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57)
부엌에서 둥실거리며 요리가 날아와 빈 접시 위에 내려앉았다.
“자아, 먹으면서 천천히 얘기들 하시라고요.”
시알라가 두 손을 허리에 짚으며 으쓱하는 채로 하는 말이었다.
투란은 눈을 깜박이며 방금 시알라가 박수와 함께 보인 마법에 관심을 드러내며 묻는다.
“이거…… 칸트립?”
“응. 산돌프 마법사님께서 여기 오는 며칠 동안 열심히 가르쳐주시길래, 열심히 배웠지! 맞아, 이 연기 다루는 것만 배운 게 아니고 이런 자잘한 손재주 같은 마법을 어떻게 써먹는가도 많이 배웠어. 별일 못 하는 것 같지만, 써먹기에 따라서는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마법이라고.”
시알라의 대답은 아주 명쾌(明快)했다.
투란으로서는 머리 한구석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칸트립으로 산돌프가 보인 시범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알라는 그것을 부엌에서 접시까지 요리를 옮기는 일에 써먹었다! 단번에 쓴 마법이 아니라, 요리를 띄우고 옮기는 이동 경로를 따라 칸트립을 연속으로 사용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리를 내거나 소란을 피웠지. 이미 물질적인 간섭은 있었던 셈이다. 시알라는 그걸 보다 실용적인 방향으로 응용한 거야. 소란, 소음을 대신해서, 손이 할 일을 하도록 말이지. 칸트립은…… 마력을 방출하는 기초술식이니까. 방향과 속도, 더해지는 힘에 따라 여러 가지 간섭을 할 수 있다는 시범을 본 거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생각을 확인시켜주듯이 말하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면 고블린 트릭스터의 재주도 가능한 거 아냐? 왜 마법으로 재현불가라고 해놓은 거지?’
켈 데릭에게서 사온 형제 상회의 특판 도감에서 왜 그렇게 단정 지은 것일까?
―아마…… 마법이 발휘되지 않는 영역, 마법으로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까지 도달하는 요술이라서 그럴 거다. 몬스터의 힘이 마법이 무효화되는 영역까지 닿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말이야. 마법사에게는 힘겹고 어려운 범위까지, 고블린의 위키드 파워가 쉽게 닿아 생기는 효과라서 그런 말을 붙여놨을 수가 있어.
드라고니아의 이어진 말은 투란에게 아쉬운 기분을 느끼게 했다.
‘쟌이랑 사냥할 때 위키드도 얼렁뚱땅 삼켜둘 걸 그랬나.’
고블린 코만도만으로 만족할 필요는 없었는데…….
―고블린 부루탈이 땅 아래에 잔뜩 기어나오는 곳이잖아. 뒤져보면 있을 수도 있지, 위키드가 말이야.
조금 마땅치 않다는 듯, 땅굴 파고 다닐 거냐고 놀리는 듯한 묘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으적, 후르륵.
산돌프가 달걀을 쪼개고 마시듯이 먹으며 밀빵을 씹는 소리를 크게 냈다.
투란도 ‘어?’ 하다가 접시를 다시 보고 얼른 먹기 시작했다.
시알라는 잠시 연기를 가늘고 길게 뿜어내더니, 그 긴 연기로 투란 목을 휘감는 밧줄 모양을 만들며 묻는다.
“무슨 일이야? 무슨 생각을 했는데 요리 나오자마자 먹질 않고 몰입한 거야?”
냠냠, 투란은 입을 가득 채운 채로 눈을 깜박거리며 ‘무슨 말인지 몰라요.’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알라는 그 꼴을 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렸지만 더 뭐라 묻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몬스터에게 묘한 집착을 할 때의 투란은 오러 마크를 찍은 하급 헌터로서가 아니라 몬스터 로드, 황금매의 문장을 지닌 자로서 생각하는 것일 테니 아직 사정을 모르는 산돌프 앞에서 캐물을 수는 없었다.
