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6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59)
“웬 마법?”
결국 투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파쿠란이 풋, 하고 새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어이없어하는 투란의 표정이 외치는바, 자신이 마법사가 아니라고 으르렁거리는 중이란 것을 분명히 알아차린 웃음이었다.
―뭐가 웬 마법이야! 지금 너는 어느 정도는 하급 마도사라 해도…….
‘아니잖아! 그냥 마도구 쓰는 거랑 비슷할 뿐이잖아!’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까지도 강력하게 부인(否認)했다.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투란과 드라고니아가 으르렁대는 사이에 파쿠란이 느긋하게 입을 열고 있었다.
“투란, 상아탑에서 왜 대도감을 만들었는가 알고 있나?”
“왜……? 그건…….”
투란은 갸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만들었는가는 키린이 말해준 적 없잖아?’
―기대지 말고 생각을 해라, 생각을!
‘모르는 걸 어쩌라고?’
투란은 시원하게 고개를 젓고 파쿠란에게 대답을 한다.
“모르겠네요? 왜 만들었데요?”
너무 당당하게 무지(無知)를 자랑하는 듯한 말투에 파쿠란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 대신에 다시 묻는다.
“상아탑의 기원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나?”
“기원……?”
이제는 보다 노골적으로 몰라라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되뇌는 투란이었다.
바로 드라고니아가 그런 투란의 뇌리에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들은 척도 않고 투란의 귀는 오직 파쿠란의 목소리에만 쫑긋하는 듯했다.
파쿠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아탑은 춤추는 산맥에 브로큰 킹덤과 함께 등장했지. 가장 간단하게 알려진 바는 그래. 말하자면 고대의 여섯 왕국이 모두 건재했을 당시에는 상아탑이 없었다는 소리야. 하지만 하나의 왕국이 깨지면서 그 영토가 브로큰 킹덤이라 불리면서부터 상아탑이 있었어. 그 까닭은 간단해, 깨어진 왕국의 궁정마도원의 후예들이 상아탑의 시조(始祖)니까 말이야. 그 후예들은 지금처럼 마법이라면 상아탑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는 아니었어. 겨우 마법에 입문한 수습생들이 다른 왕국으로 배우러 갔다가 살아남은 경우였지. 때문에 처음 상아탑의 설립에는 다섯 왕국의 마도원이 막대한 지원을 해줬다고 하더군. 수습생들을 가르쳐서 한 사람 몫의 마법사로 성장시키고, 그들이 자리 잡을 근거지를 개척해주고…… 브로큰 킹덤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그런 마법사 말고도 많이 있었지만, 그 마법사들이 상아탑을 세워 자리 잡기 전에는 다들 브로큰 킹덤을 떠나 다른 나라로, 춤추는 산맥 밖으로 피난만 하고 있었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성장하고, 마법사로서 자리 잡은 상아탑의 시조들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 자신들이 쓰러질 경우, 또다시 다섯 왕국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상아탑을 시작할 수 있는가 없는가. 처음 몇 세대는 가능하다고 봤지만 점차 긴 세월이 쌓이면서 또다시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시대가 찾아왔어. 그래서 상아탑의 마법사들은 생각해낸 거야, 만약의 경우 수습생만 남겨지는 사태가 다시 찾아온다면 그 수습생들에게 임시로 강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방법과 긴 세월 동안에 쌓여온 경험, 지식을 전할 방법을 말이야. 그래, 그래서 대도감에는 상아탑의 은밀하고 깊은 세월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 잘못된 자에게 넘어가면 악용될 수도 있는 지식이 잔뜩 말이야. 이제 조금 납득이 가나?”
“어, 살짝요.”
투란은 맹하니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쿠란은 그런 투란을 보며 한번 더 짙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투란의 뇌리에 떠오른 생각이 표정 안에 훤히 드러나고 있는데, 그야말로 ‘그런 게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지? 그게 왜 중요하지?’란 의혹을 잔뜩 품은 채이다!
때문에 파쿠란은 살짝 말을 돌리기로 했다.
“페브라에서 상아탑의 마법사라면서 이상한 녀석들 잔뜩 봤잖아. 마력은 커다랗고 주문도 꽤 고급스럽고 강력한 것을 쓰는 듯싶은데, 왠지 어설프고 서투른 녀석들 말이야.”
“아, 홀시딘이랑 싸웠던…….”
투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상한 작자들이었고 아직도 왜 그런 묘한 것들이 상아탑의 마법사였는가 투란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당장 알드바인만 둘러봐도 굉장히 엄격한 등급으로 평가되는 마법사들이 상아탑에 우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중 하나 페브라에 던져놓으면 바로 마스터 소리 들을 듯하니까.
파쿠란이 차분히 말을 잇는다.
