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6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61)
Chapter 153. 막간의 사색
빈둥빈둥.
천장의 나뭇결을 살피면서 투란은 침상 위를 굴렀다.
때문에 침상에서 찰그락찰그락, 부드러운 쇳소리가 나고 있었다.
보통 나무 침상과는 다르게 깔려 있는 금전 담요가 ‘나, 금전 있소.’라고 과시하는 듯한 음향(音響)이었다.
귓속을 간지럽히며 노래하는 듯한 금전의 음향을 즐기는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잔뜩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의 외침이 피어올랐다.
―하지 마!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꼭 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해야겠냐! 왜 또 이러는 거냐고!
‘응? 뭘? 그냥 누워 있는 것뿐인데? 왜?’
투란은 벌러덩 천장을 보는 채로 뒹굴기를 멈추면서 되물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중이었을 뿐인데,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대체 뭘 하지 말란 말인가!
―생각을 하려면 똑바로 자세 잡고 제대로 하란 말이다. 이리저리 뒹굴면서 늘어진 게으름뱅이 꼴로 좋은 생각 안 나면 말지 하는 태도를 집어치우라고! 잘 모르면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지, 모르겠으니까 뒹굴자라니! 그게 대체 무슨 태도냐고!
‘음…… 생각하는데 자세라니…… 답답한 얘기 그만하고, 내가 지금 뭘 몰라서 뭘 알고 싶어 하는가 알고 있단 말이야? 으흠…….’
투란은 슬그머니 두 손을 베개 삼듯이 뒷머리에 받쳐 넣으면서 묻는 척했다.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냉소적인 말투로 한층 더 매섭게 으르렁거린다.
―이대로 대도감을 읽다가 또 로열클래스의 의무니 뭐니 하는 걸 뒤집어쓰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있잖아. 감추지도 않고 훤히 드러내놓고 있으면서 뭘 내가 엿봤다는 듯이 말해? 저번에 난데없이 백 미터짜리 거인이 튀어나왔으니 이번에는 또 뭐가 나올지 슬그머니 불안해하는 거, 다 드러내놓고 뭘 시침 떼기는 떼나.
‘칫, 고민이 크니까 너한테도 잘 전해진 것뿐이라고.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바보냐? 이미 세 가지 의무를 다했잖아. 흑마법사 파쿠란이 떠든 얘기는 상아탑이 붕괴해서 망할 때나 너한테 건네질 짐이다. 그 전에는 너 할 일 없어. 파쿠란은 아마 네가 아직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까지 고려해서 몸조심하라 한 것일 거야.
‘어? 그런가?’
발딱, 투란은 일어나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파쿠란이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
“마스터 홀시딘이 뭔가 어려운 일을 부탁할 수도 있어. 넌 거부할 수 없는 부탁일 수가 있지. 그럴 경우에 그 부탁을 반드시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기억해둬. 그런 부탁을 할 때라면, 마스터 홀시딘 또한 전력으로 널 도울 테고 도움을 거부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구나. 내가 아직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걸 수도 있었어. 흐흠, 그래, 그런 걸 거야.’
―눈 한 번 깜박하고 바로 마음에 여유가 넘쳐나는구나?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히힛거리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꼴을 보다가 속이 뒤틀린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조금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대꾸한다.
‘파쿠란은 부탁이 몇 가지는 될 거라고, 절대로 셋 따위는 아닐 것처럼 말했잖아. 그런 말 듣고 나니 살짝 불안할 수밖에 없지! 그랜드 마스터씩이나 되는 홀시딘이 알아서 처리 못 하는 일이면…… 굉장히 어렵잖겠어?’
―굳이 몰튼노트의 평원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무쇠뿔 오우거의 숲, 저 산맥의 거미군단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만, 홀시딘이 너의 힘을 빌릴 수준이 그걸 넘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
‘어? 음…… 그랬으면 좋겠네. 그 정도면 나도 크게 부담은…….’
―이놈이! 부담 느껴! 그 정도면 엄청나게 힘든 거라고 헉헉거려! 홀랑 까먹은 모양인데, 그거 상아탑에서도 몇 십 년, 아예 백 년 넘긴 것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난제였거든! 그 정도면 부담을 팍팍 느끼라고! 네가 깔고 엎어져 뒹구는 그 금전 박은 담요는 그런 일을 해결하고 얻은 거잖아! 그리고 사람의 기준을 따르겠다며? 그새 잊은 거는 아니겠지? 그럼, 지나가던 그랑츄만 봐도 바로 부담스러워하라고!
‘그, 그럴 수도 있겠네.’
뇌리에 천둥소리 내는 북이라도 박아놓고 쥐어패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으르렁거림에 투란은 맹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어댔지만, 결국 그 말이 딱히 틀린 부분이 있다고 짚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바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꾸를 해야 했다.
한숨 같은 미묘한 낌새가 곧바로 투란의 마음에 전해져 왔다.
그리고 드라고니아의 넋두리 같은 말이 이어졌다.
