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6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58)
“켈 데릭의 도감을 펼치고 내가 읽은 부분에 결락된 부분을 궁금해하면서 짚어 물었더니, 마스터 홀시딘은 왜 적혀 있는 것을 읽다 말고 묻느냐고 의아해하더라고. 그래서 알아챘지. 이 도감이 상아탑의 등급에 반응한다고 말이야. 그 결과, 마스터 홀시딘은 확신하더군. 보통 알려질 리가 없는, 알려져서는 안 되는 지식이라도 투란은 바로 읽을 수 있고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훤히 보인다고 착각해서 떠들기 시작하면 이모저모로 귀찮은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당장 쫓아오게 된 거야. 마스터 홀시딘은 페브라에서 아직 할 일이 잔뜩 남았고, 페브라 다음에는 마르크, 아프론, 야누크의 세 왕국을 동시에 압박 넣는 큰일도 있으니까.”
술술 흘러나오는 파쿠란의 말이었다.
투란은 그 내용을 한마디 한마디 따라가기 힘들었다!
“잠깐! 그러니까, 이 도감을 똑같이 펼치고 보더라도…… 로열클래스랑 아닌 사람이랑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말인가요?”
“이야기는 같아. 단지 누군가는 자세한 내용을 읽어도 누군가는 이리저리 빠진 이야기를 읽는다는 거지. 똑같이 앉아 펼쳐진 페이지를 본다 해도 말이야.”
파쿠란은 담담하게, 투란이 납득하도록 한번 더 풀어 말하고 있었다.
투란이 침묵하며 생각하는 척하는 사이,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그렇군, 그래서 몬스터 로드의 비전이라 할 만한 내용을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읽었지. 다른 녀석이 도감을 구했다 해도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는 말이로군!
‘로열클래스가 되면 대도감의 모든 내용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키린이 했었지. 그럼, 그 가게의 도감도 대도감처럼 로열클래스를 따진다는 그런 얘기네?’
―그렇다.
투란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느릿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표정과 함께 파쿠란을 향해 말하는데…….
“그러면…… 아, 잠깐! 파쿠란, 파쿠란도 마스터 홀시딘이 이리로 휭 날려 보낸 거예요? 그 말 전하려고? 도감 읽은 거 아무렇게나 떠들지 말라고 나한테 경고하려고 홀시딘이 마법으로 날려 보냈다고요? 사람보다는 메시지 전하는 게 더 쉬운 거 아니었나요?”
떠들다 보니 이 상황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에 대한 생각이 저절로 이어지며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상아탑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영역 안에 투란이 있으니 그저 로열 가든의 마법으로 메시지를 전하거나 그냥 말만 해도 될 텐데,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블랙 메이지 파쿠란을 페브라에서 알드바인까지 날려 보내다니…….
파쿠란이 빙긋 웃었다.
“도감 사용법, 알려줘야 하잖아. 게다가…… 이자닌과 다르게 난 그리 할 일이 없었으니까. 이리저리 눈에 띄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입장이라, 필요하면 다시 상아탑의 힘을 빌려 바로 돌아갈 수 있는 편의까지 봐 준다 하니 온 거야. 아무래도 그 도감에 대해 조금 더 차분히 주의해서 알려줘야 할 것이 많거든.”
“주의해서?”
투란이 갸웃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펼쳐 셈하는 모습으로 파쿠란이 말을 잇는다.
“그래. 우선 두 가지, 도감에 수록된 내용은 두 가지로 크게 나뉘어. 프라이빗 영역과 퍼블릭 영역, 그렇게 말이야.”
“그건…… 툴이 무슨 열쇠니 뭐니 하며 했던 말 같네요?”
