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47)
“아니야, 투란 때문은 아니고…… 하클 영감 때문이지. 자, 먹고 나서 얘기하자고. 밤새 고블린이랑 싸워서 배고프고 졸려, 먹고 자고 나서 이야기하지.”
제란드가 한쪽에 앉으며 말하고 있었다.
“어, 그래. 제란드 말대로 일단 나중에…… .”
투란은 다시 빵요리를 씹는 데 집중하는 타클란의 궁수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 작자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분명히 긍지가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을 잔뜩 했던 것 같았는데, 웬 고블린 사냥이란 말인가…… 성벽 안에서는 그저 술 퍼마시고 널브러지는 골칫덩이 아니었던가? 방어전 같은 큰일이 있어야 겨우 누가 찾는 작자인 듯했는데, 시알라 남매의 쉼터에서 함께 아침이라니!
“으하…… 아침이다, 아침…… 어? 투란!”
멜란드가 잠이 덜 깬 중얼거림과 통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위층에서 홀로 내려오다가 외쳤다. 시알라가 바로 그 외침에 대꾸한다.
“조용히 하고 와서 먹기나 해.”
“응? 알았어, 먹고 얘기하자고, 먹고!”
멜란드는 입술을 삐죽거리는 시늉을 했지만 꼬르륵거리는 배를 두드리면서 냉큼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그다음에 능숙하게 접시를 당겨 먹기 시작하는 모습이 투란에게 이 광경이 역시 멜란드에게도 익숙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이 궁수 아저씨, 대체 며칠이나 이러고 있었을까?’
―알 수 없지.
드라고니아는 흥미롭다는 듯이 투란의 생각에 대꾸했다.
페란드가 조용히 나타난 것은 잠시 후였다.
가만히 투란이 있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페란드는 묵묵히 빈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시알라가 다들 먹는 광경을 보면서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자기 접시의 빵을 한입 깨물어 먹은 다음에 차분하게 묻는다.
“페란드, 납품할 양은 다 채운 거야?”
“점심 정도에 끝날 것 같아.”
페란드가 우물거리는 와중에 흘린 대답은 투란을 흠칫하게 했다.
“납품?”
시알라가 빙긋 웃으며 투란에게 설명한다.
“아직은 기초적인 것뿐이야. 규격에 맞춘 칼자루라든가, 화살촉이라든가. 하클 영감님네를 오락가락하면서 낯을 트인 덕분에 몇몇 공방이랑 거래를 틀 수 있었거든. 슬슬 제대로 된 공방 장인의 걸음마를 떼는 셈이지.”
투란은 그저 입을 반쯤 헤벌린 채로 눈을 깜박였다.
떠나 있던 기간이 몇 년씩 지난 것도 아니었는데, 페란드의 진도가 상당히 빠르잖은가! 게다가 시알라의 여유로운 모습과 부엌의 풍경까지 고려한다면…….
“못된 영감! 기어코 나한테서 금전을 뜯어내려 하고 있어!”
갑작스럽게 투란의 생각에 끼어든 소리는 타클란의 궁수, 타크였다. 거의 접시를 다 비우자마자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외친 듯한 모습이었다.
왠지 그런 타크에게 익숙한 듯, 제란드가 한숨을 쉬며 대꾸한다.
“그동안 고블린 잡아 번 돈을 꾸준히 모았으면 벌써 지불하고도 남았잖아. 딴 데 쓰고 징징거리지 말라고, 타크.”
“딴 데 쓰다니! 제란드, 내가 굶어 죽어야 했단 말이냐? 먹고 입고 하는 데만 썼을 뿐이라고! 그 영감탱이가 활 재료를 바꾸면서 가격을 팍 올리지만 않았어도 난 이미 활을…… 투란의 활을 손에 넣었다고!”
타크가 격렬하게 투란을 손가락질하며 하는 반박이었다.