“브로큰 킹덤의 처음처럼 상아탑의 상위 마법사들이 위기에 대처하다가 몰살했을 경우, 남겨진 서툰 수습생들이 우린 아직 배우는 중이라 형편없이 약한 마법밖에 못 써요라고 하면 쳐들어온 몬스터가 봐줄까? 그래, 그런 일은 없지. 그럴 경우에 남겨진 하위 마법사들이 한 명을 자신들의 리더로 지정하는 거야, 그러면 그 리더는 자신의 실력과 무관하게 보다 상위 마법사로서 상아탑의 인정을 받고, 더 강력한 주문을 상아탑의 지원을 통해 쓸 수 있게 되는 거지. 더 큰 마력까지 부여받는 것은 당연한 거고 말이야. 이제 좀 알겠지? 그래, 페브라의 상아탑 마법사들은 그 비상체계를 이용해서 실력과 무관하게 거대한 마력, 강대한 주문을 사용했던 거야. 하지만 그 때문에 한없이 어설프고 엉망진창이었던 것이고, 상아탑이 재인증을 시작하는 순간에 본색을 드러내서 홀시딘에게 몽땅 제압당한 거지.”
“그게 그런 얘기였군요.”
투란은 멍하니 페브라의 삼 왕자가 꼬드겼다는 이야기를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상시에 쓰라 했더니 전혀 급하지 않을 때, 자신의 실력을 키우지 않고 잔머리 굴려서 마스터 노릇을 했다니…….
―잠가놨다고 했잖아,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비상체계를 조금 더 엄격하게 관리하겠지.
드라고니아가 상아탑을 옹호하듯 말했다.
파쿠란이 잠시 투란이 눈을 깜박이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입을 연다.
“투란, 로열클래스도 그런 비상체계 중의 하나야. 아니, 다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수단이 바로 로열클래스라고 해야겠지.”
“네? 비, 비상수단이라고요? 뭐가요? 어떻게?”
투란은 화들짝 놀래서 되묻고 말았다.
빙긋, 마치 투란의 경악을 기대했고 기대한 대로 되어 기쁘다는 웃음이 파쿠란의 얼굴 위로 피어올랐다. 그리고 어딘가 묘한 즐거움을 담은 목소리로 대답이 나온다.
“상아탑의 시조들이 도움을 받았던 다섯 왕국, 고대의 다섯 왕국은 왕가의 혈통이 고스란히 지켜지던 강력한 나라였어.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왕가의 혈통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되었지. 지금도 여전히 고대왕국의 전승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왕가의 경우에는 이미 힘을 다 잃은 거나 마찬가지라 여겨지지. 아, 에테온은 고대의 혈통을 이은 패왕의 등극으로 다시 봉인된 마법을 되찾아 강력해지고 있기는 해.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진짜 왕가의 혈통이 왕좌에 오르지 못했기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복 중이지. 브로큰 킹덤은 아예 고대왕국의 옛 터전이고 섀터드 세븐이라 불리는 상황이고 말이야. 이런 시대를 상아탑의 옛날 마법사들은 예측했어.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최악의 상황, 지식과 비상체계만으로 과연 대처가 될까? 상아탑의 상위 마법사, 고위급이 전멸한 그런 상황에서 말이야. 그럴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다섯 고대왕국에 버금갈 만한 강력한 지원자야. 단 한 명이라도 영웅이 필요하다, 그게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내린 결론이었고, 그런 영웅을 찾아 고대 왕국의 왕족에 비견되는 신분을 부여하고 상아탑이 보증한다. 그러기 위해서 브로큰 킹덤 이전에 사용되던 고대 마법을 이용했어. 왕가의 혈통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던 마법을 변형시킨 거야. 그 때문에 이 마법은 로열클래스라 명명(命名)되었지.”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에 투란은 그저 맹하니 멀뚱거리는 표정만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뭘 어쩌란 것인가, 하는 눈빛만큼은 선명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럴 때는 뭐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도대체 어떻게 사람 하나가 왕국에 버금가는 지원자란 것인가 전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강력하니 뭐니 해도 결국은 사람 하나인데…….
파쿠란은 가만히 투란의 표정을 바라보는 눈길로 말을 멈추지 않고 잇고 있었다. 뭔가 아직 할 얘기가 가득이란 것처럼!
“자, 그러면 투란, 생각해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상아탑의 최후 수호자로서 로열클래스에게 상아탑은 무엇을 어디까지 허용할까? 어설픈 수습 마법사 정도의 권한을 허용할까, 아니면 전설에나 나올 그랜드 마스터의 권한을 허용할까?”
“마법사가 아니면 그랜드 마스터 권한이라도 쓸모없는 거 아닌가요?”
투란은 어정쩡하니 대답하고 말았다.