“맞아, 기본적인 개념은 동일하지. 쉽게 말하자면, 이 도감은 투란 너만이 볼 수 있는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부분과 도감을 펼친 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적인 부분이 있어. 그 공개적인 부분은 다른 도감과 공유되는 부분이기도 해. 그래, 하나의 도감에 수록한 이야기를 다른 도감의 소유자도 읽을 수 있다는 말이야. 은전으로 업데이트된다는 말이 그런 뜻이야. 하지만 퍼블릭 영역이 아닌 부분, 프라이빗 부분은 도감의 주인만이 읽을 수 있고 기록할 수 있는 영역이야. 도감에다가 무슨 비밀스러운 일기를 쓴다 해도 본인 말고는 읽을 수 없다는 뜻이지.”
“자기 혼자만 읽을 수 있는 걸, 굳이 써놔요?”
투란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물어야 했다.
투란이 아는 한, 문자를 이용해 뭔가 기록한다는 것은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자기 혼자만 알고 말 일을 굳이 기록한다는 것은 투란에게 낯선 일이었다.
파쿠란은 투란의 생각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기억이란 불안정한 요소가 가득하니까. 연금술사의 레시피처럼 정확하게 기억을 하기가 쉽지는 않잖아?”
“아…….”
연금술사의 레시피란 말이 투란을 납득하게 했다.
뭔가 섞고 볶고 삶고 굽고 끓이는 짓으로만 보이는 연금술에는 무엇을 얼마나 섞고 얼마 동안 볶든가 삶는가, 얼마큼 굽고 끓이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물이 튀어나온다고 했다. 때문에 연금술사는 사용되는 재료의 분량, 가공에 걸리는 시간 따위를 아주 세밀하게 조절해야 하고 그 때문에 철저한 기록을 만들기는 좋아한다고…… 그 기록을 연금술사의 레시피라 했다.
연금술사에게 그 레시피는 몬스터 로드의 비전이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몬스터 로드가 그 몸으로 겪어 알아내는 비전처럼 연금술사도 수많은 재료, 온갖 소재에 재산을 다 바쳐서 알아내는 레시피이기에 함부로 남에게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 도감, 연금술사의 비밀을 지키는 역할도 하는 거였네요?”
문득 떠오른 바를 투란이 바로 입 밖으로 내놓았다.
파쿠란이 칭찬하는 표정으로 끄덕이면서 보태 말한다.
“그래, 하지만 세상에 비밀을 지닌 이는 연금술사만이 아니지. 자신의 일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것이 싫고, 그걸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잖아. 도감의 프라이빗 영역은 그럴 때 쓰는 거지. 죽은 다음에 알리고 싶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만 프라이빗 영역으로 두고, 죽으면 퍼블릭 영역으로 전환되게도 할 수 있어. 아니면 오직 자신이 쓰던 도감을 얻은 이만 볼 수 있도록 사용권한을 이양할 수도 있고 말이야. 켈 데릭이 판 이 도감은…… 솔직히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보를 아주 세분해서 다루도록 되어 있어. 그걸 보다 보면 이게 정말 에고 아티팩트가 아닌가 의심할 지경이지.”
“음, 그러고 보니…… 막 이것저것 조건을 걸어서 찾는 이야기도 참 잘 찾아내더라고요.”
투란도 끄덕거리며 보태듯 말했다.
파쿠란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아무래도 투란이 무슨 조건을 이것저것 걸었나 궁금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파쿠란은 그걸 묻는 대신에 하던 이야기를 다음으로 넘기고 있었다.
“자, 그러면 그다음의 등급에 따른 권한부여에 대해서 말해줄게. 아, 그전에…… 투란, 도감 지금 가지고 있는 거지? 꺼내봐.”
투란은 주섬주섬 허리춤으로 손을 넣는 시늉을 하면서, 허리에 매달리듯 걸려 있는 블랙레온으로부터 도감을 꺼내 내놓았다. 파쿠란은 마법배낭 블랙레온에 대해서는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바로 대도감을 투란 앞으로 가까이 밀며 말한다.