투란은 멍하니 ‘내 활?’이라고 웅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눈치 보던 멜란드가 훌쩍 물을 마신 다음에 재빨리 말한다.
“성벽 위에서 하클 영감의 활을 썼다면서? 타크가 그 활을 노리고 돈 벌려고 하다가 우리처럼 고블린 사냥하겠다고 왔던 거야. 투란이 이자닌네랑 떠난 다음 날? 아니, 한 이틀 뒤였나?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은전 두 닢이라도 꾸준히 벌 곳을 찾아왔던 셈이지.”
“아하…… 그런데 그 활이 금전으로 셈할 정도로 비싸지는 않았는데?”
투란이 끄덕이다가 갸웃하면서 물었다.
타크의 낯이 구겨지고 세게 콧김이 흘러나왔다.
그 꼴을 보자마자 제란드가 타크의 등짝을 치며 말한다.
“진정해! 여기서 발작해서 또 테이블 부수면…… 누나 보이지? 딴 데 가서 사냥감 찾고 싶지 않으면 진정하라고!”
멜란드가 키득거리며 다시 투란에게 말한다.
“투란이 썼던 것보다 더 튼튼하고 더 세게 쏠 수 있으면서, 더 편리한 걸로 내놓으라고 큰소리 팡팡 쳐놨거든. 하클 영감님도 발끈해서 재료값만 제대로 내면 원하는 대로 만들어준다고 으르렁거렸지. 덕분에 주문대금이 금전 두 닢이나 돼버렸어. 거의 재료값이라더라고. 타크가 그 값을 못 치르면…… 하클 영감님, 신기한 활을 기꺼이 사갈 단골이 있다고 했어. 성질나면 그 단골에게 바로 그 활 보여줄 거라고 타크를 놀려먹는 중이야, 하클 영감님이 말이야. 흐흣.”
“아하.”
투란은 눈을 깜박이다가 겨우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가 흘깃 투란을 살폈지만, 타크는 억울하다는 듯이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넋두리하고 있었다.
“정말! 웬 심술이냐고! 내가 돈 준다는데! 왜 금전이냐고! 그러니까 생각보다 좀 오래 걸릴 뿐인데! 왜 내가 주문한 내 활을 딴 놈한테 넘긴다고 협박이냐고! 아으읏! 못된 영감탱이! 대체 어떤 놈이기에 신기하다고 활을 넙죽 사가! 그놈도 이상해!”
―투란 너 같은데? 하클의 단골, 이상한 놈.
타크의 넋두리 사이로 드라고니아가 넌지시 건네는 말도 투란의 뇌리를 울리고 있었다. 그 말과 함께 투란은 남매가 보내는 은근한 눈길의 의미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클의 단골답게, 살짝 부정하기 힘든 그 호칭에 어울리게끔 투란이 당장 가서 타크가 열심히 주문해놓은 활을 날름 가로챌 것이냐고 묻는 것!
투란은 입을 열고, 헛소리처럼 빈 소리를 늘어놓았다.
“큰일이네요. 얼른 금전 벌이를 해야겠네요?”
타크가 자기 볼을 두 손으로 치면서 대꾸한다.
“맞아! 얼른 금전을 벌어야 해! 그런데 이 망할 고블린! 대여섯 마리씩 들쑤시고 나타나던 것들이 요새는 왜 두어 마리 겨우 눈에 띄냐고! 날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나! 그래서는 화살도 못 살 지경이라고!”
“술을 줄여라. 다 먹었으면 가자.”
제란드가 타크가 떠드는 사이에 자기 식사를 마쳤다는 듯, 타크의 등을 잡아당기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하는 말이었다. 타크가 끌려 일어나면서도 제란드에게 반박한다.
“줄일 만큼 줄였거든! 이젠 겨우 잠들기 전의 입가심 정도만 한다고!”
