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5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46)
Chapter 150. 독서의 시대
침대, 들춰보면 분명히 금전을 가득 머금은 담요가 있는 침상이 번듯하게 자리 잡은…… 사방과 천장, 바닥이 모두 오래된 나무인 방이었다.
“내 방?”
투란은 곧바로 자신이 시알라네가 자리 잡은 고대의 신목, 황금매의 쉼터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 한 여관 겸 식당 겸 주점의 자기 방 안으로 떠밀려 들어온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체 왜애!”
홀시딘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투란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데…….
“널 감춰야 하니까. 일단 먼저 들러본 페브라에서만도 상황이 이래저래 복잡해졌어. 알드바인에 가까운 나라 쪽으로 건너올 때마다 분위기 달라질 테고, 아예 금전 두어 닢이랑 작위 넘기고 몰라라 하겠다는 배짱 부릴 녀석들이 보다 노골적으로 등장할 테지. 그런 작자들에게 투란, 네 이야기가 한 마디라도 넘어가게 할 수는 없지. 상아탑의 마스터한테도 배 째라고 나오는데 강력한 몬스터 로드, 애송이처럼 보이는 몬스터 로드라고 하면 너한테 사기 치기 위해서 온갖 수작을 다 부릴 거다. 그리고…… 그런 거랑 좀 다르기는 하지만 엘더 헌터 툴로쉬가 너에게 알게 되면, 너 정말로 춤추는 산맥의 순례자가 되어서 앞으로 한 삼십 년은 도시 구경도 못 하고 몬스터만 잡으러 다니는 수가 있다고! 어쨌든 이래저래 일단 네 행적을 감추고 널 숨겨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 알드바인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해. 여기라면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널 지켜보기 편하고, 지키기도 편하니까. 아, 대도감! 며칠 내로 전해줄 테니까 기다려. 알았지? 그럼, 며칠 연락하지 마라!”
휭, 팟.
“자암깐!”
뒤늦게 투란이 외쳤지만 홀시딘의 환영은 이미 사라졌고, 금빛 안개의 흔적조차 전혀 남지 않았다. 그저 투란 홀로 자신의 방에서 허공에 대고 손짓하며 애처롭게 외친 꼴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홀시딘이 사라진 자리에서 한 박자 늦게 번쩍하며 튀어나와 툭 던져진 것은 마법의 배낭, 포켓이자 물통인 블랙레온과 벗어놨던 옷과 장비 일체…… 확실하게 페브라에서 투란이 남긴 흔적을 싹 지워버리려는 것처럼 짐까지 다 쓸어 담아 넘긴 듯했다.
“너무해! 이렇게 갑자기 사람을…….”
투란이 허우적대는 시늉을 하며 징징거리는데, 방문이 사나운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누구냐! 누가…… 투란?”
부엌칼을 든 시알라는 침입자를 절단 낼 듯이 문턱을 넘다가 방바닥에 주저앉아 허공에 손짓하는 투란을 발견했다. 잠깐 눈을 깜박이던 시알라가 어리둥절해서 다른 뭔가는 없는가 둘러보고는 칼자루로 머리를 긁적대며 묻는다.
“투란, 어떻게 온 거야?”
“어? 그야 마…… 시알라, 입에 연초 물고 있네?”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마법으로 날려졌다고 대답하려다가 투란은 눈에 비친 시알라의 모습에 맹한 소리로 묻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두꺼운 궐련을 입에 물고 연기를 모락모락 뿜어내는 시알라는 투란의 기억 속에는 없었으니까!
“음? 아, 이거? 연습하느라고.”
시알라는 궐련을 입술 사이에서 움직이며 대답했다.