“켈 데릭이 툴로쉬의 초상화를 뜨는 광경을 기억해봐, 그때 사용한 투명한 판은 로어 트럼프라고 한다더군. 단지 사람만 그렇게 옮겨 박듯이 그려서 간직하는 것이 아니고, 풍경도 마찬가지로 옮겨 도감에 새겨넣을 수 있어. 그리고 그 진짜 사용법은…….”
파쿠란이 투란이 내려놓은 도감을 손으로 밀었고, 투명한 카드 형태의 판을 끌어냈다. 그리고 상아탑의 대도감 위에 올려놓더니…….
“이렇게 다른 책의 내용을 한꺼번에 감싸서…….”
말과 함께 ‘로어 트럼프’를 좌우로 당겨 상아탑의 화려한 대도감을 싸매기 시작했다. 무슨 질긴 가죽이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로어 트럼프’의 투명한 판이 대도감을 완전히 휘감아 덮은 것은 금방이었다. 그리고 낮게 외치니…….
“도감을 펼쳐!”
투란은 바로 켈 데릭 가게의 도감을 상아탑의 대도감보다 더 크게 펼쳤다.
“꼭 그렇게 크게 만들 필요는 없지만, 커서 나쁠 것도 없어. 자, 이제 덮어.”
파쿠란이 투명한 껍질에 쌓인 꼴이 된 대도감을 펼쳐진 도감 위에 올려놓으며 하는 말이었다. 투란이 보기에 대도감이 꽤 두껍고 커서 어지간히 크게 펼쳐놓은 도감이라도 그냥 물고 있는 꼴이 될 듯싶었지만, 그래도 군말 없이 도감을 덮었다.
“어?”
뭔가 꿀꺽하는 소리라도 들은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투란은 상아탑의 대도감이 켈 데릭의 도감 안으로 삼켜지는 광경을 봤다.
―허?
드라고니아가 놀란 소리를 냈을 때, 투란의 눈에는 도감의 쇠테 주변으로 금박, 은박이 피어나며 은근히 점처럼 나타나는 보석가루 같은 무늬를 볼 수 있었다.
파쿠란의 목소리가 은근한 떨림과 함께 투란의 귓가로 스며든다.
“두 책이 하나로 합쳐졌지만, 둘 다 제대로 기능한다고 했어. 만약 상아탑의 대도감만을 보고 싶다면…… 테두리의 보석무늬에 손끝을 문지르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면 돼. 켈 데릭의 가게 도감만을 원한다면…… 이 한쪽 끝에 책갈피 끈처럼 나온 얇은 사슬 보이지? 그걸 당기면서 원더 그리모어라고 부르면 된다더군. 해봐, 투란.”
“원더 그리……?”
“아니, 먼저 상아탑 대도감부터 펼쳤다가 해보라고.”
“상아…….”
웅얼거리면서 투란이 파쿠란이 말대로 해보려 했다.
그 소리가 온전하게 나오기도 전에 투란은 도감이 부풀며 조금 전에 삼켰던 금은보석의 대도감 형상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책갈피라도 된 것처럼 아래로 살짝 흘러나온 얇은 쇠사슬도 분명히 있었다.
잠시 대도감의 표지를 만지작거리다가 투란은 숨을 고르며 비장한 각오라도 한 시늉을 하며 쇠사슬을 당기고 속삭였다. 이번에는 또박또박 분명하게…….
“원더 그리모어.”
상아탑의 화려한 표지가 사라지고 두툼한 책의 테두리에 쇠가 감기는 것처럼 변해가며 켈 데릭의 가게에서 가져온 도감의 형태가 다시 드러났다.
“오, 변하네, 변해……. 그런데 이걸 이렇게 오락가락 변신시킬 이유가 있는 거겠죠?”
신기해하면서도 투란이 불쑥 묻는 말이었다.
파쿠란은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듯이 대답한다.
