에 보태 말한다.
―힘줄의 두께, 핏줄의 폭, 골격의 크기에 비해 이놈이 지닌 마력의 용량이 너무 커. 여기 다른 키클롭스랑 단순하게 비교해봐도 몇 배는 된다. 동종의 몬스터이면서 이렇게나 별개의 존재가 된 경우라면 열에 아홉은 춤추는 산맥의 안쪽에서 흘러나온 놈이다. 마안의 키클롭스니까 그 가능성은 더욱 크겠지. 어쨌든 지니고 있는 마력이 키클롭스란 품종의 한계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근력이나 다른 감각이 엄청나게 발달해 있기도 할 거야. 너한테 발휘했던 마안의 수준까지 놓고 판단해보면…… 이건 군단이 나서서 잡기보다는 경험이 많고 단련된 몬스터 헌터가 열 명 정도 나서는 편이 훨씬 안정적인 토벌일 거야.
‘헤? 그러면…… 지금 아예 처리하는 편이 좋겠군!’
―애초에 그럴 궁리였잖아!
‘아니, 그냥 적당히 팔다리 뼈다귀 좀 빼놓고 힘줄이랑 핏줄도 조금 잘라놓고 눈알은 반쯤 찌그러뜨려 놓을 생각이었지. 우두머리를 그래놓으면 이 군락지 정리는 군단이 여유롭게 할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안쪽에서 나왔다면…….’
투란의 눈길이 군락지를 다시 훑었다.
울타리 지름이 대강 오육십 미터 안팎이니 인간의 입장에서는 꽤 넓다고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키클롭스의 몇몇, 그 무릎 아래를 오가는 짐승과 자잘한 몬스터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금방 좁다 느낄 수 있는 집 수준이었다.
―확장할 준비가 끝난 거 맞아. 방해하는 자 없이 이삼 년이었다고 했었지? 이 군락지가 단숨에 수백 미터, 어쩌면 몇 킬로미터 범위로 확장될 바탕은 확실하게 깔려 있어. 기껏해야 한두 달 뒤면 그리되었을 거다.
‘이거 급한 거였냐!’
투란은 어이없어 되묻고 말았다.
―홀시딘의 마법이라면 확장되거나 말거나 별 상관없어. 딱히 급한 거는 아니야!
냉정하게 드라고니아가 대답했다.
투란은 잠시 홀시딘이 직접 나서서 여길 정리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수백 미터가 아니라 거의 수 킬로미터를 불길이 너울거리며 재를 남기는 광경이 아주 쉽게 떠올랐다.
‘말려야겠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너 지금 흠칫했지? 설마라면서 한 발 빼고 있잖아!’
―인간 마법사의 판단 결과를 예측하는 일은 원래 난해하니 단정 지을 수가 없을 뿐이다!
‘말 복잡하게 하는 거 보니까 나랑 똑같이 상상했구만!’
―딴소리 말고, 그래서 어쩔 거냐? 이 기분 나쁜 낯짝을 삼킬 작정이냐? 그래놓고 시침 떼려 해도 시크릿 키퍼인 홀시딘이라면 네 행적을 추적해서 단번에 알 텐데?
‘어…… 흠…… 알아도 딴 사람한테는 말하지 않겠지?’
―널 붙잡고 꾸짖는데 딴 사람이 알든 말든 상관하겠냐?
‘그렇겠지. 상아탑도 가깝고 그랜드 마스터니까.’
한숨짓듯, 혀를 차듯 투란은 인정해야 했다.
로열 가든의 마법, 그것이 상아탑에 가까운 곳에서 움직이는 로열클래스의 존재를 시크릿 키퍼에게 어느 정도 인지시켜주는 탓이었다. 마법사의 기량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지는데 그랜드 마스터인 홀시딘이라면 몇 백 킬로미터라도 거뜬히 투란의 행적을 좇을 수 있다고 봐야 했다. 다른 때라면 굳이 그런 감시하는 듯한 추적은 하질 않겠지만, 투란이 여기서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짙다고 판단한 홀시딘이라면 군락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 아는 순간에 시크릿 키퍼로서 투란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 당연히 할 일이었다.