투란이 무슨 연습이냐고 되물을 틈도 없이 후욱 시알라가 입술 사이로 연기를 내뿜었다. 그 연기가 빙빙 돌면서 짤막한 궐련을 감싸고, 궐련 끝에 맺힌 재를 휘감아 뜯어내더니 발갛게 달아오른 불티를 자극하는 채로 뭉클거리며 궐련 위에 네 발을 딛고 서는 모양이 되었다. 연기가 만들어낸 기묘한 네발짐승, 입술에 물린 궐련 위였지만 고양이라기보다는 산사자 따위의 사나운 맹수 같은 느낌을 주는 형상이었다.
―홀시딘이 보여줬던 요술이잖아?
드라고니아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이 소리 없는 중얼거림을 잇듯이 말한다.
“시알라, 요술쟁이가 된 거야?”
시알라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연기가 흐트러졌지만, 연기에 휩쓸려 있던 재는 궐련을 감으면 단단히 붙어 굳어진 것처럼 흩날리지 않았다. 꼬물거리는 궐련이 시알라의 입술 사이에서 방향을 틀어 물리더니, 시알라의 목소리가 투란의 귓가에 선명하게 꽂힌다.
“아침부터 먹자. 얘기는 천천히 해도 되니까. 아, 아랫도리 속옷만 걸치고 나오지는 말고…… 그냥 이 정도 걸치고 나와.”
귓구멍에 입술을 대고 하는 듯한 소리에 투란이 간질거린다는 표정을 지을 때, 시알라의 손짓과 함께 옷가지가 날려지고 있었다. 투란은 그게 뭔가 살짝 어리둥절해하는데 드라고니아가 감탄한다.
―상당히 늘었군. 무장생성을 이용해서 일상복을 저리 간단히 만들어내다니, 홀시딘이 보여준 마력제어를 훌륭하게 습득했잖아.
‘마력제어?’
―이 신목 안에서 노닥거릴 때 홀시딘이 요술쟁이 놀이라면서 보여줬잖아. 시알라는 기초마법서를 사두기도 했었고……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마법사라고 하는 게 아주 당연한 수준이야.
‘헐?’
감탄보다는 놀라는 기분으로 투란은 일단 시알라가 던져준 옷가지를 쥐고 살펴봤다. 간단한 웃옷과 바지, 적당한 신발이었다. 웃옷은 팔뚝을 반 정도 덮는 소매이고 목 아래 가슴은 확실히 가려주는 모양을, 바지는 발목 위로 두껍게 감싸는 가죽소재처럼 보이면서도 허리끈까지 달려서 단단히 조일 수 있었다. 신발은 슬그머니 발목까지 감싸는 반 토막 장화였고, 한쪽에는 조그마한 칼이 꽂혀 있어 투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주섬주섬 챙겨입고 투란은 홀시딘이 던져준 장비 일체를 몽땅 블랙레온 안에 쓸어 담고 방을 나섰다. 그러자마자 드라고니아가 재미있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얼마 안 되는 기간이었는데 이곳을 꽤 재미있게 바꿔놨군.
‘뭐? 바꾸다니?’
―잘 둘러봐라.
투란은 얌전히 그 소리 없는 말에 따르듯이 잘 둘러봐야 했다.
문턱을 넘어서 통로에 서자마자 보이는 시알라의 부엌이 이미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시원하게 통로가 부엌의 한편인 것처럼 열려 있었기에 투란이 방에 들어가면 부엌 한쪽의 벽을 따라 지나가는 상황이었던 것이 지금은 통로와 부엌을 구분하는 바가 놓여 확실히 구분하고 있었다. 그래도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바와 다르기도 한 것이 바 위에는 나무 쟁반과 그릇이 쌓여 있었고 바 아랫부분에는 바구니와 상자가 식재료를 담은 채로 자리 잡고 있어 부엌의 한 부분임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한데 그런 부분보다 더 눈에 확 띈 것은 바 너머로 보이는 부엌의 맞은편 벽 쪽에 나선계단, 사다리라 하는 편이 맞을 듯한 구조물이었다. 분명히 이 부엌은 다른 층으로 바로 통하지는 않았었는데, 지금 보이는 저 나선계단은 부엌 위층과 아래층을 잇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와, 부엌이 완전히 따로 지어진 것 같잖아?’