“그래, 그 입가심하는 술이 너무 비싸서 퍼마실 때만큼 돈이 나가고 말이지. 가자고, 오늘 고블린 못 만나면 너 정말 성벽 밖으로 몬스터 잡으러 갈 수밖에 없다며? 빨리 정찰 돌고 결정해야지.”
“그래, 그래야지. 어, 제란드 도와주라. 계속 도와줄 거지?”
끌려나가는 타크가 살짝 애처로운 시늉을 하며 웅얼거리고 있었다.
둘이 나간 다음, 곧바로 멜란드가 투란에게 낮은 목소리로 짓궂게 묻는데…….
“하클 영감님한테 가볼 거지? 그 활, 볼 거지?”
그야말로 냅다 금전 던지고 가로채 올 것이 아니냐고 캐려 하는 말투였다.
투란은 너무 노골적인 멜란드의 표정에 움찔한 시늉을 하며 슬쩍 페란드와 시알라를 둘러봤다. 그런 짓을 해도 괜찮을까 슬쩍 묻는 투란의 눈길에 시알라는 피식 웃었고, 페란드는 살짝 진지하게 대답한다.
“타크가 자극하기는 했지만 영감님도 흥미가 있었어. 더 좋은 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활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얼마나 더 정교해질 수 있는가 말이야. 이미 뭔가 맡긴 일도 있다며? 그쪽이랑 연계해서도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일이 많으신가 봐. 타크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투란이 후원금을 줬다고 나한테는 말씀하시더만. 아, 그래. 그러니까 타크의 활도 어쩌면 여분으로 하나 더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조금 길어지는 말에 투란이 갸웃했기에 페란드는 맺는말에 간단히 요점을 말해야 했다. 투란의 몫으로 하클 영감이 하나 더 이미 만들어뒀을 수도 있다고.
“음, 나중에. 지금은…… 너무 갑자기 돌아와서 멍하니까, 정신 좀 차리고!”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하며 투란은 대강 얼버무렸다. 당장 하클의 공방으로 뛰어가는 것은 너무 가벼워 보이니 살짝 무게 잡는 시늉을 해보는 셈으로 꺼낸 소리였다. 게다가 아직 궁금한 일이 잔뜩 있기도 했으니…….
“근데 이것저것 꽤 많이 바뀐 것 같은데…… 몇 년 어디 갔다 온 것도 아닌데, 그새 어떻게 된 거야?”
“음? 어, 그건…….”
페란드가 대답하려다가 슬쩍 말을 흐리면서 시알라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투란이 느끼는 변화는 시알라가 주도했으니, 시알라가 설명해야 한다는 듯한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멜란드가 먼저 투덜거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잔소리쟁이 마법사 아저씨 덕분이지! 아니, 겉만 젊다니까 할배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아, 이것도 투란 탓인가?”
“뭐가 자꾸 내 탓이야!”
투란이 움찔하면서 되물었다.
시알라가 접시 한편에 내려놨던 궐련을 집어 다시 입에 물며 대답한다.
“산돌프 마법사가 들락거리면서 잔소리했다는 말이야. 투란 탓은 아니지. 그 아저씨가 여유가 생겨서 그런가, 계속 이것저것 퍼브란 이래야 한다니 저래야 한다니 말이 많았거든.”
“산돌프……?”
투란은 눈을 깜박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자닌, 파쿠란과 떠나기 전에 산돌프의 의뢰를 받아 함께 했었다. 아주 잠시였고, 잘 마무리되었던 일이 아니었던가? 왜 산돌프가 여기 와서 잔소리를 한다는 것일까?
피식, 시알라가 새는 웃음과 함께 말을 잇는다.
“투란이 무사한가 확인하고 싶어 온 거야, 원래는 말이지. 무사히 돌아왔다고 말해줬는데 아무래도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었는지 계속 들르고 있어. 그렇게 와서 얌전히 있다가 가질 않고, 우리 쉼터가 어떻게 운영되는가를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진 거야. 어쨌든 도움이 되는 말이었으니까.”