‘몬스터 로드에게도 통하는 마법이라는 게 귀찮아지다니…….’
―호오? 그래서 이제 키린에게 당했다는 걸 깨닫기라도 했냐?
‘당하긴 뭘 당해! 이럴 경우라면 어떻게 하는지도 미리 알려줬구만!’
―뭐? 그런 게 있다고?
‘훗! 시크릿 키퍼에게 떠넘길 일을 놓고 고민하지 마라!’
―야, 이 썩을……!
‘아, 이대로 부를까 여기 정리 좀 해놓고 부를까.’
드라고니아의 으르렁거리는 말을 무시하면서 투란은 조금 신중하고 진지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해 보려 했다. 이렇게 다 멈춰놓고 홀시딘을 부른다면 알아서 뒤처리를 깨끗하게 해줄 듯한데…….
―고르고니아를 삼킨 일을 알려주려고?
성내는 듯했던 드라고니아가 불쑥 짚고 있었다.
‘응? 아니, 그건 싫은데?’
투란은 잠시 체스트 아이의 머리통 위로 올라가 앉으며 생각했다.
이제까지 삼킨 몬스터의 정수, 그 내력(來歷)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정확하게 알려준 적이 없었다. 몬스터 로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정수는 동시에 몬스터 로드가 어떤 약점을 지녔는가에 대한 추측도 가능하게 하니까. 신중한 몬스터 로드라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뭔가를 반드시 한두 가지 품고 있어야 한다고 어린 시절 투란 앞에서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 아저씨가 으스댄 적이 있었다. 장난치는 듯한 말이었지만 그 고무쇠 아저씨에게 샤오덴 할배가 건넨 소리는 핀잔이었다.
―너부터 지킬 말이잖아!
고무쇠 아저씨는 더 강한 부적을 손에 넣고 나서 아주 굉장한 몬스터를 잡아 삼킬 거라고 둘러대기는 했지만, 어린 투란도 과연 그런 날이 올 것인가를 의심했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어린 투란이 한 가지를 분명히 기억해 두게 한 일이었다.
몬스터 로드라면 자신이 삼킨 것을 나불거리지 않는다.
확실히 입이 좀 가벼운 고무쇠 아저씨라서 미덥지 못한 말로 여길 수도 있었지만, 샤오콴 마을을 오가는 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성질이 지랄 맞은 몬스터 로드는 누가 뭘 삼켰냐고 물으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겠다 날뛴다고도 했으니까.
―그래서, 어쩔 거냐?
드라고니아가 잠시 추억을 더듬는 투란을 재촉하듯 물었다.
잠깐 가득 저물어버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투란이 히죽 웃고 답한다.
“갑자기 재앙을 만난 군락지를 소개해줄 거야.”
―재앙?
드라고니아가 흠칫하며 되뇌었다.
그 순간, 체스트 아이의 몸을 구석구석 누비던 시커먼 잉크가 폭발적으로 번지며 군락지를 채워나갔다. 바닥이 온통 시커멓게 물드는 듯했고, 찰랑거림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 시커먼 유동(流動) 속에서 붉은 틈새가 열리고, 검게 번들거리는 결정으로 이뤄진 가지가 가득 뻗어나왔다.
마안의 키클롭스가 세운 군락지는 잠깐 사이에 검은 결정의 괴기스러운 줄기, 가지로 가득 채워진 풍경으로 변했다. 붉은 광채가 그 시커먼 결정이 드러내는 틈새에서 이글거리며 흘러넘쳤고…… 작은 소란이 줄지어 떨궈지는 듯한 소리가 군락지를 맴돌았다. 그 마무리는 큰 덩치 몇몇이 쓰러지는 소리였다.
