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5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52)
사각.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페이지가 넘어가는 척하면서 새로운 한 장이 솟아났다.
테두리는 투명해서 켈 데릭이 툴로쉬의 초상화를 도감에 담을 때 사용했던 카드를 연상시켰지만, 테두리 이외의 하얀 바탕과 그 위로 가득 채워진 검은 문자는 완전히 다른 모양임을 강조하는 듯했다.
투란은 줄줄이 간격을 둔 채로 늘어선 문자를 보며 어리둥절했다.
‘몬스터가…… 이름만 가득하네?’
―역시 색인(索引) 처리가 되어 있었군. 이게 이 책에 담긴 내용의 간판만 모아둔 페이지, 인덱스 챕터란 거다. 정보분류를 통해서 나눠놓은 내용을 중요한 낱말을 열쇠 삼아서 열어볼 수 있게 해놓은 거지. 원래는 이런 도감 안에서 뭔가를 찾을 때 이런 인덱스 챕터를 보고 수록된 페이지의 숫자를 확인해서 펼쳐 보는 거야. 그 부분을 마법으로 처리해서 말로 해도 툭툭 튀어나오고 책갈피를 드러내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 도감이란 거지.
‘와, 이거 움직이잖아!’
들으면서 투란이 손톱 끝으로 살짝 새로 나타난 페이지를 긁어보니, 바탕과 문자가 손끝을 따라 위, 아래, 오른쪽, 왼쪽으로 슥슥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투명한 재질 속에 문자가 박혀 있는가, 아니면 문자는 그 위에 떠 있는 채인가가 궁금해서 긁어본 것이 꽤 이상한 특징을 찾아낸 셈이었다.
―스크린이었나? 흠, 그걸 응용한 것이었나 보군.
‘그게 뭔데?’
―평면에 환영을 투사시켜 보여주는 도구, 거기서 환영을 받아들이는 평면 판을 일컫는 말이야. 그 기능을 그대로 담은 마법주문이기도 하고.
소리 없는 말에 귀를 쫑긋거리면서 투란은 손끝으로 인덱스 챕터를 담고 있는 페이지를 이리저리 문질러봤다. 그때마다 바탕과 문자가 옆으로 밀려가며 새로운 문자가 한편에서 쑥쑥 밀려오는 듯했다.
―실려 있는 내용의 목차만 표기해도 상당한 분량인데, 그걸 페이지 넘기면서 보게 하지 않으려고 사용한 것 같다만…… 뭔가 원래 스크린의 형태나 용도랑은 꽤 다른 방식이군.
‘대체 이런 걸 누가, 왜 생각해낸 거래? 이렇게 보나 한 장씩 넘겨서 보나 뭔 차이가 있는 거야? 무슨 게시판에 구멍 내서 보는 기분인데?’
갸웃하면서 투란은 튀어나온 페이지를 살피다가 다른 페이지와 다르게 도감에 묶인 상태가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들러붙어 있기는 한데, 살짝 들뜬 것이 묘해서 당기면 떨어질 듯했다. 그래서 당기니 바로 한 장이 달랑 흘러나온다. 손끝으로 그 페이지를 이리저리 움직이니, 여전히 인덱스 챕터의 내용이 이리저리 밀려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옆에 두고 따로 참고하면서 도감 내용을 볼 수 있게 한 건가?
약간 의아하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은 갸웃하며 그 페이지를 아예 들어 올려봤다.
투명한 테두리가 밝아지는가 싶더니, 집어 올린 손가락 사이로 스륵 빠져나가면서 표지 쪽으로 붙어 팔락거렸다.
―흠?
‘이게 대체 뭐냐?’
―도감에서 분리되는 것을 막은 모양인데? 어쨌든 도감에 붙은 상태에서만 기능하도록 말이야.
‘왜?’
―글쎄다?
투란은 보면 볼수록 까닭을 알 수 없는 도감의 상태에 갸웃하면서 독서대 한편에 팔꿈치를 괴고 손으로 턱받침을 한 다음에 인덱스 챕터의 페이지를 다른 손으로 이리저리 밀어보며 생각했다.
이 도감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가?
색인이니 목차니 실어놓은 한 장을 왜 따로 둔 것인가?
흘러가는 문자를 보고 실려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확인하라는 것인가?
굳이 색인이니 목차니 하는 것을 보려는 놈에게 도감이 얼마나 신기한가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결론은 없었다.
만든이의 마음속에 무슨 괴이하고 지랄 맞은 발상을 품었는가 전혀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책을 읽어보질 않아서 짐작할 근거가 없는 거잖아!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너도 모른다며!’
투란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러면서 톡톡, 손끝으로 미는 것이 살짝 과격해져서 두드리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그 순간에 도감이 힘차게 펄럭이며 새로운 페이지를 펼쳐놓았다!
“엥?”
―음?
투란이 놀란 소리를 낼 때 드라고니아도 흠칫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왜 저절로 페이지가 바뀌었나?
