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5)
투란에게 생각할 여유가 돌아온 때는 구운 도마뱀을 다섯 마리째 먹어 치운 다음이었다. 생각할 여유가 돌아온 다음에도, 투란의 입은 여전히 우물거리고 있었고 먼저 눈동자가 빙글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기부터 했다.
‘이게 다 뭐야?’
정신이 들고 보니, 이 주변의 풍경은 결코 정상적이라든가 어디서 봤다든가 들었다든가 하는 소리를 전혀 꺼낼 수가 없었다.
얼핏 정신이 나가기 전에, 투란에게는 뭔가 굉장히 깊고 포근했던 잠에 빠지기 전에 본 듯한 불꽃의 울타리가 환상이 아니고 정말 본 것을 확인해 주듯이 펼쳐져 있었다.
눈을 껌벅이면서, 배가 부르면서 돌아온 정신을 똑바로 하며 내려다보니 여태 먹은 도마뱀을 굽고 있는 불꽃도 저 울타리에서 흘러나와 땅바닥에 고인 채로 살살 솟구쳐 오르는 중이었다.
치익, 지글지글.
살랑거리면서 손이 닿으면 옆으로 비켜 꼬챙이를 잡는데 뜨거울 필요가 없다고 움직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듯한 불꽃이었다.
“배불러? 더 먹지 않아도 되겠어?”
가만히 들려온 소리에 투란은 흠칫하면서 말을 걸어온 사람을 봤다.
버티는 것만도 힘겹고 어려웠던 오러 몽거의 형상을 벗게 해 주고, 이 불꽃의 울타리 안에 받아들여 주고, 거기에 먹을 수 있는 구운 도마뱀까지 나눠 주는 사람.
샤오콴 마을에서 투란보다 몇 살 더 먹었다고 으스대던 동네 형 또래로 보였다. 몇 살 위라고 마을에서 떠난 것도 몇 년 더 빨랐고, 그 뒤로는 소식이 없는 작자들! 죽었나 살았나 궁금해한 적이 없었는데, 막상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사람을 만나니 궁금해지는 투란이었다.
“더 구웠는데, 먹지 않을 거야?”
가만히 내밀어지는 꼬챙이에는 도마뱀이 입을 딱 벌린 꼴이 보였다.
꼬리를 잡고 내밀고 있는 손은, 불꽃이었다.
“먹어요!”
투란은 일단 꼬챙이를 받아 들고, 아까와 다르게 좀 더 맛을 음미하면서 꼬리부터 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투란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불꽃을 향했다.
“냠냠…… 누구세요?”
불쑥 이런 물음도 튀어나왔다.
풋, 하는 웃음이 그 얼굴에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투란도 어쩔 수 없이 멋쩍고 민망한 웃음을 띨 수밖에 없다!
이름이 궁금했다면 정말 도마뱀을 다섯 마리 넘게 뜯어 먹기 전에 물었어야 했는데, 정신 줄 놔 버리고 있어서 전혀 물을 생각을 못한 바보가 투란 자신이잖은가. 그걸 짚고 놀린다면…….
“넌 이름이 정말 투란이야? 그거 그냥 이름 감추려고 가명으로만 쓰는 이름이잖아?”
“어, 예…… 이름 지어 주기 엄청 귀찮은 사람에게 이름 모를 아기가 맡겨지면 제일 먼저 붙인다는 이름 순위 다섯 안에 꼭 들어가죠.”
포기한 듯이 투란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에 관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방금 저지른 바보짓은 순전히 투란 자신의 책임이지만, 이름은…….
“설마…… 그쪽 이름도 투란은 아니겠죠?”
생각하다가 흠칫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이름을 말해 주기 싫다면 대뜸 ‘나도 투란!’이라고 할 수도 있잖은가!
“아냐. 내 엄마는 아빠를 기억하기 위해서 내 이름을 아빠 이름이 생각나도록 비슷하게 지어 붙여 줬거든.”
“아, 그렇군요. 그럼 이름이……?”
납득한 표정을 짓다가 투란이 갸웃했다.
대답은 짧고 빠르게 나왔다.
“키린.”
“아, 키린…… 엥?”
투란은 들은 소리를 되뇌려다가 곧장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자신을 키린이라 한 동네 형 또래의 사내를 바라보며 기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는 눈빛을 쏟아 냈다.
투란의 표정에 상대가 갸웃하면서 묻는다.
“왜?”
“에이, 진짜! 난 진짜 투란이라고요! 진지하게 투란!”
삐친 소리를 내면서 투란이 조금 징징대는 소리를 냈다.
이 모습에 그는 한층 더 갸웃거리며 투란을 바라봤고, 투란은 자신이 느낀 답답함과 짜증을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딴 이름 대고 싶으면 그냥 아란이나 그란이라고 하든가! 왜 하필이면 사라지고 50년이 다 되어 간다는 괴물 왕자님 이름을 대냐고요! 나도 마을에 온 음유시인이 하는 이야기 좀 들었거든요! 그 이름을 모를……!”