―몬스터 로드로서 자신감은 중요하지. 하지만 그 자신감을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말란 말이다. 키린, 그 심술궂은 녀석이 굳이 너한테 사람의 기준을 따라보라고 한 까닭이잖아. 그래 본다고 온갖 허튼짓은 다 하더니, 정작 생각할 때의 척도는 너 자신만의 것이냐? 약자 흉내…… 하급 몬스터 헌터의 흉내도 어설프지만 잔뜩 내봤잖아. 그러니 거기에 맞춰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할 것 아냐.
‘아니, 파쿠란이 그런 것까지 따져 말한 것 같지는 않다만…….’
끊어질 리가 없이 이어질 듯한 잔소리에 투란이 슬그머니 웅얼거려 봤다.
그에 대해 곧장 드라고니아가 울컥하는 반응을 드러냈고, 또 잔소리가 나오기 전에 투란은 냉큼 도감을 꺼내 펼쳤다.
“자아, 이제 책 좀 읽어볼까!”
흥얼대는 시늉까지 하면서 투란은 독서대를 마주 보고 앉아 자세를 잡는 척했다.
아무렇게나 펼친 도감, 대도감의 페이지에는 잿빛바위 그랑츄가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파쿠란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자신이 아는 것이랑, 겪어본 것이랑 또 다른 뭔가가 있나 해서 투란이 잠깐 펼쳤다가 덮은 페이지였다.
―이미 삼킨 것을 왜 자꾸 보는 거냐?
새로운 잔소리를 시작하고 싶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투덜거림이었다.
투란은 못 들은 척하면서 잿빛바위 그랑츄의 그림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야말로 새하얗게 타고 남은 재의 빛깔은 그냥 재를 온몸에 바른 듯한데, 바위의 질감(質感)마저 그려놓은 듯이 울퉁불퉁한 몸통은 몬스터가 아닌 석상(石像)을 그려놓은 듯한 분위기가 넘쳐났다. 활짝 펼친 한 손은 그랑츄의 독특한 특징, 새끼손가락이 없이 엄지가 둘 달린 형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꽉 쥔 다른 주먹 또한 엄지 둘이 맞물린 듯한 형태를 드러내도록 그려진 채였다. 한 발은 늪을 밟고, 다른 한 발은 늪에서 나오는 모습인지라 발가락 또한 손가락과 마찬가지로 엄지 형태가 둘인 것이 드러난 그림이었다. 그 몸통은 울퉁불퉁한 근육, 손발의 형태를 무시한다면 목 아래 몸통은 인간이라고 여길 수도 있어 보였다. 저런 근육질이라면 이미 평범한 인간은 아니겠지만…….
투란은 그 그림을 보고 그 낯짝을 보고, 그림 곁에 길고 짧게 늘어선 듯한 문자를 차분히 들여다봤다.
⚫ 춤추는 산맥 남부지역에 자주 출몰.
⚫ 암석(巖石)의 특성이 살갗에 드러나기 때문에 칼날 계통의 무기는 효과를 보기 힘들다. 어느 정도 중량이 있는 망치가 큰 효과를 본다. 전투망치는 무거울수록 좋고 클수록 좋지만, 잿빛바위 그랑츄의 몸놀림을 쫓을 수 없다면 쓸모없다.
⚫ 그 튼튼한 몸으로 무투(武鬪)를 즐기는 듯한 성향이 짙다. 그랑츄 중에서 나름 서열체계를 갖춘 종(種)으로 분류.
⚫ 지닌 힘은 인간과 격이 다르나 그랑츄 중에서는 평균을 조금 웃도는 경우.
⚫ 화염(火焰), 뇌격(雷擊), 빙결(氷結)에 대해 바위만큼 버티지만, 살갗이 찢어져 드러난 피하(皮下) 부위는 매우 취약하다. 다만 바위만큼 질긴 탓에 찢는 것이 쉽지 않다.
⚫ 다른 품종의 그랑츄라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강자(强者)라 인정하면 우두머리로 따르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그랑츄 품종이 혼합된 무리가 형성되니 한 품종에 대한 대처로는 상대가 어려울 수도 있음.
‘흐흠…… 다른 얘기는 역시 없나?’
투란은 갸웃하면서 뭔가 모자란 기분을 느꼈다.
―이어지는 내용이 많잖아? 게다가 이건 아무래도 간략한 서론에 불과한 듯한데?
드라고니아가 부추기듯 말했다.
이러쿵저러쿵하다가도 투란이 진지하게 읽는 듯하니 슬쩍 보채는 듯한 낌새였다. 하지만 투란에게는 그 이어지는 내용이란 말이 어리둥절한 소리였으니…….
‘이어지다니? 이 페이지에 적힌 거는 이게 전부잖아?’
―문자의 형태를 봐라. 손끝으로 누르면 다른 내용으로 바로 넘어가는 그거잖아.
‘어라? 그건 켈 데릭 가게의 도감이나 그런 거 아냐? 상아탑도 그러나?’
―지금 네가 보는 거는 둘이 하나로 합쳐진 거잖아. 아무래도 연계가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만.