바로 투란의 뇌리에 떠오른 대로 입구의 바와 부엌 사이에 적당한 가림막과 테이블이 놓여서 구획을 나누고 있었다. 입구의 바에서 보면 부엌의 풍경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겠지만, 부엌에서 뭔가 꺼내오기는 꽤 수월하게 들락이는 자리도 확실했다.
이모저모로 시알라의 어설펐던 부엌과 바의 모양이 다른 오래된 퍼브의 풍경과 닮아 있었다. 그 부엌에서 시알라는 궐련을 문 채로 부엌칼을 휘둘러 새로 놓은 듯한 큰 접시 위에 올려놓을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준비는 금방 끝난 듯했고, 접시를 옮기며 시알라가 맹하니 서서 구경하는 투란에게 말한다.
“뭐 해, 아침 먹자니까. 얼른 가서 앉아.”
“어? 어!”
투란은 얼른 걸어나갔고…….
퍼브의 풍경, 고대의 거신목 안이란 탓에 사방이 나무로 구성된 것이 도드라지기는 했지만 분명히 독특하면서도 퍼브라고 느낄 수 있는 홀의 광경이 투란 앞에 드러나고 있었다.
중간 칸막이 테이블을 거치고 바에 옮겨졌던 접시는 바 곁의 큰 문을 열고 나온 시알라 손에 들려져 홀의 넓은 테이블에 놓이는데…….
“웬 문이야?”
투란은 이 퍼브의 입구 곁에 놓인 바의 커다란 문짝을 보고 놀라 외쳤다.
보통 퍼브에서는 볼 수 없는 큰 문짝이 바와 홀의 경계를 강조하듯이 붙어 있었다. 바텐더가 지나치기 위해 허리 아래로 놓이는, 그냥 그런 칸막이 문과는 완연히 다른 문짝…… 이 금빛매의 쉼터에 들어서는 이가 문 열고 들어왔다가 바로 옆에 놓인 문에 흠칫 놀랄 수도 있어 보이잖는가.
“응? 아,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들여온 짐이라든가…… 자꾸 쌓다 보니 바 너머로 안 보이게 하려고 아예 칸막이를 높이 키웠어. 그러다 보니 그냥 큰 문이 낫겠다 싶었지. 자, 얼른 앉아.”
“어…….”
히힛거리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시알라를 보며 투란은 일단 권하는 대로 넓은 테이블의 한편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접시가 놓여 있었고, 모두 새로 한 요리가 담긴 채였다. 그 접시 수가 여섯이었기에 투란은 갸웃하고 손가락을 접으며 세기 시작했다.
“나,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 하나는 여분?”
시알라가 피식 웃으며 궐련을 접시 한편에 내려놓으며 대답한다.
“은전이라도 벌겠다고 땅 아래 고블린 사냥에 나선 작자가 있거든. 투란도 아마 아는 얼굴일 거야. 투란 때문에 은전 벌이하러 나섰다니까.”
“나 때문에?”
“먹으면서 기다려. 금방 올라올 테니까.”
“어, 이건 무슨 요리지?”
접시 곁에 손을 가져가다가 투란은 퍼뜩 기억을 되살리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알라의 요리라니, 오랜만이라고 해도 그 상황이 싹 잊힐 정도로 오래된 일도 아니잖은가!
“간단한 아침이야. 빵, 고기, 야채 묶음이라고. 실패한 요리 아니거든? 이제는 다들 맛있게 잘 먹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먹어봐!”
시알라가 살짝 눈가에 핏대를 세우면서 노려보며 하는 말에는 장난기가 조금 섞여 있었지만, 먹지 않으면 정말로 화낸다는 진심도 느껴지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조심스럽게 덜렁 놓인 듯한 한 덩이의 빵을 들어서 그 안에 이리저리 겹쳐진 고기와 야채를 살피면서 투란은 슬그머니 한 귀퉁이를 깨물었다. 으적거리며 입안에서 맴도는 맛은…….