드라고니아가 바로 간파해냈다.
―투란, 방금 두드린 자리!
“으음?”
손가락으로 두드린 인덱스 챕터의 페이지를 보니, ‘강철의 고블린’이란 묘한 항목이 보였다.
―도감의 페이지를 봐, 굵게 나타난 항목명을 보라고.
드라고니아가 말한 대로 투란이 펼쳐진 페이지를 보고 소리 내서 읽으니…….
“강철의 고블린……?”
곧바로 드라고니이가 이어 말한다.
―인덱스 챕터에 제스처를 더하면 바로 페이지가 전환되도록 만든 거다! 손끝으로 밀어 움직여서 찾아낸 항목으로 바로 옮겨가 볼 수 있게 말이야! 꽤 신선한 방식인걸!
열정적인 말투에 투란은 눈을 끔벅거렸다.
그리고 슬쩍 도감의 페이지를 한 움큼 잡아 다른 곳으로 훌쩍 넘긴 다음, 투란이 속삭인다.
“강철의 고블린.”
파라락, 다시 도감은 ‘강철의 고블린’ 항목을 펼쳤다.
서늘하게 식은 듯한 드라고니아의 낌새를 투란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왜지?”
투란이 다시 중얼거렸다.
―그, 글쎄?
드라고니아가 우물거렸다.
목차의 항목을 그냥 입으로 소리내도 페이지가 펼쳐지는데 굳이 손끝으로 두드려서 넘어가게 만든 까닭이 무엇인가? 보고 두드리는 것이 소리 내서 읽은 것보다 편안하다고 주장할 셈인가?
‘이런 거, 드라코눔에도 없는 거야?’
―없어. 드라코눔에서는…… 책보다는 구슬을 더 선호하니까.
‘에? 구슬?’
―로어의 마법을 담은 정보 구슬이 있다. 책이랑 정보를 담는 형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환영(幻影)을 통해 보다 사실적인 정보를 담고 있으니까 책보다 선호할 수밖에 없지.
‘과연 책에다가 뭔 마법을 걸어 댈 까닭이 없었구나!’
투란은 깨달았다.
드라고니아가 살던 곳, 드라코눔은 인간의 나라랑 꽤 다르다!
하다못해 기록을 담고 있는 것조차 이쪽은 책인데, 저쪽은 아예 마도구!
책에다가 온갖 신기하고 해괴한 마법을 건다는 발상 자체를 할 리가 없는 곳!
‘파쿠란 올 때까지 건드려 보고나 있어야 할 모양이네.’
웬지 한숨과 함께 울어버리고 싶은 기분을 느끼면서 투란은 펼쳐진 항목을 흘깃하고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읽어보는데…….
“뭐냐, 이 미친 고블린은?”
몇 구절 읽지 않아 바로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런 고블린이 있었나.
드라고니아도 낯선 듯이 중얼거렸다.
둘 다 어쩔 수 없었다.
도감이 설명하는 ‘강철의 고블린’, 그것은 무리를 짓고 규모를 키워가며 떼로 몰려다니면 위험하다는 고블린이란 품종의 한계를 넘어버린 특이한 경우였으므로!
고블린이면서도 인간에 못지 않은 강철(鋼鐵)의 무구(武具)를 사용하며, 사람에게는 어딘가 조악한 헛소리처럼 들리지만 명확한 언어체계를 갖추기까지 했다. 그런 까닭에 ‘강철로 무장한’이란 의미를 담아 ‘강철의 고블린’으로 부른다는 것.
이 고블린 품종은 자신들의 거점에 목책까지 쌓았는데, 그대로 뒀으면 암석을 이용한 축성(築城)까지 마쳤을 것으로 보인다 했다.
이렇게 몬스터이면서도 제대로 지능(知能)을 갖춘 듯한 고블린 무리였지만 춤추는 산맥의 험악한 상황 속에서 다른 몬스터와 격돌 끝에 몰살했다.
투란이 보기에 그 정도면 몬스터가 아니라 몬스터의 모습을 한 사람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이거 설마 몬스터 로드가 모여서 고블린 패거리 흉내라도 낸 건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투란은 그대로 꺼내봤다.
―몬스터 로드라면 죽은 다음에 몬스터의 형상을 지워버리잖아. 이 강철의 고블린은 시체와 무구를 분명히 남겼다고 써 있잖아. 전투를 보고 잔해를 보고 확인했다고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도감의 한구석에 기록된 몰살의 과정을 짚어주며 말했다.
“흐흠…….”
투란도 그 부분을 다시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어쩌다가 순찰 중인 헌터들에게 목격되었지만, 직접적으로 인간과 충돌은 없었다.
그러기 전에 뭐가 알 수 없던 괴물과 싸워 목책 안에서 몰살당했으니까.