여전히 무슨 말인가, 어렴풋이 느끼기만 할 뿐 제대로 이해하고 납득하지는 못했다는 모습으로 그저 입에서 나온다는 듯이 대답하는 투란이었고, 파쿠란을 이를 확실히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당연히 그런 경우에도 대비가 되어 있지. 로열클래스가 반드시 마법사여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할 리가 없잖아?”
“음, 어…… 그러면……?”
“대도감을 지닌 자, 로열클래스일 경우에는 대도감이 마도구로서 마도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가 있다는 말이야. 상아탑의 상위, 아니 최상위 마법까지도 발휘하는 무서운 마도구, 그게 대도감에 감춰진 기능이란 거지.”
“마스터 홀시딘은 그런 얘기 전혀 없었는데요?”
투란은 파쿠란이 단호한 말에 살짝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파쿠란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하더라도 투란에게 한 가지는 분명하기 때문에 나온 반문이었다. 상아탑의 마도사 홀시딘이 그런 위험한 마도구를 투란에게 건네줬을 리가 없잖은가?
한데 파쿠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으니…….
“그런 마도서로서의 대도감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안다고 해도 말해줄 얘기가 아니기도 하고.”
“에? 파쿠란, 모른다니…… 마스터 홀시딘이 대도감이 그런 위험한 마도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모른다고요?”
투란은 어이없어 다시 짚어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아, 그렇게 된 얘기인가…….
돌연 드라고니아는 납득했다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야, 뭐가 그렇게 된 거야?’
불끈하는 기분으로 투란은 소리 없이 물었고, 드라고니아보다 먼저 파쿠란의 대답이 나온다.
“그래, 몰라. 그 지식은 상아탑의 마도사에게 허용되지 않는 금기(禁忌)로 감춰져 있어. 하지만 상아탑에 속하지 않은 채로 수백 년을 지켜본 블랙메이지의 전승을 잇는 자에게는 금기가 아니지. 그리고 그 전승을 잇는 자가 로열클래스를 알게 되었을 경우, 대도감이 전해진 것까지 확인하면 알려줄 의무가 있고 말이야.”
벙긋거리는 입술 사이로 아무 소리도 못 내고 투란이 파쿠란을 바라봤다.
빙그레 웃는 얼굴로 파쿠란이 말을 잇는다.
“투란, 상아탑에는 모든 마법이 모여 있다더라 하는 얘기 들어본 적 있지?”
“어? 어, 그야 있죠. 그래서 상아탑의 마법이 엄청 대단한 거라고, 몬스터 헌터들이 상아탑의 마도구를 꽤 좋아라 하잖아요.”
불쑥 나온 아는 이야기에 투란은 살짝 안도해서 말했다.
파쿠란이 그런 투란을 보며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상아탑의 처음…… 아니다, 다른 왕국의 지원이 닿지 못했던 시기니까 상아탑이 시작 전이라고 해야겠군. 그 시절에 간신히 살아남은 수습생들은 죽지 않으려고 거의 로그메이지나 다름없는 꼴이 되어 있었어. 그중에서 한둘 정도가 위험하다고 궁정마도원에서 외면받고 있었던 흑마법의 지식을, 흑마법의 기술을 활용하기까지 했지. 그들은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들이 오히려 위협일 수도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지원을 받아 상아탑이 구상되고 시작될 무렵에 따로 떨어져 나왔어. 비록 똑같이 멸망한 왕국의 마도원, 그 생존자이기는 하지만 들어선 길이 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걷기로 한 거지. 브로큰 킹덤을 기반으로 춤추는 산맥을 떠돌면서, 다시 또 왕국이 멸망하는 큰일이 터지더라도 어딘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준비를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흑암(黑暗)의 마도(魔道)에 들어선 이를 상아탑의 시조들은 외면하지 않았어. 외면하기는커녕,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비상수단으로 삼기까지 했지. 그래, 그래서 상아탑 내부에서는 금기이고 금단의 지식으로 감춰둔 것조차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거야.”
“그러니까 결국 파쿠란도 상아탑의 마법사? 상아탑에서 모르는 상아탑의 마법사 같은 거란 말인가요?”
투란이 끙끙거리며 되물었다.
조금 유쾌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파쿠란이 대답한다.
“아니, 상아탑의 마법사가 아니지만 상아탑과 같은 시작점을 지니고 상아탑과 조금 다른 목적으로 이 브로큰 킹덤을 방랑하는 어둠의 그림자 같은 마법사란 말이지. 너무나 어두운 곳에 있는 탓에 그림자조차 밝게 여길 정도로 빛에 민감하고 말이야.”
“뭔 소리인가 잘 모르겠다고요!”
비유를 거듭하는 말에 투란이 바로 반항하듯 으르렁거렸다.
파쿠란은 가만히 웃었고, 손끝으로 도감을 가리며 말한다.
“요약하면, 투란…… 이 도감은 말이지…….”
그 신중한 태도에 투란이 쫑긋 귀를 기울여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