갸웃하며 투란은 물어야 했다.
“내가 무사한가? 왜?”
멜란드가 ‘잉?’ 하며 투란에게 되묻는다.
“목숨을 구해줬다면서? 아니야?”
“어? 아…… 먼저 도망치라고는 했었을 거야. 거기서 산돌프가 다치거나 하면 내가 맡은 의뢰가 실패하는 거니까. 음, 목숨을 구해준 셈이 되는 건가?”
투란은 대답을 하면서도 갸웃거렸다.
시알라가 후욱 연기를 뿜어내면서, 연기로 된 작은 꼬마들이 빙빙 돌며 박수 치는 모양을 만들어내면서 말한다.
“목숨을 구해준 거 맞아. 단순히 목숨만 구한 것도 아니지. 산돌프의 학파, 마법사로서 산돌프가 짊어졌던 의무도 투란 덕분에 아주 깨끗하게 해결된 모양이야. 그것 때문에 상아탑에 열흘 넘게 감금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꽤 불만스럽기는 한 모양이지만, 필요한 일이라서 넋두리만 하더라고. 어쨌든 산돌프는 투란에게 그렇게 목숨도 구해지고, 원하던 것도 얻어서 단순히 의뢰금만 정산하고 떠나기 힘들었나 봐. 투란이 언제쯤 돌아올까 물으면서…… 처음에는 점심 무렵에 매일 들렀는데, 요새는 이틀에 한 번씩 들러. 어제 들렀으니 내일쯤 오려나?”
“그 아저씨, 엄청 떠들고 있었나 보네?”
투란은 시알라가 산돌프의 사정을 잘 안다는 것에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멜란드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 엄청 자랑부터 시작했어! 이제 대마법사가 되는 거는 시간문제라면서 말이야. 그리고 누나한테도 자랑질하더니, 저런 짓 하는 것도 가르쳐줬다니까!”
“응? 저런…… 연기 요술?”
투란이 퍼뜩 알았다는 듯이 짚었다.
홀시딘이 시범을 보였고 기초마법서를 사뒀기도 했지만, 시알라가 열심히 노력했다 해도 지금 보여주는 수준은 너무 대단했다. 하지만 애초에 적은 마력을 이리저리 쥐어짜 내고 효율적으로 정교하게 배치하는 방법에 능숙한, 덕분에 독특한 마법사가 된 산돌프가 옆에서 잔소리하며 짚어준다면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이라도 시알라라면 저럴 수 있다!
시알라는 투란이 짚은 대로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꽤 독특한 마법사잖아, 알지? 내가 바에서 물그릇 놓고 연습하는 걸 보고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줬어. 기초마법서까지 꺼내서 연구하는 척했더니, 아주 대놓고 가르쳐주던걸. 아마 투란이 여기 산다니까, 투란을 대신해서 나에게라도 뭐든 해주고 싶지 않았나 싶어.”
멜란드가 볼멘소리를 보탠다.
“나한테는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온갖 잔소리만 해댔는데 말이지!”
“잔소리?”
미심쩍다는 듯이 투란이 되뇌었다.
시알라가 냉정하게 투란의 되뇜을 인정한다는 듯이 말한다.
“부주의한 짓, 멍청한 짓을 하지 말라고 알려준 건데 이 바보가 계속 잔소리라고 칭얼거리는 거야. 갖고 있는 거 너무 자랑 말고, 몬스터 로드라면 하급이라도 한두 가지 감춘 몬스터는 있어야 한다고…… 분위기에 흔들려서 냉정을 잃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단련하라고 계속 말해주니까.”
“음, 잔소리라고 할 만하네.”
투란은 멜란드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웅얼거려봤다.
시알라의 귓가에 가능한 한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추는 것처럼!
멜란드는 바로 반가운 낯빛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