산돌프가 잔을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긴장이 풀린 듯한 큰 숨을 내쉬었다. 이제까지 쌓아온 피로와 짐을 모두 덜어냈다는 듯,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는 듯이 단단한 표정을 짓는 채로 마법사의 입이 말문을 연다.
“투란, 다시 말하지만 고마웠다. 무사한 너를 보니 겨우 마음이 편안해졌어. 그럼, 이제 가보겠다. 시알라, 그동안 고마웠네. 내가 알려준 지식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니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어차피 그 기초마법서를 열심히 읽고 연습하면 언젠가는 도달할 것만 미리 알려준 셈이니까. 그러면 나는 이만 가보겠네. 할 일이 있으니 말이야. 내 운이 다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다시 들러보겠네. 그 때까지…… 모두 평안하기를 빌겠어.”
말과 함께 한 산돌프의 가벼운 손짓과 함께 바 테이블 위로, 접시 아래로 나뭇잎 모양이 새겨겼다.
시알라는 그것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잎사귀 모양인 것을 보며 말한다.
“행운이 함께하기를 빌게요, 마법사 산돌프.”
우물거리던 투란이 눈을 깜박이면서 산돌프를 바라봤다.
뭐 먹을 때 꼭 자리에서 일어나서 작별하고 떠나야겠냐고 살짝 노려보는 듯한 낌새가 서린 투란의 눈길에 산돌프가 웃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기를 바라니까, 지금 떠나겠어. 다음에도 지금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바라네. 그럼…….”
철그렁, 가볍게 동전 몇 닢이 바 위에 떨궈놓으며 산돌프는 문을 나섰다.
꿀꺽, 투란은 억지로 입안의 달걀과 밀빵 조각을 삼키다가 켁 하는 소리를 내고는 물을 마신 다음에 문턱 너머로 외친다.
“잘 가요, 일발조루 마법사!”
“닥쳐!”
문턱 너머에서 으르렁거리는 짧은 소리가 돌아왔지만, 산돌프는 돌아오지 않고 떠나고 있었다.
시알라가 픽, 하고 새는 웃음을 흘리는데, 투란은 갸웃하며 문턱을 바라봤다.
그 문턱을 너머 두꺼운 두건을 쓴 채로, 몸을 완전히 가린 로브를 두른 이가 스윽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면서 바로 투란을 보더니 묻는다.
“일발조루?”
“내려가다가 봤죠? 그 아저씨 별명!”
투란이 목에 걸린 것을 다 삼켜 없앴다는 듯이 쾌활하게 외쳤다.
시알라는 들어선 이가 두건을 젖히는 모습을 봤고, 쿨란이란 그 이름을 금방 떠올렸다.
“쿨란…… 아니, 파쿠란이라고 했었지요? 이자닌은……?”
“페브라의 일을 마무리 짓고 있어. 난 일단 투란에게 볼일이 있어서 먼저 왔다. 응? 이자닌은 이제 위험한 상황을 모두 넘겼으니까. 나머지는 적당히 알아서 정리할 수 있게 되었어.”
파쿠란은 담담하게 시알라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투란이 냉큼 묻는다.
“며칠 있다 올 줄 알았는데 벌써 왔어요?”
“네가 방에 없는 걸 보고 큰일이라도 났나 해서 마스터 홀시딘에게 바로 연락을 했었거든. 그 도감 쥐어주고 돌려보냈다는 말에 혹시나 해서 조금 진지하게 마스터 홀시딘이랑 도감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보며 살펴봤지. 그러다 도감이 상아탑의 마법에 흥미로운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다른 일보다 먼저 너에게 찾아와야 했어. 켈 데릭에게 도감에 대한 나머지 얘기도 얼른 캐묻고 말이야. 자, 그러니까…… 잠깐 조용한 곳으로 갔으면 하는데? 네 방은? 안 돼? 그러면…… 여기 옥상에 움막이라도 얹어놓고 이야기하자고.”