중얼거리면서 도마뱀을 물고 뜯고 하던 투란은 갑작스러운 고요함, 그 뒤를 잇는 날카로운 불꽃의 따끔거림에 말을 멈춰야 했고 도마뱀을 물고 뜯던 입도 굳어진 채가 되어야 했다.
불꽃의 울타리가 성벽처럼 촘촘하게 맺히며 사방을 감쌌고, 바닥을 흐르던 불꽃이 창날이나 칼날처럼 솟구치는 형상을 이뤄 냈다. 그 불꽃의 중심이 된 키린이 투란을 향해 굳어진 눈빛을 똑바로 쏘아 보내고 있었다.
“키, 키린! 알았어요, 알았다고! 이름이 키린이라고요! 아, 그래요! 세상에 이름이 같을 수도 있죠! 뭐, 유명한 사람 이름을 애한테 붙여 주는 엄마나 아빠도 있는 거고요. 지, 진정 좀 하시죠!”
투란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 불꽃이 보여 주는 괴상한 상태의 원인이 되는 키린을 향해 열심히 말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조금 움츠리고 쩔쩔매는 와중에도 투란의 눈빛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정말 오랜 만에 만난 사람,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고 이상한 힘으로 불꽃을 다루는 키린.
‘와, 진짜 괴물 왕자님이랑 비슷한가 봐!’
드라고니아의 광분, 그렇게 불리는 이야기 속에서 괴물 왕자 키린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마수, 거인, 괴물을 불러내서 활약했다. 오로지 불꽃으로 이뤄진 형상을 꺼내서 광분해 날뛰는 드라고니아, 그 괴물에 맞섰다. 때문에 투란에게 키린이란, 불꽃의 괴물 왕자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여겼던 꿈의 몬스터 로드였다.
한데 여기 그와 같은 이름을 지닌 이가 그와 비슷한 힘을 보여 주고 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저절로 가슴 깊이 잠자던 투란의 야심(野心)이 깨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투란을 보면서 키린이 조금 차분한 표정을 지었고, 불꽃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조금 삐걱거리고 마른 듯한 목소리로, 그래도 아주 차분한 말투로 키린이 소리 낸다.
“방금 한 말…….”
“어? 알았다니까요! 이름이 키린이라고요, 키린! 뭐, 세상에 투란도 많은데 키린도 여럿 있을 수 있겠죠!”
“그거 말고, 50년 전인가 뭔가…….”
“에?”
“그 괴물 왕자가 사라지고 50년 가까이 흘렀다면서?”
“그렇잖아요?”
키린이 조금 신중하게 진지하게 묻는 모습이었기에 투란도 신중하게 갸우뚱거리다가 대답해야 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음유시인, 떠돌이 이야기꾼들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키린이 뭔가 어두운 표정을 짓는 모습은 투란에게 의아할 뿐이었다.
그리고 곧 투란을 향해 키린이 한 번 더 확인하듯이 묻는 소리를 꺼낸다.
“투란, 5년을 잘못 들은 거 아냐?”
“예? 5년요?”
잠시 투란은 눈을 껌벅거렸다.
5년이라고 한 것을 50년으로 잘못 들었다?
바로 투란의 고개가 도리도리 저어졌다.
“아니네요! 50년 맞아요! 드라고니아가 에테온 왕성에서 사고 치고, 5년 뒤에는 망가진 성을 완전히 복구했을 때인걸. 굉장한 마법이라서 상아탑 사람들도 성의 복구에 많이 끼어들었고, 그게 50년 동안 마법사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화제가 된 일이랬어요. 에테온 왕국의 근위기사단이 괴물 왕자님 찾으려고 세상에 나온 지도 30년이나 지났고요. 5년일 리는 없…….”
꼬챙이에 끼인 도마뱀을 흔들며, 투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다시 자기 입으로 말하고 들으면서 좋아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을 흐리며 멈추고 말았다. 바로 앞에서 투란의 말을 듣고 있는 키린, 그 표정이 어딘가 멍해지고 있었고 주변의 불꽃은 이글거리면서 뭔가 화난 듯이 날카롭게 솟구치는 중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탓에 투란은 다른 사람의 현재 기분이 어떻게 표정에 드러나는가에 꽤나 무심해졌지만, 이렇게 주변에 그 기분을 줄줄이 흘리는 경우라면 둔감해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괴물 왕자랑 이름이 같은 키린은 괴물 왕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굉장히 언짢아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로 언짢아하는가?
투란으로서는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왜 이러지? 50년을 5년이라고 하고…….’
도대체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인지, 투란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가슴속에서 또 하나의 생각이 피어났으면 좋겠는데, 악마의 심장은 형상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어?’
문득 투란은 키린의 상태보다 자신의 상태에 놀라야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불꽃의 울타리 안에서 도마뱀을 뜯어 먹고 있는 그는 온전한 사람의 형상이었고, 오로지 사람의 형상만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숨을 자연스럽게 쉬었고, 도마뱀을 잘 뜯어 먹었다.