“안 탔네? 음, 정상이야.”
쇳조각도 없고 뭔가 태우고 섞다 실패했다는 느낌이 없었다.
고기 맛도, 야채 맛도 정상이었고 빵도 밀포의 맛인 것이 아주 정상적이었다.
시알라가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눈길이 사나웠지만 투란은 슬쩍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돌린 채로 아작아작 먹어댈 뿐이었다. 그렇게 투란이 얌전히 두 번째 빵에 손을 댈 때에서야 시알라가 묻는다.
“어떻게 갑자기 방 안으로 돌아온 거야?”
“음? 아, 그건…… 으적, 으득! 홀시딘이 마법으로 내팽개쳤어!”
“홀시딘……?”
“응! 페브라에서 만났거든.”
시알라는 잠시 눈가를 손끝으로 지그시 누르는 시늉을 했다.
투란이 떠날 때 함께 한 이랑 홀시딘은 왠지 아무 상관 없지 않은가?
마법사도 있기는 했지만 홀시딘은커녕 상아탑과도 무관했었고!
해서 시알라는 일단 친한 이름부터 꺼내기로 했다.
“이자닌은?”
“어? 아, 볼일 다 봤는데 또 뭔가 일이 있다고 바쁘다던데.”
쉬운 대답이었지만 시알라는 이자닌이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정도에서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확실히 물어볼 말은 있었으니…….
“흐흠, 잘 풀렸나 보네. 그래서 뭔 짓을 했는데 홀시딘이 페브라에서 여기까지 날려 보낸 거야?”
“뭔 짓이라니! 별짓 안 했다고!”
“아무 짓도 안 한 거는 아니지?”
“어, 그야…… 으적으적.”
두어 마디 오가는 사이에 투란이 슬쩍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말을 흐리는 꼴에 시알라는 확신했다.
홀시딘이 들통날 수 있는 투란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로열클래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움직였고 그 결과로 투란이 저 멀리 페브라 왕국에서 여기까지 날려졌다! 아마 그냥 뒀으면 투란은 이래저래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 테고, 상당히 좋지 못한 상황에 엮일 수도 있었을 것!
“그래, 별짓 안 했고 별일 없으면 된 거지.”
시알라는 느긋하게 말했고, 투란은 흠칫했다.
그리고 금빛매의 간판 아래 입구의 문이 덜컹 열리며 사람이 들어섰다.
“우으어우으어! 배, 배고파!”
첫 번째 들어선 이가 허우적거리면서 접시를 향해 달려들었고, 두 번째 들어선 이는 느긋하게 문턱의 발판에 부츠 바닥을 문지르다가 투란을 보고 놀란 소리를 낸다.
“투란? 언제 왔어?”
투란은 제란드의 이 물음에 대한 대답보다 접시에 달려들어 냅다 시알라의 빵요리를 집어 들고 우걱거리는 이를 향해 묻는 소리를 먼저 꺼내야 했다.
“궁수 아저씨?”
“앙? 아저씨라니! 너한테 아저씨라고 불려야겠냐! 이 타클란의 궁수는 언제나 청년! 소년이라고!”
“어, 그러니까…… 성벽에서 봤던 궁수 아저씨잖아요? 여기는 웬일로……?”
“응? 아, 너구나! 그래, 이름이…… 투란이었나 카엘이었나…… 아, 투란이랬지! 너 때문이잖아! 내가 여기서 고블린이랑 칼질하게 된 거는 너 때문이라고!”
으적거리며, 조금 전에 투란이 빵을 씹던 모습보다 더 격렬하게 빵을 씹으며 말하는 타클란의 궁수, 그는 알드바인의 성벽에서 몬스터를 막아내던 이였다. 투란이 사용하던 하클의 활에 묘한 관심을 가졌던 그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대체 뭐가 투란 탓이란 말인가!
“뭐, 뭐가 나 때문이란 말이에요?”
투란이 억울하다는 듯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