파쿠란의 말은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시알라는 그 말 속에 담긴 신중함을 느꼈고, 투란에게 바로 물어야 했다.
“투란, 뭐 저지른 일은 없다고 했었지? 혹시 뭔지 모르고 건드렸는데 나중에 두고 보자고 하면서 징징거리거나 한 녀석이 있다거나, 정체 모를 마법도구라도 만지작거린 적이 있는 거야?”
“없어! 내가 뭔 짓 한 게 아니라고! 파쿠란, 웃지 말고 말을 해요, 말을! 난 정말 죄 없다니까!”
투란은 시알라의 물음에 실없이 웃는 파쿠란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시알라가 잠시 지난 일을 되새겨 짚어 보는 표정을 지으면서 지그시 투란을 바라볼 때, 파쿠란이 투란을 위하듯이 말한다.
“투란이 딱히 저지른 일은 없어. 거기서 투란이 한 일은 이자닌의 책임이라고 해야 하니까, 내가 상아탑의 마법까지 기대서 반나절 만에 쫓아와야 했던 것도 투란이 뭘 해서가 아니라 그냥 투란이 산 도감이 묘한 탓이니까. 자, 어서 얘기 좀 하자고. 어디로 갈래?”
“옥상으로 가, 투란. 하늘에서 엿듣는 뭔가가 없으면 아무도 엿듣지 않는 곳이니까. 그 정도는 알아서 하겠죠, 파쿠란?”
시알라가 빈 접시를 치우면서 말했다.
기묘한 마법사가 따라온 귀찮은 일을 얼른 투란에게 떠넘기는 듯한 말투이기는 했지만, 파쿠란이 사소한 일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단정 짓고 하는 말이었다. 무슨 일이든 길게 끌어서 좋을 것 없다고 예상한 듯…….
투란은 ‘아직 배고픈데.’라고 웅얼거리면서도 총총걸음으로 앞장섰다.
밟고 올라가는 계단과 옥상의 풍경은 투란이 떠날 때와 별 차이가 없는 듯했지만, 옥상 한편에 길게 뻗어나간 채로 새장처럼 매달려 대롱거리는 묘한 방은 분명히 전에 없는 것이었다.
투란이 그 낯선 것이 뭔가 기웃거리고 보니, 침대가 하나 있을 뿐 그냥 빈방이었다. 다만 그 안에서 예리한 후각을 이용해 멜란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뿐이었다.
‘뭐야, 뭔 방을 이렇게 만들어 놨대? 멜란드가 이런 취향이었나?’
―그런 일은 나중에 본인에게 묻고, 파쿠란이 당장 쫓아온 까닭부터 확인해야지! 뭔가 중대한 용건이 아니라면 올 인간이 아니잖아.
‘음? 어, 그야 그렇겠지?’
조금 갸웃하면서 투란은 파쿠란의 곁으로 갔다.
가만히 옥상, 그루터기의 정상을 둘러보며 자리를 정하고 투란이 다가오기를 기다린 파쿠란이 가만히 손을 내밀고 주먹을 쥐었다. 주먹마디에서 불거져 나온 바람 반지가 사앙사앙하는 소리를 냈고, 투란은 주변을 휘감는 바람의 장벽을 느낄 수 있었다.
둘의 머리 위까지 휘감는 바람의 형세가 마치 뚜껑 덮인 큰 항아리 속에 들어가 앉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투란은 마법으로 철저하게 엿듣기를 막는 파쿠란의 모습에 조금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큰일이 있는 거예요?”
“아니.”
파쿠란의 빠른 대답은 투란은 당황했다.
파쿠란은 가만히 주먹을 폈고, 은은한 황토색이 그 손안에서 번져나가며 바람 장벽을 물들였다. 그러고 나니 이젠 진짜 둘이 항아리 안에 갇힌 꼴이었다. 다만 장벽으로 스며온 빛이 안을 산란하며 채운 탓에 캄캄하지는 않았다.