조금 더 자세히, 다시 훑어봐도 헌터 정찰대는 한 이틀 정도 이 특별한 고블린의 목책 마을을 구경하면서 놀라고 있다가 몰살을 확인하고 돌아왔을 뿐이었다. 너무 특이해서 한 구의 사체(死體)와 강철의 무구 몇 가지를 함께 갖고 와서 마법사들에게 넘겼고…….
‘몬스터 로드에게는 꽤 난감한 상대로구만. 도구를 만드는 본능이라도 지녔으면 모를까, 이건 뭐…… 고블린 탈을 쓴 채로 무장한 강도들이나 다름없으니 말이야.’
―대화를 하고 있을 정도의 지능까지 갖췄다면 모양만 고블린이지, 전혀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면 다른 종족과 대화가 가능할 수도 있어. 보자마자 와아 하고 달려들어 싸울 궁리부터 하지 말고, 손짓 발짓으로 말부터 걸어보는 게 먼저야.
‘만나고 싶냐! 난 싫거든!’
―만나고 싶다는 말이 아니잖아! 만날 경우에 폭력적인 선입견을 버리고 대화부터 시도하는 것이 문명의 혜택을 받은 자의 기본적인 소양이란 말이다!
‘뭔 소리냐고, 그게…….’
―교양을 갖추면 알아듣게 될 거다, 이 무식한 놈아!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의 말에 입술을 삐죽하고 투란은 ‘강철의 고블린’ 항목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무구’라는 문자가 살짝 기울어져 다른 것과 달리 표기된 것을 깨달았다. 반듯한 문자가 아니라 ‘무구’란 것을 특별하게 보이게 하려는 것처럼 미묘하게 흔들어 놓은 듯한 묘한 형태…….
갸웃하면서 투란은 그 ‘무구’라는 부분을 손끝으로 쿡쿡 찔러봤다.
―뭐 하는 거냐? 그건 인덱스가 아닌…… 엥?
다른 페이지가 드라고니아가 뭐라 하는 사이에 툭 튀어나왔다.
‘강철의 고블린’ 항목 속에 끼어둔 페이지처럼, 자그마한 모양으로!
“고블린의 강철 무구, 불에 의해 담금질 된 것이 아니라 원래 땅속에서 꺼낼 때부터 그런 모양을 한 듯한 기묘한 형질 확인. 강철의 고블린이 지닌 고유능력이 문명의 모사(模寫)가 아닐까 의심된다? 어쨌든 그 형태와 재질의 강력함은 인간 야장(冶匠)의 솜씨를 아득하게 초월하는 수준!”
―이놈들 만나면, 넌 강도질부터 하겠구나.
묘하게 놀리듯, 약간 한탄하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어쩐지 도감의 기묘한 첨언(添言) 방식보다 투란이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눈을 반짝거리는 쪽이 더 거슬린다는 듯한 말투였다.
이를 바로 부정 못 하고 머쓱해하면서 투란이 웅얼거린다.
‘강도가 아니지, 날 죽이려는 몬스터랑 싸우고 전리품을 챙기는 게 무슨 강도야! 강도는 남의 것을 내놓으라고 칼부림하자는 미친 녀석들이라고!’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보다 뭔 생각으로 두드린…… 찔러본 거냐?
‘어? 아…… 그냥 무구라고 소리 내봐야 온갖 칼, 창이 튀어나올 것 같으니까. 고블린의 특이한 경우를 설명하면서 왜 문자 모양이 이상한가 해서, 손이 먼저 나간 경우라고나 할까?’
―그렇군, 생각 없이 손이 나간 거로군.
‘저기요? 이보세요? 앞말은 다 자르고 왜 뒷말만 인정하는 건데?’
―파쿠란이 제대로 배워와서 설명해주기를 기다릴 테냐? 아니면 이대로 계속 들쑤셔 볼 테냐? 인덱스 챕터도 펼쳐놨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방법도 알아냈잖아.
‘한 가지 문제가 있잖아.’
―문제?
‘첫 페이지가 어딘지 몰라.’
―그건 그렇군.
이 도감은 펄럭거리며 넘어갈 때마다 두툼한 페이지를 과시하는데,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그 두께가 그대로였다. 책을 덮으면 순식간에 얇은 철판처럼 변하면서 그 두께가 사라지면서 펼치면 양쪽 옆구리가 늘 두꺼운 기묘한 것이니, 다른 책처럼 손으로 넘겨 첫 페이지를 찾을 수가 없다!
투란의 이를 지적하니 드라고니아는 순순히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들쑤실 것이냐 그냥 덮어 둘 것이냐?
물론 그렇다고 질문이 변하지는 않았다.
투란은 한숨과 함께 인덱스 챕터를 이리저리 밀며 대답한다.
‘일단…… 이 도감이 어디까지 대꾸할 수 있는가를 확인해야지.’
―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말을 제대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지금 말은 마치 이 도감이 자아를 갖고 대답이라도 한다는 가정을 한 듯한데, 그런 마도구가 전혀 아니니까!
투란은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