드라고니아도 상아탑의 대도감이 어떤 형식인가 확신하지 못한 듯, 일단 드러나는 특성을 짚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단 가장 먼저 ‘출몰’이란 부분을 손끝으로 슬쩍 건드려봤다. 곧바로 ‘잿빛바위 그랑츄의 출몰기록’이란 제목이 붙은 채로 지도가 펄럭거리면서 페이지 틈새에서 펼쳐져 나왔다. 도감보다 두어 배는 넓은 페이지에는 춤추는 산맥의 전체 형태가 드러난 듯했고, 붉은 반점이 가득 찍혀 있었다. 지도의 중심에는 거의 없지만, 지도의 외곽…… 주로 여러 왕국의 영토 쪽으로 많이 찍힌 채였다. 마치 사람이 사는 곳을 노리고 튀어나와 움직인 것처럼.
그 반점을 보다가 투란은 제목 옆에 조그맣게 몇 줄 쓰여 있는 것을 봤다.
붉은 점은 통상적인 출몰지, 보라색 점은 잿빛바위 그랑츄 중에서도 제법 강하거나 특이했던 개체가 섞인 경우이며 녹색 점은 잿빛바위 그랑츄와 다른 품종이 섞인 경우라 적혀 있었다.
‘보라색? 녹색? 전부 빨강 점인데?’
그런데 투란이 갸웃하는 대로 펼쳐진 지도에는 붉은 점뿐이었다.
―건드려봐, 점 설명하는 부분을.
드라고니아가 불쑥 하는 말에 투란은 보라색 점 설명하는 한 구절을 새끼손가락으로 쿡 찔러봤다. 작은 문자이니, 가능한 한 작게 짚겠다는 동작이지만 결과는 지도 전체에서 붉은 점을 지우고 보라색 점을 나타내는 큰 변화였다.
“와, 특별한 녀석이…… 많네?”
붉은 점만큼은 아니었지만 보라색 또한 적지 않게 찍혀 있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지도의 중앙 부 아래에 몰려 있는 듯 보였다.
―브로큰 킹덤이나 북부 왕국이라 할만한 바로크보다는 기가둠, 로그람, 솔로얀 쪽이 잿빛바위 그랑츄에게 적합한 곳인가 보군. 에테온은 북에서 남으로 이어진 탓에 어중간하고 말이야.
‘어, 그러네.’
투란은 왕국의 국경 표시를 보며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슬쩍 점의 색에 대한 설명이 붙은 부분을 넓게 엄지로 동시에 문질러 보니, 지도 전체에 붉은 점, 녹색 점, 보라색 점이 우르르 몰려나오듯이 찍혔다. 그중에는 겹쳐진 부분도 있었고, 세 가지 색깔이 반짝거리듯이 번갈아 가면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많은 점이 모여서 명멸(明滅)하는 지역이 금방 눈에 띄었고, 투란은 그 언저리를 감싸는 동그라미를 손끝으로 그리며 중얼거렸다.
“여기 부분 지도를 조금 더 크게 잘 보여줘.”
―뭐? 무슨 소리를…….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해하는데, 지도가 변했다.
춤추는 산맥을 모두 드러내던 지도가 특정한 지역, 투란이 손가락으로 그려놓은 경계를 중심으로 확대되며 나머지 부분은 지도 테두리 밖으로 사라지듯 없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멀리서 보다가 갑자기 확 당겨 본 듯한 묘한 변화였다.
“헤에, 역시 엄청난 마법 도감이야!”
감탄하는 소리를 흘려내면서 투란은 지도 아래에 표기된 지역명을 읽었다.
―솔로얀, 카짓 밀림산맥.
‘어라, 여기가 거긴가?’
―아는 곳이냐? 가본 적 있어?
도감이 투란의 말에 응하는 광경에 조금 어이없어하는 낌새를 띤 채로 드라고니아가 묻고 있었다.
‘가본 적이야 없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입술을 삐죽이며 투란이 대꾸했다.
―유명한 곳이란 말이군. 네가 자란 마을까지 소문이 들렸을 정도면 말이야.
‘어? 아,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나온 잿빛바위 그랑츄가 꽤 유명한 놈이 많았다니까. 다른 그랑츄도 꽤 많이 튀어나왔다고 하고…… 아마 여기 갈기산맥보다 유명할 걸, 솔로얀 왕국에서는 말이야.’
―그랑츄가 그렇게나 많이 나온다는 소리냐?
‘음…… 그랑츄만 있는 거는 아니고, 비비나비도 꽤 있기도 한데…… 뭐랄까, 여기서 나온 그랑츄에게는 따로 이름이 붙는다고 해야 하나? 암튼 좀 세고 특이한 놈이 많다고 보면 돼. 혼자 나올 때보다 떼로 몰려나올 때가 더 많은데도 말이지.’
―호오? 그러면 네가 아는 얘기가 도감에 그대로 실려 있을 수도 있겠군?
슬쩍 자극하는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에게 고스란히 먹혔다.
“잿빛바위 그랑츄, 카짓의 혈석(血石)…… 보여줘.”
바로 투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