―흐흠? 따로 불빛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라, 재미있군.
드라고니아는 이 마법의 형식이 흥미로운 듯했다.
하지만 투란은 치솟은 당황을 억누르면서 다시 물어야 했다.
“큰일도 아닌데 뭘…….”
“투란, 도감을 얼마큼 읽었지?”
“에? 도감이야…… 아침부터 아까 뭐 먹기 전까지니까…… 몇 시간 안 읽었는데요?”
움찔하며 슬쩍 눈길을 피하는 표정으로 나오는 투란의 대답은 꽤 우물쭈물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바로 파쿠란이 ‘역시.’라고 낮게 한마디 먼저 하고 바닥에 앉으면서 말한다.
“혹시 내다 팔면 돈벌이가 될 듯한 이야기를 봤나? 봤지? 봤군.”
묻는 말은 확인하는 말이 되었다가 확신으로 변했다.
따라 앉으면서 약간 붉어지던 얼굴로 훅하고 숨을 내쉰 다음, 투란이 되묻는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아까 말했잖아, 그 도감이 상아탑의 마법에 반응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이야.”
“어? 아, 그랬…… 무슨 마법에 반응해요?”
“로열클래스.”
“에?”
투란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켈 데릭이 판 도감이 로열클래스, 로열가든의 마법이랑 대체 무슨 반응을 한다는 것인가? 그게 뭔데 파쿠란이 당장 투란을 쫓아와야 했고 홀시딘이 보내야 했는가?
파쿠란은 투란을 보며 쓴웃음과 함께 미묘한 한숨을 섞은 채로 말한다.
“우선…… 대도감부터 보려나?”
“아, 네…… 엥?”
차분하게 정리하는 말투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투란이 흠칫했다.
켈 데릭의 도감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뭔 대도감인가!
로브 안에서 꺼내는 금색, 은색과 함께 보석이 섞인 상감(象嵌)을 지닌 작은 상자 같은 것은 분명히 상아탑의 대도감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즉, 진짜로 상아탑의 대도감을 가져와 꺼내놓으며 하는 말이다!
“이 뭔…….”
약간 거칠어지려는 투란의 말을 파쿠란이 재빠른 헛기침으로 막으며 말한다.
“마스터 홀시딘이 자네에게 별 흥미 없는 내용을 시험 삼아 도감에 복사해 붙여놨다며? 섭섭해서 심술부리지 말라고, 이번에 페브라의 일을 정리하며 들어온 금전 일부를 바로 떼내서 대도감을 완성하자마자 전하신다더군. 자네 보내고 나서 곧장 이쪽의 마스터 케이라에게 연락해 두셨던 모양이야. 알드바인 떠나기 전에 말해둔 바가 있어서 금전 받자마자 마스터 케이라는 대도감을 완성했고 말이지. 오는 길이니까 바로 내게 전하라 넘기더군.”
투란은 머리 한구석이 어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침 해 뜨기가 무섭게 휭하니 마법으로 날려 보내는가 싶었는데, 점심 끼니 때우자마자…… 마법사 한 명이 떠나기가 무섭게 다른 한 명이 문턱 너머로 밀고 들어오는가 싶더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파쿠란은 투란의 휑한 눈길을 보며, 정신 못 차리는 그 표정을 보면서 한층 더 진지하게 말한다.
“대도감에는 상아탑이 쌓은 방대한 지식이 담겨 있지, 그건 알겠지? 하지만 그 지식을 모두 읽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해. 상아탑의 마법사는 각자의 등급에 따라 읽을 수 있는 범위가 다르고, 아닌 이는 상아탑에서 인정해준 자격만큼 읽을 수가 있어. 그래, 로열클래스는 그 자격의 정점…… 기록된 모든 항목을 전부 읽을 수 있지. 그런데 투란, 이게 켈 데릭이 판 도감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거야.”
“에, 음, 예?”
따라갈 수 없어 당혹스러운 투란은 그냥 입술 너머로 아무렇게나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