잠시 불꽃의 울타리 너머를 보니, 주변이 사람이 움직이기 적당한 환경이 된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주변은 흘러오면서 악마의 심장이 하나하나 더듬었던 위험한 숲과 물가, 그대로였다.
이 울타리 안쪽만이 사람에게 적합한 상태를 갖춘 것이다.
잠깐 투란의 생각이 깊어졌고,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에 닿았다.
문장은 고요하게, 그 고유 마력이 투란의 몸과 마음에 얼마나 깊고 그윽하게 채워져 있는가를 알려 주었다. 원한다면 언제라도 다시 삼킨 몬스터의 형상을 꺼낼 수 있다는 것도.
동시에 투란은 문장의 주변에 따스하게 맺힌 불꽃의 기력도 느낄 수 있었다.
‘이거다, 오러 몽거를 벗겨 준 것!’
느낌이 분명했다.
투란에게서 오러 몽거의 형상을 거둘 수 있게 해 준 것은 이 불꽃의 이상한 힘이었다. 따스하게, 결코 뜨겁지 않게 투란의 가슴에 부드럽게 스며들어 몬스터 엠블럼을 진정시키듯이 그 고유 마력이 몬스터의 형상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 주는 힘.
투란은 이 힘이 어딘가 성스럽다는 말에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 불꽃을 다루고, 그 불꽃에 성스러운 힘이 있어?’
갑자기 투란의 눈이 껌벅거리면서 눈길이 키린의 얼굴에 팍 꽂혀 들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투란보다 먼저, 열여섯, 열일곱 정도가 되어 샤오콴 마을을 훌렁 떠나 버린 형들을 지금 보면 이러지 싶을까 하는 정도의 나이였다. 그 비슷한 나이로 샤오콴 마을에 찾아온 헌터들을 떠올리면, 확실히 그 또래의 모습.
잠시 투란은 방금 키린이 꺼낸 말을 되새겼다.
‘5년…… 만약 괴물 왕자님이 5년 전에 사라졌다 치면, 지금 여기 이 키린이 그 괴물 왕자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50년 전인……!’
투란의 정신이 흠칫 멈췄다.
갑작스럽게 머리 한구석에 불쑥 튀어나온 생각이 투란의 몸을 떨게도 했다.
만약 50년이 흐른 지금, 여기 이런 모습으로 괴물 왕자 키린이 있는 것이라면?
‘그럴 리가! 몬스터 로드라고 해도 세월은 어쩌지 못한다고! 불사의 괴물을 삼켰다고 해도 늙어 버린다고 했어! 늙으면 약해지고……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가 아니니까!’
도리도리,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키린이 어딘가 아련한 듯,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흔들거리던 투란의 눈길이 그런 키린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꿀꺽, 투란은 입안에 맴돌던 도마뱀 고기의 조각을 삼키고, 금방 다시 고인 침도 또 삼키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묻는 말을 꺼내야 했다.
“어, 저기…… 키……린, 아니죠?”
키린이 씁쓸한 표정 위로 애매한 웃음을 띠었다. 어딘가 쓴웃음이라 할 수밖에 없는 그 모습에 투란은 자신이 방금 한 말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느꼈고 바로 깨달아야 했다.
밑도 끝도 없이 뭐가 아니란 말인가!
이래서는 대답하고 싶어도 대답할 말이 없잖은가?
다시 투란은 입술에 침을 바르고, 침을 삼키면서 제대로 된 물음을 꺼내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러니까요, 키린은…… 우리 동네 형들처럼 보이니까요. 전혀 할배로는 안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아닌 거죠? 에, 괴물 왕자님…… 에테온 왕국의 키린 왕자님일 리가 없는 거죠? 그 왕자님은…… 어, 살아 있어도 이미 할배잖아요? 그렇죠?”
“왜 살아 있으면 할배인데?”
“그야, 50년이 지났…….”
“5년 지났으면?”
“그, 그러면야…… 하지만!”
투란은 머리를 쥐어뜯으려다가 꼬리를 뜯어 먹힌 도마뱀으로 쑤시는 꼴이 되었다. 곧 꼬리자리에 삐죽 나온 꼬챙이에 긁히며 악악대는 소리를 내고 앉은 채로 방방 뛰면서 투란이 씩씩거리는 소리로 따지는 말을 꺼낸다.
“50년이 지났다고요! 5년이 아니라! 그러니까…….”
“5년밖에 안 지났으면?”
한숨을 쉬면서 키린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의 말은 저절로 끊겼고, 이 앞뒤를 알 수 없는 말에 당황하는 표정이 저절로 떠올랐다. 50년 가까이 분명히 지났다고 했는데 5년만 지났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잖은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투란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도 함께 울려 나오는 이 두근거림이 투란의 입에서 투란 자신이 생각해도 엉터리 같은 소리가 나오게 했다.
“그럼 정말 에테온의 괴물 왕자님 키린이라고요?”
픽, 흘리는 웃음과 함께 키린이 대답하고 있었다.
“넌 진짜 이름이 투란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