고요해진 군락지, 그 속에서 기우뚱한 채로 여전히 서 있는 체스트 아이의 머리에 앉은 투란이 중얼거린다.
“야, 이놈은 이래도 서 있네?”
체스트 아이의 양쪽 옆구리는 검게 그을린 채로 뚫려 있었고, 심장을 비롯한 내장 곳곳이 타고 녹아버린 몰골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다리와 허리가 굽은 채로 버티듯이 여전히 서 있는 모습이었다. 마비된 채로 죽어서 근육이 풀릴 리가 없다는 듯했지만 다른 키클롭스들이 죽자마자 쓰러진 광경과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가 나는 상태였다.
―고르고니아의 눈을 견디지는 못했지만, 자율신경이 거의 반쯤은 독립상태로 유지되는 놈이라 그럴 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어려운 말은 모른다고 투덜거리는 채로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며 확인했다.
군락지는 확실하게 몰살(沒殺)된 채였다.
뜨겁고 강렬한 괴물에 의해, 유린(蹂躪)된 광경이 선명했다.
그 광경 속에 퍼진 시커먼 잉크는 붉은 광채로 물들면서 금방 사라졌다.
마그마 로드의 흔적만을 남긴 다음, 느릿하니 그랑츄의 형상을 끌어내서 몸을 꾸미며 투란은 가만히 한 손을 들어 집중해 속삭였다.
“홀시딘, 나 군락지에 왔어요.”
잠깐 금빛이 투란의 손가락에 반지처럼 걸렸고, 곧바로 격한 외침이 돌아왔다.
“왜!”
곧이어 금빛 안개가 흐릿한 사람의 그림자를 꾸몄고, 재빠르게 투란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몸짓을 드러냈다. 선명한 홀시딘의 모습은 전혀 없는, 그야말로 먼저 주변 상황을 파악하려는 태도였다.
그리고 격렬한 잔소리가 투란의 귓가에, 낮으면서도 날카롭고 선명하게 들이닥쳐 팍팍 꽂혔다.
“대체 왜! 한 시간도 안 된 사이에 이게 뭔 짓이냐고! 왜 이래놨는데! 여기 관심 갖지 말라니까, 왜 그래! 날 괴롭히고 싶어서 이러냐? 새로운 취미가 날 괴롭히는 거야? 그래서 이래? 대체 왜 이래!”
“구경하러 왔는데, 생각보다 위험한 놈이었다고요!”
찰싹, 찰싹.
깔고 앉은 키클롭스, 체스트 아이의 괴상한 얼굴을 두드리며 투란은 강한 말투로…… 눈치 보며 반발했다.
희끄무레한 금빛 안개인 홀시딘의 머리가 갸웃거렸고, 둥실거리며 체스트 아이의 주변을 맴돌며 훑어보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투란의 말을 결코 허투루 듣지 않는 진지한 마법사의 태도인 셈이었다.
결론은 오래지 않아 금방 나온 듯했다.
“이 자식! 이거 이골의 자손이었구나! 젠장! 이 망할 엘더 헌터가! 그래서 본인이 재빨리 나설 일이라고 계속 찔러봤었군!”
흐릿하게 꾸민 모습과 다르게 똑똑히 들린 홀시딘의 말은 투란에게 바로 의아한 소리를 내게 했다.
“이골의 자손?”
―어라?
드라고니아도 뜻밖이란 듯, 꽤 놀란 듯한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꽂고 있었다. 마치 전혀 생각도 못 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듯했지만, 투란은 소리 없이 으르렁거림을 드라고니아를 향해 쏘아대야 했다.
‘야! 너 알고 있었던 거지!’
―아니, 이놈이 그런 놈일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다!
강력한 반발에 투란은 한층 더 의심을 품었지만, 일단은 홀시딘의 흐릿한 환영을 향해 묻는 말이 나온다.
“뭐예요, 이골의 자손이라는 게?”
다시 묻는 소리는 홀시딘이 대답을 머뭇거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