“맞아. 상아탑 대도감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원래 형태를 유지해야 하니까. 상아탑에서 처리해놓은 대도감의 보안, 방어 기능이라고 해야겠지. 아, 그렇지만 평소라면 원더 그리모어를 통해서 대도감의 내용을 그대로 볼 수 있고, 검색도 가능해. 다만 상아탑 근방에서 저절로 내용이 갱신되는 대도감의 특성이 발휘되지 않을 뿐이야. 그러니까 갱신할 때는 확실히 대도감의 형태를 만들어 두고 해야 한다는 거지. 켈 데릭 가게에서 들어오는 정보 갱신은 은전을 먹여주고 말이야.”
“흐흠, 그렇군요…… 그러니까 평소에는 갖고 다니게 편한 채 두다가 상아탑 가까이에서 갱신해뒀다고 편하게 쓰다가, 은전 좀 먹여주고 갱신하고…… 아, 대강 알겠어요.”
투란이 이리저리 궁리해보면서 도감을 뒤척이는 채로 말했다.
파쿠란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입을 여는데…….
“여기까지가 기초적인 사용법이고…….”
“커헉? 기, 기초!”
투란은 바로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살짝 과장하는 장난스러운 투란의 낯빛에 파쿠란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혼자서 뒤져보는 부분 말고, 투란 네가 다른 사람에게 도감의 내용을 보여주는 방법도 알아둬야 해. 우선 투란, 너는 로열클래스야. 대도감의 모든 내용을 자유롭게 볼 수 있지. 필요 없다 여긴 내용까지도 마음껏 열람이 가능해. 하지만 네가 이 도감을 펼치고 안에 담긴 내용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려면, 상아탑의 등급에 따라서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져. 즉, 넌 쓰여 있다고 하지만 상대방은 그런 거 없다고 하는 일이 생긴단 말이지. 프라이빗 영역은 당연히 감춰지고 퍼블릭 영역도 그런 식으로 내용이 은폐된단 말이야. 그럼에도 도감의 내용을 보여줘야 할 때가 있을 거야. 그럴 경우에 네 권한을 이용해 내용 공개를 할 수가 있어. 그게 로열클래스의 특권 중 한 가지인 임시권한 부여라고 하더군. 재미있게도, 켈 데릭의 가게에서 파는 도감도 그 부분에서 상아탑의 보안체계를 아주 신중하게 존중하고 지켜준다는 거야. 아까도 말한 것처럼, 그 가게에서 팔 때는 똑같은 도감이라도 사서 읽는 자에 따라서 볼 수 있는 내용의 범위가 달라지는 거야. 로열클래스에게는 그 범위를 조절할 특권이 있고, 그 방법은…….”
―정신 똑바로 하고 잘 들어둬라.
드라고니아가 의아해하는 투란의 마음에 못질을 하듯 날카롭게 말했다.
굳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 하는가, 하는 단순한 생각에 빠져들려던 투란이었지만 일단 진지한 파쿠란의 태도와 드라고니아의 잔소리에 도감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읽을 수 있게 하는 방법에 대해 잘 들었다.
그렇게 듣고 나서 파쿠란의 말이 멈췄을 때, 투란이 한참 동안 잔소리 들은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뭐가 이렇게 철저해요. 이건 뭐 연금술사 레시피가 아니라 마법의 비술이라도 적혀 있는 책 같잖아요. 그냥 세상의 온갖 신기한 얘기를…… 파쿠란?”
말하는 사이에 파쿠란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지고 있었기에 투란은 하던 말을 멈추고 불러봐야 했다. 그러자 파쿠란이 오히려 긴장을 내려놓는 듯이 말하는데…….
“그게 대도감을, 원더 그리모어를 다루면서 투란이 가장 깊이 명심해야 할 일이라고 마스터 홀시딘이 전하란 이야기야.”
“네?”
“로열클래스에게 허용된 권한 범위에는 상아탑의 마도서도 포함된단 말이야.”
“음, 네?”
투란으로서는 눈을 깜박이며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생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